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시간이 멈춘다_CiNQUE TE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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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이 일치하기까지 시간차가 생긴다.
절벽을 따라 한없이 이어지는 굽이굽이 길을 따라가면, 마침내 그곳에서도 인간이 살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 그들이 널어놓은 빨래가 새하얗게 바람에 나풀거리는 곳, 친퀘떼레를 발견한다.
“내가 친퀘떼레를 발견한 것일까, 친퀘떼레가 나를 발견한 것일까?”
이탈리아 중부 레반토의 해안에 인접해 있는 이 마을은 유네스코에서 마을 전체를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리오마쪼레(Riomaggiore), 마나롤라(Manarola), 코르니글리아(Corniglia), 베르나 짜(Vernazza), 몬테로소 알 마레(Monterosso al Mare), 다섯 개의 마을이 절벽을 따라 이어진 오솔길로 연결되어 있다.
때로 여행은 타임머신이 된다. 별다른 장치가 없어도 다만 눈을 감으면 어느새 그 곳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하는 곳, 아무렇게나 누워 바다의 자장가에 하늘 꿈을 꾸게 하던 친퀘떼레. 온 벽을 노란 페인트로 칠해 놓아도 그곳을 바라보는 내 눈 속에 그저 작은 노란 점이 되고 마는 친퀘떼레의 신비. 그곳을 다녀온 지 어느새 일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그곳을 꿈꾼다.
그곳에 가면,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섯 개의 마을을 이어놓은 오솔길을 걷다보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은 없다’는 잠언이 떠오른다. 처음부 터 이 길이 트래킹을 위한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삶의 노곤함을 짊어지 고 분주하게 오갔을 땅이 길이 되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이 흘렀을까.
수백만 년 동안 지구가 스스로 지축을 뒤집고 굴곡을 이루면서 만들어낸 자연 속 에 작은 점처럼 살아가는 인간이 길게 낸 이 발자국의 자취가 어쩌면 만리장성을 만들어 낸 사람들 보다 더 위대한 것은 아닐까. 첫 번째 마을로 들어서서 만난. 사람이 사는 집들은 가우디의 상상력과 예술성을 넘어서는 그 전체가 하나의 조각 이었다.
혼이 담긴 예술은 어디에 있는 걸까. 페인트가 종이처럼 떨어져 나간 오래된 벽들 이 해안선을 만들고 산맥을 그려놓은 작고 오래된 마을 리오마쪼레.
거기에 누우면 바다가 나를 안아주고 하늘이 나를 토닥이는 위태롭고도 나른한 평 온을 느낀다. 그리고 잠시 후 무엇을 볼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느낄 것인가가 내 여행의 수식어를 삼킨다.
이따금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보다 자연이 스스로 직조한 풍경 앞에서 고개를 떨 굴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 마을은 인간이 만든 것의 위대함을 그 소소 함 속에서 더 깊이 느끼게 한다. 내가 다시 점이 되고, 나보다 더 작은 점이 된 그곳 사람들의 일상이 눈을 넘어 가슴까지 들어올 때, 역시 인간도 자연의 작품이 구나 싶다. 그렇게 리오마쪼레는 지구 또한 가우디의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가 자 꾸 상상하게 만든다.
직장인이 되고 참 가기 힘든 여정에서 이런 곳을 만나게 되면, 평소에 없던 알레 르기가 생겨난다. 어디선가 이탈리아 얘기만 들어도 로마나 피렌체보다 이곳을 먼 저 떠올리게 된다면 순식간에 온 몸을 덮어버리는 두드러기처럼 안달이 돋아나고 만다.
막연히 동경하던 것이 자신의 상상을 넘어서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가. 본 것도 좀 있고, 들은 것도 좀 있는 삼십대가 되면 기실 별 것에도 웬만해선 놀라지 않게 된 다. 하지만 이따금 생의 감각이 흔들릴 때, 나는 동경하던 것을 넘어섰던 이곳의 꿈을 꾼다. 그 꿈이란 것이 자면서 꾸는 꿈이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그곳에 가리 라는, 하지만 그곳의 풍경이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나서 그 길을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이 무척이나 사실적으로 재현되는 그런 꿈. 어쩌면 그것은 약속인지도 모르겠 다.
햇살에도 보드라운 살결이 있어서 낯선 타지의 인간에게도 그 온기를 너그럽게 품 어주는 땅. 그저 잠시 이 세상으로 마실 나온 찰나의 생명을 온전히 귀하게 만들 어주는 세계이며 동시에 자기 발로 걸어가는 자만이 그것을 만끽할 수 있는 정토 이기도 하다.
나의 존재가 보잘 것 없어도 좋은 공간적 배경과 색깔있는 캐릭터, 인간 냄새 폴 폴 나는 사연만 가지고도 한 편의 고전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날고 싶은 꿈을 꾸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요즘은 ‘날고 싶다’는 꿈을 말하면 음주괴담이 되고 마는 삭막한 시절이기도 하 지만, 태초에 비상을 꿈꿨던 인간의 아이 이카루스가 있었고, 1903년 엉뚱하고 철 없어 보였던 형제는 최초의 인간 비행을 성공시켰다. 10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나는 나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너무 작은 날개를 갖고 있다. 하지만 비상을 꿈꾸고 비상을 위해 도약하려는 매 순간순간들이 결국 세상의 모든 무게를 늘리는 중력을 거슬러 나를 날아오르게 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런 꿈을... 지금 꾸고 있 기 때문에 내게 마나롤라의 햇살에 빛나는 저 한 장의 사진은 소중하다.
이것이 마나롤라에서 만든 나의 고전 영화다. 비록 초당 30프레임으로 꽉 찬 영상을 만들지 못했지만, 인간의 직관이 단 하나의 티핑포인트를 만나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내듯이 내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 한 장이 내게는 2시간 동안 충분히 즐거울 영화(詠畵)가 된다.
이제, 친퀘떼레에 가고 싶어진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당부를 남겨두려 한다.
리오마쪼레에 도착하면 기차역과 이어진 절벽길이 보인다. 그 길로 따라가면 첫 번째 마을 리오마쪼레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아름다운 광경에 시간 축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리오마쪼레에서 시간이 멈추면,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 던 계획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첫 번째 마을에서는 시간을 관리할 것!
두 번째 마을로 가는 길은 반드시 걸어가야 한다. 그 길은 연인의 길이라는 이름 이 붙을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갈 만큼의 폭으로, 기차 를 타고 가면서 보기 전에 반드시 모퉁이를 돌 때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경탄을 남발해 줄 필요가 있다.
이쯤에서 시간을 돌려 출발하기 전으로 가서, 관광지에나 어울릴 조리나 구두는 놔두고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도록 하자. 적어도 10km를 걸어보자는 각오쯤은 친퀘 떼레를 방문할 때 갖춰야 할 자세, 여기서 망설인다면 나처럼 백일몽에 시달릴지 도 모를 일이다. 다 걸어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던(나의 경우는 첫 번째 마을에 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세 번째 마을에서 해가 졌고, 어두워지면 더 이상 트래킹을 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남은 여행을 기차로 대신해야 했다. 또한 몬테로 소 알 마레에 숙소가 있다는 것을 몰라 당일 여행으로 방점을 찍어야 했다) 나는 아무래도 친퀘떼레 때문에 이탈리아를 세 번째 방문하게 될 듯하다.
트래킹을 두 시간 이상 하면 다음에 도착한 마을에서는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지갑 을 열어도 좋을 것이다. 전체 트래킹 코스는 적어도 다섯 시간이 소요된다. 세 번 째나 네 번째 마을쯤에서는 지친 다리도 쉬고, 눌러 앉아 사진도 찍어보자. 제대 로 된 사진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찍어야 한다. 진짜 멋진 풍경은 바로 사람이 사는 곳에 있다는 것을 명심할 것!
마지막 마을로 가는 시간에는 일몰을 볼 수 있으면 좋으리라. 전체적으로 서쪽에 바다를 끼고 있어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바다 위 로 해가 지는 장면은 적어도 1시간 동안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석양 사진을 찍어 볼 수 있고 또 그 동안 성공하지 못했던 실루엣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석양이 질 무렵 마지막 마을에서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태양을 바라보자. 마지막 마을 몬테 로소 알 마레에는 아담한 해변이 있다. 해변을 걸으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라 스페치아로 가는 기차를 타고 돌아가면 된다.
기차는 마치 긴 터널을 지나가듯 이따금 실제 터널 밖으로 나가더라도 해가 지고 난 뒤의 친퀘떼레는 걸었던 그 길이 모두 불 꺼진 터널처럼 깜깜하다. 빛이 있을 때 본 모든 장면을 암전 속에서 뇌리에 깊이 박아두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당부, 좋은 것을 먹을 때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 다면 그 사람을 챙겨가야 한다. 이 다섯 개의 마을을 함께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 래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니 이 기억을 함께 공유할 사람과 같이 있을 필요가 있 다. 혼자 떠난 여행이라면 여행길에 만나 함부로 사랑에 빠져 버려라.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친퀘떼레로 가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죽은 후에나 발견할 지 모를 생의 비밀스런 기억을 갖게 될 것이다.
Tip. 이탈리아 피렌체 중앙역에서 라 스페치아로 가는 열차를 탄다. 라 스페치아는 피 렌체에서 기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고, 라 스페치아에서 리오마쪼레까지 약 20분 정도 기차를 갈아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8시 전에 직행열차가 있다) 부 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 라 스페치아 역에서 친퀘떼레 1일 패스를 사면 마을마다 연결된 기차를 타고 계속 이동할 수 있다. 리오마쪼레에서 트래킹 패스 를 구입해야 하며, 걷는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패스와 트래킹 패스를 같이 구입하는 게 좋다. 트래킹을 하다가 지치면 기차를 타고서라도 꼭 마지막 마 을 몬테로소 알 마레까지 가보도록 한다. 단, 돌아오는 열차 시간을 꼭 확인하자. |
여유가 느껴지는 곳같아요~~ 잘 보구 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