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자와 고정관념 그리고 인적네트워크
2005-11-02
김동국 : cooley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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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직간접적인 경험이나 교육 또는 노출되어지는 정보에 의해 어느 한 사물에 대해 지각(perception)을 하게 되고 지각된 정보에 의해 인식(cognition)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인식에 대한 반전의 기회가 적고 유사한 인식이 쌓이게 되면 그 대상을 타 대상과 구별하는 일종의 일반화된 신념인 고정관념(stereotype)을 갖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개인의 가치관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신념으로 발전되기 때문에 사회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또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개인들에게도 멀리서 소리 없이 다가오는 쓰나미(tsunami)와 같이 종국에는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좋은 쪽으로 작용하면 우리가 잘 인식하고 있는 명품상표의 가치를 보고 그 제품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고 구매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쪽으로 작용하면 그 옛날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대한 편견(prejudice)으로 남자들만 바깥활동을 하던 시대와 같은 경우가 될 것이다. 후자의 경우와 같이 편견으로부터 시작된 잘못된 고정관념은 개인이 보다 풍요로운 인간관계를 갖지 못하게 하는 작은 범위에서부터 사회가 어느 한 집단의 활동영역을 제한하기까지 하게 되는 큰 범위의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실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그 견고함 때문에 그것을 깨뜨리는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쉽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에 대해서 놀라워하고 감탄을 보내는 것이다. 최근 국내 모 방송국의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고 또 한국을 방문해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의 “슈퍼맨 닥터리”로 불리며 재활의학과 수석전문의가 된 이 승복 씨의 이야기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어준 놀랍고 감동적인 것이었다. 유명한 사람이 되면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유명한 운동선수가 되고자 하던 기계체조선수 이 승복 씨는 고등학교 때 불의의 부상으로 사지마비의 장애우가 되었다. 이후 의학 공부에 정진하여 어느 미국 시사주간지 선정 15년 연속 최우수 병원으로 선정된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사지마비 장애우와 운동선수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이룬 그의 학업성취에 따른 피나는 노력들이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이 승복 씨가 그에게 학생들의 편지들을 모아서 보낸 서울 모 중학교에 방문하였을 때 그 학교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600만원을 들여 계단공사를 했다는 점에 개인적으로 보다 주목하고 싶다. 그가 깬 고정관념으로 그 학교에서 계단공사라는 구체적인 반응이 나왔다는 것과 그로 인해 이제 최소한 그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는 장애우와 운동선수들의 학업성취에 있어서 고정관념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과학기술자와 고정관념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도록 하자. 개개인마다 고정관념의 형성과정이 달라서 과학기술자에 대한 고정관념의 색깔이 어느 정도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형성된 고정관념을 보면 과학기술자는 전문성은 확보되었으나 자기 분야 외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것으로 보인다. 즉 기술만능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과학기술자라는 평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특성상 자기분야의 전문성 확보도 어려운 마당에 여러 기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나 비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추기란 사실상 어렵다. 그리고 대개 동일학교에서 동일전공의 대학과 대학원의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학파와 같이 한 기술 분야에 고착되고 하나의 카르텔과 같이 배타적인 인적네트워크를 유지해오는 환경에 처해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순혈 주의적 인적네트워크는 과학기술자를 한 분야에 편중된 사고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얻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요인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을 요구하는 제품의 개발에 있어서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기초과학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다양한 시각의 접근방법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 현 추세이다. 그간 활발히 추진되고 진행되어 온 다학제간(interdisciplinary) 교류나 공동연구, 이공계 학부 교육과정에 경영학 과정을 도입한 기술경영 커리큘럼(curriculum), 이미 수많은 과학기술자가 이수한 각국의 경영학석사과정(MBA), 그리고 정부의 과학기술자에 대한 공무원 특별채용 등이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일련의 대응책들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대응책들이 구체적인 효과를 나타내기에는 중장기적 기간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피부로 느끼기에는 크게 변하고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그만큼 그 동안의 고정관념이 두터웠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되었던 이 승복 씨의 예에서와 같이 두터웠던 고정관념을 깨고 이루어 낸 그의 개인적 성취는 이 승복 씨가 방문했던 그 학교에서 장애우를 위한 600만원의 계단공사를 이끌어내었다는 데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전에도 장애우에 대한 수많은 홍보와 정책이 있었겠지만 그 학교는 이 승복 씨의 방문을 계기로 구체적인 대책을 수행하였다는 것이 그 사회적 의미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계에 대한 두터워진 고정관념의 결과는 최근 10여 년간 고등학생들의 이공계 진학 비율이 이전에 비해 상당부분 감소한 것으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 고등학생들은 정보화의 수혜로 그 이전에 자기 점수에 맞춰 짜여진 배치 표에 의해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진학하고자 하는 분야의 취업률과 사회에서의 대우까지 고려해서 대학과 학과를 결정할 정도로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바로미터(barometer)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과학기술자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과학기술자들이 염원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중흥에 있어서 선택사항이 아니 필수사항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고정관념이 과학기술계가 보다 중흥될 수 있는 교육, 재정, 법률, 문화, 인사, 정책, 투자 등과 같은 직간접적인 기회들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들이 연구실과 기술현장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조직 내에서 또한 사회 각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그들의 정당한 노력들이 물질적으로나 명예 적으로 충분히 보상받는 일들이 이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정책과 홍보뿐만 아니라 어쩌면 우리 과학기술계 자체 내에서도 수많은 '슈퍼맨 닥터리 이 승복 씨'가 요구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 승복 씨가 의사지만 의학계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또 구체적인 대응책도 이끌어 내었듯이 말이다.
최근 국내 모기업의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사내에서 연설한 내용 중에 기술계에서 먼저 기술만능주의를 버리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굴지 대기업 최고기술책임자의 발언이라 그 반향도 컸는데, 그의 의도는 기술개발주의에서 벗어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현재 시장에서 요구하는 제품은 기술들의 융합과 기술 분야와 비 기술 분야의 융합과 같이 복잡하고 다채로운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다양성의 가치혁신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결국 개개인 또는 각 기술 분야의 전문성이 우선 확보되고 이러한 개별적 전문성을 방향성 있게 융합하여 가치혁신의 다양성이 확보될 때 제품이건 프로젝트건 그 성과에 있어서 탁월성에 보다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제품과 프로젝트 성과의 탁월성이 참여하는 과학기술자들에게 물질적으로나 명예 적으로 충분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고 과학기술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중요한 촉매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탁월한 성과를 이루는 과학기술자들은 또 다른 과학기술자들이나 비 과학기술자들에게 역할모델(role model)이 되고 또 다른 탁월한 성과를 유도함으로써 그 파급효과는 커지게 될 것이다.
결국 전문성을 확보한 과학기술자들이 전문성을 확보한 다른 과학기술자들 또는 문화, 예술, 정치, 법률, 경영, 행정 등과 같은 비 과학기술자들과 융합의 키워드로 상호 교류함으로써 총체적 탁월성에 근접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적 취향에 따른 인적관계 확장의 욕구 충족 차원이 아니라 탁월한 성과를 위한 차원에서 인적네트워크의 질과 폭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나오고 막막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원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적네트워크의 질과 폭을 넓히는 구체적인 방법은 과학기술자들이 고민해야 될 부분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순혈 주의적 네트워크만을 통해서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해법의 한계가 있어 미제로 남겨진 문제들은 상당한 기간동안 그대로 미제로 남겨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순종교배보다 이종교배가 적응력과 생명력이 더 강한 개체를 생성한다는 것은 학문적으로도 잘 검증되어 있는 사실이다. 사회학과 경영학에서도 다양성이 존중되고 상호 교류되는 조직이나 기업이 더 강하고 오랜 생명력을 가지는 것도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서부터 졸업 후 진출하는 사회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접하게 되는 지나치게 계층적이고 배타적인 집단문화는 이러한 인적네트워크의 질과 폭을 넓히는 데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요인으로는 나이, 성별, 지역, 학교, 종교, 이익단체, 인종 등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인자들이 있다.
그러나 최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 발표한 2004년 말 기준 인구 100명당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에서 한국은 24.9명으로 19.0명인 네덜란드를 큰 폭으로 따돌리고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한 바와 같이 계층적이고 배타적인 집단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우수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인터넷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례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KOSEN)는 그 인적네트워크의 질과 폭에 있어서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는 교류의 장으로서의 역할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 전문분야별 교류뿐만 아니라 공개 커뮤니티를 통하여 전문분야와 세계 어느 지역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상호 또는 다자간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인터넷 인적네트워크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양질의 인터넷 네트워크 사이트의 개설과 지속적인 활성화 관리, 온라인과 연계한 오프라인 교류를 통하여 과학기술자들이 다른 기술 분야 또는 다른 비 과학기술분야의 전문가들과 용이하게 교류하고 서로의 전문성을 공유한다면 성과의 탁월성에 이를 수 있는 확률을 보다 높일 수 있고 이러한 성과의 도출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에 1년 여 기간 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그 기간 동안 느낀 점은 미국의 한 개인 개인이 인류학적으로 정말 선진적인 사람들인가에 대해서는 그 못지않게 우수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량과 자질을 비교해 볼 때 쉽게 인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스템의 문제에 있어서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여러 개인들의 그 전문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어 주고 또 효율적으로 상호 연결해주는 네트워킹 시스템에 있어서 그 선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우수한 개인적 역량을 가진 우리나라에 희망적 가능성을 재 확신하였고, 여기에 필요한 선진적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일에 언젠가는 미력이나마 한 몫을 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다짐을 한 적이 있었다. 과학기술계가 인적네트워크의 질과 폭을 향상시키고 유도하는 정책과 문화형성을 통하여 우리나라 국가시스템의 선진화에 있어서 먼저 선두에 서보는 것을 감히 제안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