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 고양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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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말에는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고,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개가 개장수에게 끌려가던 모습을 본 이후 어떤 개에게도 정을 주지 않으려 마음먹었습니다. 그후 몇 십년이 지나, ‘우리집도 개를 키우자!’는 피켓을 들고 애들이 침묵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퇴근하여 저녁을 먹으려는데, 미국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과 딸이 일어서서 피켓을 들고는 집을 한바퀴 도는 것입니다. 아마 그날 학교에서는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의 올바른 의사표현 방법’ 같은 수업이 있었고, 너희들도 한 번 실습해보라고 선생님이 꼬드켰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배후세력이 누구인지 수사를 진행하는 대신, 제가 타협안부터 내어놓았습니다. “먹이 주고, 목욕시키고 뒷처리하는 모든 것을 너희들이 담당한다면 생각해볼께. 주말까지 내가 이야기한 내용을 서약서에 적고 서명해서 제출해!” 라고 했더니 주말이 다 지나도 아무 액션이 없었습니다. 사실 서약서를 제출한 후, ‘양육’과정에서 애들이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을 걱정했는데, 애들도 책임지는 일은 두려운 모양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반려동물 관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좀 거친 분류법이긴 하지만, 인간을 개형과 고양이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분류법이 학술적으로 연구된 것인지 인터넷에 확인해보았는데, 그 흔해빠진 외국 전문가 이름 한 번 거론되지 않는군요. 하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여 소개합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벌써 간파했을 것입니다. 개형 인간은 조직순응형이라면, 고양이형 인간은 독립적이고 좀 까칠하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까 개형 인간은 유교사회의 가치인 덕을 갖추었다면, 고양이형 인간은 수입된 서양윤리에 맞는 쿨한 스타일 정도로 정리됩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격심한 세대차이는 상이한 두가지 표준이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기성세대는 의리와 체면 그리고 덕을 중시하는 ‘개형’이라면, 젊은 세대는 개성을 중시하고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고양이형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동의하시나요? 아 물론, 순도 100퍼센트짜리 개형 또는 고양이형은 가상의 극단적 분류일뿐입니다. 어느 쪽에 더 가까우냐고 물어봐야 거부감이 덜하겠죠. 그러면 여기에서 질문 하나 할까요? 당신은 어느쪽 인간인가요? 아마도 보수는 개형, 진보는 고양이형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자같은 이민자들 중에는 개형보다 고양이형이 더 많지 않을까 합니다. 기하학적 개념을 도입하여 표현한다면 개형은 수직적, 고양이형은 수평적이라고 설명하면 되겠군요. 그래서 개형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실례를 무릅쓰고 나이를 묻고는 금방 넉살좋게 “행님!, 동상!”하는 스타일입니다. 반면 고양이형 사람들은 남에 대한 호기심이 별로 없고, 자기 혼자 어디론가 쏘다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같이 한 번 하려면 불러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렵게 만나서 설명을 하면, "이거 꼭 해야 되나요?" 같은 질문을 너무도 쉽게 던져 사람을 맥빠지게 만들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 주변에 한 명씩 꼭 있죠?)
영어에서는 격렬한 다툼을 "개와 고양이가 싸우듯 한다."고 표현합니다. 둘은 서로의 철학이 완전히 다르니까, 근본적인 가치가 충돌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을 양보할 줄 알아야지, 왜 그리 이기적이야? 공동체가 망하면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아?"라는 개의 호통에, "각자가 존중받지 못하는 공동체가 무슨 의미? 내가 이기적이라면, 당신은 위선자?"라고 고양이는 맞설 것입니다. 그런데 개와 고양이가 또래가 아닌 세대간에 싸운다면 싸움은 단순하지도 않고, 화해도 어렵습니다. 위계질서 때문에 솔직하게 소통하기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개와 고양이가 서로 조화해서 같이 가야 하는 것이 헤겔이 말한 정-반-합의 역사방향일 것 같습니다. 도저히 공조할 수 없는 야당과 여당이 정치에는 늘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집권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약해지면 국민들의 이익은 더 쪼그러듭니다. 감시자 없는 권력은 언제나 타락하니까요. 그러므로 개와 고양이가 싸우는 것은 안말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질서 안에서 일어난 다툼이라면 곧 토론이 되고, 관객들은 증인도 되고 판관도 되어줄 것입니다.
문제는 개형 인간이 늑대로 변신하여 약자를 억압-착취하거나, 여우처럼 간사한 아부로 윗사람의 눈을 가릴 때 입니다. 순수개형은 의리파지만, 늑대나 여우로 역진화하면 위험한 인간이 됩니다. 반면 고양이형이 변질되면, 수고스러운 일에는 동참하지 않다가 마지막에 숫가락만 엊는 얌체족이 됩니다. 식사시간에만 나타나는 하이에나처럼 말입니다. 아니면 야행성 동물 너구리처럼 사람들이 다 모이는 낮시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아서 협업이 어려운 인간들도 있습니다. 최소한의 공동질서마저 무시하면서도 본인은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들 아시죠? 대체로 고양이형 인간들은 창의적인데, 자신의 이익에만 창의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어디에 속할까요?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죠. 의리파 개형이나 개성파 고양이형이면 서로 다를 뿐, 어느 쪽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혹시 개가 변한 늑대나 여우, 아니면 고양이가 둔갑한 하이에나 또는 너구리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죠. 조직 내에서 운신이 불편하다구요? 상사나 동기들과 소통이 어렵다구요? 어쩌면 고양이인 당신의 상하좌우를 개들이 둘러싸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반대인 경우도 있겠죠. 의리파인 당신 주위를 도둑고양이들이 장악했을 가능성 말입니다. 갈등의 해소는 갈등의 원인만 제대로 파악되어도 반은 해결됩니다. 당신 속의 미움이나 불편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 때문이라면 안심하시고 기본만이라도 맞춰주세요. 그들도 알고보면 당신만큼이나 마음이 여리고 다정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들도 개나 고양이가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신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