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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 둘 - 한국과 과학

그에게 다짜고짜 짖궂은 질문을 던졌다. "KOSEN 홈페이지에 자료 분석보고서도 많이 올리셨고, 보고서 리뷰도 자주하셨더군요. 사례가 따르던데, 특별한 용처가 있으셨는지…." "뭐, 미국 생활이란 게 bill 때문에 '빌빌'거리며 살게 되는 것이라서…." 사례라야 page당 5만원임을 생각하면 좀 어이없는 문답일 듯. 하지만 이 얘기를 듣는다면 대답한 이의 성품에 대해 짐작 가는 바는 있을 터다. 이렇게 응수한 사람은 '8월의 KOSEN People'로 뽑힌 이정봉(38) 교수. 현재 미국 댈라스의 텍사스주립대 전기공학과의 교수로 있다. 그는 2000년 8월 KOSEN에 가입했다. 당시 루이지애나 주립대 교수로 있으면서 인터넷 신문을 통해 '한민족 과학기술자 네트워크'를 알게 됐고, 거창한 이름에 내용이 궁금해 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한 뒤 회원이 됐단다. 그리곤 2000∼2001년 한해동안 각종 자료 분석물을 올렸고, 그 뒤는 다른 이의 분석 보고서를 검토하는 자리로 '승진' 했다. "분석보고서를 직접 만들거나 검토를 하면 세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당연히 제가 일하는 분야와 관련분야의 지식이 늘게 되고, 보상도 받을 수 있는 데다가, 나름대로 애써 분석한 내용을 많은 다른 분들이 유익하게 쓸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농반 진반으로 "처음에는 두번째, 그러니까 '보상'에 이끌려 KOSEN 분석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상만을 염두에 두고 분석 보고서를 만들기 시작한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포기하게 될 겁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보고서 작업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지식을 늘린다는 것이 이 일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지요." 그는 만학도다. 86년 대학을 졸업한 뒤 5년 반 동안 직장(대우전자)에서 일하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학업이란 게 한동안 떠났다 다시 오기 쉽지는 않은 일. 이교수는 "직장생활에서의 어떤 경험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줬다"고 말한다. "입사 3년 뒤, 산학협동 프로그램으로 연세대에서 신호처리 강좌를 듣게 됐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고등학교 수준의 미적분을 못 하겠는 거예요. 뭐 강제적으로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 하는 데 꼭 필요한 강의도 아니어서 때려치울까 했는데, 괜히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수학책도 뒤적이고 했더니 2주쯤 지나니까 아무 문제 없이 강의 내용을 따라잡게 됐습니다. 그때 뒤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도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죠." 그러다 91년 유학의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미국의 대학에 지원해 입학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엉뚱하게 회사가 "기다리라"고 했다. 먼저 지원했다 못 간 사람들도 있고 해서 이것도 한두차례 '재수 혹은 삼수'를 하는 것이 관례란다. "에익, 그럼 내돈으로 해보겠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와 조지아텍으로 갔다. 그리곤 97년 박사를 받은 뒤 조지아텍과 루이지애나주립대를 거쳐 지난해 5월 텍사스 주립대로 왔다. 연구 분야는 Bio-MEMS. 지난해 초에는 미국 과학재단(NSF)에서 'Career Award'도 받았다. KOSEN 독자들이야 모두 알겠지만, 이는 테뉴어를 받지 못한 미국 교수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것으로, 미국 대학들도 "NSF의 Career Award를 받은 교수가 우리 과에 몇명"이라고 떠들고 다닐 정도다. 이렇게 권위 있는 상이어서, 수상 통보 편지를 받아들고 처음에는 좋아서 웃다가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단다. 미국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어 당분간 한국에 올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뭔가에 끌린 듯 조지아텍(조지아주) 에서 루이지애나, 다시 텍사스로 고향을 향해 서쪽으로 한발한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다음엔 캘리포니아 쪽으로 갈 생각인지를 물었더니, "캘리포니아도 마음에 두고 있지만 대학 교수 월급으로 살기 힘든 곳이어서, 한참 뒤에나 엄두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텍사스에 온 뒤로는 가끔 루이지애나 시절이 그리워진단다. "재미 한인과학기술자 협회 루이지애나 지부가 있어 한해 한두차례 모임을 가지곤 했습니다. 모여서는 축구도 하고, 민물 가재에 케이준 소스를 듬뿍 쳐서 삶아 먹기도 했는데, 이게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는 그만이예요. 요즘은 이 민물가재 요리를 실컷 먹지 못하는 게 무척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로 댈라스의 한국인 과학기술자 공동체에서는 한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경시대회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겐 두 아들과 올해 낳은 늦둥이 딸 하나가 있다. 우연인지 아들은 애틀랜타(아들난다-아들 낳는다)에서, 딸은 댈라스(딸나스-딸 낳았어)에서 낳았다. 그는 아이들이 과학자가 됐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첫 아들은 그래서 영어 이름을 Isaac으로 지었다. 아이작 뉴튼을 생각했단다. "보통 미국에 있는 한국인 부모들은 아이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죠. 경제적으로야 윤택하겠지만, 제 생각에 그들보다 과학자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큽니다. 제 아이들은 그렇게 폭이 넓은 인물이 됐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미국 생활을 하며 이따금씩 작고한 부친 생각에 가슴을 쓸어 내린다고 했다. "제가 유학간 뒤 미국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학생 때는 미국에 모실 만큼 여유가 없었죠. 졸업한 뒤 모시려 했더니 건강이 악화되셔서 자리에 누우셨다가 결국 미국에는 와보지 못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돕니다." 그는 "뜻밖에도 해외의 한국인 과학기술자 중에 KOSEN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며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OSEN의 정보는 매우 다양하고 깊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자들에게 대단히 편리하고 쓸모 있는 것 들이지요. 한두번 접속해 본다면 누구나 이 네트워크에 참가할 것이고, 또 자신들도 분석 보고서를 만들어 올리고픈 생각이 들 겁니다. 그렇게 더욱 많은 사람이 참가해 정보의 폭과 깊이가 더해가면 KOSEN은 한민족 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과학자들이 탐내는 과학기술 정보의 보고(寶庫)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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