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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독일의 작은 도시 Freiberg에서 헬름홀츠 연구소 박사과정 생활
안소현 (hyun3028)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독일 동쪽에 작센 주에 위치한 Freiberg이라는 작은 소도시에 거주 중이며 현재 헬름홀츠 연구소에서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안소현입니다. 소속 되어있는 연구소 본원은 드레스덴에 위치하고 있는 Helmholtz-Zentrum Dresden-Rossendorf (HZDR) 이며,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그 중에서도 재료 기술에 연구 분야가 집중 되어있는 Helmholtz Institute Freiberg for resource technology (HIF) 라는 곳입니다. 저는 아헨공과대학 (RWTH Aachen)에서 환경공학 석사를 마치고 작년 7월부터 HIF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독일 전역의 헬름홀츠 협회 소속 연구소들 출처: https://www.helmholtz.de/ Helmholtz Association 은 독일 전역에서 총 18개의 센터, 그리고 43000명의 직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독일 최대 규모의 정부 출연 연구 기관입니다. 리스트를 보시다 보면 DESY, DLR(German Aerospace center)와 같이 명칭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헬름홀츠 협회 소속인 연구소들도 있습니다. 저도 헬름홀츠 협회 연구소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박사과정 자리를 찾을 때나 되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헬름홀츠 협회는 대부분 대학이나 산업계에서 수행할 수 없는 거대 연구나 국가가 담당해야 할 연구를 많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크게는 에너지, 환경, 보건, 항공 우주, 입자 및 물질 구조 분야에 집중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독일 연구소가 그러하듯, 대학의 캠퍼스 인근에 위치하며 각각의 연구 센터들은 특정 연구 분야에 집중합니다. 헬름홀츠 협회 소속 박사 과정 연구원이어서 좋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는 헬름홀츠 소속 연구소에서 일하는 박사과정 연구원들끼리 내부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그룹인 HeJu(Helmholtz Juniors)가 있으며 각 연구소마다 정기적인 Heju 미팅에 참석하여 발언을 담당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Heju는 박사과정학생들의 연구환경 발전 등을 위해 다양한 설문조사, 행사 등을 주최하여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hzdr.de/ HZDR은 여러 연구소가 한 곳에 모여 있는 센터를 지칭합니다. 드레스덴에 위치한 HZDR은 대략 60개국 이상의 배경의 1400명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매우 인터내셔널한 환경입니다. 헬름홀츠 협회에 소속된 연구소들 중에서 에너지 분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드레스덴뿐만 아니라 저희 연구소처럼 다른 도시에 위치해 있지만 HZDR 소속인 연구소들이 더 있으며 (Dresden, Freiberg, Görlitz, Grenoble (France), Leipzig, Schenefeld near Hamburg), 현재 HZDR에 일하고 계시는 한국분들도 몇 분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드레스덴에 위치한 연구 캠퍼스를 방문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기회가 된다면 한번 방문해 보고싶습니다. 매년 HZDR 소속 박사 과정 학생들을 위한 세미나가 열리는데,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한 규제들로 인해 하이브리드로 진행되었습니다. 프라이베르크에서 거주하고 있는 저는 온라인으로 참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 전까지는 필드 트립 겸 세미나 행사를 계획하여 다른 곳에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해서 서로 연구 내용도 교류하고 네트워킹을 다지는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HIF 전경 및 컨셉 출처: http://www.hzdr.de/hif Helmholtz Institute는 Helmholtz Center와 대학 간의 파트너십을 맺은 연구소들을 말합니다. HIF는 현존하는 대학들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광산 기술 대학인 Technische Universität Bergakademie Freiberg (TUBAF) 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주요 과제들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가령 대학에 제 업무에 필요한 기기가 있으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고,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사람들과 HIF 연구원들이 서로 업무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HIF는 헬름홀츠 연구소들 중에서 비교적 최근인 2011년에 생긴 신생 연구소입니다. 저희 연구소에서는 광물 및 금속 함유 재료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산업 혁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HIF는 현재 Exploration, Processing, Biotechnology, Process Metallurgy, Analytics, 그리고 Modelling and Valuation, 총 6개의 부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는 그 중 Department Processing에서 Recycling 그룹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연구 대상인 Water electrolyzer 의 종류 저는 현재 독일 연방 교육 연구부 (BMBF)에서 주도하는 수소 생산 및 규모 확대를 위한 프로젝트(H2giga)에서 수전해조 재활용 (ReNaRe: Water electrolyzer recycling)과 관련된 주제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2030년까지 수전해 기술을 이용한 전기 생산을 5기가와트로 확장하는 것을 국가 수소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를 위해 독일 전역에서 백여개의 산업적, 교육적 파트너들이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 자리를 찾게 되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모든 인터뷰들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면접을 보러 오랜 시간을 들여서 갈 필요가 없어 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 어느 곳도 직접 방문해서 연구소의 분위기를 겪어보지 못 해서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웠고, 일하게 된 HIF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연구소에 출근하던 날, 설레기도 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떨어진 것 같아 긴장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처음 부서장과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연구소에 아직 한국인이 없다며 제가 만약 같이 일을 하게 된다면 첫번째 이자 유일한 한국인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이들에게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한국 연구자분이 기회가 되어 저희 연구소에 오시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 연구소는 30여개가 넘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동료들이 일하고 있으며 공식 언어는 독일어와 영어입니다. 독일어 프로그램으로 석사를 마친 저였지만 연구소 공식 언어 중 하나가 영어라 한결 언어에 대한 부담감이 낮았습니다. 물론 프로젝트 미팅을 할 때에는 독일어가 공식 언어라 매번 독일어로 발표를 준비해야하는 나날의 반복이지만, 아직까지는 재미있게 일 하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부터 다시 시작되었던 코로나로 인한 규제들로 인해 동료들과 비록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상황이 잠시 진정되었던 작년 여름, 부서 차원에서 팀원들과 함께 도시를 걷고 등산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습니다. 연구소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한달도 되지 않아서 아직 동료들과 친해질 시간도 없었고 Freiberg에 대해서도 잘 모를 때였는데, 동료들과 함께 하루 종일 도시를 걷고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이런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습니다만, 요즘은 점차 규제가 많이 풀리고 있고 어느정도 생활이 많이 정상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가오는 여름에는 각종 활동들을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년에 두 번 저희 연구소에서는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러닝 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서장이 일주일에 한번은 하프 마라톤을 꼭 뛰는 러너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맨 처음 인터뷰를 볼 당시 저도 체력 강화를 위해 러닝을 가끔 하던 때라 러닝을 좋아한다는 한마디를 했다가 결국 같이 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5 km까지 쉬지 않고 뛰어보지는 않았었는데, 이 대회를 참석하게 되면서 한달 정도 거의 매일 러닝을 뛰는 훈련을 했고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저희 부서장을 비롯한 몇명의 연구소 러너들은 5km 20-22분대로 기록하는 놀라운 달리기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5월 말에 드레스덴에서 같은 러닝 대회가 열리고 연구소 동료들은 이번에도 참석합니다. 비록 저는 저 무서운 러너들 사이에서 뛰기엔 지난 겨울동안 러닝을 쉬어서 이번에는 참석하지 않습니다만, 날씨가 좀 더 풀리고, 다시 한번 연습을 열심히 한 뒤 가을에 다시 한번 동료들과 함께 뛰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밖에도 박사과정 동료의 캠페인 중 하나인 100여개의 냉장고를 재활용하기 위한 작업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연구 대상인 수전해 셀은 두께가 마이크로미터 단위이고 이를 재활용하기 위해 아주 작은 입자들을 연구해야 하는 반면, 이 친구의 연구 대상은 몇 백키로씩 하는 냉장고이니 저희 연구소의 연구 분야는 정말 광범위한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시국이라 대부분의 일들은 온라인으로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출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요, 나름 연구소 생활 중 첫 출장이라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를 제외하고는 전부 독일인인 동료들과 함께 출장 기간 내내 독일어로 대화하고 독일 식당에서 식사를 했던 시간들은 약간은 힘들었지만, 그 덕에 며칠 새 독일어가 반짝 늘었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요. 맨 처음 프라이베르크(Freiberg)를 들으신 분들은 대부분 프라이부르크(Freiburg)라고 알아들으시고, 저도 심지어 면접을 볼 때 처음에 연구소가 당연히 프라이부르크에 있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독일에서도 프라이베르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프라이베르크는 독일 동쪽에 드레스덴과 켐니츠 사이에 있는 위치한 인구 4만 정도의 아주 작은 규모의 소도시입니다. 하지만 프라이베르크는 광산도시로 불리울만큼 광업과 야금 산업에서는 매우 유명한데, 구시가지에 가면 전 세계에서 수집한 광물이 모여 있는 광물 박물관도 있습니다. 광석 산업은 중세 시대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지속되었으며 은이 주요 추출 성분이라 프라이베르크를 Silberstadt (Silver city)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석사 유학 당시 서쪽 끝에서 살다가 동쪽 끝으로 이동을 하게 되어서 이런 저런 걱정도 많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도시가 작다 보니 마트를 가더라도 몇 번만 가도 알아보는 등 좀 더 정겨운 면모들도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곳이다 보니 여가 시간에 할 일이 그렇게 다양하진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주말에 F1 경기가 있는 날에는 경기를 챙겨보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산책을 하러 구시가지로 나가거나 남쪽에 위치한 산책길을 걷습니다. 구시가지에 가더라도 매번 가는 곳이 정해져 있고 걷는 코스가 매번 비슷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햇빛이 나는 날에는 많이 돌아다니려고 노력합니다. 드레스덴이 여기서 기차로 35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가끔 드레스덴으로 나들이를 가기도 합니다. 프라이베르크의 겨울은 아주 혹독합니다. 독일의 대부분이 지역의 날씨가 좋지 않지만, 유독 이곳의 겨울은 길고 추우며 눈이 아주 많이 옵니다. 아침에 눈 뜨고 밖을 내다보면 밤새 내린 눈이 쌓여 있고, 출근 후 해가 잠시 나오다 가도 퇴근할 때가 다가오면 다시 한번 눈보라가 몰아치는 나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제가 추운 날씨에 취약한 편이고 그 전까지 아헨에 살면서 이 곳 보다 더 날씨가 안 좋은 곳이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프라이베르크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 곳에 집들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지붕의 경사가 매우 가파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주민들 사이에서는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집들 근처에서 다닐 때 조심하라고 합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눈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주변에 지인이 겨울에 지붕에서 떨어지는 눈을 맞은 적이 있다고 하니 조심하면서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4월에도 마찬가지로 하루에도 수시로 눈이 오고 해가 나고 우박이 내리는 등의 다이나믹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눈 구경은 실컷 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이러한 혹독한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것은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에 특히 작센 주에서 확진자의 추이가 매우 가파르게 증가하는 바람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아예 취소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없는 독일도 벌써 2년째이니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료가 다른 대도시들과 다르게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아 글루바인을 사려고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는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했는데, 결국 취소가 되더라구요. 또한 크리스마스 마켓 하나만을 바라보고 준비했을 소상공인들을 생각하니 그것 또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올해에는 부디 상황이 많이 호전되어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프라이베르크에 정착한 지도 벌써 10개월이 되어갑니다. 곧 있으면 1년을 채우겠네요. 아헨을 떠나 7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던 기억이 납니다. 박사과정 연구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고, 차가운 이곳의 날씨에도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살게 될 줄 몰랐지만 대도시와 소도시는 각각의 장장단점 있는 것 같습니다. 박사과정을 끝낸 이후에는 또 어디에 가서 살게 될 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한 곳에 오래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도시에서 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RELAY BOOK
킨(Kindred)
옥타비아 버틀러 저
안녕하세요! University of Kentucky에서 영문과 박사과정을 공부 중인 이진미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만난 든든한 동료이자 학우인 구진모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서로서로의 소중한 책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코센이 유망한 과학기술자분들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로 알고 있는데요, 언제나 새로운 시작길에 서있는 듯한 인문학도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릴레이북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제 전공관심분야는 speculative fiction, 즉 사변소설이라고 번역되고요. 구체적으로는 sci-fi, apocalyptic 혹은post-apocalyptic fiction에 관심을 가지고 post humanism, Otherness (타자성), monstrosity, Diaspora 등등의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 관심 키워드는 책이 저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저에게 세상은 이질적이고도 낯섦으로 가득한, 그래서 때로는 나만의 영역 안에서 게으르게 경계를 나누며 이해하기를 회피하게 만들곤 하는, 그러나 끝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앎의 무대이자 대상이었습니다. 나와 이해관계가 적은 대상들을 끊임없이 타자화하는 근래의 세계적 추세에서 책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같이 옹졸해지는 제 관성을 끊어줄 구원일 것입니다. 즉, 책은 개개인의 존재의 외연을 넓혀주는 가장 훌륭한 매개체인 것입니다. 저는 미국 SF소설 장르에서 파격과 혁신의 면에서 선구자적 활동을 펼친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 『킨』 (원제목은 Kindred입니다)을 추천합니다. 선정 이유는 올해 추천작으로 아직 소설이 없었던 까닭이고, 제 전공분야를 떠나서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을 읽고 싫어했던 사람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취향이 아닐지언정 그녀의 작품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그 다음이 어떻게 진행될 지 몹시 흥미로울 것입니다. 버틀러의 작품들은 “sensational”함은 물론이고, 힘과 권력, 사회적 소수자, 혼종성 (Hybridity), 노예제, 폭력, 젠더, 인종, 계층, 연대, 사랑 등등 다양한 담론들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킨』 또한 비슷한 키워드 안에서 논의될 수 있겠습니다. 『킨』은 19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살아가는 흑인여성 데이나(Dana)가 1815년 메릴란드 주의 노예제 농장으로 시간여행하는 이야기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약 100여년의 시공간여행이 느닷없이 닥쳐서 데이나를 그녀가 영위하던 시공간으로부터 떼어놓는다는 점과, 그녀가 소환되는 과거가 그녀의 뿌리가 시작된 백인 노예주 루퍼스와 흑인 노예 앨리스가 기거하는 곳이라는 점, 그리고 데이나의 백인남편 케빈과 그녀가 경험하는 노예제의 차이입니다. 특히, 데이나가 그녀의 조상 루퍼스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과거로 소환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20세기 흑인여성이 악랄한 노예주의 무대로 호출되면서 목격하는 노예제의 참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트라우마를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인 1865년 노예제가 폐지되었지만, 소설 속에서 여전히 현대의 흑인여성이 노예제의 트라우마를 겪고, 현실에서는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미국 및 전세계로 퍼져 나간 근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인종 문제는 갈수록 편가르기 급급한 세태 속에서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버틀러의 kindred는 명사로는 “친족”, 형용사로는 “동류의”로 번역됩니다. 한국어 판 제목인 『킨』은 원제인 “Kindred”의 뉘앙스를 그대로 옮기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한국어판 제목을 왜 “친족”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원어를 차용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대단히 유의미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kindred” 혹은 “킨”이 작품 속 흑인 및 백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양을 하고 다양한 위치에 서있는 존재들의 연대를 상징한다고 봅니다. 버틀러도 밝혔듯, 이러한 확장성, 가능성, 전복성, 그리고 상상력이 인간적인 제한을 뛰어 넘어 “활짝 열려있는” SF장르의 매력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영어가 많이 어렵게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원어로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강렬했던 소설의 첫 구절을 나누며 책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I lost an arm on my last trip home. My left arm. And I lost about a year of my life and much of the comfort and security I had not valued until it was gone.”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그리고 일 년에 가까운 인생과, 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귀한 줄 몰랐던 편안함과 안전의 많은 부분을 잃었다." 다음 릴레이북 주자로 이번에 Tulsa university에서 공부하게 된 김유혜 박사생을 추천합니다. 김유혜 연구자는 저와 함께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한 동료인데요. 함께 대학원 수업을 듣고, 학회 활동 및 스터디를 하면서 후배이지만 여러모로 배울 것이 많은 친구라고 느끼곤 했습니다. 다양한 면에서 박학다식하고 특히 사회적 이슈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모습은 제가 부지런히 익혀야 할 인문학자로서의 열정이었습니다. 유혜 선생님은 셰익스피어 전공자로 석사 논문으로 셰익스피어의 풍자희극 Troilus and Cressida을 중심으로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기 영국에서 보여지는 초기 상업자본주의 양상과 여성의 몸의 상품화에 대하여 연구하였습니다. 여러 사회이슈에 문제의식이 있고, 고전으로서 무궁무진한 담론이 가능한 셰익스피어 전공자이며, 평소에 다양한 작품을 다독하는 그녀는 어떤 책을 추천해 줄까요? 앞으로가 기대되는 김유혜 선생님의 추천 글을 기대해 봅니다!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