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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에서 박사과정 중 소소히 즐기는 생활
김은혜 (hyeppy)안녕하세요, 2017년 4월부터 일본 동경공대 (Tokyotech) 및 이화학연구소 (RIKEN)에서 박사과정 중인 김은혜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펩타이드 및 폴리머 기반 면역항암제 개발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토 에세이에는 제가 지내고 있는 일본 사이타마현 및 도쿄의 일상을 담았습니다. 도쿄 공업 대학은 창립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국립 대학으로 일본 최고의 이공계 종합 대학이며 2020년 QS세계 대학 순위에서 일본 내 3위를 차지 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우리 학교를 줄여서 동공대 또는 도쿄테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오카야마 (大岡山), 스즈카케다이 (すずかけ台), 타마치 (田町)에 3개의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학부 5,000명, 대학원 5,500명 등 약 10,500 명의 학생이 공부 중이고 그 중 유학생의 비율이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학생 대 교수 비율은 9 : 1로 모든 학생들에게 양질의 학습 기회를 보장하고 있으며, 2019년 세계 대학 취업률 순위에 따르면 세계 32위, 일본 내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학교의 글로벌화와 세계 경쟁력 향상을 위해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다양한 변화를 도전적으로 시도하는 학내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00년 시라카와 히데키 박사 (노벨 화학상), 2016년 오스미 요시노리 (노벨 생리의학상)와 같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우리 학교는 4계절 중 벚꽃이 피는 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오오카야마 캠퍼스 교문에서 본관 앞까지 이어지는 벚꽃길과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이 정말 예쁘답니다. Tokyo Tech 오오카야마 캠퍼스 본관 앞 Tokyo Tech 오오카야마 캠퍼스 중앙도서관 |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로 꼽히는 중앙도서관은 2011년 2월 준공되었고 같은 해 7월에 열었습니다. 삼각형 모양에 유리로 전면이 둘러싸인 중앙 도서관은 학생들 사이에서 ‘치즈 케이크'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오오카야마 캠퍼스와 스즈카케다이 캠퍼스 두 곳의 도서관에는 총 7억 권이 넘는 책이 보관 중이고 일본 정부로부터 국외 정기 간행물 센터로 지정되었습니다. 도쿄 시내에서 전철로 40분 거리에 사이타마현 와코시에 위치한 이화학연구소 (理化學硏究所 RIKEN)은 일본의 기초과학연구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일본 최대의 종합 연구 기관입니다. 1917년 도쿄에서 민간 연구 재단으로 설립된 RIKEN은 오늘날 일본 전역의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 센터 및 연구소 네트워크를 포함하여 그 규모와 범위가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과학과 기술에 관한 포괄적인 연구를 진행하며 기술 발전의 결과를 대중에게 확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RIKEN은 와코, 츠쿠바, 요코하바, 고베 및 하리마 등 총 10곳에 주요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전세계 600명 이상의 외국인 연구 인력이 근무 중인 국제 연구소입니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중국, 한국 등에 해외 지부를 두고 있고, 미국 브룩헤븐국립연구소 (BNL)에 설치된 연구센터와 영국 러더퍼드애플톤연구소 (RAL) 출장소가 유명합니다. 우리 연구소는 1949년 노벨 물리학상 유카와 히데키를 시작으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 도모나가 신이치로, 2001년 노벨 화학상 노요리 료지와 같이 다수의 노벨 수상자가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2016년 모리타 고스케 RIKEN 그룹장 겸 큐슈대 교수가 113번 원소 Nihonium (Nh)을 발견한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주기율표의 원소 이름에 국가명이 들어간 경우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일본 기초과학 연구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와코시역 바닥에 세워진 원소 표석 RIKEN 와코 본원 정문 | *출처 Wikimedia commons 와코시 전철역에서 RIKEN까지 오는 약 1.2km 길에는 원소주기율표 1번 수소부터 113번 니혼늄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원소 표석을 세워놨습니다. 1번 원소부터 하나씩 따라오면 113번 니혼늄이 있는 RIKEN 정문에 도착 할 수 있습니다. RIKEN 와코 본원 연구 본관 | *출처 위키피디아 봄의 우리 연구소는 벚꽃이 참 예쁘답니다. 벚꽃이 만개하는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는 점심 시간에 연구소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으며 많은 사람들이 꽃놀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봄의RIKEN 와코 본원 가을의RIKEN 와코 본원 가을에는 연구소 정문에서부터 길을 따라 쭉 늘어선 노오란 은행 나무 길이 연구소 포토존으로 변신합니다. 여름RIKEN 와코 본원 일본의 여름은 80%가 넘는 높은 습도와 40℃까지 오르는 살인적인 더위가 있지만, 만화영화에서 보던 뭉게 구름과 파아란 하늘을 매일 볼 수 있답니다. 계절에 따라 일본 도쿄와 도쿄 근교에 가볼만한곳을 소개해볼까 해요. 일본의 봄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역시나 벚꽃놀이가 제일 유명해요. 일본에서는 벚꽃놀이를 하나미(お花見)라고 불러요. 문자 그대로 ‘꽃을 본다’는 뜻으로, 많은 일본인들은 이 꽃놀이를 봄의 시작, 봄의 방문으로 받아들인답니다. 벚꽃이 흔한 나라이기 때문에, 벚꽃 개화 시즌에는 대부분의 공원에서 벚꽃나무 아래에 피크닉매트를 깔고 꽃놀이를 즐기는 일본인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벚꽃 명소가 정말 많지만 그 중에 몇 군데를 소개해볼게요. 먼저, 벚꽃 명소라면 해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나카메구로에요. 메구로 강변을 따라 800여 그루 이상의 벚꽃 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어서 4월 초 벚꽃 축제가 열립니다. 강 양쪽에는 3km정도되는 산책로가 있는데, 이 거리를 쭉 따라 다양한 음식과 벚꽃 시즌 마실 것들을 팔아요. 낮에도 정말 예쁘지만, 라이트 업이 된 밤에 즐기는 벚꽃의 분위기는 더욱 예쁘답니다. 나카메구로 벚꽃 축제 라이트업 나카메구로 벚꽃 시즌 스파클링 와인 앞에 소개한 도쿄 나카메구로 벚꽃 축제는 도쿄 도내에 위치하기도 하고, 워낙 유명해서 벚꽃 시즌에는 정말 많은 인파가 모입니다. 조금 한적한 곳에서 벚꽃을 즐기고 싶다면, 도쿄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을 추천드려요. RIKEN이 위치한 사이타마현에 도쿄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예쁜 벚꽃 명소를 소개할게요. 도쿄 시내에서는 전차로 약 40분 거리에, RIKEN 연구소에서는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아사카다이(朝霞台)역 근처에 있는 벚꽃 스팟이에요. 아사카시 시내를 동서로 흐르는 쿠로메강을 따라 강변 산책로에 벚꽃길이 조성되어 있답니다. 까만 밤에 벚꽃 나무 아래 앉아 간간히 지나가는 전차 불빛과 벚꽃 등불이 내려앉은 강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게 참 좋더라구요. 사이타마현 아사카시 쿠로메강변 벚꽃 스팟 일본에는 봄에피는 벚꽃만큼 유명한게 있는데요, 바로 꽃잔디입니다. 꽃잔디를 일본어로는 '시바자쿠라'라고 부르는데요, 찾아보니 지면패랭이꽃 또는 꽃고빗과의 다년생 식물을 이른다고해요. 도쿄 근교에서는 버스로 약 2시간 거리에 떨어져있는 야마나시현에서 열리는 후지산시바자쿠라축제가 유명해요. 대개 4월 초부터 5월초까지 열리는데, 방문하는 시기를 잘 정하셔야 후지산과 예쁜 꽃잔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답니다. 후지산 기슭 광대한 평지에 약 2.4 ha에 걸쳐 피는 80만 그루의 꽃잔디는 관동 최대급이라고 해요. 마치 후지산을 배경으로 화사한 꽃분홍의 거대한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은 모습이 장관이랍니다. 꽃구경 이외에도 근처에 위치한 호수 ‘가와구치코’를 함께 둘러보시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야마나시현의 향토요리인 ‘호우토우(ほうとう)를 한 번 맛보세요. 우리나라의 칼국수를 떠올리게하는 면요리로 납작하고 넓은 면이 특징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호우토우는 밀가루 반죽한 면을 넓직하게 썰어서 호박과 버섯등의 야채와 함께 된장베이스의 국물에 끓여먹는 국수 요리랍니다. 야마나시현 시바자쿠라 축제장 가와구치호수에서 바라 본 후지산 전경 야마나시현 향토요리 호우토우 여름철 일본은 전국 각지에서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하나비(花火)축제가 열린답니다. 하나비는 우리말로 불꽃놀이로 옛부터 일본인들이 이 불꽃놀이가 악귀를 쫓는다고 믿어왔다고 합니다. 하나비 축제가 열리는 곳에 해가 지면 많은 사람들이 전통 의상 중 하나인 유카타를 입고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인답니다. 도쿄의 스미다강은 옛부터 불꽃놀이를 즐기던 장소로 지금도 도쿄 최대의 불꽃놀이가 열리는 곳이에요. 매년 7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는 이 불꽃놀이는 약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고, 약 20,000발의 불꽃이 터진답니다. 아래 그림처럼 장소를 일찍이 잘 잡으면 도쿄에 있는 타워 중 하나인 스카이트리 옆에서 터지는 화려한 불꽃을 즐길 수 있어요. 또는 도쿄 만에 떠 있는 전통 놀잇배에서 즐기는 방법도 있답니다. 도쿄 최대 불꽃놀이 축제가 열리는 스미다강 | *도쿄 관광 공식 사이트 가을이 되면 맑고 높은 파란 하늘아래, 노랗게 단풍이 물드는 시즌이 시작됩니다. 도쿄에서 가을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명소 중에 신주쿠교엔을 소개할게요. 높은 빌딩 숲이 있는 신주쿠 도심 한 가운데에서 자연 풍경을 즐기고 여유를 만끽하고 싶을 때, 이곳을 찾는답니다. 신주쿠교엔은 신주쿠구와 시부야구에 걸쳐있으며, 도쿄의 센트럴파크로 불리는 넓이 58.3 헥타르의 신주쿠 일대에서 가장 큰 정원이자 공원입니다. 신주쿠교엔은 공원 자체가 사시사철 아름답기 때문에 1년 365일 인기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신주쿠교엔 넓은 잔디밭에 앉아 도쿄의 가을을 느껴보길 추천 드려요. 신주쿠교엔의 가을 해질녘 신주쿠교엔 매년 크리스마스 기간이 가까워지면 일본 곳곳은 반짝이는 일루미네이션으로 거리가 꾸며집니다. 도쿄도 내에 일루미네이션을 즐길 수 있는 스팟이 정말 많아요. 먼저, 메이지신궁 교차로에서 오모테산도 교차로까지 느니타무 가로수 150그루가 샴페인 골드 빛으로 물드는 오모테산도 일루미네이션 있답니다. 약 1.1 km에 걸쳐 오모테산도 중심 거리를 화려하게 꾸며놓은 덕분에, 쇼핑과 주변을 함께 즐길 수 있어요. 오모테산도 일루미네이션 또 다른 명소로는, 에비스 가든플레이스가 있어요.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의 일루미네이션 장식은 마치 동화속 무도회에 초대 된 기분을 들게 한답니다. 특히 이곳에는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바카라 샹들리에’가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거대하고 화려한 샹들리에의 존재감에 압도당하게 된답니다. 에비스 가든플레이스 일루미네이션 도쿄 근교 요코하마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인기 있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 크리스마스 전인 11월부터 새해까지 거리가 화려하게 장식됩니다. 겨울의 요코하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고 반짝이는 일루미네이션과 함께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아카렌가 창고’가 있습니다. 해마다 독일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모티브로, 광장에는 독일식 요리와 맥주를 팔고 광장 한켠에는 스케이트장이 설치되어 스케이트를 타며 즐길 수 있답니다. 아카렌가 창고는 이전에 벽돌 창고로 쓰였던 건물을 쇼핑&문화 센터로 개조한 건축물입니다. 빨간 벽돌의 창고와 금빛으로 반짝이는 조명의 조화 덕분에 요코하마의 겨울이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요코하마는 특히 야경이 정말 유명합니다. 아카렌가창고 근처에 코스모월드라는 작은 놀이공원이 있는데요, 해질녘 이 놀이공원에 있는 대관람차를 타고 요코하마의 야경을 즐기시는 방법을 추천드려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아카렌가창고 아카렌가창고 이벤트 광장에 설치된 대형트리 아카렌가창고 앞에서 즐기는 아이스스케이트 코스모월드 내 대관람차에서 바라본 요코하마 야경 요코하마에는 일본 최대의 차이나 타운이 또한 유명합니다. 아카렌가 창고에서 걸어서 20분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이 중화거리는 일본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연일 붐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차이나 타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중화거리를 찾는 목적은 바로 ‘맛집’인데, 정말 다양한 먹거리 중에서도 단연 야끼소룡포가 인기랍니다. 야끼소룡포는 샤오롱바오를 기름에 살짝 튀기듯 구워낸 음식으로, 육즙과 만두소가 듬뿍 들어있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 특징입니다. 저도 한국에서는 샤오롱바오는 자주 먹어봤지만, 구운 샤오롱바오는 이곳에서 처음 먹어봤는데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가끔 생각나면 요코하마를 찾곤 합니다. 뜨거운 야끼쇼롱포 한 입을 베어물고 시원한 칭따오 맥주를 한 모금 마셔주는 그 맛이 정말 최고에요.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명물 야끼소룡포 마지막으로 계절과 상관없이 늘 아름다운 도쿄 랜드마크인 도쿄타워 입니다. 한때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지만 지금은 도쿄 스카이트리가 세워지고 그 자리를 넘겨 주었답니다. 그냥 별다를 것 없는 전파탑이지만, 언젠가 이 곳 일본을 떠나게되면 제게 있어서 가장 애틋하고 그리워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도쿄타워 포토스팟으로 한창 뜨고 있는 곳을 소개해드릴게요. 도쿄타워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아래로 조금 내려오다보면 우측에 두부 전문 레스토랑이 하나 있어요. 그 레스토랑 앞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계단이 가장 핫한 포토 스팟이랍니다. 인생사진을 찍으시려면 적어도 30분 이상은 기다리셔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이외에도 도쿄 도내 여러군데에 도쿄타워를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니, 다양하게 선택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도쿄타워 포토스팟 롯폰기힐즈 모리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쿄타워 포토 에세이를 작성할 기회를 제공해주신 코센 덕분에 지난 3년간의 일본에서의 생활을 다시금 추억 해 볼 수 있어서 글을 쓰는 내내 정말 즐거웠습니다. 소소히 즐겼던 일본 생활이 반복되는 연구 일상을 새롭게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요새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인해 경제며 생활이며 마치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멈춘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러나 지독히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가고 언제 추웠냐는듯 따뜻한 봄이 찾아오듯이, 이 지리멸렬한 시간도 곧 떠나가고 우리에게도 봄과 같은 시간이 오길 바래봅니다. 그 시간동안 세계 곳곳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코센 회원님들 모두 건강하시길 바라고, 즐거운 연구 생활이 되시길 응원하며 이번 포토 에세이를 마무리합니다.
RELAY BOOK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순간 (이달의주자:하헌건)
톰 말름퀴스트 저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해병대(R.O.K. Marine Corps) 장교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하헌건입니다. 먼저 멋진 책 소개와 함께 릴레이 바통을 저에게 넘겨주신 김예슬양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막 7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저를 데리고 예쁜 동네 도서관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어린이 열람실에 가득한 책들을 보고 좋아하던 제 모습을 즐겨 이야기해 주십니다. 흐르는 제 시간 속에 책이라는 중요한 존재가 자리잡은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스웨덴의 시인이자 대중음악가인 톰 말름퀴스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첫번째 소설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순간(IN EVERY MOMENT WE ARE STILL ALIVE)’입니다. 저자 ‘톰’은 결혼식을 앞두고 임신 33주차의 아내를 급성 백혈병으로 떠나보냅니다. 그리고 곧이어 아버지까지 암으로 떠나보냅니다. 이 책은 저자가 겪은 고통의 시간들을 세밀한 묘사의 문장과 감정을 꾹꾹 눌러 놓은 절제된 문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 ‘톰’은 세상을 떠난 아내가 남긴 선물, 딸 ’리비아’를 돌보며 ‘법적’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솔직히(제 기준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대한 것 보다 잘 읽히지 않는다는 후문도 많은 작품입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른 책들처럼 쉽게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지켰던 주변인들을 각색하여 죽음의 순간을 아름답게 미화하고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작가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어조를 유지합니다. 대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순식간에 잃어야 했던 저자와 주변인들이 마주한 공포, 슬픔, 절망과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불편한 마찰들을 숨김없이 하나하나 세밀하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피어난 진짜 사랑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작가의 세심한 표현과 감정들이 놀라운 몰입감을 만들어 독자들을 놀라게 하고 마치 내가 저자와 함께 이 시간을 견뎌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의사가 머뭇거리다 입을 연다. 요즘은 좋은 백혈병 치료법이 많이 나와 있어요. … 그녀가 앓는 소리를 낸다. 카린, 왜 그래? 내가 묻는다. 아기 이름. 그녀가 말한다. 리비아? …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을 든다. 리비아. 그래 , 리비아로 하자. 내가 대답한다.』 『간호사가 1호실 문을 열어준 후에야 손을 내려다보며 손가락을 쫙 편다. 카린의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애를 써봐도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 카린이 단숨에 말한다.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해. … 뉘그렌이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말을 덧붙인다. 환자의 사망시간은 06시 31분.』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불규칙적으로 이동하며 전개됩니다. ‘톰’은 냉혹한 현실과 따스한 기억들 속에서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아내 ‘카린’의 장례를 준비하며 마지막 키스를 하고 싶다는 그에게 병리사는 ‘카린’의 시신이 너무 부패해 키스를 남길 입술이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딸 ‘리비아’의 출생신고를 하려는 ‘톰’에게 시청 공무원은 그와 ‘카린’이 혼인신고가 되어있지 않아 그의 딸이 현재 법적 고아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힐 때면 ‘톰’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아내 ’카린’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는 한 발 한 발, ‘카린’의 남편에서 ‘리비아’의 아빠가 되어갑니다. 『카린은 제게서 못된 것들을 전부 씻어내고 저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카린 덕분에 저는 제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누구든 죽을 수 있지만 카린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죽었어야 해요. 지금 여기에 카린과 리비아가 살고 있어야 하는건데… 카린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었습니다. 』 『카롤린스카 병원이 그립다고 말하면 너는 이해할까? 나를 위로해준 조산사들과 신생아실 간호사들, 가족실에서 나와 함께 밤을 지새우고 내가 울 때 함께 울어준 친구들… 내가 네 몫까지 아이를 사랑한다는 걸 너는 알 테지만, 그래도 좋은 시절은 다 지나고 중요한 일들 밖에 남지 않았다는 기분이 든다. … 나는 네 가슴에 손을 얹고 슬프다 말하지 말아 달라 부탁한다. … 리비아가 햇빛과 함께 깨어나 일어나 앉는다. 내 이름은 이제 아빠다.』 이별, 절망, 눈물은 대부분 절대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알지만 잊고 있던 일상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깊숙이 느낍니다. 언젠가 하려고 했지만 일상에 치여 꺼내지 못했던 한마디를 토해내 듯 되뇝니다. ’20년 4월 7일은 제가 이 서평의 첫 문장을 적은 날입니다. 이 날은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페인트를 곱게 바른 듯 파아란 하늘과 연한 다홍빛으로 환하게 피어 있던 꽃은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행복감을 극대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행복한 순간이 내 삶의 마지막 기억이라면 어떨까, 매일 보던 얼굴들, 지겹게 반복되던 일상이 한 순간에 멈춰버린다면 어떨까?... 아직은 사랑하고, 또 사랑받으며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을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절망의 순간에서도 계속 살아가야 함을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했던, 그리고 원치 않지만 언젠가는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할 우리 모두에게 선물합니다. 다음 주자로 포항공대 철강대학원에서 금속 3D 프린팅을 연구중인 어두림군을 지목합니다. 평소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함께 읽고 서로 다른 견해들을 즐겨 나눕니다. 적절한 유머감각과 함께 깊은 통찰력을 가진 친구이기에 다음 주자로서 과연 어떤 책을 이야기해줄지 큰 기대가 됩니다.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