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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볼펜뷔텔 - 여행과 일상속의 만남들

 2006년 여름. 독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즌에 GBF라는 생명공학 연구소(현재는 Helmholtz Centre for Infection Research로 개칭됨)의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약 3개월 동안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 남쪽 인근의 소도시 볼펜뷔텔(Wolfenbuttel)에 머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까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곳이었는데 실상 특별한 관광도시도 상업도시도 아닌 전형적인 북독일 공동체의 분위기를 간직한 작은 마을이었다. 낡은 중세풍의 고건물들과 주변을 감싸고 있는 넓은 밀밭이 왠지 모를 고즈넉함과 한적함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나중에야 인터넷 검색으로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중세 이후로 당대 최고의 도서관을 보유한 도시로 유명했다.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거주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볼펜뷔텔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거쳐야 하는 큰 관문이 있다.
생전 처음 15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 끝에 설레는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디딘 중부유럽의 허브 도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이었다. 세계적인 물류와 금융의 중심지답게 프랑크푸르트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암 마인 국제공항에서 시내의 중앙역까지 이동하는 도중 내 주변을 스쳐갔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금발 혹은 갈색머리의 백인들이라는 사실에 나는 적잖은 문화적인 쇼크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열차인 ICE를 타고 브라운슈바이크에 도착한 뒤 마중 나온 현지 연구원의 안내를 받아 볼펜뷔텔까지 버스 편으로 이동하는 중간에도 나는 처음 접하는 주변의 색다른 풍광들에 - 지금 생각해 보면 실상 그리 색다르거나 기이하다 할 만한 것이 없었음에도 - 얼떨떨해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이야 했지만 막상 처음으로 이국의 분위기를 몸으로 부딪쳐 느껴보니 문화적인 쇼크라는 표현이 그리 과하지 않았다.

 
 

볼펜뷔텔의 숙소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인 연구소를 오가는 일상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나도록 처음의 얼떨떨함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나와는 다른 피부색과 머리색을 가진 사람들이 왠지 생기 있는 '사람'의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문맥(Context)이 사라진 가상의 세계에 몸을 담그고 있다는 어색함 혹은 생경함이 원인이었을까. 어찌 보면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끊어진 것이 한 원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본토 유럽에서는 그래도 영어가 가장 쉽게 통용되는 독일이라지만 통일이후 미국과의 커넥션이 약해진 탓인지 최근 들어 일상에서 독일인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더듬거리는 영어로라도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연구소-숙소-마켓으로 이어지는 정해진 동선 이외엔 딱히 벗어날 공간을 찾지도 못했다. (물론 마을 자체가 너무 작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런데 1, 2주가 지나고 이런 생활루트에 익숙해질 즈음 처음 내가 느꼈던 생경함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번은 대형 마트 청과물 코너에서 오이를 골라 무게를 재고 가격 택을 뽑으려고 하는데 버튼들이 독일어로 쓰여 있어서 뜻을 몰라 순간 헤매고 있었다. 다른 야채들은 버튼에 붙여진 그림만으로도 쉽게 구별이 되는데 하필 독일 오이들은 애호박이랑 너무 닮아 있었던 것이다. 오이와 애호박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 모습이 귀여워(?) 보였는지 옆으로 지나가던 젊은 독일인 주부가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을 순간 풀고 심지어 얼굴에 살짝 웃음을 머금고는 - 독일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매우 무뚝뚝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 나를 대신해서 오이에 해당하는 버튼을 눌러 주는 게 아닌가. 순간 언어가 포함되지 않은 타인과의 익살스런 교류가 오고 간 것을 느꼈다. 이러한 자잘한 일상들이 쌓여가면서 약간은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주변 환경이 익숙해지자 드디어 독일 사람들이 점점 나와 같은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방학을 맞아 유럽 배낭여행을 나온 학교 후배 한 명을 독일 현지에서 만났다. 모처럼 독일의 유명한 관광도시인 퓌센(Fussen), 오버스트도르프(Oberstdorf) 등을 거쳐 스위스의 융푸라우까지 함께 다니며 순례기행의 멋에 한껏 취할 수 있었다. 한적한 북독일의 작은 마을에 한 달 가까이 묻혀 있었던 나는 광대하면서도 포근한 독일 남부와 스위스의 자연 풍광이 마냥 새롭고 신선하기만 했다.
 
  
그런데 정작 나를 만날 때 즈음 이미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의 중후반을 맞이했던 후배는 일정이 길어질수록 꽤나 지쳐가는 인상이었다. 빠듯한 일정 탓에 몸도 피곤했을 것이고 멋진 자연풍광과 문화유산, 유적지만을 중심으로 눈으로 훑어가는 여행을 해온 후배인지라 점차 시각적인 자극(?)에 무뎌진 것 같기도 했다.

동행의 막바지에 오고가는 기차 안에서 잠깐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눠 보았다. 나에게 있어서는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여행이라면 뭔가 부족한 듯 싶었다. 나름의 결론을 내리자면 좀 더 가치 있는 여행이란 나와는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생활의 문맥 - 여기도 똑같이 사람 사는 동네구나라는 자각 - 을 터득하는 것이 아닐까. 남을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폭을 넓히고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다양함을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행 이외의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는 광막한 자연풍광이나 유명한 문화유적보다도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 즉 저들도 나와 동일한 한 사람일 뿐이라는 깨달음 자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알 수 없는 삶의 자신감들이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열매라는 결론을 내려 보았다.

 

후배와 헤어진 뒤 반복되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눈에 들어오는 주변 풍경이나 사람들의 모습, 표정들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진 즈음 어느 날 오후,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길에 조금은 낡아 뵈는 코트를 입고 서류 봉투를 팔에 낀 40대 중반정도 되었을 독일 남자 한 명을 무심코 쳐다보았다. 사실 한 시간에 서너 차례만 정해진 시간대로 버스가 운행되기 때문에 이전에도 수차례 버스 안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날따라 버스에서 내려 약간은 지친 모습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그리 먼 옛날이 아니었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박하게 생긴 얼굴생김과 매번 거의 정해진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차림으로 일을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그 중년남자의 모습 속에서 일상의 무게에 눌린 한 가장의 처연함이 배여 나왔다. 나에게도 그러하듯이 그들에게도 동일한 삶의 구원이 필요하리라는 깨달음이었다. 비록 언어로는 통하지 않았지만 본질은 나와 다르지 않을 한 사람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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