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음, 그리고 기술
2005-10-05
김성환 : kim_a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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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를 마치고 2년 정도의 방황 끝에 마침내 작년 이맘때쯤 대전에 정착했다. 비록 전세긴 하지만 내 명의로 계약된 집이 처음으로 생겼을 때, 부모님께서 ‘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오직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라고 적혀 있는 작은 액자 하나를 들고 오셨다. 나의 영원한 후원자이신 부모님. 많은 생각을 하고 준비하셨다며 ‘연구는 잘 모르지만 좋은 마음을 갖고 언제나 성실하게 연구하라’고 당부하셨다.
성실한 연구. 말하긴 쉬운 단어지만 실제로 성실한 연구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학생 시절에는 배우는 자세로 실패를 교훈으로 삼으며 학위가 아닌 연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성심을 다해서 주어진 연구에 임해야 할 것이며, 이들을 지도하는 교수가 되어서는 교육과 연구, 그리고 학생의 인성까지도 정성을 다해서 가르쳐야 할 것이며,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연구비를 활용하여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지대한 열정을 갖고 모든 연구에 힘을 쏟아, 거창하게 말하자면 실제적으로 국민 복지 증진 및 국가 과학 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지금 이 자리에서 항상 성실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어렵다. 물론 우리 코센 회원들은 묵묵히 자기 본분을 지키며 연구에 전념하고 있겠지만, 진심으로 이제는 바뀌어야 할 우리들의 모습이 있어, 짧은 기간이나마 지금까지 연구를 하면서 내가 느꼈던 아쉬웠던 점을 이번 기회를 통해 밝히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국가적인 차원의 개선 방향보다는 우리 회원들이 실제로 연구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에게 연구 수행에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 세 가지를 들라고 하면 man-power, mind, technology라고 답할 것이다. Man-power는 사람이 많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할 때 비로소 연구에 man-power가 실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연구에 있어 man-power를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석사를 졸업한 후배 연구원은 비상근과 계약직이라는 명칭의 불안한 신분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들이 가질 수 있는 권리는 매우 제한적이다. 경제적인 지원 또한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 연구를 하던 인력들이 관련 회사 영업, 혹은 아예 다른 분야의 직장으로 옮겨 가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man-power가 만들어 질리 없다. 그러나 똑같이 적은 월급이라 하더라도 개선 의지가 있는 연구팀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선배연구원들이 경제적인 면 외에 자신이 배려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연구가 좋아서 일하는 후배 연구원들은 계속 그 팀에 남아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며, 마침내 그들도 어떠한 형태던 간에 그에 대한 대가 (논문이나 진학 등)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man-power에는 적절한 leadership도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leadership에는 반드시 후배 연구원들을 위한 ‘正心’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연구자들과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가?’
두 번째 요소인 mind에는 위에 언급했던 ‘正心’도 포함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의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해 연구를 하는가? 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 선배 이선주 박사님께서 내게 주신 편지는 아직까지 내 논문 파일 맨 앞장에 보관되어 있다. KOSEN community ‘People with Life Science’ 카페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다시 한번 여러분들과 함께 그 의미를 공유하고 싶다.
“과학자로, 연구자로, 일반인으로 내가 항상 벽에 부딪치는 명제가 있는데, 여러분도 똑같은 고민을 또한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연구란 연구자 자신의 만족과 목표를 향해서가 아니라, 연구의 결과를 이용할 다수의 사람을 위해 수행되어야 한다. 이에 더불어 이제는 인간만이 아니라 그간 우리에게 끊임없이 희생되어 온 지구를 위해서도.’ 이 부분에서는 나도 항상 깨어 있고자 하나 그렇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과학의 인간 생활에의 적용과 더불어 지구에의 적용을 항상 생각하면서 삶을 엮어 가길 바라며...”
우리가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될 것들이다. 특히 마지막에 언급된 지구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 하는 삶의 터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제 연구를 하면서 소홀하기 쉬운 부분이다. 지금부터라도 연구 중에나 후에 발생하는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 수거하고 독성이 강한 유기 용매는 규정에 맞추어 처리하는 작은 일을 실천에 옮기도록 해야 겠다. 이는 연구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기를 바라는가?’
성실한 마음을 갖고 연구를 수행할 좋은 연구자가 있다면 그 다음으로 요구되는 것은 연구의 기술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기술’이 뒷받침 되지 않는 연구는 뒤쳐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연구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최신의 연구 기술 및 연구 동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우리는 ‘따라 하기’식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최신 연구의 흐름을 잘 판단하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아무런 준비과정 없이 맹목적으로 유행을 뒤쫓아 연구비를 책정 받으려고 한다면 국민의 혈세만 유용되고 말 것이다. 즉, 생산적인 연구비 활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술력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따라 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연구자 스스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 하고 싶은 분야를 정하고 이에 맞춰 체계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몇 년 뒤에는 남들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갖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도 연구비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에 Bayer사의 Felix Hoffmann이 아버지를 위해 아스피린을 개발한 사실을 보면 연구비가 풍부해야만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正心’이 부족한 연구자의 핑계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우리는 연구비를 생산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다른 연구자들도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몇 가지를, 내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토대로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를 뒤돌아보고 반성하며 다시 한번 앞으로의 각오를 가지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연구비도 중요하지만 후배 연구원이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성심 성의껏 도와주고, 이들과 함께 하는 연구가 우리 아이들과 지구를 위한 것임을 항상 생각하며, 국가과학기술의 경쟁력 향상은 우리 연구자들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는 것 또한 명심하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성실한 연구’를 해 나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