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에 논문 게재한 공무원
2005-10-05
박영관 : yeong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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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사님의 이력과 학창시절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건국대 축산학과를 졸업, 일본 나고야대학교에서 축산학 전공의 농학석사를 마치고, 오사카부립대학에서 수의학 전공의 수의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그 후 미국 국립보건원 암 연구소 집단유전학 연구실에서 3년간 포스트닥터 연구원을 한 후, 현재는 특허청 화학생명공학심사 국의 심사관(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일찍 예비역이 된 탓인지(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 복학함), 전공분야에 일찍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매 학기 방학이 되면 현장 실습 아르바이트를 일부러 찾아 다녔습니다. 학부 전공이 축산학이었기에 동물산업의 현장경험을 가능한 많이 하려고 했습니다. 그 분야 중의 한 곳이 대전에 있는 한국화학연구소 안전성연구센터의 실험동물 실입니다. 방학을 한 달여 앞두고, 연구소에 현장 경험을 하고는 싶은데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교수님을 찾아가 아는 분이 있으면 연결 좀 시켜달라고 부탁을 드렸지요. 동물 실에서 생활해도 좋으니 자는 곳이 해결이 된다면 꼭 가고 싶다고 교수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저 스스로도 제 자신이 당돌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의 무리한 요구에도 교수님은 친히 연구소의 지인에게 전화를 하셨고, 다행히 마우스 사육 실이 아닌 기숙사에서 기식(선배님의 방을 빌렸음)하며 2달간의 연구소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이 실험동물 유전학 연구분야와 연을 맺게 된 계기입니다. 그 후 일본유학 결심을 하게 되었고, 미국에서의 포닥 생활을 마치고 오늘이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교수님 그리고 연구소의 박사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당돌한 저를 꾸짖지 않으시고 기회를 주신 분들…… 충분히 준비되진 않았지만 기회를 허락해주신 두분…… 저는 그분들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2. 박사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오신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방향 및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이번에 네이쳐에 논문을 내셔서 KOSEN 포커스의 주인공이 되셨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연구분야는 실험동물 유전학입니다. 실험에 쓰이는 동물의 유전 현상을 밝히는 학문 분야입니다. 그 분야 중에서도 저는 암 유전학과 관련을 맺었습니다. 박사학위 과정 때 암 억제 유전자의 탐색을 주제로 연구를 했고 학위를 받았습니다. 공부하는 중에 암 전이와 관련한 유전자를 탐색하는 미국의 젊은 과학자와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의 실험실로 포닥을 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유전학의 이슈는 양적 유전과 관계하는 유전자를 밝혀내는 일입니다. 하나의 형질(예를 들면, 키, 몸무게, 암 등등) 로 나타나지만 관련하는 유전자는 다수로서 관련 유전자를 골라내고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이는 또한 포스트 게놈프로젝트의 큰 연구과제 중 하나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원 암 연구소의 닥터 헌터 그룹은 양적 유전을 하는 암 전이와 관련한 유전자의 역할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Nature Genetics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상기에서 언급한 결과물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리 연구가 좋아도 포닥 연구원으로 계속 지낼 수 없어서 국내의 학교, 연구기관에 자리를 알아봤습니다. 학부만 마치고 10여 년 동안 외국 생활을 한 저를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고 그 상황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자리를 잡을까~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만, 정체성이 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고, 연로하신 부모님과도 같이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부담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특허청의 5급 기술직(사무관) 공채에 응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박사과정 당시 우연치 않게 지도교수님께서 당시 학교 특허지원사업의 위원이셔서 연구자와 관련된 특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고 연구자의 정당한 권리를 전문가의 입장에서 도와주는 일도 참 좋은 일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영향이었던지, 결국 절반은 새로운 분야이고, 다시는 벤치웍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의 자리에 와 있습니다. 그렇다고 연구자의 길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벤치웍을 못한다 해도, 벤치웍을 하는 분들께 조언을 해드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고 그 것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지금의 저의 직업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지만 모자라는 것은 채우고, 지금 없는 것은 나중에 고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곳에 임용되면서 다짐한 연구자의 정당한 권리취득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음에 보람을 갖고 있습니다.
3.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한국 상황에 문외한이었던 저는 주위의 소개로 KOSEN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과 정보 교환도 가능하고 가끔은 보고서 작성 등의 사업에도 참여를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분인가로부터 들은 이야기 입니다만, 많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배운 사람이 들어나지 않게 사회에 죄를 짓는 것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알면서도 그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침묵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죄를 짓고 싶지 않아서 KOSEN의 회원으로 있는 거라고 말을 해도 거반 맞습니다.
저는 KOSEN에서 궁금해 하는 회원들에게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은 나누고, 보고서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KOSEN에 대해 완전히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힘 닿는대로 함께하고자 합니다.
4.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한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방향을 제시해주세요.
미국 NIH에서 포닥을 하면서 느낀 점으로, 미국인도 NIH에서 Tenure(정년을 보장받은 연구원)를 받은 PI(Principal Investigator)가 많지 않은데, 한국인으로서 이를 받으신 분들이 몇몇 계십니다. NIH 한국인연구자 모임에서는 정기적으로 이분들이나 훌륭한 연구성과를 거두고 계신 분의 세미나를 개최하여 공부할 수 있는 모임이 있었고, 몇 번인가 참석하여 유용한 정보를 많이 들었습니다.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KOSEN에서도 이와 같은 계획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먼저는 국외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한국인 과학자가 어떤 분이 계시고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정도의 정리된 정보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5.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연구자들이 많이 모이는 게시판에 가면 한숨 섞인 글을 많이 봅니다. 한 2년 전 정도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연구원이 박사학위를 받고 직장을 잡을 수 없어서 외판원 생활을 하다가 자살을 했고, 부인도 그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을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오열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 그 가족.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의 아픔이 가시지 않습니다만,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분들께는 희망과 감사할 수 있는 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 볼 때 짧은 여정이었지만, 당돌했던 저의 시도를 적절히 받아주셔서 기회를 주신 분들이 계셨고, 실력은 없지만 일을 할 때는 앞만 보고 열심히 했고, 결과물을 좋게 잘 만들어주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작은 제가 했지만 훌륭한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있을 수 없었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유학생활 중에 닥친 IMF로 저와 가족은 많이 휘청거리기도 했습니다. 가족들 생계 걱정에 새벽 눈비를 맞으며 신문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뒤돌아보니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내일 나에게 좋은 것으로 많이 채워주시고, 그 기쁨을 더욱 즐기며 감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연구자 후배님, 지금 여러분께 어려움이 있습니까? 내일은 필히 감사드릴 것이 있으니 기대해 보세요.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당돌했던 저의 시도를 적절히 받아주셔서 기회를 주신 분들이 계셨고, 실력은 없지만 일을 할 때는 앞만 보고 열심히 했고, 결과물을 좋게 잘 만들어주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작은 제가 했지만 훌륭한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있을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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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란 혼자선 안되는 것 같습니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