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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코센과의 인연_김상훈(ID:ginnre)

1. 회원님에 대한 소개와 학창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반갑습니다 KOSEN회원 여러분. 김상훈이라고 합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있는 Hitachi Global Storage Technologies라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HDD 에 들어가는 자기헤드와 디스크간 상호작용 (Head-disk-interface, HDI)에 대한 연구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이라고 하니까 아무래도 대학생이었을 때가 가장 많이 생각나네요. 92년도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해서 97년도에 졸업했습니다. 입학 당시에는 낯선 대학풍경과 물리학은 어려운 학문이라는데 내가 과연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반 기대반으로 시작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하지만 그 때는 대학생활에서 전공공부라는건 훨씬 다양한 세계의 일부라는건 상상도 못했었죠. 1, 2학년때는 틈나는 대로 공부도 했지만 학회나 학생회 활동이 더 제 관심을 끌었던 시기였던거 같습니다. 농활도 열심히 다니고, 학회 세미나도 열심히 하고, 종로, 명동거리에서 시위도 많이 했지요. 그 때가 학창생활이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는게 때였던거 같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걸 배웠다고나 할까요. 2학년을 마치고는 방위로 군복무를 마치고 3학년 복학하면서 부터는 차차 좀 더 전공공부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어렵기만 하던 물리학이 공부하는 재미도 느끼게 되면서 계속 박사학위까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받고, 박사는 독일에 가서 받았습니다.
 
< 회사 동료들과 함께>

2. 회원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 놓은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 및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해 온 연구의 분야나 소재는 계속 변해왔지만 그 내면에는 물리학이란게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석사 때는 표면물리실험을 하는 연구실에 들어가서 관련실험에 관한 다양한 장비들을 배웠지요. 특히 주사터널링현미경을 (STM)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어 원자를 하나하나 눈으로 본다는 매력에 빠져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STM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독일 베를린에 있는 Fritz Haber Institute of the Max Planck Society 물리화학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 곳에는 모델 촉매 전이금속 (백금이나 팔라듐등) 표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STM으로 사진 찍듯이 원자 하나하나를 관찰해가며 반응기작을 밝히는 연구를 하는 팀이 있었습니다. 화학자가 반이면 물리학자가 반인 곳이었지요. 그곳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화학자들이 쓰는 언어를 이해하게되고 특히 표면물리화학이라는 분야로 공부가 확대되어 갔습니다. 박사논문은 팔라듐 (Pd)표면 및 이산화루테늄(RuO2)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산화탄소(CO)의 산화반응 (CO+O->CO2)을 STM으로 연구한 것이었습니다. 박사과정과 관련해서는 독일을 떠난 후 몇년 뒤 2007년에 당시 물리화학과 학과장님이셨던 Ertl 교수께서 노벨화학상을 받으셨던게 가장 기뻤던 일이네요. 박사학위를 받은 뒤로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내 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 재료과학부에서 박사후과정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박사때 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액체박막의 기계적, 전기적 물성을 연구하는 일이었지요. Surface Force Apparatus (SFA)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액체를 평평한 판 사이에 놓고 압력을 가해 수 nm 두께로 얇게 만든후 시료에 응력을 가해 반응을 측정합니다. 전혀 새로운 장치였고 그룹에서 그 장치를 다뤄본 사람은 다 떠나고 아무도 없어 다시 작동하게 만들고 사용법을 익히는데만 일년을 훌쩍 넘겼지요. 하지만 그러면서 실험이 되는 것을 보며 기쁨도 느꼈고 나중에는 전극을 연결해 전기적 특성까지 측정할 수 있도록 장치를 확장시키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박사후과정이 끝나가면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지요. 처음에는 미국경험 2년 정도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온 것이었는데 그 때는 미국에 좀 더 남아 더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포닥을 구해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University of Pennsylvania 재료공학과로 두번째 박사후과정을 갔습니다. 거기서는 원자힘현미경(AFM)을 이용해 유기분자나 바이오물질등을 연구하는 센터 소속으로 센터 기기와 프로젝트들을 관리하면서 제 연구도 하는 식이었죠. 그래서 다양한 학과의 다양한 사람들과 프로젝트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버클리 시절 지도교수님이 산호세에 있는 Hitachi에서 사람을 뽑는데 생각있으면 지원해 보라면서 구인광고를 보내주었습니다. HDD 디스크 표면에 입히는 윤활박막에 대한 연구개발 일이었는데 마침 버클리에서 하던 일과 바로 직결된다고 생각해 호기심이 생겨 지원을 하게 되었지요. 그전까지는 회사에 간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적이 없었는데 새로운 경험이 되겠다 싶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 이외에도 아내와 아이가 버클리에 살 때 너무나 그 동네를 좋아했고 떠나올 때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어 버클리로 다시 돌아가 살 수 있다는 점도 컸습니다. 결과적으로 인터뷰보고 그 팀에서 저를 마음에 들어해서 지금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은 그 당시 저를 뽑은 팀이 전부 기계공학과 출신이었습니다. HDD 자기헤드와 디스크표면 간의 간격이 10 nm 정도로 내려오고 윤활박막도 두께가 1 nm정도라서 기본 기계공학의 지식만으로는 여러 한계가 있어 물리나 화학을 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구요. 그래서 제가 물리학과 출신이라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 되어 저를 뽑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한 예지만 이런식으로 물리학이라는게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을 계속 관통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의 연구방향은 계속 줄어드는 HDI를 좀 더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디스크 및 자기헤드의 표면처리, 윤활박막의 성능개선등 고려해야할 요인들이 다양하지요.

3. 이 직업 또는 연구분야를 정말 잘 선택 했구나 싶었던 때는 언제인지?
  제가 제 연구분야를 순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석사과정 실험실로 선택한 표면물리실험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 뒤로는 그동안 해온 것이나 각 실험실들간의 인연으로 계속 다음 자리나 연구분야가 정해진거 같구요. 그래도 무언가 한 매듭을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아무래도 박사학위를 받을 때였습니다. 이제 공부는 끝났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여태껏 공부한 물리학을 가지고 무얼 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던거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 뒤로는 어떤 새로운 기술을 접하거나 새로운 분야를 접하더라도 그 바탕에 깔려있는 기본 원리를 들여다 볼 수있는 눈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오랫동안 물리학을 공부해 온 습성이 자연스럽게 배어있는거 그런 것들이 보람있는 공부였다고 생각합니다.
 
4.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다면?

  길지 않은 세월이라 그런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특별히 전환점이라고 여겨지는 순간이 없네요. 전환이라기 보다는 그때 그때 인연이 이어져 다음 단계로 삶이 이어져 온 거 같습니다. 고등학교때는 물리학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물리학과에 지원했고, 대학교를 졸업하면서는 독일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독일 유학을 알아봤고,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마칠 때는 미국에서 경험을 쌓아보고 싶어서 포닥자리를 미국에서 알아봤고…뭐 그런식이었지요. 학문적으로는 석사 때 박사 때 박사후과정 때 지도교수님들이 서로 다른 스타일과 분야에서 저에게 영향을 주셨다고 할 수 있구요. 문제를 고안하는 법, 고안한 문제에 접근하는 법, 필요한 실험을 제대로 하는 법,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논문쓰는 법등을 각각의 교수님들께 하나하나 배워온 거 같습니다.
 
5.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2001년에 베를린 한인 학생회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었는 데 그 때 동료유학생들에게서 KOSEN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에 학생들에게 KOSEN이 소문이 나게 된 이유는 논문을 번역하고 분석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컸던거 같구요. 그 소릴 듣고 KOSEN 홈페이지에 가서 관심이 가는 논문에 대해 분석신청을 하면서 KOSEN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년정도 활동하고는 졸업하랴 미국가랴 하는 와중에 KOSEN은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회사에 취직이 되면서 산호세 있는 한국분들과 교류를 하다가 KOSEN 실리콘밸리모임이 있다는 것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또 한편으로는 KOSEN 측에서 계속 KOSEN알리기나 분석물 목록을 이메일로 보내주셔서 잊지 않고 계속 끈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보내주시는 분석물 목록을 보면서 관심이 가는 논문들이 있으면 분석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전문가 신청을 받는다고 해서 신청하게 되었고, 물리학 분야에서 선정이 되어 앞으로 일년간 전문가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6.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독일에서 처음 KOSEN이 아직 소규모였을 때 광장이라는 게시판을 통해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각자 자기 소개글도 올리고, 학교나 연구소 소개글도 올리고 그랬는데 계속 회원이 불어나면서 언젠가 부터는 더 이상 그런 오붓한 분위기는 유지하기 힘들어 지더군요. 그 뒤로는 저도 자연스럽게 회원간의 교류에서는 멀어져 간거 같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거대해진 KOSEN인 만큼 각자 전공이나 관심분야에서 스스로의 의지가 있어야 교류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기위한 KOSEN 자체의 인프라는 이미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임방도 많고 축적된 자료들도 많으니 개개인이 필요하거나 의지만 있다면 자기가 필요한 분야의 회원들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처음에 KOSEN을 접할때는 이런 아이디어가 얼마나 갈까 그런 의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만, 일관되게 KOSEN 사업이 십 년간 이어지면서 많은 저력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한동안 떠났던 저 같은 회원도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그런 힘 말이죠. 앞으로도 계속 안정적으로 사업이 유지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다른 분야와 비교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우선 이공계 공부는 힘든 만큼 공부를 마치면 얻게 되는 성취감도 크다고 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살아온 시간 중 상당부분을 물리학 공부하는데 썼는데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사물과 현상을 분석하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요즘 한국소식을 들으면 이공계의 인기가 많이 사그라들었고 이공계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의대로 많이 몰린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이공계 내부에서는 대접받을 만한 일자리에 비해 박사인력이 너무 과잉이라는 소리도 들립니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안타까운 일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제가 십년 전에 석사를 한 이후로는 국내에서 직접적인 경험이 없어서 국내 사정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만, 해외로 눈을 돌린다면 이공계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관련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나 학업 후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단 일을 시작하게 되면 직장내에서 언어등의 이유로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받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기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니 외국인의 취업이 항상 있어왔고 특히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인도,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반수를 넘는 곳이 흔할 정도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합니다. 독일도 제가 떠나올 때는 외국인이 취업하는 일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지만 요즘은 고급기술을 가진 인력이 모자라 유학생들이 졸업하고 취업할 수 있는 길도 열렸고 외국인력도 취업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현지 취업이 쉬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앞으로의 추세는 독일이건 미국이건 이공계 인력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할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공계 공부를 하시는 분들은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처음부터 해외유학이나 취업을 염두에 두고 공부를 하시면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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