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와 경영
2002-11-25
이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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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난 늘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그 때 내 머리 속에 그리던 과학자의 이미지는 당시 한창 유행이던 만화영화 안에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흰 실험 가운과 눈이 팽팽 돌 정도의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를 한 채 오로지 연구실에 스스로를 가두고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모습.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과학자란 이러이러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선입견이 있었던 듯 싶다. 때때로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던 로보트 태권 브이나 마루치 아라치에 나오는 무슨무슨 박사들이 모델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 실제 내 주변에는 로보트를 만드는 김박사는 고사하고 카프 박사도 없었을 뿐더러, 이웃 중에도, 방송에서도 과학자라는 명찰을 달고 나오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목숨을 걸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풍토를 탓할 수도 있다. 밤 네 시까지 책상을 고수하는 수험생이야말로 본받아야 할 모범생이고, 고시 시험을 위해서는 속세와의 연을 끊고 조용한 암자에 들어가 몇 년이고 책을 파고 드는 것이 순리이며, 취직이나 승진을 위해서는 새벽 이슬 맞아가며 도서관에 자리를 얻거나 고시원이란 이름의 갑갑한 공간에 자진하여 들어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사회. 밤새 책상에 엎드려 불편한 잠을 이루고 저린 팔을 주무르며 아침을 맞는 수험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새벽별 보고 차지한 도서관 자리에서 짊어지고 온 책을 베개 삼아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노력을 보여야만 '열심히 한다'고 인정해 줌으로써 그런 행동들을 권유하는 암묵적 규율이 우리 사회에 있는 것은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의 보편적인 모습도 이해될 수 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실험실에 붙어 앉아 있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고, 어쩌다 집에 얼굴을 보이는 날에도 대화는커녕 잠자기에 바쁜 그런 모습으로 가족들에게 기억되기 일쑤다.
나 역시 그렇게 지내던 중에 교환 학생으로서 한 달 동안 외국 학교에 잠시 머물 무렵의 이야기이다. 비행기가 아침에 도착했기에 그 날 오전부터 실험실에 가서 책상과 열쇠, 컴퓨터를 지정받고 일을 할 수 있었다. 낮이 긴 여름이라 해가 중천인 오후 다섯시가 되자 연구실의 동료들이 하나 둘씩 "안녕"하고 인사를 하며 떠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일곱 시에는 나만 홀로 남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가던 친구는 몹시 걱정스런 어투로 "넌 언제 가니?"하고 물었다.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이냐고, 유명한 가수의 콘서트라도 있느냐고 조심스레 묻는 내 질문에 그 동료가 의아한 듯이 "집에 가서 저녁 먹어야지."라고 대답하기에 '다들 곧 돌아오겠구나'하고 생각했었으나, 그러한 내 기대는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날 밤 난 '도대체 이러면서 어떻게 연구 결과를 낼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한 달 간 수행하기로 한 과제 자체보다도 더 흥미로운, 또한 어쩌면 더 가치있는 의문이었다.
한편 오로지 잠을 위해 숙소에 가고 다음 날은 아침도 안 먹고 연구실에 나오는 내 모습은, 오후 다섯 시에 집에 돌아가는 동료들을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는만큼이나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 난 그저 살던대로 살았을 뿐인데......
한 달 동안 그들의 생활을 관찰해 보고 퍽 다른 점을 찾아냈다. 그 친구들은 일하는 시간 동안은 일만 한다는 것. 그밖의 시간에는 집에서 책을 보던지, 친구들과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던지,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일은 일이고, 생활은 생활인 것이다.
반면 평소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았다. 실험실에서 인터넷으로 우스개 소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일하는 사이사이 친구들과 음료수 마시러 자판기까지 갔다가 그 앞에서 이삼십 동안 이야기도 한다. 놀아도 실험실에서 놀아야 맘이 편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점심 저녁은 물론이려니와 때로는 밤참까지 먹어가며 꽤 오랜 시간 동안을 실험실에 있게 되고, 스스로도 거기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며 자정을 넘겨 집에 간다. 몸이 피곤하니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자는 일 뿐이고, 이불과의 눈물 겨운 이별에 매일 아침이 힘들다. 가족들이 보기에도 정말 죽어라 일하는 모습이 안스러울 지경이다. - 이것이 내 생활이고 내 모습이었다. 중요한 것은 책상에 붙어 있고 실험실에 들어가 있는 시간의 길이가 아닌데도, 미련하게도 난 일하는 장소에 오래 있으면 그것이 곧 일을 잘하는 것으로 믿었었다.
물론 한정된 시간에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24시간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정해져 있는 그 시간 동안 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친구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나 사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어떻게 시간을 배분해서 관리하고 있는지 자신의 시간 경영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난 그때서야 알았다.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들을 명확히 분리해서 생활했었더라면, 더 넓게 알고 배우고, 결과적으로는 일도 더욱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시간에 대해서도 그러하지만 연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최근 깨달았다. 어떤 연구 과제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과제의 중요성이나 학문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 외에도 가능한 위험 요소나 그 심각성, 또한 그들이 연구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서 계획을 짜게 된다. 대개 이런 일은 과제 책임자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우나, 연구 수행자 역시 책임자의 입장이 되어 볼 필요가 있다.
정해진 일만을 하는 연구 수행자는 결과를 얻기는 하겠지만 그 일을 즐기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잠도 끼니도 잊어가며 일에 몰입하기도 해야겠지만, 때때로는 객관적으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신의 위치를 바라봄으로써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다. 공동 연구의 경우에는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1이 되는 재미있는 산수도 나올 수 있다. - 즉, 두 사람이 합리적으로 과제 배분을 하지 못하면 혼자 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는 것이다. 소규모이든 대규모이든, 심지어 혼자 수행하는 연구 과제의 경우에도 경영자의 입장이 되어 연구 과제를 대할 때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연구 수행 방법'이 의외로 쉽게 얻어지며, 장기간의 과제 수행에 있어 단기적인 계획과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자신을 조절하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책상과 실험실에 파묻혀 세상과 단절되어 연구만 하는 과학자는 이제는 옛날 만화 영화에나 어울린다. 복합 학문 분야가 다양하게 확대되고 공동 연구가 일반화된 오늘 날에는 연구에 대한 열정 뿐 아니라 연구 과제와 자신에 대한 경영이 연구자라는 직업인에게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과학자가 등장하는 만화 영화를 기대해 본다.
* 꼬리말: 주제에 대해 함께 토론해 주신 euco(김환욱)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