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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에도 열정은 있다?"

1. 박사님의 이력과 학창시절을 소개해 주세요.

이렇게 쟁쟁한 분들의 지면에 저를 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 운영자분의 실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영광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으신 많은 분들과 달리 저는 식품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그해 바로 일반 산업체에 입사하여 우여곡절 끝에 아직도 처음 직장인 CJ제일제당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학구적이지도 않았고 이공계열이 체질적으로 맞지도 않다고 생각하여 놀면서 다닐 수 있는 전공을 택하려다 (그런 전공이 있을 리 없음을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기술자는 대접 받는다’는 아버지의 추천에 따라 식품공학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전공이 저를 괴롭히거나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더 열심히 할 것을 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어느 날 인생이 답답하다 느껴져서 들여다본 제 사주(인터넷에서 무료로 찾아 본)에는 ‘학문의 불’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공부에 별로 흥미도, 적성도 없었던 제가 박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식품 공학 중에서도 식품가공 쪽으로 연구를 해 왔기 때문에 학위를 하면서 이러한 연구가 실제 어떻게 적용되는지 또 스스로 적용해 보고자 하는 욕구가 무척 커졌습니다. 박사학위 받자마자 산업체로 직행한 이유가 되었지요.

2. 박사님의 연구 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 오신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방향 및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산업체, CJ식품연구소에 운 좋게 들어가게 된 것도 저의 독특한 연구 분야 때문인데요. 바로 최소가공이라는 분야입니다.
저는 식품 가공 중 신 가공기술에 대해 주로 관심이 있었습니다. 석사학위는 마이크로웨이브(전자레인지)를 식품가공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것으로, 박사학위는 minimal processing 즉, 최소한의 가공처리를 통해 ‘가공하지 않은 것’ 같은 신선한 과일야채 가공식품을 만드는 것에 대한 연구로 받았습니다. 즉, 포장된 샐러드(외국 경험이 많으신 코세니아분들은 다 잘 아시는, 팩 혹은 프리컷 야채샐러드 제품이 대표적인)와 같은 신선편이제품(우리나라에서는 minimal processing, fresh-cut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답니다, 협회도 있지요)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이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생물, 갈변, 조직연화의 3부분에 대한 control 기술이 각각 필요하게 되는데요. 학교에서는 주로 갈변과 조직연화에 대한 분야를 연구했고, CJ에서는 미생물 분야에 대해 많은 부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고 가장 보람 있었던 시기가 언제냐고 한다면 바로 박사학위를 받고 바로 입사한 CJ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가스치환 포장을 적용한 프리컷 샐러드 제품을 출시한 그 때를 꼽겠습니다. 제가 아이 둘을 첫째는 인공중절로 둘째는 자연분만으로 낳았는데 그때의 고통 보다 더 힘들었고, 기쁨은 거의 맞먹는 수준으로 생각될 정도니까요. 학교에서 연구할 때는 몰랐던 이러한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key는 바로 유통환경이었습니다. 특히 온도 관리! 실제는 이론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미국의 코넬대학교, 영국의 선진 샐러드 회사에서 기술연수를 받아온 그대로를 적용해도 우리 유통에서는 품질이 먹어 주질 않아 밤낮을 고민하고 뛰어다녔었는데 결국 알게 된 이유는 바로 이 유통환경 이었습니다. 현재 그 제품은 법적 규제 미비 등등 사회적 분위기의 미성숙으로 인해 회사 자체 내부결정으로 접었지만 그 때의 열정,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후에는 주로 냉장유통 가공식품을 만들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냉장유통 드레싱 제품류, 냉장스프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직접 혹은 팀으로 만들어 꾸준히 출시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마케팅 분야에서 R&D 코디네이터역할과 함께 신규카테고리, 신제품에 대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산업체는 학교와 달리 단기적인 이윤 추구에 많은 부분 집중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손익, 매출 등 경영적인 요소에 대한 이해와 사회전반의 트렌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도를 높여야 했기에, MBA(경영학석사) 공부를 하면서 이러한 기초를 쌓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정말 힘들게 MBA를 받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런 걸 보면 학문의 불이 있는 게 맞는 것도 같습니다. 요즘 가공식품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불신이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이 아니 터져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실제 산업체에 있어보면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왜곡된 기사, 사실유포가 더 힘듭니다. 선진외국의 제품과 비교해도 국내 제품이 손색없을 만큼 첨가제를 쓰지 않고 더 자연스러우면서 품질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여론을 보면 가공식품은 먹지 못할 제품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공식품이 매도당하는 분위기 속에서 산업체에 있다는 것은 참 힘들 때가 많습니다. 업계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떠나지 말고 여기에 남아서 우리 가족들에게 친구에게 이 제품은 많이 사 먹으라고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겠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된 정보, 현실을 알리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네거티브한 정보들만이 가득한 책들만 있어서는 소비자들이 행복하게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이젠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하고 ‘식품가공’이 업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것이 가장 건강하게 먹는 방법임을 보너스로 말씀드립니다.

3.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우연히 이러한 곳이 있고 다양한 분야의 분들이 활동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Soup or Salad라는 카페도 여기서 알게 되었고요. 우연히 KOSEN전문가에 지원했다가 운 좋게 위촉이 되었는데 활동이 너무 미미하여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네요. 앞으로 더 많이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한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방향을 제시해주세요.

다른 분들의 글에서도 읽었습니다만, hibrain.net이라는 사이트가 어떤 점(구인구직)에서는 매우 큰 강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들이 일반 산업체 보다는 학교, 연구소, 공직으로 많이 진출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가 아직은 박사학위자를 대거 소화할 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일수도 있고, 박사학위자들도 일반 산업체 보다는 기존의 학교, 연구소 등을 더 선호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시는 많은 분들과의 교류를 통해, 박사학위자들을 위시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열정이 국내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의 영역에서 고루고루 펴질 수 있는 환경이 되는데 KOSEN이 일조하기를 바랍니다. 구인구직을 강화할 수도 있겠고 일반적인 교류의 장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시고 각종 활동을 하시고자 노력하시는 게 보입니다. 잘 되리라 믿습니다.

5.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제 큰 아들은 한의사가 꿈입니다. 저는 아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한의사라고 다 임상만 하지는 않는다. 개업해서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한의학을 제대로 배운 누군가는 기초 연구도 해야 한다. 수천 년의 임상사례로 입증된 훌륭한 우리의 과학자산인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데이터와 논리로 잘 설명한다면 전 인류를 위해 큰일을 해 내는 것이다.’
한편 저 스스로는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하는 동안 기초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는 환경 하에서 너무나 힘들게 보냈었습니다. 밥 먹고 연구만 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던 적도 있었지요. 그런 씁쓸한 기억만 생각하면 아들에게 연구를 하라고 감히 이야기 할 수 없겠지만, 오히려 제대로 연구해서 세계가 놀랄만한 업적을 냈을 때의 그 희열, 사회에 대한 기여를 생각하면 힘이 들더라도 임상보다는 연구를 하라고 힘을 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살아 보니 돈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처럼 산업체에서 일하다 보면 특히 더 그렇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돈 보다는 연구 그 자체에 열정을 갖고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대의를 위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니까요. 저는 아들이 그런 일을 해 줬으면 하고 짐짓 기대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나 봅니다.
참, 살아보니 돈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그 돈이라는 것이 저절로 따라오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중간에는 힘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열정이 있는 사람은 이겨낼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열정이 있으신 분들 능력이 있으신 분들이 이공계, 과학자의 길로 많이 들어오셔서 더 나은 기술과 환경을 만들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지구인 전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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