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커뮤니케이션
2010-11-09
전창훈 : cjun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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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했었습니다.
소통을 프레젼테이션으로 범위를 축소해서 본다면,
제가 지난호에서 주장한 요점은 과학기술계 발표가 거의 다 심하게
지겹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이공계 사람들의 감성개발이
모자란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지만, 저는 가장 큰 이유를 '면피용'으로
발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방어용으로 발표하는 것이지,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목표를 낮고 소극적으로 잡으니, 멋진 사실을 알리기보다
문제가 될만한 소지를 없애고, 남들 다 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합니다.
안전하고 대과 없이 끝내려고 하니까요.
이공계 발표는 우리에게 연극배우들의 연극무대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명의 배우가 관객들 앞에서 끼와 연기력을 쏟아내 보이는 무대 말입니다.
거기서 한 번 눈에 안 띄면 다시 또 무대에 설 기회가 없을 지 모르는
정말 소중하고도 어렵게 찾아온 무대 말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무대에 서는 것 대신에 무대를 꾸미느라 망치질이나 하고,
구석에서 라면을 끓여야 할 처지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서론은 이 정도 하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발표하는 사람들은 3가지 정도 착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 청중들이 자기가 발표할 주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둘째, 쉽게 설명하기 보다 어렵게 말해야 더 높게 평가받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셋째, 상세하게 발표자료를 써서 화면에 띄워주어야 성의 있는 발표라는 착각입니다.
위의 첫번째부터 보십시다. 대체로 발표를 듣는 청중들의 3/4 이상은 발표내용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3~4 페이지만 넘어가면 그만 자세히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다른 것에 신경씁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잘모르는 3/4의 사람들이 듣기에 이해되는 발표라야 칭찬받습니다.
왜냐하면 발표내용을 잘 아는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연구를 하는 경쟁자들이어서
칭찬에 인색합니다만, 몰랐던 사람들은 앉아서 듣는 것만으로 지식을 얻었으니 고마워합니다.
잘 모르는 3/4의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은,
마치 눈가리고 한 포도주 시음대회에서 일등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제나 발표자에 대한 충분한 사전 예비지식없이 들어서 좋은 발표는
보르도산이니, 캘리포니아 마파벨리산이니 하는 족보를 날려버리는 것이죠.
1~3 페이지까지 정도는 청중 중에 고등학생 조카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위해 바친다고 생각하시고,
4~5페이지는 후배 학부생 교육용으로 바치는 정도로 아주 기본부터 발표를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만약 해당분야 대가인 교수가 심사위원이어서 부담스럽다면,
"제가 이 연구를 시작할 때 알고 있던 지식은 겨우~"라든가,
"잘 아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시작된 연구는~"이라든가 하는 멘트로 슬쩍 위장하여
기초를 모르는 청중들까지 모두 데리고 발표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위의 둘째 (쉽게 설명하기 보다 어렵게 말해야 더 높게 평가받을 것이라는 착각)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선 관련용어가 제대로 이름지어졌는지 부터
물고 늘어져서 자기만의 언어로 개념의 핵심을 짚어봐야 합니다.
요즈음 학문은 용어(terminology)가 반입니다. 정확한 용어정의만 되면 거의 반이 끝난 것이죠.
그런데, 이공계는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남이 만든 용어나
언어를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는 것입니다. 자기 색깔이 전혀 없어요.
이공계는 객관적이지만, 그 객관을 보는 각도는 무한대일 수 있습니다.
마치 3차원이라는 실체를 2차원으로 그려낼 때, 앵글에 따라 실체가 달라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찍는 사진도 시각차이 때문에 예술로 대접받는 것이죠.
예를 들면, "맥스웰은 이 현상을 Displacement current라고 이름했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이름은 좀 더 고민해보고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등으로 접근하는 것이죠.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은 결국 정확한 용어의 사용이고,
그 용어로 개념의 깊이와 범위를 가늠해보는 것입니다.
남들이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발표가 구멍이 많아져서 어려워집니다.
자기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해낼 때 개념들의 연결이 튼튼해지고 핵심이 짚어집니다.
위의 셋째 (상세하게 발표자료를 써서 화면에 띄워주어야 성의 있는 발표라는 착각)은
성실한 연구자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인 것 같습니다.
발표용 파워포인트는 논문과는 다르게 산문이 아니라 함축미를 가진 시입니다.
키워드 몇 개와 간단한 그래프들로 청중들의 눈에 금방 확 들어와야 합니다.
너무 많은 내용을 화면에 써두면 청중들이 발표자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그 작은 폰트의 화면내용을 읽어내려고 눈을 찌푸립니다.
마치 자기발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발표자가 착각하여 더욱 발표가 힘들어집니다.
발표자가 청중들에게 보조설명이 있을 때만 화면내용에 나오는 간단한 단어들이 하나씩
그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식으로 발표를 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발표자는 청중들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며, 나란히 손을 잡고 나가는 것처럼
서서히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접근해가는 발표가 좋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너무 필자의 주관이 많아서 불편하셨죠?
그래도 우리의 발표는 연극배우의 무대라는 부분만은 동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소통을 프레젼테이션으로 범위를 축소해서 본다면,
제가 지난호에서 주장한 요점은 과학기술계 발표가 거의 다 심하게
지겹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이공계 사람들의 감성개발이
모자란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지만, 저는 가장 큰 이유를 '면피용'으로
발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방어용으로 발표하는 것이지,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목표를 낮고 소극적으로 잡으니, 멋진 사실을 알리기보다
문제가 될만한 소지를 없애고, 남들 다 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합니다.
안전하고 대과 없이 끝내려고 하니까요.
이공계 발표는 우리에게 연극배우들의 연극무대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명의 배우가 관객들 앞에서 끼와 연기력을 쏟아내 보이는 무대 말입니다.
거기서 한 번 눈에 안 띄면 다시 또 무대에 설 기회가 없을 지 모르는
정말 소중하고도 어렵게 찾아온 무대 말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무대에 서는 것 대신에 무대를 꾸미느라 망치질이나 하고,
구석에서 라면을 끓여야 할 처지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서론은 이 정도 하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발표하는 사람들은 3가지 정도 착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 청중들이 자기가 발표할 주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둘째, 쉽게 설명하기 보다 어렵게 말해야 더 높게 평가받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셋째, 상세하게 발표자료를 써서 화면에 띄워주어야 성의 있는 발표라는 착각입니다.
위의 첫번째부터 보십시다. 대체로 발표를 듣는 청중들의 3/4 이상은 발표내용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3~4 페이지만 넘어가면 그만 자세히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다른 것에 신경씁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잘모르는 3/4의 사람들이 듣기에 이해되는 발표라야 칭찬받습니다.
왜냐하면 발표내용을 잘 아는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연구를 하는 경쟁자들이어서
칭찬에 인색합니다만, 몰랐던 사람들은 앉아서 듣는 것만으로 지식을 얻었으니 고마워합니다.
잘 모르는 3/4의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은,
마치 눈가리고 한 포도주 시음대회에서 일등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제나 발표자에 대한 충분한 사전 예비지식없이 들어서 좋은 발표는
보르도산이니, 캘리포니아 마파벨리산이니 하는 족보를 날려버리는 것이죠.
1~3 페이지까지 정도는 청중 중에 고등학생 조카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위해 바친다고 생각하시고,
4~5페이지는 후배 학부생 교육용으로 바치는 정도로 아주 기본부터 발표를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만약 해당분야 대가인 교수가 심사위원이어서 부담스럽다면,
"제가 이 연구를 시작할 때 알고 있던 지식은 겨우~"라든가,
"잘 아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시작된 연구는~"이라든가 하는 멘트로 슬쩍 위장하여
기초를 모르는 청중들까지 모두 데리고 발표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위의 둘째 (쉽게 설명하기 보다 어렵게 말해야 더 높게 평가받을 것이라는 착각)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선 관련용어가 제대로 이름지어졌는지 부터
물고 늘어져서 자기만의 언어로 개념의 핵심을 짚어봐야 합니다.
요즈음 학문은 용어(terminology)가 반입니다. 정확한 용어정의만 되면 거의 반이 끝난 것이죠.
그런데, 이공계는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남이 만든 용어나
언어를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는 것입니다. 자기 색깔이 전혀 없어요.
이공계는 객관적이지만, 그 객관을 보는 각도는 무한대일 수 있습니다.
마치 3차원이라는 실체를 2차원으로 그려낼 때, 앵글에 따라 실체가 달라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찍는 사진도 시각차이 때문에 예술로 대접받는 것이죠.
예를 들면, "맥스웰은 이 현상을 Displacement current라고 이름했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이름은 좀 더 고민해보고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등으로 접근하는 것이죠.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은 결국 정확한 용어의 사용이고,
그 용어로 개념의 깊이와 범위를 가늠해보는 것입니다.
남들이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발표가 구멍이 많아져서 어려워집니다.
자기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해낼 때 개념들의 연결이 튼튼해지고 핵심이 짚어집니다.
위의 셋째 (상세하게 발표자료를 써서 화면에 띄워주어야 성의 있는 발표라는 착각)은
성실한 연구자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인 것 같습니다.
발표용 파워포인트는 논문과는 다르게 산문이 아니라 함축미를 가진 시입니다.
키워드 몇 개와 간단한 그래프들로 청중들의 눈에 금방 확 들어와야 합니다.
너무 많은 내용을 화면에 써두면 청중들이 발표자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그 작은 폰트의 화면내용을 읽어내려고 눈을 찌푸립니다.
마치 자기발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발표자가 착각하여 더욱 발표가 힘들어집니다.
발표자가 청중들에게 보조설명이 있을 때만 화면내용에 나오는 간단한 단어들이 하나씩
그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식으로 발표를 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발표자는 청중들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며, 나란히 손을 잡고 나가는 것처럼
서서히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접근해가는 발표가 좋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너무 필자의 주관이 많아서 불편하셨죠?
그래도 우리의 발표는 연극배우의 무대라는 부분만은 동의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