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전쟁 그리고 세계화와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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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한 번 방향을 정하면 그 관성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후발주자들까지 가세해서 오히려 속도가 붙는다. 오르막에서 액셀만 밟느라고 브레이크 고장을 몰랐던 버스가 내리막에 접어든 것과 비슷하다. 내리막에서 더 빨라진 버스 속 승객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며 환호성을 질러대고, 바깥의 행인들은 순식간에 저만치 멀어진 버스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 누구도 잠시 후에 있을 불행을 예측하지 못한 채 말이다. 애초에 운전사도 승객들도 부정적인 결말은 시나리오에서 뺀다. 차이가 있다면 운전자나 부자 승객들은 더 많은 액수의 보험이 있다는 정도다. 사고에서 목숨만은 건졌다면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생사를 오가는 충격을 받았으면 완전회복은 불가할 것이다. 과속과 정원초과는 현대문명의 고질병이다. 각국 정부는 안전점검에 책임이 있지만, 슬쩍 눈감아주고 오히려 남들보다 더 빨리 달려줄 것을 당부한다.
20세기 초 제국주의는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생산품도 소비하고 원료공급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후발주자인 미국과 일본이 세계를 거의 다 나누어 먹고 있었는데, 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독일은 차지할 땅이 남아있지 않아 벌어진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이다. 세르비아 청년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은, 울고 싶던 아이의 뺨을 때려준, 말하자면 방아쇠를 당긴 집게 손가락일 뿐이고 이미 총은 겨누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제1차대전은 1천만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리고 겨우 20년만에 벌어진 제2차대전에서 6천만명의 사망자를 낸 후 약소국들이 독립하면서 제국주의는 물러갔다. 이 당시 6천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5개 정도 였다고 하니, 큰 나라 하나가 제2차대전으로 증발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브레이크 고장난 버스가 내리막길 저 아래에서 큰 나무에 부딪히면서 승객과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까지 몰살시킨 사고였다.
제국주의가 사라졌지만, 탐욕을 버리지 못한 선진국들은 여전히 배가 고팠을 것이다. 예전처럼 통째로 뺐지 못하니 새롭게 만들어낸 시스템이 제국주의를 업그레이드한 세계화다. 후발주자 국가들의 정치적 독립성은 인정해주면서 경제와 문화로만 지배하는 방식이다. 후발주자들은 선진국들을 멘토로 삼아 “나도 빨리 남의 나라에 빨대 꼽는 기술을 배워야지! “ 하는 목표를 가지고 기꺼이 참가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독립운동이나 물산 장려운동은 피지배자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제국주의가 교묘하게 변질된 세계화 시대에 ‘독립군’들은 수구세력으로 폄하되었다. 정치영역에서는 여전히 국뽕이 존재하지만, 경제영역에서는 찌질이 취급을 받는 것이다. 독립군과 앞잡이 그리고 신지식인과 옹고집 한학자들이 뒤섞여 내부에서마저 피아식별이 불가한 것이 세계화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세계화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준 것은, 우리 시대에 잘났다고 인정받는 미국대학 출신 전문가들이나 프랑스 철학자들 이름을 첫줄에 써두어야만 글을 시작하는 지식인들이 아닌, 이 지겨운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여태껏 우리가 따라잡으려 손을 뻗었던 세계화는 김구선생이 언급한 ‘사해동포주의’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사해동포주의는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이라는 단어와 더 잘 어울리고, 세계화 Globalization 는 신제국주의라고 번역해야 맞다. 구제국주의에 비해 신제국주의는 훨씬 세련미가 넘친다. 원료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나라 국민들은 착취에 대한 혐오보다는 동경과 희망을 가진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서류나 말로만 돈을 버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그들의 멘토들은 최고의 과학과 기술을 가졌지만, 자기 땅에 공해를 없애려고 생산시설을 이전했다. 그래서 접으면 손바닥만한 셔츠 하나에 백만원 이상가는 명품은 만들지만, 사소한 마스크를 못만들어 아예 안쓰는 것으로 코로나를 버티느라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슬픈일이다. 질주하던 관광버스가 언덕 아래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찢겨진 장면을 생생하게 본 기억을 다 잊고, 이제는 최신기종 버스를 탔으니 더 안전하다고 선전해대던 전문가들이 갑자기 얼굴을 바꾸어 너도나도 코로나 이후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란다. 정보의 양은 훨씬 많아졌지만, 불량품이 섞일 가능성도 훨씬 높아졌기에 자기에게 맞는 정보를 선택하는 것은 철저하게 개인의 선택일뿐이다. 선택문항도 많아졌고 복수정답문항도 있어서 사는 것이 훨씬 복잡하다. 세계화 파생상품은 무엇이고 환불받고 싶다면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세계화를 코스모콜리탄으로 바꿀 것인지가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다. 아마도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가 탄 버스는 낭떠러지에서 수직낙하했을 것이다. 최근에 돌아가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께서는, 최근의 인류가 마치 집단 자살조처럼 행동하는 것 같았다고 하셨다. 다행히 타고있던 버스가 잠깐 휴게소에 들렀다면 빨리 나와서 스트레칭도 하고 점심도 먹으며 행선지를 점검해 보자. 가고 싶은 곳이 달라졌다면 이제라도 빈 자리가 있는 다른 버스로 바꾸어 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Bon voyage & Good luck!
예전에 YS께서 세계화를 힘주어 말씀하시던게 생각나네요. 얼마 안있어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터졌고 IMF의 구조조정과 과잉진압으로 인해 많은 우량 기업들이 도산했지요. 세계화가 작금의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데 동의합니다. 예전의 귀족이나 왕의 역할을 이제는 글로벌 기업이나 자본가들이 대신하고, 중산층들은 착취받는 소작농 신세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말씀하신대로 코로나 덕분에 들른 휴게소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