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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가을을 맞이하며

1. 회원님에 대한 소개와 학창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카본재료를 주로 재료공학이라는 전공으로 일본 신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에서 포스트 닥을 거쳐 현재 카본과학연구소의 준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부시절 그닥 여유롭지 경제상황으로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과 만남으로 운좋게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입대전까지의 학부시절은 공부보다는 음악에 미쳐서 학교를 그만두고 프로 뮤지션으로 나아갈 까 고민할 정도로 연구와는 거리가 있었지요.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활동을 시작해 1990년에는 지금은 없어진 대도레코드의 Friday Afternoon 시리즈 중 3집의 한 그룹으로 참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베이스기타를 담당). 그 이후 신사동의 화이트 스튜디오가 오픈하면서 개최된 전국 락 페스티발에도 참가해서 예선합격까지 통지를 받았습니다만, 본선을 앞두고 저희 밴드의 싱어가 군대를 가게되는 바람에 본선 진출은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답니다. 어렸을 적의 저에게 있어서는 음악이 인생의 전부였고 연구자의 길을 걷게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밴드생활을 통한 끈김없는 생명력의 느낌은 아마도 연구라는 자기만의 싸움에 견디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지않았나 생각되는군요. 여담입니다만, 어느해 광주광역시에서 시나위라는 밴드의 오프닝을 담당하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당시 시나위의 베이스기타가 서태지였답니다. 싱어는 김종서였구요. 이후 제가 군대에 입대를 하고 이등병 시절 ‘난 알아요’ 라는 노래로 테레비에서 나오는 서태지와 방송매체에 상당한 거물로 성장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학창 시절 장발에 기타를 가방대신에 매고 있는, 락커를 꿈구던 저의 모습이 아련히 생각납니다. 가을이라서 그런걸까요??  


2. 회원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 놓은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 및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현재참여하는 연구분야는 카본재료를 사용한 에너지 저장 디바이스입니다. 20세기 지구 온난화 위기에 따른 범지구적인 공감대 형성으로부터,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클린-에너지원으로서 많은 투자와 연구가 집중되어온 분야입니다. 박사시절에는 전기이중층 캐패시터와 관련해 다양한 기업과의 공동연구 및 상품개발과정에도 참여를 했으나,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변천사가 이야기 해주듯이 배터리의 관심이 더욱 커지는 세계적인 흐름에 맞추어 배터리에 대한 새로운 연구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연료전지는 주로 촉매담지법 개선에 따른 촉매 반응효율 극대화, 담지체의 구조개질에 대한 촉매담지율 촉진, 카본자체가 가지는 촉매특성을 최대화 시키기위한 이종원소의 도입과 같은 연구를 진행중에 있습니다. 혼다가 발매한 세계최초의 연료전지 자동차 FCX는 자체개발한 캐패시터와 연료전지를 모듈로 구성해 에너지 구동원으로 사용합니다. 제가 소속된 카본과학연구소에서는 오래동안 혼다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캐패시터의 전극물질 개발에 깊게 관련해왔지요..그외에도 토요타, 니치콘, 루비콘, 닛신보 다수의 회사의 상품개발, 평가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3. 이 직업 또는 연구분야를 정말 잘 선택 했구나 싶었던 때는 언제인지?
 
인생의 보람이라고 할까요..너무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조금 부끄럽지만 나의 연구가 어쩌면 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잇다는 걸 인식하게 되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 듭니다. 화석연료는 언젠가는 그 바닥을 들어내게 될터이니 시기가 문제이지만 반드시 해야할 부분이 에너지관련 사업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다른 사람을 둘러보지 못하고 나만의 세상에 서 갖혀 살았지만,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를 느끼고 나면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4.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다면?
락커의 인생에서 연구자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두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처음은 대학 4학년때 아르바이트로 나이트 밤무대에 서게 ?던일. 경제적으로 넉넉치가 못해서 되도록 이면 빨리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지만 나이트 아르바이트는 당시 제법 많은 돈을 손에 쥘수 있었고, “이돈이면 대학원도 내가 벌어서 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학창시절 많은 추억을 주었던 밴드활동 경력이 이렇게 제가 연구자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계기를 열어주었답니다. 또한, 당시 지도교수님 이었던 전남대학교 양갑승 교수님과의 만남은 본격적으로 카본이라는 학문과 접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연구자로서의 저의 숨겨진 부분을 계발해주신 분이라 생각됩니다. 복학 후에도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장발에 조금 독특한 패션이엇던 제게 아무런 편견도없이 너도 잘 할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셔던 분 이셨습니다. 한가지 더 추가를 한다면 일본에 유학을 오게 되었던 데에는 현재는 아모텍에 계시는 김찬박사님의 영향이 컸어지요. 외국에 나가는 불안감을 선배님의 나만 믿으라는 한마디에 모든 걱정을 던져버리고일본으로 넘어올 수 있었답니다.

5.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제가 코센을 알게된 것은 거의 코센이 탄생한 직후 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인터넷 검색중에 우연히 발견하고 자주 들르게 ?습니다. 자료요청을 통한 많은 분들의 도움은 자료 검색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고, 전문가 분석자료, 학회보고등 꽤 많은 활동을 했었지요. 전문가 분석도 수가 쌓여가니 마치 논문발표처럼 나름 즐거움도 생기더군요..올해부터는 처음으로 전문가로서 활동을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미약하지만 저의 자그마한 힘이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6.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같은 대학에 계시는 김융암박사님의 경우는 경북대에(당시는 일본 동북대) 계시는 김기범 교수님과 공동연구도 진행하고는 계기를 코센을 통해 마련한 경우를 보았습니다. 저는 코센을 통해서 현재 함께 일하는 포스트 닥을 선발하는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코센에대한 저의 자그마한 제안이라고하면, 오프라인 모임을 활성화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일본에서도 동경등 대도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한국분들이 많이 적은게 현실인데 지역적으로 조그마한 오프라인을 활성화해서 지역별 혹은 전공별로 모임을 장려할 수 있는 지원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재일한국인 협회가 있는데 지역내의 3인이상의 회원확보로 매월 모임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코센과의 공동협정이 있다면 일본지역내의 네트워크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분야별, 지역별 나름 특색을 가지는 모임을 선정하고 아마도 이런 모임에서 학회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전 세계에 계신 한국인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지역 포럼을 제안합니다.

7.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저는 용기를 잃지 않고 모든일에 꾸준하게 전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가장 빠른 시간이며, 누구라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도전을 하다보면 주변에서도 자신스스로도 발전해 나아갈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생은 단 한번뿐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쉽게 낮은곳에서 만족해 버릴수 없는…그리고 도전과 모험은 한번뿐인 인생속에서 너무나 당연한게 아닐까요.
다시 돌릴수 없는 단 한번뿐의 인생이기에 조금 더 먼곳, 안해본것, 안타까움이 남지 않게 많을 것들을 해볼수 있는 인생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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