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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Education)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정확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때는 국어와 더불어 한자 시간이 있었는데, 당시에 우리를 정말 괴롭혔던 여자 국어선생님 덕분에 아직도 한자를 꽤 많이 알고 있다. 과중한 숙제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모두가 불만스러웠지만, 지금 다시 기억해보면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셨다. 임신하여 배가 남산만 해져도 계속 학교를 나오셨는데, 우리는 내심 이제 곧 휴직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거의 출산을 앞둔 시점까지 학교를 나오셨고, 출산후 곧바로 방학으로 연결되면서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교육을 주제로 글을 쓰다보니 갑자기 옛날 선생님 생각이 났다. 

교육(敎育)을 한자로 풀어보면 우선 오른쪽 글자 ‘육’은 아주 어릴 때 젖을 먹이며 양육하는 것을 말한다. 자료들이 약간씩 다르게 말하고 있지만 ‘영아를 양육하는 것’이다. 왼쪽의 ‘교’는 풀이가 비교적 일치하는데, ‘아들자’ 위의 부분은 회초리(爻)를 몇 개 겹쳐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회초리로 아들(子)을 훈육하며 오른쪽에 있는 ‘글월 문’(文), 즉, 글을 가르친다는 뜻이다. ‘교’의 오른쪽 부분은 ‘글월 문’자가 아니라, ‘칠(때릴) 복’이라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좀 더 살벌한 교육이 되기에 그냥 여기서는 ‘글월 문’으로 새겼다. 이렇게 풀어보고나니, 교육이라는 단어는 아주 어릴 때 젖을 먹여 키운 다음, 조금 커서부터는 엄격하게 공부시키는 주입식 스타일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이제 영어와 불어에서 사용하는 교육이라는 뜻, Education을 풀어보자. 우리가 잘 알듯이E-는 무엇에서 나오는 것을 말하고, 맨 뒤의 -tion은 명사형을 만드는 어미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duc(a)-이다. 이 -duc-은 통로를 말한다. 당장 영어의 duct (관, 파이프)부터 통로를 말하고, induce는 남을 설득하거나 권유하여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in) 것을 말한다. 논리에서는 귀납법을 induction이라고 한다. 반대의 연역법은 deduction. 비슷한 다른 단어는 Introduce가 있다. 어떤 관(사실, 논리)로 들어오게(Intro) 하는 행위니까 ‘소개하다’라는 뜻이 된다. ‘지휘하다’는 뜻의 conduct도, 모두를 함께 (con-) 끌고 간다(duct)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런 -duc- 어원이 들어가는 영단어는 굉장히 많다. 그러니까 education은 뭔가를 가르치기보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소질이나 적성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준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육’이라는 단어와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미국에서 아이들 키울 때, 주변의 거의 모든 집이 과외를 엄청나게 시키는 것을 보았다. 악기와 운동 아니면 토론이나 합창, 병원봉사 등의 활동인데, 공부과외도 없지 않았다. 경쟁과 눈치의 한국인 유전자를 가진 우리 부부도 남들에게 지지 않을만큼 열심히 애들 과외활동을 시켰다. 당시 한인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는 과외활동의 이유는, 우리도 잘아는 대학진학시의 스펙을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특기가 없으면 아이비리그 대학 못간다는 그 말이다. 몇년 후 나는 미국대학 진학가이드 책을 내게 되었다.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던 출판과정 중에 알아낸 사실은 특기와 아이비리그 합격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왜 그런 일이 마치 상식처럼 모두에게 각인되었을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기에 그런 모양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주 남다른 특기가 있으면 합격에 유리하다. 그런데 만약 억지로 ‘남다른 스펙’을 만든다면, 특기 만들 시간에 공부하는 것이 훨씬 가성비 높은 전략이다. 아이비리그 입학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부기준을 맞추고 특기를 주종목으로 입학하는 학생들의 특기수준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쓸 소재가 될 정도로 과외활동을 적당히 하면서 공부를 잘하는 것이 최선이다.

대부분의 중산층 이상 미국부모들이 필자보다 미국입시제도를 잘 알 터인데, 그들은 왜 그렇게 과외를 시킨 것일까? 한참 후에 안 사실이지만, 애들에게 자신의 소질과 취미, 적성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리고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시간 관리하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것이다. 아마 대다수는 명확한 교육관 없이 전체의 분위기를 따라 애들에게 과외를 시켰겠지만, 애초의 목적은 스펙보다는 ‘자기 발견’이 주목적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훈육에 가까운 교육이라는 단어보다 적성과 소질을 끄집어내는 Education에 더 가깝게 자녀들을 키우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입시제도가 꾸준히 바뀌고 있다. 특목고를 없애느니 존치시키느니 하는 논란도 있고 의대를 가려면 초등학교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공식도 생긴 모양이다. 조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를 계속 고집했더라면 최소한 초등학교 교육만큼은 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에서 교육제도는 곧 대입을 말하고 모든 교육은 대입을 향해 있으니, 대입 이후에는 교육이 없다. 입시를 대학자율에 맡기라는 의견도 많지만, 대학에 맡기면 아마도 더 엉망이 될 것이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교육부의 간섭 때문이 아니라, 서열문화 탓이다. 다양성에 대한 가치와 관용, 그리고 인간능력은 일찍 개발되기도 하고, 늦게 개발되기도 한다는 여유로운 믿음이 모자란 탓이다. 늦게 개발되는 확률이 적다고 해서 다 없애버리고 대입에만 올인하니, 대학에 가서는 진정한 공부를 안한다. 그리고 늦게까지 자기 개발을 하지 않았으니 일찍 은퇴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정말 바꾸기 힘들 것 같다. 문화적 기반을 바꾸기 어려우니, 정말 바꾸려는 사람들은 아예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극단적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주장이라면 면접에 유리한 외모 잘 생기고 말 잘하는 사람들 위주로 일자리가 채워질 것이다. 글을 쓰면서도 답이 없어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있다. 굳이 하나의 해법을 제시한다면, 일전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다. 중위권 이하의 대학들은 ‘연구중심대학’이라는 교수를 위한 구호는 내리고 학생들을 위해 여러가지 실사구시의 기술과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제일 낫겠다. 어쨌든, 교육선진화는 제도가 아니라, 문화가 바뀌어야만 가능하다. 교육은 타고난 모습을 찾아주고 그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1968년에 발표된 국민교육헌장도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라고 적시하고 있으나, 현실은 따라주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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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