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법률상담
2002-10-28
김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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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인터넷으로 법률상담을 해주는 사이트가 많이 생겨나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를 통해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안다. 예비법조인으로서 평소 그러한 사이트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필자로서는 인터넷 법률상담 사이트는 거의 빠지지 않는 웹 서핑 항목이다. 필자가 직접 상담 내용을 올리는 일은 없지만 어떤 내용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상담인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그에 대한 답변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어 내용을 자주 ?어보곤 한다.
며칠 전 그런 사이트 중 한 상담내용을 구경하던 필자는 약간은 엉뚱한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상담 제목을 신청인이 직접 붙이는 모양인지 "가해자의 진술범벅에 대한 대처방법"이라고 제목이 되어 있었다. 다른 단어보다 우선 '범벅'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와, 순간적으로 아구찜, 꽃게범벅 등 범벅류의 음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서 제목을 보자마자 내용을 열어 보게 되었는데, 제목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상담신청인이 형사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인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진술을 “번복”하여 처벌을 받지 않을 지경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대응방안”을 질문한 것이었다.
'번복'이 '범벅'으로 바뀔 수 있다니... 하긴 번복이나 범벅이나 바꾸고 뒤집어서 본래의 모습을 알기 어렵게 한다는 의미에서는 발음의 유사성 이상의 유사성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상담인의 이러한 절묘한 '언어연상력'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의와는 무관하게 법률상담을 해주게 되는 일이 많아 이러한 표현에 어느 정도 익숙한 필자로서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용어를 잘 모르셔서 그러한 단어를 사용하신 상담인에게는 필자에게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변명으로 양해를 구합니다).
필자에게 많은 법률상담의 기회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상담을 하다 보면 의외로 법률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전문가들이 필자같은 사람들보다 관련 법률분야를 소상히, 정확히 알고 있어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경우보다는 '명의(名義)'를 발음이 비슷한 '명이'로 쓰거나, 민사소송제기조차 '고소'라는 용어로 잘못 쓰는 분들이 더 많다. 이런 용어 사용을 볼 때마다 필자가 정확한 용어로 답변을 함에는 약간의 미안함이 드는데, 그 분들이 '정확한' 용어를 접한 후 느낄 약간의 부끄러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하긴 그러한 시시콜콜한 단어의 문제가 대수이랴. 정작 중요한 문제는 알맹이다. 앞서 말한 위 인터넷 법률상담 신청 내용과 그에 대한 답변을 보면서 알맹이의 중요성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인터넷 법률상담을 하는 곳은 의외로 많다. 공공기관인 법률구조공단 홈페이지, 각 신문사, 심지어는 여러 포털 사이트에서도 법률상담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변호사들이 인터넷으로 법률상담을 해주는 사이트도 많은 것으로 안다.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생겨난, 예컨대 www. ○○law○○.co.kr(com)의 주소를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위와 같은 인터넷 법률상담을 해주는 곳이다. 물론 위 사이트들의 세부적인 특징이나 목적은 다를 수 있다. 예컨대 법률구조공단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위와 같은 주소의 사이트들은 이를 수익사업의 일종으로 운영하기도 하고, 법무법인 관련 사이트는 이를 통해 회사 이미지를 제고하거나 클라이언트 유치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소한 외견상으로는 공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사실, 인터넷 법률상담 자체를 수익모델로 개발하려는 시도들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광범위할 것으로 추정되는 잠재적인 법률 수요를 수면 위로 끌어내고, 또한 공익 측면에서도 인터넷 법률상담이 법률서비스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접근성을 제고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서핑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듯이 위 상담사이트에 오르는 질의가 그야말로 폭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긴 평소 법률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건이 있었더라도 도움받을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던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상담사이트의 출현은 매우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상담사이트에의 문의가 점차 줄어들어 현재는 일부 사이트를 제외하면 그리 많지 않은 상담만 처리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더욱이 최근에는 일반 인터넷기업과 같이 인터넷 법률상담 자체만으로는 수익성이 미미한 것으로 판명되어 소수의 몇몇 회사들을 제외하고는 수익모델로서가 아니라 그저 부수적인 서비스 개념으로서의 상담 및 답변만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세이다.
상담수요가 감소했다는 판단이 다소 주관적이긴 하나 이런 생각이 타당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사이트들이 점차 유료화되면서 생기는 자연 이탈분도 감안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인터넷 법률상담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유로는 우선, 인터넷상담은 법률상담에서 요구되는 상담자와 조언자간의 신뢰관계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본디 법률상담과 법률적 절차라는 것은 정형적으로 처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견 단순한 사건처럼 보여도 사실판단을 어떻게 하느냐, 즉 여러 가지 사실관계의 구성요소 중 어떤 점을 부각시켜 사안을 판단하고 어떠한 법률논리를 구성할 것인지는 사안마다 한 가지 방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각도에 따라 가지각색의 구성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안의 사실관계 파악이야말로 법률적 절차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관계의 파악에는 의외로 상담하는 사람과 조언을 하는 사람과의 고도의 친밀도와 신뢰관계가 요구된다. 그래서 상담인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사실을 말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사실만을 말하다가도, 상담 과정에서 점차 자신의 마음을 열어 자신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사건 해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사실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글자로만 소통하고, 그것도 상담자와 조언자 모두 일방적인 의사표현밖에 할 수 없는 인터넷에서 그러한 친밀도의 충족은 무리인 것이다.
두 번째로, 인터넷 상담의 질의내용이 명확치 않고 어떠한 사실관계로 판단해야 할 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답변자 입장에서는 포괄적으로(답변에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담인의 입장에서는 '두리뭉실하게') 답변을 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답변은 상담인의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없다. 예컨대 "정황이 이러이러하니 본인에게 ○○에 대한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답변자는 "귀하에게 이러이러한 사유가 있다면 ○○권리가 있고, 그렇지 아니하고 저러저러한 사유가 있다면 ◇◇권리가 있다"라는 식으로 경우를 나누어 답변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첫 번째 이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안의 사실관계가 수많은 경우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판단은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답변은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사실판단의 본질적인 작업을 전가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당연히 이에 상응하여 상담을 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고민과 기대의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런 답변밖에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상담은 절차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기 어렵다. 사실 법률적인 문제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실체 판단이라기보다는 어떤 절차로, 어떤 모양으로 법적인 절차를 취하느냐의 문제이고 바로 이러한 점이 법률전문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예컨대, 매우 친절한 답변으로 "법원에 이러이러한 내용의 소를 제기하면 된다"라고 답변을 했다손 하더라도 질문자 입장에서는 그러한 소를 제기할 방법을 알기 어렵다. 실제로 소장은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얻지 않고는 작성하기 어려우며, 그에 부수하여 소가(訴價)의 산정, 소가에 상응하는 적절한 액수의 인지(印紙)첨부, 증거 및 증거목록을 제출해야 하는 등 소 제기의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
이상과 같은 이유가 필자로 하여금 위와 같은 불완전성과 위험성을 내포할 수 있는 인터넷 법률상담이라는 것이 국민의 법률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을 제고했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적인 정서에서 소송으로 비화될 필요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까지 일반인들로 하여금 명확한 처리절차를 모르는 가운데 성급하게 법적 절차를 취하도록 하여 나중에는 전문가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범벅"을 만들 위험성마저 있는 것이다.
이미 인터넷은 생활의 필수적인 도구가 되어 있고, 이를 통한 법률상담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전과 같은 일방통행식의 상담과 답변이 아닌 인터넷상의 실시간 대화를 통한 상담, 상담신청인들이 자신의 질의에 대한 답변과 기존에 처리된 다른 유사 사건을 비교, 대조하기에 충분한 정보 및 서식례의 데이터베이스화, 질의내용과 관련된 법령이나 판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과 저렴한 비용과 노력으로 면접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통로의 개발 등이 필요하다.또한 인터넷 법률상담 사이트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현명함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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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열
199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입학, 1998년 졸업
제40회 사법시험합격, 사법연수원 30기, 2001년 사법연수원수료
현재 공익법무관(법률구조공단본부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