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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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에서 인턴생활

    허성국 (leodic)

    저는 현재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으며, HCI 를 연구하고 있는 허성국이라고 합니다.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이던 2015년 여름에 미국 레드먼드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MSR) 에서 3개월간 인턴을 했었던 경험을 나누어보려 합니다. MSR 에 대해서는 이전에 다른 분께서 잘 설명해 주셨던 것 같은데요, 저는 인턴의 입장에서 경험한 MSR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많은 대학원생들 (주로 박사과정 학생들)이 MSR 에 리서치 인턴으로 와서 MSR 의 연구원들과 함께 연구를 하는 기회를 가집니다.   [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가 위치한 99번 빌딩 ] 리서치 인턴의 경우, 멘토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팀에 속하는지에 따라서 일하는 방식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요, 제 경우는 주로 멘토와 1대1 디스커션을 통해 개별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식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3개월 (정확히는 12주)이라는 기간은 무언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내기에는 굉장히 빠듯한 기간이기에 연구 진행에 대한 압박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가 나와 보람 있었던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규모가 크다보니 리서치 인턴의 숫자만 하더라도 꽤 많았는데요, 그러다보니 다른 인턴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또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는 함께 운동도 할 수 있었던 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시애틀 지역이라고 하지만 인턴을 하는 여름 동안의 날씨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고, 어디에나 푸른 잔디와 무성한 나무가 있어 눈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서머타임 덕분인지 저녁 9시가 되어서도 주변이 밝아 야외 활동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 인턴들끼리 종종 축구 경기를 했던 Microsoft 캠퍼스의 축구장 ] [ 다른 인턴들과 함께 하이킹했던 레이니어 산 국립공원에서 ] 워싱턴 주는 빼어난 자연 경관으로 유명합니다. 시애틀 서쪽에 있는 올림픽 국립 공원은 빙하로 유명하고, 남쪽으로 두 시간정도 내려가면 닿을 수 있는 레이니어 산 또한 정상에 쌓인 눈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 프리몬 축제에서 ] [ 퍼블릭 마켓, 풍선껌으로 유명한 벽 ] 시애틀은 레드먼드에서 그리 멀지 않아 차로 2-30 분 정도면 갈 수 있는데요, 시애틀에서는 주말마다 다양한 축제들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여름을 즐기는 듯 합니다. 스타벅스 1호점으로 유명한 퍼블릭 마켓도 재미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아 이따금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 가고 싶을 때 들르기 좋았습니다. [ 유니온 호수와 다운타운이 보이는 개스웍스파크에서 ] 3개월간 지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곳곳에 아름다운 공원이 많다는 것과, 잔디밭에 누워 햇살을 즐기며 쉴 수 있는 사람들의 여유였습니다. 저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누워 있다 보면 왠지 다른 일을 해야할 것 같은 마음도 들더군요. 아름다운 여름의 시애틀과 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인턴을 대하는 멘토와 다른 연구원들, 그리고 회사의 태도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 멘토는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관한 디스커션 외에도 연구나 진로와 관련한 조언, 학계에 대한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인턴과의 디스커션에 매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데 놀랐습니다. 몇 발짝만 걸으면 유명한 다른 연구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또 그 연구원들도 흔쾌히 시간을 내어 주는 것도 무척 고마웠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디스커션이 풍부한 것이 MSR 의 좋은 연구들이 나오는 배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 인턴들을 위해 마룬5를 초청해 인턴들만을 대상으로 한 공연 ] 인턴 생활을 통해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 제 관점에서 정리를 해 보았는데요, 3개월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의 경험이라 아마도 잘못되거나 치우쳐진 생각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고,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도 느끼고 도전도 받았던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직은 한국에서 리서치 인턴을 나가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것 같지만, 한국에서도 점점 더 많은 학생분들이 이런 기회들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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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BOOK

The God Delusion (이달의 주자 : 이상훈)

리처드 도킨스 저

  제가 소개할 책은, 국내에서도 꽤 유명해졌고 번역본도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The God Delusion’입니다. 저는 영어 원서로 읽었지만 ‘만들어진 신’이라는 제목으로 된 한국어 번역본도 나와 있습니다. 금기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표현은 저자가 이 책을 쓴 자세를 뜻하기도 하고, 이 책을 과감하게 소개하는 저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인류애를 갖고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개인적으로는 더 껄끄러울 수도 있는 부분인, 친한 친구, 동료, 지인들 중 종교 활동이 크든 작든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소위 무신론자로서의 ‘커밍아웃’을 과감하게 하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부담 때문에 이러한 귀한 기회가 왔을 때 이 책을 선택하지 않기에는, 이 책을 과감하게 세상에 내놓은 저자의 메시지에 크게 감화가 된 독자로서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이 쓰여진 역사를 살펴보는 것 자체가 이 책이 말하고 싶어하는 면을 잘 나타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은 어느날 갑자기 저자가 어떤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아서 써내려갔거나, 절대자의 말씀을 받아적은 것이 아닙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The Origin of Species’(번역본 제목 ‘종의 기원’)도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윈은 그 당시까지 차곡차곡 쌓인 진화의 많은 증거들에 본인이 스스로 관찰한 것들을 종합하여, 자연선택과 적자생존만으로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현재 겉보기로는 이렇게나 다양한 생물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다윈이 그렇게 증거들이 쌓이고 내용이 차서 진화론으로 발표되는 딱 그 순간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하면 자칫 그를 폄하하는 것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거인의 어깨에 서서(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조금 더 볼 수 있었다는 말을 그냥 겸손의 표현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거인의 어깨에 설 수라도 있었던 위대한 그를 존경하는 것이 맞는 것이죠. 진화론의 핵심이 사실은 이렇게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도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위대한 천재들의 발견들을 칭송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 온 중간 과정들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다윈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이론을 제시했지만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의 존재도 과학 발전이 그렇게 점진적이고 확률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쓰여진 종의 기원이, 문장 하나하나, 글자 하나하나가 완전무결한 진리라 믿으며 계속 떠받드는 정상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비정상이라 보는 것이 과학적 사고의 핵심입니다). 다윈 이후에 엄청나게 발전한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은 진화가 아니라면 도저히 확률적으로 불가능해보이는 발견들을 마구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도킨스의 이 책은, 이런 것들을 옆에서 보고 있다가 ‘그렇게 확률적으로 불가능해보이는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시는 것이 우리가 믿는 신이십니다’라고, 반박 불가능한 정신승리를 시전하곤 하는 종교에 더 이상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문입니다. 신을 부정하는 것이 어떤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아니라, 우리 일상 생활 대부분의 근간이 되는 논리적, 과학적 사고가 피로해질 때 마다 ‘포기하면 편해’ 느낌으로 ‘신의 섭리’로 도피하는 지적 게으름만 딱 제거하자는 것이죠. 인류애를 실천하고 있는 수많은 긍정적인 종교 활동에 대해 감히 ‘게으름’ 따위의 말을 쓰다니 정말 이 책의 저자만큼이나 오만 방자한 녀석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듯 하여, 바로 그 도덕, 윤리의 문제를 언급하려 합니다. 사실은 이 책을 읽기 이전에는 저도 종교가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이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바로 이 부분을 정면으로 지적합니다. 인간의 도덕과 윤리 역시 진화와 같은 원리로,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인류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으로, 때로는 수많은 시행착오도 거치며 (선거로 뽑힌 나치즘 같은 것들이 그 예가 되겠죠) 덜컹거리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행착오와 도전의 결과 발전하는 것이 문명이지, ‘신의 말씀’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현대의 바람직한 종교활동이라 생각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너무 오래되어 현대 문명의 실정에 맞지 않는 경전들에 쓰여진 ‘신의 말씀’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으니, 현대 문명의 기준에서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들을 취사 선택(“cherry-picking”)해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그 현대 문명의 도덕 기준이 이미 있는 것이고, 종교 경전 중에 그것들만 골라내서 적절하게 인용하면서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는 종교가 있을 때,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다음과 같은 진화론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 책 저자의 조금 더 유명한 이전 저서인 ‘The Selfish Gene’(번역본 제목 ‘이기적 유전자’) 방식의 설명을 차용해 보겠습니다.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동성애는, 유전자 풀 입장에서는 “자원의 낭비” 일 수 있습니다. 식량 자원이 부족했고 문명이 발달하기 전 한 명의 개체라도 번식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매우 큰 “낭비”이던 시절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수는 없지만 왠지 거부감이 느껴지는 그러한 행동을 종교와 같은 권위로 눌러서 금기시하고 억지로라도 번식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유리한 선택이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과학 문명이 발전하고 비록 유전자 명령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본성이 있더라도 (‘-더라도’가 중요합니다. 본성이 있으므로 그러한 행동이 옳다는 것이 전혀 아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자의 그 전작을 비롯한 많은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별 인간이 그저 유전자를 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자체로서 존엄함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인류가 깨달은 지금은 동성애를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낡은 종교 경전의 “말씀”에 따라 동성애를 아직도 죄라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고 슬플 뿐입니다.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번역본 제목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이 문명 발전에 의한 윤리 발전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 책도 구입했지만 부끄럽게도 방대한 양에 압도되어 아직 다 읽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다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떤 종교의 가르침보다도 직접적이고 본질적인,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이유가 등장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이 삶이 전부이고, 그것 외에 어떤 다른 영적인 세계 또는 내세의 삶 따위는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가 가진 유일한 바로 이것을 가장 가치있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책을 직접 인용하자면, “… the knowledge that we have only one life should make it all the more precious. The atheist view is correspondingly life-affirming and life-enhancing, while at the same time never being tainted with self-delusion, wishful thinking, or the whingeing self-pity of those who feel that life owes them something. (우리에게 하나의 삶만 있다는 사실이 삶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 따라서 무신론자의 그런 관점은 삶을 긍정하고 삶을 향상시킨다. 그것과 동시에, 그 관점은 자기 망상, 비합리적인 희망, 또는 삶이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느끼는 자아 연민으로 절대로 더럽혀지지 않는다.)”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과는 정확히 같은 이유에서 다른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같은 방향인 것 같기도 합니다. 훈련병 시절 논산 육군훈련소에 위치한 교회를 호기심에 가 보았을 때, 원숭이와 인간의 사진이 담긴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어떻게 원숭이가 인간이 되냐고 훈련병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왜 ‘어떻게 언니가 동생이 되냐’고 묻는 것과 본질적으로는 같은 급의 질문이라는 사실이 대중적으로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딱 그 정도 수준의 과학적 토양을 가진 문화권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신의 섭리로 도피하고 싶어하는 유혹이 좀 더 크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단순히 사이비 종교 때문에 생겨나는 사회문제 같은 걸 떠나서 (그런 것들은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잘 다루고 있죠), 논리적/과학적 사고가 어떻게 신이라는 가정 내지는 신이라는 망상(영어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면 이렇게 될 텐데, ‘만들어진 신’이라는 순화된 번역본의 이름조차 종교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결과물이라 여겨져서 안타까웠습니다)을 자연스럽게 몰아내게 되는지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자의 특유의 도발적인 표현법으로 본인 딴에는 재치있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들이, 불필요한 공격이라 여겨지는 것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예수를 사형시키려 했던 도구라는 점을 다소 고약하게 이용하여 예수가 현대에 사형당했다면 상징을 전기의자로 했을거냐는 부분은 질 낮은 빈정거림으로 느껴집니다. 고대 사회와 현대 사회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달랐고, 그것이 종교와 관계없이 발전한 인류의 윤리 발전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저자가 그런 비유의 부적절함을 모를리가 없을텐데 말이죠. 책의 이러한 문제점도 분명히 지적을 해야겠기에 마지막에 이렇게 소개드리며 글을 맺으려 합니다. 제가 이런 큰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넘게 할 만한 자격이 있을만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굳이 목 아프게 하늘을 우러르기 보다는 고개를 주변으로 돌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된 것이 이 책입니다. 유일하기에 소중한 남은 이 인생을 어떻게 하면 더 가치 있게 살아갈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 봅니다.   한양대 응용물리학과 손승우 교수님은 스미기 상전이(percolation transition), 동기화(synchronization), 복잡계 연결망(complex network), 게임이론(game theory) 등의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계시며, 한국물리학회, 복잡계 학회에서 물리학의 대중화 활동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뵐 때 마다, 무심한 저와는 달리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늘 본받고 싶은 손교수님께서 어떤 책을 소개해 주실지 많이 기대가 됩니다. 자세히 보기

현대인은 언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말도 진화하지만, 수입되는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에 중국어-일본어까지 마구 섞이고 있고, 영어약자 쓰나미는 이러저리 부유하는 개념들끼리 좌충우돌시키고 있습니다. 회의중에 무한 반복되는 약자를 혼자만 모르는 것같아 스트레스 받았던 기억이 다 한 번쯤 있었을 것입니다. 잘 알아듣는 것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도 그 약자를 모르면서 아는 체 ‘연기’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씁쓸했던 적도 있었나요? 실제로 제가 당한 경험입니다. 아파트 단지 이름을 외국어로 어렵게 짓는 이유는 시부모의 방문을 싫어하는 며느리들 때문이라는 블랙코메디는 이제 아재개그가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외국어를 알파벳 철자 없이 한국어로만 표기합니다. 옛날부터 일본이 해오던 방식인데, 원음과 발음이 너무 다르다며 흉보던 것을 이제는 우리가 따라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어보다는 한글이 훨씬 원음에 가깝기는 합니다. 한글의 세계화 또는 세계의 한글화는 과학기술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자연현상이나 응용을 언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행위가 과학기술이니까요. 여러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갈지자 행보를 해온 한글화 문제에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기 어렵지만, 우선 두 가지만 제안을 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외국어의 한글식 표기, 둘째는 외국어의 약자표시입니다. 외국어와 외래어의 한글표기를 살펴봅시다. 조선일보에는 미국수도에 사시는 한 영어고수요, 옛날 조선일보기자분이 가끔씩 영어의 한글표기를 비판하는 글을 올립니다. 여러가지 고민과 연구 끝에 쓴 글들이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민망한 주장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원발음이 로오즈벨트인데 왜 루스벨트라고 쓰냐고 하고, 요즘 시끄러운 싸드(사드)는 ‘때애드’ 또는 ‘때앳’이라고 써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렇게 발음하는데 왜 영어를 한글식으로 쓰냐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사람 앞에서 “로.오.즈.벨.트”라고 또박또박 발음한다고 해도 잘 못알아듣습니다. ‘이 사람이 왜 갑자기 허리띠 (벨트) 이야기를 하지?’ 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영어는 높낮이와 장단이 있는 언어입니다. 표기를 한다고 그대로 읽어서 해결이 안됩니다. 그리고 한글로 그대로 적어보라고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실험을 해보아도 로오즈벨트가 다수일 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외국어이니까요. ‘원음에 가깝게’ 만이 아니라, ‘간단하게’라는 원칙도 같이 적용하여 발음을 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언어도 경제성과 엄밀성이라는 두 배반조건의 타협으로 진화되어 갑니다. 혼동을 최소화해야 하는 언어는 엄밀해야 하지만, 그 엄밀성을 유지하기에 시간과 노력이 지나치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습니다. 저도 오래전에 불어 문법책을 출판한 적이 있는데, 한글표기를 문제삼는 사람들이 많았었습니다. ‘앙상블’은 ‘엉썽블’이 다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프랑스 사람들에게 엉.썽.블이라고 발음하면 알아듣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엉썽~블(르)”처럼 중간에 살짝 꺾어지게 발음하고 뒤는 여운을 남기니까요. 이 엄밀성을 맞추기 위해, ‘중간에 한 번 꺾고, 뒤는 여운을 살짝 남길 것’이라고 다 적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동일 언어인 영국식 영어를 미국인들은 다르게 발음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가 전혀 다른 우리는 미국식에 맞추어야 한다구요? 동일언어도 방언이 있고 지역적 차이가 있는데, 다른 언어인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원음을 따르라구요? 불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표기하다가는 잘 사용하지 않는 기묘한 모음들까지 동원하여 괴상한 한글이 만들어집니다. 한글표기는 보통의 사용범위에 한정되는 한글 안에 다 들어와야 합니다. 그리고 언어에서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예를들면 ‘금언’과 ‘금연’은 발음이 다르지만, ‘비전’을 원음에 더 가깝게 ‘비젼’으로 적어도 발음에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이나게 발음하려면 잠시 멈춰야 합니다만, ‘비젼’을 발음할 때마다 잠시 멈출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경제성에 맞지 않는것입니다. 그냥 모두가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방식이 좋습니다. 그래서 ‘오랜지’를 ‘어린쥐’로 발음하여, 과일이 쥐새끼(어린 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다만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a를 ‘아’가 아닌 ‘애’로 적을 경우에는 ‘에’가 아니라 ‘애’로 통일합시다. 즉, 오랜지(orange), 애플(apple)로 적는 것입니다. 그리고 e를 ‘이’가 아닌 ‘에’로 표기할 경우, ‘애’가 아닌 ‘에’로 통일합시다. 즉, 레몬(lemon), 데모(demo)로 적는 것입니다. 지금도 은연중에 행해지고 있는 표기법입니다만,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예전에도 이 코너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어에서 ‘에’와 ‘애’의 발음차이는 없습니다만, 고유명사를 구분하여 규칙적으로 표기하면 원 철자가 무엇인지 특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영어약자 문제로 넘어가 봅시다.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합니다. 너무 많은 약자들이 난무하고 있어서 정보를 전달하려는지, 숨기려는 의도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논문이나 보고서에는 약어표라는 것을 넣어두지만, 항상 빠지는 약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본 약어의 기억이 안나 다시 한 번 앞으로 왔다갔다 하다보면 뭐를 읽고 있는지를 잊어버립니다. 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가능할 것 같습니다. 모든 페이지에서 약자 (전부 대문자로 쓰여진 단어)는 자동으로 페이지 아래에 각주를 만들어주는 앱을 워드 프로그램에 장착하면 될 것 같습니다. 미리 등록해둔 약자들은 자동으로 각주를 달아주고, 등록이 안된 약자는 약자만 알려주면 다시 저자가 등록하면 됩니다. 외국어의 한글표기는 사용자나 소비자들의 여론을 반영하며 진화해가야 합니다. 국내의 모든 학회의 시작에는 해당분야 몇몇 전문용어들의 한글표기가 논의되거나 발표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마치 행사시작과 더불어 항상 있던 ‘국민의례’처럼 말입니다. 그럴만한 가치있는 일입니다. 과학기술에서 용어는 개념이라는 추상을 구상의 세계로 끌고 오는 말고삐 같은 것이니까요. (여적: 신문마다 ‘휴식을 취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성격이 모난 탓인지 정말 눈에 거슬리는군요. 휴식하려고 뭘 ‘취’한다니 여전히 일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쉬었다’ 또는 ‘휴식했다’라고 쓰면 어떨지요? ) 자세히 보기

연구실 탐방

[Indiana University]Advanced nanomaterials and nanomanufacturing

  Advanced nanomaterials and nanomanufacturing랩은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 위치한 인디애나 대학 기계과 소속의 류종은 교수님 (Dr. Jong E. Ryu) 실험실 입니다. 인디애나 대학에는 공대가 없지만 퍼듀 대학의 공대 프로그램의 일부로 운영되는 독특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교수인 Dr. Ryu는 2009년 UCLA 기계공학과에서 나노 복합 재료분야의 박사를 받고 바이오 나노 테크놀러지 분야의 박사후 과정을 수련하였으며, 2011-2013에는 인텔에서 반도체 현장 경험을 쌓은 배경이 있습니다. 현재에는 나노 물질을 활용하는 인쇄 전자, 3 차원 인쇄 기술, 새로운 암 진단 방법, 적외선 플라스모닉 디바이스의 공정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디애나폴리스에 인접한 Air Force Research Lab과 Argonne National Lab과 협력을 통해 고사양의 실험장비를 사용할 수 있고 학생들은 프로페셔널한 수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2.1 플라스모닉 센서 플라스모닉 진동 은 도체(주로 금, 은)내의 자유전자가 공명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며 주변의 유전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을하기 때문에 생물, 화학 센서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또한, 특정 파장의 전자기장과 공명을 일으키면 주변 전자기장을 증폭시키는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Dr. Ryu는 나노 임프린트 공정을 이용해 대면적 플라스모닉 바이오 센서를 만드는데 성공하고, 이를 fluorescent immunoassay로 활용하였다. 나노스케일로 배열된 플라스모닉 센서들은 세포의 extracellular molecules를 세포보다 작은 스케일의 분해능으로 검출하여 농도구배를 추정해 낼 수 있었다. 금속으로 된 Subwavelength 조리개를 통해 빛을 통과 시킬 때 특정 파장의 빛이 증폭되어 통과하는, 이른바 extraordinary transmission 현상 또한 플라스모닉 진동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다. 플라스모닉 조리개는 광센서 (photodetector)위에 직접 결합이 가능한데, 기존의 무겁고 부피가 큰 밴드필터나 편광필터의 기능을 나노 두께의 금속 필름으로 대체할 수 있다. Dr. Ryu의 실험실에서는 미공군 연구소 (Air Force Research Lab)의 프로젝트로 적외선 검출 장치에 플라스모닉 조리개를 결함시키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2 플렉서블 하이브리드 일렉트로닉스 플렉서블 하이브리드 일렉트로닉스는 현재까지 개발된 유연 전자 소재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high performance 반도체 전자 장치를 유연 전자 소재및 기판에 결합시킨 새로운 형태의 어플리케이션이다. Dr. Ryu의 연구실에서는 나노 재료를 이용한 전자 소재의 개발 및 프린팅, 저온 소결 공정, 3차원 인쇄를 이용한 유연 기판 설계에 관한 연구를 수행중이다. 연구실이 위치한 인디애나폴리스는 인디애나 주의 주도로써 미국에서 15번째, 중서부에서 시카고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다운타운의 활기 넘치는 문화생활과 순박한 중서부의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도시로 한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공과대학은 퍼듀 대학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어 학생들의 석박사 학위 수여와 학사 일정은 퍼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위해 퍼듀 대학의 교수님과의 co-advising을 통해 순조로운 학업과 졸업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의 복수의 국가연구소와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기 때문에 summer internship 과 진로 탐색에도 교수님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주소 : Indiana University-Purdue University Indianapolis Department of Mechanical Engineering 723 W. Michigan St. SL006 Indianapolis, 46202 USA ■ 전화 : 1-317-274-8984 ■ 홈페이지 http://www.iupui.edu/~meengr/jeryu/index.htm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