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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이달의주자:장아람) 올리버색스 저

가끔 하나의 예쁜 물건이 하루의 기분을 좋게 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예쁜 물건을 만들고자하는 장아람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고 현재는 도자기를 포함한 다양한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자가 아님에도 윤진혁의 소개로 감사하게도 코센릴레이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미술 작업이 저만의 시각적 언어를 전달하는 과정이라면, 책은 글쓴이만의 언어를 담고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 책을 읽는 것은 미술관에 가듯 즐거운 일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책은 올리버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입니다. 신경학자이자 의사인 올리버색스가 마주했던 수많은 환자의 이야기 중 기묘하면서도 슬프고 따뜻한 사연을 엮어낸 사례집으로, 한 편의 동화 같으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담고있습니다.

그 중 책의 제목이 된 이야기는 말 그대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주인공 P선생은 뛰어난 성악가였던 지방의 음악교사로, 어느 날부터 학생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문제를 겪게 됩니다. 학생이 말을 걸면 그제서야 목소리로 누구인지를 알아차립니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며 생기는 일상의 이상한 실수들을 그는 남다른 유머감각으로 웃어 넘기지만, 그의 증상은 점점 악화되고 당뇨를 치료하러 병원에 방문했다가 신경의학과로 가보라는 조언으로 올리버색스를 만나게 됩니다. P는 상담 내내 정신적 문제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건강하고 평범해 보였지만, 의사는 한순간 이상한 지점을 발견합니다. 순조롭게 상담을 끝낸 P선생이 쓰고 왔던 모자를 쓰고 나가려는 차, 아내의 머리를 들어 자신의 머리에 쓰려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아내의 머리를 모자로 착각할 수 있을까요? 어린 왕자가 모자 그림을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으로 상상했던 것을 기억할 것 입니다. P선생은 아내의 머리, 어깨의 실루엣으로 미루어 보아 이것이 ‘모자’가 아닐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사물을 사물로 본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모자를 ‘모자’로 인식할 때는 어떤 판단들을 거쳐야 할까요? 생각하고 있는 모자의 실루엣의 범주에 모자가 들어오는지, 모자를 이루는 질감은 어떤지, 모자의 크기는 적당한지, 속이 비어있어 쓸 수 있는 형태인지, 수 많은 판단 기준들이 작용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자를 보면 아주 빠른 속도로 ‘모자’라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뇌의 어떤 부분이 결손된 사람들에게는 이 직관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책에서 올리버 색스는 “그는 생기가 없는 추상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는 사물에 대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는 못했다.”

저는 인공지능에 관한 알고리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인공지능의 원리가 수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중요한 특징, 도식적인 연관관계를 토대로 대상을 범주화해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대상을 추상적으로 범주화하는 능력 외에 아주 직관적이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느끼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능력이 상실되었을 때 얼마나 기이하고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는지,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우리 몸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신체의 생명유지 활동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나의 매일을 낯선 이의 시각으로 되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다음 달 릴레이북 주자로 이진섭 군을 추천합니다. 현재 포항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재학중이며 인문학, 예술에 대해 폭 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대화를 늘 흥미롭게 해줍니다. 또한 과학 관련 책을 쓰는 일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 과학을 글로 풀어내는 것에 대해 좀 더 익숙할 것 입니다. 이번 기회에 짧지만 새롭고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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