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남기는 것
2005-08-05
전주홍 : jhje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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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모 텔레비전에서 최인호 작가의 원작인 상도(商道)가 각색되어 드라마로 방송된 적이 있었다. 조선 시대 순조 때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가치지향적 삶을 통해 기업인의 윤리의식 및 상도덕을 재조명하면서 바람직한 기업인의 상을 제시한 드라마였다. 특히 “장사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닌 사람을 남기는 것” 즉,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위한 장사를 하면 이문을 따라오는 것이란 메시지가 많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단군신화에서 동학사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예로부터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사상이 있었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한 단면을 가지고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지만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토사구팽 (兎死狗烹)의 예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활용가치가 떨어지면 내팽개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물론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있어 왔다. 그러나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이러한 모습을 접하면 얼굴이 찡그려지고 울분이 올라오지만, 그러다가 가만히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얻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곤 한다.
과학은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학문이다. 철학적 가치 기반이었던 고대과학과 달리 현대과학은 실용적, 현실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적, 도덕적 측면이 아닌 육체적, 정신적 편리성이 현대과학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과학은 과학자에게 도덕적, 철학적 가치보다 실용적, 현실적 가치를 요구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과학자가 어떤 윤리 의식이나 가치로 연구에 임하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또한 과학자를 평가하는 기준에서 이러한 문제들은 배제되고 있다. 끊임없이 유도되는 생존경쟁 속에서 가치 실현을 고민하는 것은 사치일 수 있으며, 명분을 만들고 업적을 쌓아 올리는 일이 가장 절실한 현실적인 문제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가장 많은 피해는 든든한 버팀목을 이루고 있는 하부계층의 연구인력에게 돌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소기의 목적이 금방 달성되지 않으면 또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토사구팽 될 수 있다는 의식이 저변에 있지 않다고 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고속 경제 성장 속에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욕구를 충족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 이상의의 혼란과 엄청난 부작용도 경험하고 있다. 사회경제 분야가 아닌 과학분야에서 성과와 업적 위주의 투자와 성장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과학은 업적이 아니라 과학자를 남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