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삶, 그리고 과학
2002-12-21
곽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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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입시생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잠만 자는, 무늬만 수험생이었던 나에게도 그 스트레스의 정도는 만만치 않았다. 고교시절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고3 시절, 내 피곤한 심신은 수많은 소박한 꿈들까지 더해져 폭발할 지경이었는데, 여기서 '소박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엔 이유가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의 꿈은 "세상을 OO하게 하는 OO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거나 "OO한 직업을 가지고 OO한 방향으로 인류에 이바지하겠다"는 등 무척도 원대한 것이었으나 입시날이 가까워 옴에 따라 "대학만 가봐라. OO도 하고 OOO도 하고 O도 해야지' 등의 분출되지 못한 젊은 에너지, 충족되지 못한 욕구불만에 대한 보상심리 쪽으로 기울어갔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원래 제한된 시간, 특정한 상황 속에 반강제적으로 놓이게 되면 평상시라면 없을 욕구까지 생겨나게 마련인지 입시 날이 다가올수록 눈에 뜨이는 모든 것들이 욕구를 자극하여, "집안의 사진을 모두 연대별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다"든가 "모든 종류의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등의 소박한 꿈들이 수도 없이 쌓여갔다. 특히, 선지원 후시험 세대였던 나에게 서류지원 후 시험을 위해 마지막 정리 점검을 해야 했던 그 몇 주간의 잡념은 극에 달했는데, D-day를 3일 앞둔 어느 날, 대학생이었던 언니의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있던 - 언니가 학교에서 교양을 위해 받아왔으나 그다지 빼볼 일은 없었던 - 두꺼운 논어 맹자 주역 대학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입시 전날 까지 논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이제 오늘만 지나면 내 너를 독파해주리라" 하며 안타까움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사람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입시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사진첩을 정리하지도 김치 담그기를 배우지도 않았음은 물론 뭔가 계획이 빽빽했었음만을 기억할 뿐 그것들이 무엇이었는지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아마도 새로 생겨난 다른 꿈을 좇아 다니느라 이전 것은 관심 밖이었으리라. 물론 사서삼경도 입시 이후 그 책꽂이에서 외출시킨 일은 없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내 눈에 꽂혔던 탓이었을까. 입학식 전 그 해 겨울방학 동안 가끔씩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것들이 나를 잠시 불러세우곤 했다. "아, 내가 저걸 통째로 완파할려 했었는데" 하는 기억을 일깨우면서. 아무래도 지성인이 되려면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막연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박학다식한 인간이 되는 것은 입시일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내 소박한 꿈들 중 하나였다. 비록 사서삼경은 통독하지 않았지만 여하간 입학과 동시에 난 여러 학회에 가입했다. 선후배간의 끈끈함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모임이어서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책을 읽어대고 세미나를 한다는 학회 참여로 내가 드디어 박학다식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는 뿌듯함이 앞섰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다시 6개월이 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무식했고 회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 계획대로라면 이미 많은 책을 읽었어야 했고 학회원들과 간사 선배와의 활발한 토론으로 성큼 자란 내 지성에 흡족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불만으로 가득했다.
"왜 우리는 한 학기가 다가도록 두 권의 책밖에 못 끝냈나?"
"왜 저 친구는 저렇게 기본적인 것도 이해 못해서 진도를 방해하나?
제대로 읽어가진 못했어도 주워들은 풍월이라도 있어서 그럭저럭 말발을 세우던 나와는 달리, 교과서 교육에만 충실하고 그것이 의도하는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한 친구는 입시 공부하듯 열심히 세미나 준비를 해오고서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에 화를 내곤 했다. 내가 기대한 의식의 전환이나 다양한 사고의 지평을 열기 위한 토론장의 길은 너무나 멀었다. 친한 친구들이었지만 오만방자했던 당시의 내게 그 친구들의 꽉막힌 사고는 큰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오로지 박학다식을 목표하는 오만한 신입생의 다음 선택은 무엇이겠는가? 까페에서 간사 선배와 이야기를 나눴다. 실망으로 마무리한 한학기의 학회 생활, 그 허무감은 심지어 휴학까지 고려하게 했다. 이 얘기 저 얘기 뜸들이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나는 "......저 탈퇴하고 싶은데요......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얻는 것이 없어서요...제가 생각했던 건 이런 게 아닌데......전 좀더 많은 책을 읽고 싶었거든요..."하고 말을 꺼냈다.
"......왜 더 많이 읽고 싶은데...?"
"...더 많이 알고 싶어서요..."
"......왜 더 많이 알고 싶지?"
"...박학다식해지고 싶거든요."
"......왜 박학다식해 지고 싶니?"
"……."
난 결국 학회에 그대로 남았고, 우리가 그 이후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왜 박학다식해지고 싶냐"는 그 선배의 물음은 나에게 작지만 날카로운 울림이 되었다. 덕분에 친구들보다 좀더 유식한 척 하느라 관대했던 친구들에게 등을 돌리는 극단적인 무식함만은 피할 수 있었다.
맹목적인 박학다식에의 꿈은 이미 접은 지 오래다. 게다가 책읽는 것만으로 그렇게 되기엔 이제 기억력도 따라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아직도 책을 읽는가? 얼마 전 최광진님께서 빌려주신 명심보감의 "至樂莫如讀書(즐거움에 이르기엔 독서만한 것이 없다)"라는 문구가 첫 번째 이유가 될 것 같다. 그냥 단순한 재미만으로도 즐거움을 얻는 게 사실이지만, 실상 책읽는 즐거움은 종종 작은 고통을 수반한다. 가령 그 속의 어떤 문장이 이미 내가 저지른 후 잊고 살던 과거의 어떤 행위에 대한 뉘우침을 일깨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짧은 순간에 깨닫게 되는 짜릿함이 폐부를 깊숙이 찔러 반성의 고통을 주는데, 결국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 고통도 즐거움이 된다. 감히 대단한 인격 성장을 운운하지는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책을 읽음으로써 거기서 얻는 작은 깨달음으로, 늘상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민폐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그 선배가 어렸던 나의 이기적인 욕구에 대해 '왜'냐는 물음을 던진 지는 이미 십년도 넘었건만 내 삶 속에서 그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과학을 하는 삶이라고 해서 그 질문을 피해갈 수 있으랴. 생각했던 것보다 얻지 못하는 경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한 것을. 더 많은 논문을 읽고 더 많은 자료를 찾고, 더 많은 실험을 하고 더 많은 결과를 내고 싶은 욕구와 마주 대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왜" 냐고 묻는다. 거창하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획기적인 발명은 못할 망정 혹시 과학을 한답시고 무언가를 파괴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직접적으로는 주변의 환경이나 생명체를, 간접적으로는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결국 ‘왜 과학을 하느냐"고 자신에게 묻는다. 그 울림의 무게가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면, 여지껏 삶 앞에서 오만했던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