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금속 이야기- 생무기화학
2003-07-04
한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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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활에 도움을 주는 금속원소라면 흔히들 합금이나 기계 등을 떠올리겠지만 생물계에 존재하는 금속원소도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이다. 생물계라고 하면 금속원소와는 일견 상관이 없는 듯 보이나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금속원소들이 생물계의 보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들판이나 산에서 보는 풀잎의 초록색은 마그네슘 금속이온을 포함한 엽록체에 기인하는 것이고, 쇠고기의 맛있어 보이는 선홍 빛깔도 철 이온을 포함한 헤모글로빈 때문이다. 이처럼, 생물계에 존재하는 금속이온이나 금속화합물의 생물학적인 작용과 역할을 연구하는 학문이 생무기화학인데, 현재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화학의 한 분야이기도 하다. 생무기 화학의 연구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응용적 성격을 띤다. 무기화학을 비롯하여, 물리학, 생화학, 생물학, 미생물학, 생리학, 약학, 독성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이 총체된 종합과학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서 생무기화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필자가 알기에 10여명 안팎이고 국제 생무기화학회에 가입한 회원은 고작 2명 뿐이다. 이는 일본 생무기화학회 회원이 60여명, 미국 400여명이라는 사실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나는 숫자이나, 그 만큼 국내에서의 발전 가능성을 반증한다고도 할 수 있다.
1. 생무기화학이 우리에게 주는 것
생무기화학은 우리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을 주거나 개선할 수 있다. 그 중 일부만을 들어 보면, 건강한 생활, 질병의 퇴치, 깨끗한 환경 등을 위한 금속 영양학, 금속의약, 환경친화적 촉매, 무공해 에너지 등이다.
특히 건강의 기초가 되는 균형잡인 식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주목 받지 못하고 간과되고 있는 분야는 금속영양학으로 아래 언급한 바와 같이 특정 금속이온의 과다 섭취나 부족은 심각한 질병을 유발한다. 과거 미국에서 일어난 어린이들의 납중독, 일본의 카드뮴 중독에 의한 이따이이따이병 등은 과다섭취에 의한 독성이며, 구리의 결핍으로 인한 윌슨씨 병은 금속이온의 부족에 의한 질병이다. 이와 관련된 기본적인 상식을 널리 알리고 법률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기초가 될 것이다. 또한 최근 생산되는 시스플라틴과 같은 항암제나 핵자기공명측정에 사용되는 가돌리늄시약 등도 질병과의 싸움에서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토양 중 중금속 오염이나 산업폐기물 내의 중금속 제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미생물이 환경으로부터 금속이온을 선택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사용하는 시데로포어의 이용이 있다. 이들 시데로포어는 간단한 펩타이드로 이루어진 킬레이터인데, 특정금속이온에 대한 선택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기화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이들 시데로포어의 유도체를 합성한 후, 환경으로부터 유해 중금속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연구는 환경정화에 긴요하게 응용될 수 있다.
화학공업에서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어떻게 적은 비용으로 원하는 화합물을 최대한 생산해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화학공업이라 하면 마치 오염의 주범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는 것도 큰 관심사이다. 이를 위해 생물학적 촉매(효소)를 모방한 촉매 개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이는 생체 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과 같이 오염물질 배출을 극소화하고 반응 선택성을 높여서 공정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한된 화석연료로부터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러한 노력에서 관심을 받는 분야 중 하나가 금속효소의 이용이다. 예를 들어, 수소생성효소를 이용하여 연료전지를 위한 수소가스를 생산하려는 노력, 광합성 작용을 이용한 태양에너지의 화학에너지 전환 등이 있다.
2. 대표적 생무기화학 연구의 예
2.1. 산소전달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호흡을 하며, 대부분의 생명체가 호흡을 위해서 산소를 이용한다. 호흡이라는 것은 산화작용을 이용하여 생체 내의 화학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으로 생명의 필수 현상이다. 이런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생체 내에 골고루 전달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는 헤모글로빈과 헤모시아닌이 있다. 헤모글로빈은 폴피린 리간드에 철 이온이 결합된 것으로 붉은 색을 띠며, 인간을 비롯한 동물 등에서 발견된다. 반면 헤모시아닌은 두 개의 구리이온이 히스티딘 아미노산 잔기에 결합되어 있는 구조로, 오징어, 문어 조개 계통의 생물체에서 발견되고 푸른색을 띤다. 흥미로운 점은 주변 아미노산 잔기의 변화에 의해 이들 산소전달 효소들이 산소를 활성화시켜 사용하는 산화효소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2.2. 질소고정
현재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1%는 농업을 위한 질소고정에 사용된다고 한다. 인간에 의한 산업적 질소고정은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반응임에 반해 생물체 내에서 일어나는 질소고정은 상온에서 일어나는 효소반응으로 매우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반응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질소고정의 메카니즘을 규명하면, 에너지의 소비 없이 농업생산성의 증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독립생활이나 공생생활을 하는 모든 질소고정 박테리아에서 같은 종류의 질소고정효소가 발견되는데, 이는 질소고정작용이 생명체 출현이후 초기에 형성된 효소작용임을 보여준다. 질소고정효소는 Fe4S4, Fe8S7, 그리고 MoFe8S9X (X=미지의 원소)의 클러스터를 가지는데, 이중에 MoFe8S9X 클러스터가 공기중의 질소를 환원하는 활성자리로 생각된다.
3. 인간에게 필수적인 금속이온
사람의 육체는 7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외에는 뼈와 단백질과 지질이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생무기화학적 측면에서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몸 내부에도 아주 다양한 종류의 금속이온이 발견된다는 것이다(표 1). 게다가 이러한 금속이온은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칼슘이나 철분은 각각 건강한 뼈의 형성과 빈혈에 관계되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예이지만, 그 외에 크로뮴, 니켈, 셀레늄 등은 생소한 예가 될 것이다. 표 2 에서는 금속이온이 결핍될 때 일어나는 생체 내 증상을 나열해 놓았다.
일반영양소의 부족은 영양실조를, 과다섭취는 비만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속이온도 적당한 섭취가 필요하다. 구리이온의 과다섭취는 윌슨병을, 부족은 멘케스 병을 일을 유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 몸에는 필수 금속이온을 일정한 농도로 조절하는 항상성 메카니즘이 존재하는데, 이런 메카니즘이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재대로 작용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질병으로 이어짐은 잘 알려져 있다. 생물학적 도구로 이러한 메카니즘을 연구하는 것도 생무기화학의 한 분야가 된다.
이들 대부분의 금속이온은 균형 잡힌 식생활을 유지할 경우에는 별 문제없이 우리가 섭취할 수 있지만, 생산과정 중에 많이 손실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야채를 오랫동안 끓일 경우 포함된 금속이온이 물로 빠져나가는 것이나, 밀의 가공과정에서 대부분 손실되기 때문에 빵에서 얻는 크로뮴의 섭취량은 매우 제한된다는 보고도 있다.
4. 결론
위에서 쉬운 예를 중심으로 생무기화학이 인간의 건강하고 풍요로운 생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물론, 생무기화학에 포함되는 연구들이 과거에는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학문의 주변에서 비체계적으로, 간헐적으로 언급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런 현상들을 생무기화학이라는 학문의 범주 내에서 체계적으로 종합하여 연구하게 된 것이 최근 생무기화학 진흥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들 연구의 주 원동력이 되는 기초과학에 대한 꾸준하고 활발한 지원이 생무기화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