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만들기와 외국어 공부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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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시작된 이래 대면접촉이 줄어들어 사람들 얼굴도 가물가물 하고 생활이 단순해지다보니 머리도 멍해지는 것같다. 좀 과장하면 아직 살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벌써 사후 세계에 있는 것인지 헛갈린다. 한국은 거의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곳은 저녁 6시가 통금이다. 그동안 인류의 과도한 개발과 지나친 이동이 코로나 사태를 초래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가 바이러스를 만들지는 않았다고 하여도, 급속히 전세계로 퍼지는데 기여한 것만은 사실이다. 근래 역사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과 새로운 문명의 방향이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할 터인데, 사태가 수구러들고나면 다시 속도경쟁이 불붙을 것이다. 뉴턴의 법칙을 잘못 해석하여 우리는 은연중에 관례를 절대진리처럼 여기는 반면, 리스크가 따르는 새로운 방향은 꺼린다. 관성의 법칙은 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지, 반드시 관성대로 따라야 한다는 규범은 아닌데도 말이다.
각설하고, 요즘 재택근무도 많고 바깥생활이 줄어들어, 아마도 유튜브를 통해 외국어나 프로그램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 필자의 경험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아주 오래전에 대전에 있는 코센본부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은 눈사람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는 비유를 말한 적이 있다. 전시같은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면서 문득 당시 이야기가 떠올랐기에 아이디어를 ‘셀프 표절’하였다.
나는 어린 시절 속초에서 살았는데, 겨울에는 언제나 눈이 많이 왔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단단한 연탄재를 부엌구석에 모아두었다가 눈이 오는 날이면 앞집 뒷집 친구들을 불러모아 눈사람을 만들었다. 먼저 연탄재 바깥을 눈으로 발라 실린더 형상의 연탄재를 구형으로 만드는 작업부터 했다. 윗면-아랫면은 구멍 덕분에 눈이 쉽게 붙지만, 연탄재 측면은 볼록한 커브이면서도 맨질맨질하여 눈붙이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장갑을 벗어던지고 시린 손을 불어가며 세심하게 손질하여 일단 농구공 크기 정도의 눈뭉치를 만들고나면, 그때부터는 발로 살살 굴려가며 눈뭉치를 키우는 일은 쉬웠다. 너무 커지면 여러명이 손으로 밀면서 눈뭉치를 거의 키 높이까지도 만들었다. 한 번은 머리를 좀 써서 눈뭉치를 쉽게 굴리려고 언덕길 위에 두고 살짝 밀었는데, 브레이크 없는 눈뭉치는 임계점을 지나자 엄청난 속도로 굴러내려가 그만 나무에 충돌해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했던 일을 반복하려니, 동기부여도 떨어졌고 누가 이런 잔꾀를 제안했냐는 친구들 불평을 듣고는 마음도 편치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 뒤 외국어나 프로그램 랭귀지를 배울 때마다 어린 시절 속초에서 눈사람 만들던 기억이 자주 떠올랐다. 외국어 공부도 일단 실린더 형상의 연탄재 바깥에 눈을 붙여 구형을 완성하고나면, 즉 기초가 어느 정도 잡히면, 그 뒤로는 좀 쉬워진다. 눈뭉치를 발로 살살 굴리기만 해도 몸집을 키울 수 있는 것처럼,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실력이 만들어지면 원어민들을 친구로 사귀면서 잡담만으로도 실력을 제법 늘릴 수 있다. 그런데 실린더에서 구형으로 형태를 바꾸는 작업 (모국어 논리를 확장하여 외국어 논리를 이해하는 과정)을 끝내지 못했다면, 공부는 엄청 지루하고 진도 나가기도 힘들다. 이 부분은 과학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용어인 Threshold (문턱)에 해당되는 것이다. 문턱을 일단 넘고나면 하루에 30분 정도만 투자해도 최소한 잊어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최초 그 문턱을 넘으려면 아마도 1년 정도 하루에 2시간씩은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이제 한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점프하려면, 발로 굴리는 편한 동작으로는 눈뭉치를 더이상 키우기 어렵듯이, 원어민들과 잡담하는 정도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이때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배우기는 어렵고 본인이 직접 책이나 잡지를 읽고 방송을 들으며 공부해야 한다. 마치 고혈압 환자, 당뇨병 환자가 매일의 식단을 계획하듯이 자기만의 체계를 세워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어려운 문턱을 넘었는데도 공부를 안한 채 2~3년이 지나버리면, 세워둔 눈사람이 햇볕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흔적만 남을 뿐이다. 한 번 만든 눈사람은 영구한 것이 아니듯이, 기회 있을 때마다 자기 실력을 점검해야 실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외국어 실력은, 매일마다 운동하여 근력을 유지하는 “몸짱 만들기” 프로젝트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으며 외국어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어중간한 외국어 실력은 사실 실질적인 소통에도 그리고 스펙에도 거의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의미있는 다른 취미생활이나 스펙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더 가성비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턱을 넘어서서 원어민들과 직접 소통 가능한 언어가 본인의 머리와 귀 그리고 입에 체화되고나면, 외국어 능력만이 아니라 타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보다 균형잡힌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 상황을 현재 생활에 잘 받아들이면 전례없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물잔에 반을 채운 물을 반밖에 없는 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반이나 남은 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우리 삶은 상당히 달라질 것이니까. 코로나 시절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인생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시절이었다고 추억할 코세니아들이 많길 바란다. (글로 쓰다보니, 본인은 엄청 잘 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게으른 자신과 매일매일 투쟁중이다. 포복으로나마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믿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