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하는 능력
2007-02-08
전창훈 : cjun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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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시사 주간지 타임은 최근호에서 뇌의 구조를 연구한 결과를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저는 물리를 중심으로 한 연구를 하다 보니 의학연구에 관한 기사는 소설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동일 조건인데 체질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미국에서는 의학에 적용한 통계학이 아주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커피가 몸에 해롭다고 했다가 다시 이롭다고 뒤집는 결론을 또 해마다 뒤집고 있는 것 등을 보면, 참 과학 한 번 편하게 한다는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일반의학도 이렇게 복잡한데, 뇌에 관한 연구는 그야말로 황당한 소설이라고 일축해왔었는데, 최근에 뇌파연구와 MRI 장치가 발달하여 뇌 내부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방법론에 약간씩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타임의 뇌 연구결과를 다룬 기사를 만나면서는, 소설이라도 잘 짜여진 추리소설 정도는 되리라는 건방진 생각으로 기사를 읽어나갔습니다. 기사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부위별 뇌의 작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기억력 담당 부위, 수리력 부위, 언어능력 부위 같은 구분 말입니다. 그런데 뇌의 가장 아래 부분을 표시하고는 “The Power of Hope“라는 기능설명을 해두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희망하는 능력'이라는 뜻이죠. 저는 이 말을 보자마자 뭔가 묵직한 둔기에 뒤통수를 강타당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구타당한 기분'은 나쁜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우리는 IQ라는 지적능력을 최대의 뇌의 능력으로 봐왔고, 겨우 몇 년 전부터 EQ라는 감정지수도 약간 중요하다는 인식에 이르렀을 뿐이지, 의지력이라고 할 수 있는 '희망하는 능력'은 전혀 능력으로 인정해온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에 유일하게 남았다는 희망을 모든 사람들이 '디폴트'로 골고루 나누어 가진 것 같진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희망하는 능력'은 요즈음 유행하는 '긍정적 사고'와는 또 다른 것 같습니다. 긍정적 사고는 문제 많은 현실을 덮어버리고, 모순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무력화 시킬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처세론의 외분선상에 위치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법 문제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저는, 아무데나 긍정적 사고를 대입하려는 논리는 '공공의 적'이라고 흥분할 때가 있었습니다. 분명히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것은 직무유기요, 무관심이니까요. 하지만 '희망하는 능력'이란 다릅니다. 이 말에는 현재의 절망과 불합리를 인정함과 동시에 극복해나가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비록 절망적일지라도 내일은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패기도 충일합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면서도 미래를 희망하지 못하고 자살한 어느 유명 여배우의 기사를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기사를 접하고는 '나 같은 사람도 사는데, 그만한 일로 목숨을 끊다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우울증이야말로 정말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오늘 겪는 삶의 어려움이, 괴로운 감정이,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의 여파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우울해지겠습니까? 하지만 '이 역경도 잠시일 뿐, 열심히 하면 또 좋은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살아갈 이유가 있고, 사랑할 이유가 생깁니다. 지금 하시는 일이 힘드십니까?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지 답이 없으십니까? 잘 참고 견디면 더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희망하는 능력'이 있다면 말입니다. 이쯤 되면 이제 희망하는 능력도 중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드시는지요? 그러면 이제 자신에게 질문해봅시다. 당신의 '희망지수'는 얼마쯤 될까요? 그리고 당신은 '희망지수'를 향상시킬 의지가 있으신지요? 자라지 않는 나무가 없는 것처럼, 향상되지 않는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의 희망지수를 키워나갈 생각을 하십시다. 왜냐하면 희망하는 자에게만 희망이 현실화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센 웹진에 나가는 글이라는 생각을 하니 긴장한 탓인지 목사님들 설교처럼 흘러버렸습니다. 하지만 차차 더 잘 써질 것이라고 '희망'해 봅니다. 예쁘게 봐주시길... 다음호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