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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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충우돌 일본에서 16년 생활

    이원재 (orientcjk)

    안녕하세요. 저는 일본에 살고 있는 이원재라고 합니다. 저는 대학을 한국에서 졸업하고 일본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박사코스와 사회생활을 고민하다가 사회생활로 진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 산 지가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일본에서 살게 되었고, 그 후 아이들이 태어나 현재 가족은 5명입니다. 아이들은 현재 고1, 중2, 중1입니다. 이번 글은 부탁받았을 때 대학이나 연구소에 몸 담고 있지 않아서 자격이 미달이다고 생각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와 이야기를 하던중, 우리가 고급정보는 쓸 수 없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본 생활밀접한 생활이야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해서 몇자 적게 되었습니다. 글의 구성은 첫번째 이야기는 제가 일본이라는 사회와 회사생활이야기를 , 두번째 이야기는 아내가 아이셋과의 좌충우돌 속에 느낀 이야기를 나눠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생활의 도전의 연속임을 절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초기의 10년간은 웃고 울고 고민하는 도전하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학 및 연구소 소개는 현재 본인이 몸담고 있지 않은 관계로 생략하고, 일본 회사생활과 배우자의 생활 그리고 자녀 교육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본인은 석사과정으로 도서관 정보 대학(쓰쿠바 대학)에서 정보학을 전공하였으며, 논문은 ‘일한번역에 있어서 れる、られる해석’을 연구 테마로 하였습니다. 문법적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교토(京都)대학의 일본어 형태소 해석 시스템 JUMAN을 사용하여 각기 수동, 가능, 존경, 자발로의 번역 패턴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하고, 그 번역 패턴을 증명하기 위해 마이니치 신문 기사를 검증 데이터로 사용했습니다. 석사 과정을 마침과 동시에 박사 과정에 가서 지도교수와 조교수에게 학문적으로 당당히 소통하고 싶어서 사회에 진출해서 배운뒤 다시 박사과정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990년대 일본의 불황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일본은 1억이 넘는 국내 시장이 있어서인지 꾸준히 신입채용은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 나라와 같은 청년 실업은 사회 문제로 다루어지지는 않는 모양새입니다. 한일 양국 모두 해외 시장 의존도는 크나 내수 시장만으로도 유지가 되는 직종이 다수 존재합니다. 신규 프로젝트 진행을 하는데 있어서 여유있는 예산책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계발 예산과 보수 예산을 1대1로 구성하여 프로젝트 계발이 끝난 끝난 후에도 보수 작업은 계속 됩니다. 프로젝트 계획에 있어서 작업의 적량화가 도입되고 문제점, 사양변경을 대응하기 위한 버퍼가 고려되는 스케쥴을 고려되고 있으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 작업이 야근 대응이 필요하게 됩니다. 야근문화는 보통 8, 9시까지는 아무것도 먹지않고 일을 하고, 10시 이후에 귀가하여 석식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물론 편의점에 가서 과자 비스켓류 사서 대강 때우는 직장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간식거리를 취하지 않고 2, 3시간 집중해서 남은 일을 처리하는 분위기이지요. 직장인들 점식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편의점 등에서 도시락을 사거나 집에서 지참하여 본인 데스크, 공원 의자나 건물 휴식공간에서 때우고, 나머지는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합니다. 공원에서 식사하는 직장인들 전체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꼼꼼하며 문서작성에 있어서는 단어, 구두점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체크합니다. 그러나 신기술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예를들면, 웝서버를 도입하는데 있어서 안전성이 검증된 구버전이 도입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신기술을 바로 도입하는 한국과는 대조적이지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될지 일본 사회가 재고해야만 하는 과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연히도 사는 곳은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간단히 소개를 드릴까 합니다. 회사 사유로 10년전 사이타마켄(埼玉?) 이루마시(入間市)로 이사하고 단독 주택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회사 상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이곳은 한국과 참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바로 이웃 도시 히다카시(日高市)에는 고려신사가 존재합니다. 고려천(高麗川)을 끼고 고려 초등학교(高麗小?校), 고려 중학교(高麗中?校), 고려 우체국(高麗郵便局), 고려 신사(高麗神社)등이 존재한답니다. 고려 신사는 나당 연합군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망국 고구려의 유민을 이끌고 망명한 왕자 약광(若光)을 모신 곳으로, 1916년에는 고려건군 1300년 행사가 성대히 열렸습니다. 고려신사는 일본 국내에서는 출세 운이 있는 신사로 유명하여 일본 정객들이 참배하는 곳이며, 한국 유력 정치인들도 찾아가는 곳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에게는 고려역 근처를 걸어만 다녀도 고구려인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군 건국 1300년 기념 행사 캐랙터(출처:히다카시) 고려군 건국 1300년 기념 행사에서 고구려 왕자 약광역을 하는 히다카 시장 (출처:히다카시) 고려역 (출처:Wikipedia) 20대초반에 혼자 온 유학은 외국생활의 20페센트쯤 산 것이고, 20대 후반에 배우자와 생활은 50 퍼센트, 아이들이 있어서 부딪치며 살아봐야만 진정한 외국생활을 해봤다고 말할 수 있다고 여기 사는 저희들은 이야기합니다. 제가 16년간 이곳에서 아이들 셋과 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절대로 녹녹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이력과 자격이 부족한 제가 남편의 글에 +1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혹시 외국에서의 생활을 생각해보거나 계획하시는 분이 있다면 본인의 생각뿐 아니라 배우자의 각오와 생각을 충분히 고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제 주변인의 이야기임을 양해바랍니다. 가족의 좌충우돌의 시작 - 아이의 태아나고 3살까지 결혼하고 신혼으로 시작된 일본생활은 너무 좋더군요. 조용하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편안한 매일 매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어린이날에 날리는 고이노보리 마냥 편안하고 즐거운 외국생활의 1-2년. 아사쿠사 그리고,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5개월쯤 지나니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외로운 외국생활을 실감하며 아이하고 둘만 있는 하루가 조금씩 길게 느껴지고 육아에 대한 불안함과 우울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아이가 걷기 시작할 때쯤 아파트 놀이터에 큰 용기내어 데뷰를 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인생계획에 없던 일본생활이라 일본어를 이곳에 오는 비행기속에서 처음 외운 왕초보였습니다. 만나는 엄마들은 모두 친절하고 장난감도 잘 빌려주고 좋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2-3살된 아이들의 작은 트러블에서 오는 엄마의 자괴감입니다. 서로 장난감을 먼저 갖겠다고 울기도 하고, 미끄럼틀을 먼저 타겠다고 밀치다 넘어지기고 하는 정말 작은 귀여운 트러블,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터러블조차 부드럽게 일본어로 설명이 안돼 (아리가토나 스미마생)과 바보같은 웃음으로 해결하는 저의 바닥수준의 일본어에서 오는 자괴감과 가슴 답답함이 항상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트러블이 생길까 걱정되어서 우리 아이에게 양보를 자주 부탁했고, 그 트러블이 날 것 같은 장난감은 흔히 말하듯 돈지랄로 해결하듯 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중요한 성장과정의 중요한 싹을 미리 차단하고 있음에 미안했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유치원에 간 큰애가 장난감을 놀다가고 누가 달라면 줘버리고, 초등학교때는 잘못 쓴 곳을 지우려다가 짝궁이 빌려달라니 그래로 빌려주고 자기는 지우지도 못해서 가져온 공책을 보며 속이 상하더군요. 엄마의 불안한 외국어 생활이 아이에게 트러블기피증을 심어줬음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챙겨주던 고마운 히로유끼 엄마. 내가 고마운데 반대로 언제나 고맙다고 손편지를 보내곤 했다. 가족의 좌충우돌의 최고조 -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졸업까지 그렇게 쫌 불안하고 긴장하며 키우는 부모에게 성장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겠습니까. 참고로 주변에 몇 안되는 한국가정의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초등 1학년때 아빠의 일로 일본에 온 정아씨네 둘째딸. 처음 와서 1달쯤 지나서 교실에서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답니다. 의사가 내린 진단명은 하고 싶은 말을 못해 답답함에서 온 스트레스. 그 말에 정아씨 부부는 얼마나 답답하면 그랬을까 싶어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영어, 일본어, 한국어가 되는 유능한 스튜디어스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모두 웃는 유치원 입학식장에서 엄마 치마자락을 붙잡고 안떨어지겠다고 우는 아이는 우리 큰 딸 혜린이와 온지 얼마 안되는 수희씨네 아들. 그래서 맨 뒷줄에 어린이의자 하나 더 놓고 엄마도 같이 앉아서 진행된 입학식. 그리고 입학한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일본가정사나 연예인등 모르는 이야기가 종종 나와 순간순간 당황하는 우리 아이, 어린이날이나 설날같은 날에 할머니를 비롯 친인척에게 선물받았다고 자랑하면 할말 없는 우리아이, 사촌들과 놀고 자고왔다는 주변 친구들이 부러운 아이, 긴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면 특별히 갈 곳도 오는 사람도 없어서 집에서 보내는 안쓰러운 우리 아이. 그때는 참 안쓰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노란 모자는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일본 학교는 아이들의 안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합니다 외국생활은 가족끼리는 아주 단단해지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가족캠프. 가족의 죄충우돌 - 그 답을 찾다. 바로! 일본어교실 일본에는 시청에서 주관하는 외국인을 위한 일본어 교실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아주 아주 열심히 다녔습니다. 비용도 거의 무료고 아이도 같은 교실에서 보육선생님이 봐 준다고 하니 아이 셋을 업고 안고 유모차에 태우고 갔습니다. 선생님은 자원봉사자로 20명 정도로 40대에서 70대까지 은퇴한 교사나 회사원 주부 등이었습니다. 외국에 살아본 경험이 있는 분이 많아서 일본어뿐 아니라 외국생활의 힘듬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줘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바로 그곳 일본어교실…. 저의 일본생활의 많은 답이 있었습니다. 일본어교실은 엄마의 힐링 상담소 처음에 이 교실을 만든 이유는 외국인에게 생활의 기본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런에 직접 해보니 외국인에게 일본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낯선 외국에서 받는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마땅히 풀 데가 없다는 것임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곳을 따뜻한 고향집이다라고 생각하고 무엇이든지 풀고 용기내서 다시 밖의 세상으로 나가기를 바란다고 선생님들은 자주 말합니다. 우리 테이블에서는 일본어, 세금, 교육, 이웃트러블, 일본인의 가벼운 험담까지 서로 이야기하며 답을 찾고 위로도 많이 받습니다. 어느날 태국인 엄마가 유치원 스쿨버스에서 매일 만나는 일본인 엄마가 자기에게 뭐든지 가르치려하고 무시하는 것 같다며 흥분하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같은 테이블의 3, 4명도 미묘하지만 일본인한테 그런 느낌을 받은 적있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저 이상한 일본사람 이라고 하지말고 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일본인인 자기에게도 안 맞는 사람이 주변에 반절이라고. 일본사람은 나랑 안맞는다고 하면 떠나는 것 밖에 답이 없지 않겠냐고, 저 사람은 이상해라고 하면 생각하고 고민할 여지가 있다고요. 저는 그 말이 정말 마음에 와 닿고 그 다음부터는 저 사람 이상해 라고 맘놓고 혼자 욕합니다. 일본어를 배워서 자심감을, 외국 생활의 힘듬을 풀고 다시 용기를 얻으라는 일본어교실 일본어교실은 우리 둘째와 막내의 따뜻한 어린시절의 모토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미국에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가 아이를 꼭 껴안아주는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합니다. 그 따뜻함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어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모터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말에 많이 공감을 했습니다. 그런에 외국에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은 부모 이외에는 무조건 안아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이곳 일본어교실에 처음 갔을 때는 혜나가3살, 건이가 1살쯤 이었습니다. 엄마가 공부하는 테이블 옆에 매트를 깔아놓고 보육담당자 2, 3명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형태입니다. 여러나라 아이들 2~5명이 자유롭게 장난감, 색종이, 동화책으로 놀고요. 유치원 교사 경험자도 있어 아이들 마음에 쏙쏙들게 잘 놀아주더군요. 옆에 앉혀놓고 읽어주는 동화책의 실감도가 어디 제 일본어읽기에 비교가 되겠습니까? 2-3살배기에 중요한 동요까지 무릎에 앉혀놓고 따뜻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데 왠지 안심감에 코끝이 찡하더군요. 외국생활에서 절대로 부모는 주기 힘든 그 나라의 실감나는 동화 읽기와 동요 부르기를 따뜻하게 느끼게 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막내 건이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들이 고마운 사람에게 그림엽서 보내기를 하는데 건이는 어떻게 할까요? 라고. 순간 고민이 되더군요. 여기 할머니들은 아이에게 편지 한장 오면 엄청 기뻐하며 답장에 선물까지 꼭 챙겨서 보내거든요. 뜬끔없이 보내도 되고, 건이에게 그 기쁨을 챙겨주실 수 있는 주변사람, 일본어교실 선생님밖에 없더군요. 전화를 드렸더니 자기를 생각해줘서 고맙다고 좋아하시며 답장에 과자선물까지 보내줘서 건이도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일본어교실 일본어교실은 나의 성장을 돕다, 가족의 성장을 돕다 처음에는 일본어가 빨리 늘기를 바라며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맞춤식열성 지도에 힘입어 일본어능력시험 2급과 1급에 모두 합격했습니다. 그 자격증은 내 자신이 뿌듯하고 주변인에게 성실함을 인정받는 자격증임은 분명하나 사람들 앞에서의 자신감하고는 아직 거리가 있었습니다. 일본어교실에 2년쯤 다녔더니 폐강식의 건배사 ‘간빠이’를 해주면 좋겠다 해서 간빠이 딱 세자로 공식석상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 후 3년차쯤 뒷풀이 사회를 일본어선생님과 공동으로, 학생들과 일본 동화책 읽기를 기획하며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 쯤 3학년이던 큰딸의 선생님이 (사회 = 세계의 친구들) 코너에서 한국이야기 특강을 부탁했습니다. 일본어 교실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더니 자기가 바라는 학생들의 성장모습이라며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 말과 응원에 자신감까지 올라올 때여서 발음과 발표법을 특별지도 받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 이후 혜린이 엄마라고 친하게 인사하는 아이들과 이웃들이 몇배나 늘었고, 그 옆에서 뿌듯해하는 혜린이의 미소를 보았습니다. 일본 동화책읽기. 엄마의 성장은 곧 가족의 성장 그리고 5년쯤 됐을 때 이루마시에서 (아이키우기 가이드북)을 5개 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있었을 때도 일본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한국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성장에 저도 기뻤지만, 시청의 번역일을 담당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의 마음에 더 기뻤습니다. 그리고 1년쯤 후에 우리 옆 시의 큰 행사의 방문한 경기도와 오산시 공무원 통역을 (물론 일본어 선생님 추천으로) 남편이 2박3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부모의 또다른 모습은 아이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듯 했고, 그때 한동안 큰딸은 미래의 직업이 번역 통역사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에는 그만큼 축하할 일도 많고 격려받을 일도 많더군요. 생일은 물론이고 입학, 졸업, 설날, 상을 받아오거나 병원에 입원했을때요. 그런데 외국에 살다보니 한국의 가족들과 큰일이 아닌 이상 서로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더군요. 요즘은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아이들 졸업과 입학은 가족의 큰 경사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여서 축하식사를 합니다. 아이들이 입학과 졸업을 했는데 우리 가족만의 조용한 축하, 어렵게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옆테이블마다 대가족의 축하식사가 언제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가족들과 제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대학생 조카들이 가족카카톡 방을 만든게 있어서 거기에 아이들의 성장사진과 생일, 애경사를 자주 알렸습니다. 그리고 친구나 이모, 고모, 조카들에게 아이들 선물로 한국과자 예쁜 속옷 예쁜 학용품 등을 축하선물로 부탁했습니다. 저도 일본과자나 젤리를 더 자주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서는 한국에서 오는 선물박스를 참 좋아했지만 중학생쯤 부터는 한국에서 자기를 응원해주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든든함을 느끼는 듯합니다. 언제가 스포츠를 하는 중학생 딸에게 제 친구가 홍삼을 보내며 자랑스러운 이혜린의 전용 스폰서라고 써있는 글을 보고 혜린이가 자기가 국가대표같다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하는데 참 뿌듯했습니다. 중학교 졸업식에서 받아온 축하선물. 같이 축하할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자주 보냈던 과자와 젤리. 보내는 기쁨도 컸습니다. 외국에서 가족끼리의 생활은 좋은 점도 참 많습니다. 무엇보다 2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아이들의 능력은 외국생활이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이겠죠. 그리고 두 개의 문화를 접하고 살아서인지 고등학생이 된 딸을 보니 보는 시선이 저하고는 달리 넓은 것 같습니다. 일본어나 일본문화의 눈높이가 부모나 중고등학생 자녀나 비슷해서 권위적이지 않고 묻고 상의하는 분위기도 자연스러워서 좋습니다. 저희 가족은 그 좌충우돌의 가장 정점이었던 초등학교를 셋이 모두 졸업하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부모의 역할이나 그늘이 없이도 밝고 씩씩하게 잘 생활하고 있어 많이 편안합니다. 제 눈에는 부모의 상황을 이해하듯 공부도 곧잘 하고 책임감도 강하고 속도 깊어 보입니다. 참 고맙습니다. 이곳이 낮설었던 우리였지만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이 이루어진다는 10살까지는 되도록 따뜻한 추억이 쌓이도록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 노력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갖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힘들기도 많이 했지만 아이들에게 꼭 필요할 때 많이 노력하길 잘 했다고 서로를 토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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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이달의 주자: 손창희)

마스카와 도시히데 저

  제가 소개드릴 책은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던 마스카와 도시히데 선생의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입니다. 이 책은 장인어른께서 선물해 주신 책으로, 과학자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마스카와 도시히데 선생은 이 책을 통해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의도치 않게 전쟁에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이를 막기 위한 과학자들의 사회적 참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과학계의 성과중심주의가 이러한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은사인 사카타 쇼이치 선생의 “과학자는 과학자로서 학문을 사랑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인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책이 저에게 와닿았던 이유는 마스카와 도시히데 선생이 지적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현재 제 위치에서 몸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과학계의 놀라운 발견은 인류에게 원자력이라고 하는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하였으나, 그와 동시에 원자폭탄이라는 인류 최악의 무기를 만드는데 악용되었습니다. 마스카와 도시히데 선생은 이러한 원자력과 원자폭탄의 역사야말로 과학의 발전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과 과학자의 사회적 참여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일하고 있는 오크리지 연구소는 바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인 little boy가 제작된 연구소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70 년이 넘은 지금에도 오크리지의 Y12 연구소는 여전히 핵무기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도로 발전된 핵무기가 다시 전쟁에 사용된다면 과거의 전쟁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핵전쟁의 공포를 느끼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마스카와 도시히데 선생의 이야기는 저에게 단순한 충고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저와 같은 연구자분들께 큰 의미가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응집물질물리를 세부 전공으로 정한 이유는 이 학문을 연구함으로써 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동기가 무색하게, 최근 저의 연구의 동기는 “어떻게 하면 높은 impact factor의 저널을 쓸 수 있을까?” 이었습니다. 연구에 매진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평화 활동에 힘쓰면서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스카와 도시히데 선생을 보면 과학자의 사회참여가 연구에 방해가 된다는 핑계는 대기 어려워 보입니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하며 평화 운동에 힘쓸 미래의 마스카와 도시히데에게 이 책을 추천드리면서 글을 마칩니다.   다음 주자로 추천드릴 분은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의 이동규 교수님입니다.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만난 이동규 교수님은 먼 미국 땅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친구이자, 연구에 많은 도움을 둔 조력자이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선배입니다. 연구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박식한 이동규 교수님의 흥미로운 책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자세히 보기

르네상스 공돌이

기다림은 동사다.

( cjun0828)

어떤 시인이 연로하신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 가서 기다리는 과정을 쓴 칼럼을 인터넷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시인은 ‘기다린다는 말을 뜻으로 보면 분명 형용사일 터인데, 왜 동사인가?’를 묻고는, 종국에 가서는 결국 동사가 맞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기다리는 일”, 오은 시인)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우리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 말에 어울리는 상황은 미인계 또는 비밀리 이루어지는 협잡이나 은밀한 거래였습니다. 그렇게 밤이라는 이미지는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어두운 구석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사랑이든 범죄든 대부분은 밤에 이루어지죠. 그런데 요즘 잠에 대한 연구를 해보면서 밤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고 있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잠이 줄지가 않아 일찍 일어나기가 늘 어렵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은 도닦는 선승들처럼 새벽 4~5시면 눈이 떠진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으면 얼마나 많은 일과 공부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잠에 대한 기사나 가벼운 논문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내용 중 재미있는 것을 소개하면, 어떤 고래들은 물 속에서 무리를 이루어 수직으로 선 채로 하루에 불과 몇 분만 잠을 자고, 돌고래는 뇌가 두 개여서 하나씩 뇌가 번갈아 잠드는 방식으로 하루종일 사실상 깨어있다고 하는군요. 컴퓨터로 말하면, CPU를 두 개 가진 기종인 것입니다. 두 개의 뇌 사이에 소통은 문제가 없을 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한 쪽 뇌는 본능적인 기능만 하고, 다른쪽 뇌는 좀 더 고등기능을 담당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낮 근무 뇌와 밤 근무 뇌 간에 인계인수는 매일 이루어져야겠죠. 생태계에서 먹이사슬 아래에 위치하는 동물은 잠을 깊게 그리고 길게 자기 어렵습니다. 잠을 많이 잘 수 있는 동물은 천적에게 쫓기지 않는 강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의사를 만나서 아직도 잠을 많은 것이 고민이라고 했더니, 행복한 고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잠이란 어제를 리셋하고 내일을 새롭게 시작하게 해주는 창조적인 행위라고 하더군요. 지우는 것도 창조라는 주장은 좀 지나쳐보이고, 뭔가를 그리기 위해 지저분해진 종이를 깨끗하게 지우고 다시 준비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어보입니다. 따지고 보면 낮은 어젯밤에 고민했던 것을 단지 행동에 옮기는 ‘근육 노동’의 시간일 지 모릅니다. 그러면 밤은 내일 행동할 모든 것을 결정하고 기획하는 ‘정신 노동’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살면서 큰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밤을 고민으로 지새웠던가요? 낮에 모은 정보들과 사람들 말의 진위를 고민하고, 내일 결행할 액션이 ‘신의 한 수’가 될 지, 아니면 ‘장고 후의 악수’가 될 지를 수십번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이죠. 그래서 차라리 근육이 피곤하여 정신 없이 잠들어야 하는 상황일 때가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행복합니다. 밤은 기다림으로 참으며 통과해야 하는 긴 터널이고, 잠은 우리 삶의 계획이며 기도이기도 합니다. 기다림이 형용사일 때는 삶이 편안할 때이지만, 동사일 때 진짜 우리 삶이 힘들고 중요할 때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잠이 쉼이 아니라, 몇 번을 갈아엎고 다시 기획하는 내일의 시나리오를 쓰는 시간일 때 언제나 우리 삶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이런 격정과 염려를 그냥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볼 수 없을까요? 지나고보면 그 불면의 시간들이 결국 나를 키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서정주는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나이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이 싯구가 너무 멋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기다림이다.’ 아니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불면의 밤이다.’ 라고 바꾸어봐도 멋있을 것 같습니다. 권투에서 펀치만 좋다고 챔피언이 되는 것은 아니고, 맷집도 좋아야 합니다. 스피드가 빠르고 펀치도 좋은 선수들이 맷집이 약하면, 잘나가다가도 정말 맥없이 무너집니다. 경기라는 것이 자기는 한 대도 안맞고 상대를 때리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잘 견디는 사람이 최종적인 승자가 되지 않을까요? 잡다한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이어서, 사람들은 기다림도 싫어하고 불면도 괴로워 합니다만, 우리 삶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것이 이런 형용사 같은 동사들이 아닐까 합니다. 실험이 너무 고되고 데이터가 잘 안나온다구요? 프로그램이 잘 안도는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구요? 일단 오늘은 잊어버리고 일찍 주무세요. 좋은 방법이 꿈에 현몽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일 차분하게 참고 잘 견디면 결과도 서서히 당신 편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자세히 보기

연구실 탐방

서울대학교 hci+d lab

우리 연구실은 인문학, 공학, 디자인 등 다양한 관심사와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사람을 위한 기술을 만들고 있는 곳입니다. 지도 교수님이신 이준환 교수님은 Carnegie Mellon University에서 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학계에 오시기 전 네오위즈에서 최고 정보 책임자로 근무하시며 여러 모바일 서비스를 기획, 운영하셨습니다. 학계와 산업계에서 두루 갖춘 경험을 바탕으로 실용 학문 분야인 HCI를 연구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hci+d 연구실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과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연구실 구성원은 언론정보학과 뿐만 아니라 이준환 교수님께서 겸임 교수로 계시는 인문대학의 인지과학협동과정,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의 디지털정보융합전공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명의 박사후 연구원, 13명의 박사과정, 18명의 석사과정 학생으로 총 32명이 hci+d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2-1. HCI 연구실 이름에서 알 수 알 수 있듯이, 주 연구 분야는 Human-Computer Interaction이며, 우리말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이라 합니다. 이 분야는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데, 여기서 컴퓨터는 데스크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디바이스처럼 컴퓨팅 능력을 갖춘 모든 전자 기기를 뜻합니다. 컴퓨팅 기기를 사람이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의 행동과 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이 분야는 컴퓨터 공학, 심리학,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된 지식이 필요한 학문입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왼쪽은 디지털 펜을 이용한 새로운 상호작용 방식 연구의 스케치 화면이며, 오른쪽은 스마트폰으로 훑어보며 읽는 것을 돕는 자동 요약 연구를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2-2. Social Computing   인터넷이 안되는 컴퓨터는 고장난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모든 기기가 연결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며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Social Computing은 컴퓨팅 시스템을 통한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을 이해하고 돕기 위한 분야입니다.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 상의 사람들의 활동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여러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연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페이스북의 댓글에서 ‘ㅋ’과 ‘ㅠ’의 갯수를 각각 측정해서 사용자의 우울 정도를 파악하는 연구에 대한 그림입니다.   2-3. 로봇 저널리즘   로봇 저널리즘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뉴스를 작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온라인 상에 각종 데이터가 쌓이고, 알파고와 같은 인공 지능이 나올 정도로 알고리즘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이를 저널리즘에 도입하는 연구와 산업계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알고리즘으로 자동 작성한 야구 기사와 주식 시황 기사가 있으며, 2017년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에도 활용 되었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프로야구 뉴스 로봇의 페이스북 페이지입니다.   2-4. Human-Robot Interaction   Human-Robot Interaction(HRI)은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분야입니다. 스마트폰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된 것처럼 미래에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로봇을 만날 일이 잦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로봇이 사람과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로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HRI는 HCI와 마찬가지로 공학, 인문사회학, 디자인 등 다양한 연구 분야의 지혜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위의 사진은 양로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살피는 간호사의 업무를 돕는 이동 로봇을 이용한 연구의 현장 모습입니다.     연구실 분위기는 수평적이며, 자발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분위기입니다. 지도 교수님이신 이준환 교수님께서는 연구실 모든 학생들과 최소 30분씩 개인 미팅을 직접 진행하시며 연구에 대한 지도와 대학원 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계십니다. 1~2주에 한 번씩 전체 미팅을 하며, 미팅에서는 자신의 연구 진행 상황을 공유하며 피드백을 받거나, 학회에 다녀온 후기를 공유하며 다른 연구실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연구실 구성원은 각자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팀을 이루어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개인 연구와 더불어 연구실에서 수행하고 있는 정부, 민간 과제에 참여해서 연구를 수행하며 연구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방학 때는 Undergraduate Research Learner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연구에 관심이 있는 학부생과 함께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연구실은 다양한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눈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Eye Tracker, 뇌파 신호를 측정해서 집중 여부를 확인하는 Emotiv, VR 연구를 위한 Vive, Playstation VR, 로봇 연구를 위한 Nao, Robotis OP3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장비를 활용하거나 고성능 서버를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지도교수님께서는 이 분야의 최고 권위 있는 학회인 CHI에서 리뷰어와 좌장을 맡으시며 학생들의 학회 참여를 독려해주고 계십니다.     hci+d 연구실은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정문 근처의 IBK 커뮤니케이션센터(64동)에 4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시는 분은 서울대입구역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시거나, 5513번을 갈아타시고 법대, 사회대 정류장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자동차를 이용하시는 경우에는 ‘IBK 커뮤니케이션센터’라고 검색하신 후 찾아오시면 됩니다.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