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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 나눠? 붙여?

요즈음은 새정부 출범과 함께, 과기부 통폐합이라는 '극한조치'가 나와서 아마 대전 연구단지도 상당히 술렁거릴 것 같습니다.
혹시 코센본부도 격랑에서 표류하는 불안한 심정은 아닌지 걱정스럽군요.
제가 코센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르네상스 공돌이, 전창훈 박사'라는 인터뷰에서, 코센의 성공은 얼마나 일관되게 오래 가느냐라고 주장했었습니다.
지금이 오래 가기 위한 고비인 생각이 들어서 코센본부의 책임자 분들에게 강력한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원래 집단 이기주의에 약한 무리들이 과학기술자들이니, 우리가 좀 지나칠 정도로 집단 이기주의가 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길이 곧 국익 극대화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아전인수의 극치인가요? 아니면 신흥종교의 출범을 보시는 듯 하시나요?)

과기부 해체와 맞물려, 과학기술 분리는 안된다는 주장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과학기술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아니면 다른 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오랫동안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다 알만한 식상한 내용일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지겨우시면 다른 분야에서 일하시는 친구나 가족에게 보여주셔도 좋겠습니다. 우리가 너무 '전도'를 안해서 이 모양 이 꼴인 것 같으니까요...

우선, 우리 내부에서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느끼는지 봅시다.
우리는 학문을 중시하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학'의 권위가 대단합니다. 실학에서의 '실사구시'는 아주 잠깐 나왔다 사라진 이단적 사상처럼 보일 정도죠.
이번에 인수위 구성에도 대학에서 나오신 분들이 엄청 많은 것을 보셨죠? 그래서 기초과학은 우리 이공계 내부에서는 양반들 학문입니다.
그 분들은 공돌이들과 다르게 '순수과학'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응용성 결핍과 사회의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열등감과 자괴감이 있습니다.
혼자서 소설 쓰고 있냐구요? 명백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물리학과 학부를 졸업한 분들 중 자기 전공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1/3이하입니다.
학문적 자부심은 대단하지만, 학교를 나오면 바깥 환경은 아주 춥죠.

저 같이 공학하는 사람들은, 우리 문화상 천민계층입니다. 기름을 손에 묻히는 노동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나마 기름 덜 묻히려고 고급인력들은 교수가 되려고 합니다.

뭉쳐야 사는 어려운 시기에 제가 과학과 기술을 두 패로 가르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봐야 우리 문화에서는 순수과학이나 응용공학이나 다 중인계급 밖에 안되니까요.
시쳇말로 도토리 키재기라는 이야기죠.

그런데 서양에서는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볼까요?
우리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계층이 높고 낮기 이전에 중요한 시각차가 있습니다.
우선, 순수과학은 마치 역사나 철학 같은 인문학처럼 기본적 지식으로 봅니다.
그래서 입시에 관계없이 머리 다 큰 어른들이 읽을만한 과학상식, 과학철학, 과학시각에 관한 책들이 무지하게 많습니다. 대조적으로 아마 우리나라에서 입시과목에 수학과 과학이 빠지면 거의 아무도 공부하지 않을 확률이 큽니다. 우리는 자연보다 사람을 너무 좋아합니다.
자연을 마주 하더라도 탐구보다는 느끼고 즐기는 낭만적 대상으로만 인식했으니까요.

서양인들이 인체의 배를 갈라서 수술할 생각을 했다는 것, 토끼가 방아 찍는다는 전설을 무시하고 달나라까지 여행했다는 것 등은 그들이 자연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자연순응보다 자연정복이라는 시각이 엄청나게 많은 현대의 문제를 만든 것은 사실이죠.
공해문제, 인간소외 문제등이 대표적입니다만, 지금 우리가 자연주의, 누드주의까지 타령할 처지는 아니니까 논외로 합시다.

그러면 과학을 기본교양과목으로 본다는 서양인들이 기술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들은 기술을 문명과 문화의 틀을 짜는 기본적 장치로 생각합니다.
그들의 기술에 대한 정의는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라는 정의에서 명백해집니다.
여기에서 도구는 기술의 결과로 얻어진 장치이며, 자연을 정복하거나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장치들입니다.
수준 높은 도구(기술)을 사용하면 수준 높은 동물이 되는 것이고, 반대면 고릴라나 우랑우탄에 가까와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역사구분은 정치적, 경제적 체계의 변천이 아닙니다.
즉, 씨족에서 왕정, 공화정으로 넘어갔다든지 하는 정치 변혁도 아니며, 자급자족하던 시대에서 시장경제, 화폐경제로 넘어갔다는 경제 변혁도 아닙니다.
서양역사의 시대구분은 어떤 도구를 사용했느냐로 나뉩니다. 우리가 배운 방식인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의 구별 말입니다.
도구의 변천이 결국 정치와 경제체제의 변혁을 몰고온 원인으로 보는 것이죠.
근대에 와서는 산업혁명이나 정보화 시대같은 기술변혁이 시장경제나 세계화라는 새로운 문명을 만든 근원으로 봅니다.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과학을 약간 더 고상한 밥벌이 도구, 기술은 좀 더 육체노동에 가까운 밥벌이로 본다.

서양은 과학을 기본교양이나 지식으로 보고, 기술은 문화와 문명의 틀을 짜는 축으로 본다.

노벨상에 목말라 하기 전에 건너야 할 저변환경과 시각차가 아주 크다는 것이 느껴지시죠?

그러면 동서양의 시각 차이를 떠나 과학기술을 객관적으로 보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과학은 'Why?'를 추구하고, 기술은 'How?'를 추구한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는 과학하는 사람은 자연현상의 이유(Why)는 알지만, 어떻게(How) 이용할 지를 모르는 '갑 속에 든 칼'이 될 수 있습니다.

기술에서 최악의 경우는 원리(Why)를 모르면서, 어떻게(How) 아무 물건이나 찍어대어 돈버냐는 천박한 생각을 할 수 있죠.
이런 싸구려 물건들은 수명이 짧아서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여 환경을 오염시키구요, 안전사고 확률을 높이며, 삶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원리를 잘 모르는 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제품이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면 모두에게 손해죠.
그래서 과학과 기술은 뭉치는 것이 역시 좋겠습니다.
원인과 결과요 시작과 결론처럼 서로 엮여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신정부가 과학기술계의 압력에 못이기는 척, 물러서 주면 좋겠습니다.
코센본부 여러분들도 동요없이 사령부를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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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의 차이는, 논자와 같은 시각으로 볼 수도 있고, 실용화의 시전의 차이로 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후 상당한 기간(5~7년) 후에 실용화의 과정을 갖는 것이 일반적 추세가 아닐까요? 지금은 기술에 의해 먹고 사는 것에 치중을 하면서, 미래를 위해 차분하고 착실한 자연과학적 준비가 필요하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적당하고 합리적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바, 그것이 과학기술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감성적 입장은 자제하며, 사실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과학에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자연과학이 과학의 전부인양 생각해서는 안되며 과학 모두가 함께 손을 잡아야 하는 시절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과기부 해체가 아니라 과기부의 일부 기능을 분리하여 다른 정부조직과 통합하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