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재택근무라는 것, 한 번 해봤겠죠? 가끔 몸이 아프거나, 통근버스 놓치면 재택근무하겠다고 이메일 보낸 경험 있죠? 얼마전 월드컵이 있을 때, 우리 이웃이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재택근무는 무슨… 휴가 안쓰고 TV 보며 타이프 몇 줄로 일한 척 하겠다는 심산이지…’ 아마 다들 생각이 비슷할 것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는 변질된 휴가, 또는 근무기강 해이로 볼 것이니까요. 당장 외벌이 남편이 집에서 일하면 아내의 질문이 이어질 것입니다. “여기 있던 옷 당신이 치웠어?” 아니면 “머리도 식힐 겸, 쓰레기 좀 내다버릴래요?” 정도의 요청 말입니다. 아내만 일하는 가정에서 아내가 재택근무하면, “야! 오늘 우리 점심은 밖에서 근사하게 먹지, 그래?” 주말로 착각한 철없는 남편의 들뜬 마음을 애교로 봐줘야 하나요? 그래도 이런 것들은 오히려 다행입니다. 서로를 소닭보듯 산 지 오래된 부부들의 반응은 참담할 것입니다. ‘저 인간이 이제는 출근도 안하려나 보네… 차라리 내가 나가야지!’
왜 쌩뚱맞은 재택근무 타령이냐구요? 미세먼지 때문에… 필자는 지중해 연안 프로방스에서 매일 좋은 공기 마시고 쏟아질듯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사는데, 한국뉴스 속의 사진은 침침한 스모그 속에 무서운 괴물같이 우뚝선 아파트 빌딩들이 자주 보입니다. 많은 나라의 헌법에 포고된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권에 대한 엄청난 침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미세먼지 뉴스가 일상을 지배하기 전에 징후가 있었습니다. 벌써 한참 전부터 외교관들이 베이징 근무를 꺼려했습니다. 떠오르는 중국통이 되겠다며 미국줄 만큼이나 길게 서던 줄이었기에 의아했지만, 결론은 베이징 시내의 대기오염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이제 한국의 일상이 된 것인데, 이 문제는 단기간에 극복이 어렵고, 구체적 대책을 내놓기도 쉽지 않습니다. 화력발전과 차량사용을 줄이는 것이 그나마 당장 실현가능한 조치들일 것입니다.
재택근무는 차량운행 감소를 위한 가장 손쉬운 조치입니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할 때, 재택근무가 늘어나서 출근하지 않는 직장인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예측했습니다. 그래서 도심은 흩어지고 천정부지의 집값도 잡힐 것이라고 장담했었죠. 하지만 인터넷 시대 이후에 오히려 도시 집중화 현상은 가속도가 더 붙었습니다. 외곽지역 간에도 차이가 커서 소위 명문학군으로 평가되는 특정지역에만 더 많이 모입니다. 오히려 인터넷은 어디가 더 좋은 지역인지를 알려줘, 집중화 현상을 악화시킨 면이 있습니다. 지금은 재택근무를 할만한 너무 좋은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메일은 물론이고, 스카잎 화상톡도 가능하고 이동중에라도 휴대전화로 얼마든지 소통가능한 세상인데도 재택근무는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우리 삶에 편리한 도구로만 기능할뿐, 근본적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죠.
재택근무 실현가능성이 낮은 또다른 이유도 생각해봤습니다. 요즈음은 너무 많은 것들이 이미 만들어졌기에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아주 새롭게 보여도 사실은 이미 나온 어떤 것의 변형이거나 아류에 불과하죠. 이미 존재하는 지식보다는, 지식이 재조합된 정보가 모든 것을 지배하니까요. 이러니 혼자 생각할 시간들은 형편 없이 줄었고, 관계 속에 묶여있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기관에서나 고위직이라면 회의로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보냅니다.관련부서나 협력업체와의 업무조정, 아니면 이해를 달리하는 조직과의 신경전, 정치적 파장에 대한 검토 등으로 본질이 모두 포장된다고 해야 할까요? 어떤 일을 하려면 거의 모두가 동의해야 하고 아니면 최소한 사전에 통지라도 해야 ‘독박’을 면합니다. 개인은 그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에 존재하는 서류배달원일 뿐이죠. 여전히 바깥에서 행하는 인문학 강연에서는 창의력이 감동없는 단골메뉴로 등장하지만, 그냥 언어적 유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미세먼지가 아무리 심해도 재택근무는 어려울 것입니다. 입으로만 일하는 고위직들은 손을 쓸 줄을 모르니, 수하에 부하들이 안보이면 패닉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재택근무까지는 포기하고, 회의만이라도 효율적으로 해보는 목표를 세우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소속기관에서 회의시간 일년 랭킹을 뽑아보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홍길동 0.30, 김갑돌 0.27, 서춘향 0.21… 등등의 서열 말이다. 숫자는 무엇이냐구? 회의참석시간에 연중 근무시간을 나눈, 필자가 만든 계수입니다. 0.3이라면 근무시간중 30%를 회의로 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물론 회의에 많이 참석한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좀 더 줄일 수 있었는지 본인이 판단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입니다. 일단 통계가 파악되어야 선악이나 개선방안이 나올 터이지만, 개선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또 회의를 해야 하니 참 난감한 딜레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의 이야기는 싱거운 소리라며 다 잊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말하려는 결론은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기아나 전염병 그리고 인권과 전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가 되었다면, 국민소득이 얼마인지를 따지는GDP 경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환경선진국이 진짜 선진국이겠죠. 물론 환경이라면 좋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자연환경은 정말 기본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약자를 위한 복지를 어느 정도 갖추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사다리를 걷어찰 수 없게 공정성이 보장되는 사회환경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사회환경이든 자연환경이든, 개인은 환경에 지배되며 환경이 우리의 존재를 규정합니다. 그래서 미세먼지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도 혼미해져서 안개속을 걷는 것처럼 불안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북간도의 별, 윤동주를 다시 소환합시다. “우리에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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