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인터넷이 바꾸어 놓은 것
- 3971
- 0
정보통신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한동안 야단법석이다가,
이제 시간이 좀 지나니 당연한 줄 알고 조용해졌습니다.
필자는 가끔 창문이나 유리문으로 내부가 보이는 큰 사무실들을 지나치며
사람들의 거동을 관찰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 20년 전에도 근무시간에 심심해지면 누구를 찾는 척 돌아다니며 이런 관찰을 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대부분 파일을 뒤척거리고 있었습니다.
서서 책상위의 자료를 뒤지는 사람도 있고, 아예 손에 무거운 파일을 든 채 넘기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다들 컴퓨터 화면을 보고 앉아 있어요.
타이프 중인 사람들에게는 "커피 한 잔 어때요?" 하면, "이거 지금 바로 좀 보내야 돼서..."라고 거절이 들어옵니다만,
마우스 위에 둔 집게 손가락만 놀리는 사람들에게는 "커피 한 잔?"하면, 가다렸다는 듯이 따라 나오는 경우가 많죠.
인터넷이 잠깐 안되면, 복사해 둔 그 많은 서류중 하나를 빼들어 봐도 좋을 터인데,
다들 일손을 놓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은 참 낯설죠.
사무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사무실보다 더 변한 것은 애들의 놀이문화였습니다.
우리 주변의 한국에서 금방 온 애들을 보니, 이 아이들은 논다는 개념이 같이 인터넷을 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정말 애들 대부분이
시간만 나면 인터넷에 앉아있다는 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 번 애들의 노는 장면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일단은 대화가 아주 절제되더군요.
손과 눈은 아주 바쁜데, 입을 사용할 기회는 신음이나 감탄 같은 외마디 단문이 고작이었습니다.
필자의 어린시절에는 주로 하고 놀던 일이 자치기, 구슬치기, 축구 등인데, 특히 우리고유의
놀이는 누가 법을 정해준 것이 아니라 동네마다 다르기 때문에, 규칙을 정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놀이를 시작하기도 전에 우김과 협상 그리고 중재가 동원된 고도의 정치외교 게임이었습니다.
그래서 왕따와 싸움질, 미움과 의리가 놀이 속에 항상 있었습니다.
자치기의 경우는 상대가 무리하게 점수를 불러서, 해저물 때까지 막대기로 같은 거리를 몇 번이나 재는 오기를 부린 적도 있었죠.
뭐 옛날 놀이가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움직임이 많았고 실질적 공간을 배경으로 했기에
4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의 스켓치가 굉장히 명확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상과 컴퓨터라는 개성없이 비슷한 분위기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은 몇 년이 지나면
어떻게 기억이 날려는지요?
인간에게 행복하고 재미있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행위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좋은 추억은 자기가 인생의 많은 부분을
남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서 극단적인 행위, 즉 자살이나 살인 등의 극한 행동을
멈추게 하는 작용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어린세대들에게 그런 추억이 충분한 것인지
염려스럽습니다. 밖에서는 점수로 등급이 결정되고, 내부에서는 충분한 부대낌 없이 가상현실을 즐겨야 하는
컴퓨터 세대가 그래서 좀 가엾기도 하고 염려스럽습니다. 너무 촌스럽고 말도 안되는 구시대적 판단인가요?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요즘, 필름 부담 없이 마구 사진을 찍어대고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컴퓨터에 보관하고 계시죠? 하지만 필요한 사진을 찾고 싶을 때, 옛날 앨범보다
쉽게 찾아지던지요? 쏘팅과 찾기기능의 극간고수가 컴퓨터인데, 오히려 재래식 앨범보다 찾기가 어렵죠?
개성없는 장소에 개성없는 이름으로 잔뜩 보관하고 있는 '기억'이어서 그렇습니다.
반면, 공책처럼 된 앨범에 넣어 둔 사진들은 정확한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앨범에 사진을 붙이는 과정이 있었기에 잊을 수가 없죠.
위에서 제가 말한 공간과 움직임이 엮인 추억과 그렇지 않은 추억의 차이와 동일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도 디지털 카메라 시절부터는 사진을 찍는 즐거움만 있고,
그 후에 다시 보는 즐거움은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부지런히 앨범을 만들지 않은 탓이죠.
책꽂이에 꼽혀져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앨범처럼,
좋은 실체적 추억을 만들어 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