혹시 너무 기계적이지는 않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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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전에 기계치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기계치란 기계를 잘 못 다루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주변에는 기계치가 아니라 아예 기계 같은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저는 요즘 약 15개국에서 온 과학기술자들과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외국 이곳저곳에 살아보면서 느끼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를 초월해서 직업군끼리 어떤 비슷한 특징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에서 접하는 사람들이 비록 다양한 출신국가 배경을 가졌어도 생소하지 않습니다.
여태껏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온 과학기술계 사람들인 것이죠.
현재 일하는 곳은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보니,
공통적 시각을 도출해보려고 회의가 많습니다.
발표를 할 기회도 들을 기회도 많은데, 불행하게도
너무 지겨운 발표들이 많아요. 소통하려는 적극적 자세보다는
방어용 발표가 많고요, 내용도 엄청난 분량이어서 청중을 지치게
합니다. 그래서 회의할 때는 의례 사람들이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와서 자기 일을 하더군요.
그러다가 자기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잠시 방어하고 또 다른 작업하고...
오랜 기간 동안 이공계에 종사하다보니,
감성이 퇴화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아주 절실히 느낍니다.
사람은 감정적으로 기분이 나쁘면, 마음을 열지 않는 법이잖아요?
감정이 거슬린 다음에는 상대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어놓아도 비판만 하게 되죠?
그런데 자기가 감성이 모자라다보니, 상대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모자랍니다.
이러니 불필요하게 스트레스를 높이며 일이 진행될 때가 많습니다.
모국어가 다르니, 저녁에 맥주라도 한 잔하면서 털어버리기도 어렵고...
사실 어느 나라 가릴 것 없이 그동안 우리 이공계는 감성을 상당히 경계하며 살아왔습니다.
장안에 유명하다는 이공계 교수들은, 솔직히 거의가 지겨운 모범생 스타일로 생겼죠?
TV 에 나와서 부드럽고 쉽게 이야기를 진행할만한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내부적으로 격이 떨어지는 학자로 매도될 가능성도 있죠.
황우석교수가 그렇게 유명해졌던 것은,
감성적 터치를 잘해서 사람들에게 쉽게 어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짓말이나 지나친 과장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과학기술인 전체가 사회에 상당히
지겹게 인식되어 있다는 점만은 우리가 깊이 반성해 볼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좀 더 감성적 터치가 있는 이공계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강의보다는 논문숫자 경쟁이 치열해진 후에는 분위기가 이전보다 더 딱딱해진 것 같습니다.
논문이야 딱딱하게 쓸 수밖에 없지만, 발표만이라도 좀 재미있게,
졸 던 사람 확 깨게 색다르고 튀게 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계산으로 얻어진 숫자는 정답입니다만, 그 정답의 의미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게 알리냐에 따라 정답의 가치는 엄청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감성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감성과 이성의 적절한 배합이 있어야 소통 자체가 설득력과 매력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위에 반은 여자, 반은 남자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인간마음에 반은 이성, 반은 감성인 것을
우리 이공계 사회가 너무 무시하고 이성적 접근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감성의 가치를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성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도구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바닥에서 감성이 말라버린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정작 우리 자신입니다.
혹시 배우자에게 마저, '당신은 재미없고 지겨운 사람!'으로 찍히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런 핍박에도 불구하고 나 홀로 가노라!'고 My way만 부르지 마시고,
이성과 감성이 잘 안배된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감성이 너무 풍부해서 탈이라고요? 그러시다면 제가 괜한 이야기를 한 것이 구요.
그러나 이공계 대학을 다녔고 이공계 직업에 몸담은 지? 20년 이상이 되셨다면,
저를 포함해서 누구도 장담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우리 자신들은 상당히 기계적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