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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항공엔지니어의 스토리와 해외취업 팁
정희석 (martin4jung)안녕하세요. 저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봄바디어 항공(Bombardier Aviation)이라는 회사에서 항공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정희석입니다. 지금 몬트리올은 오월 초순이고, 또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추운 도시 중에 하나라, 길고 긴 겨울을 보내고, 따사로운 햇살과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에 겨우내 얼었던 마음이 녹으며 다가올 여름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오르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Bombardier Cseries (현재 Airbus A220로 변경) 항공기 Tour Day 우선 저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를 하자면, 한국에서 대우정밀(자동변속기 제조사, 현 한국GM 보령공장) 와 한국항공(Korea Aerospace Industries, LTD - KAI)에 근무하였고, 2004년 캐나다로 건너와서 수도 오타와에 있는 Carleton 대학교 항공기계과에서 대학원을 마친 후에, Diamond Aircraft라는 회사에서 3년, 그리고 지금 Bombardier Aviation이라는 회사에서 10년째 항공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 5년은 구조시험 엔지니어로 일했었고, 이후 지금까지 M&P (Material and Process)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웹진이란 공간을 통해서 회원여러분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어 기쁘며, 이런 기회를 주신 관련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실, 몬트리올이란 도시를 잘 아시는 분도 적을 것 같고, 항공산업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기도 쉽지 않은게 사실이라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소한 관심거리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또한, 중간에 해외 취업에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한 취업 팁, 그리고 마지막으로 몬트리올이란 도시에 대한 간략하게 소개해 두었습니다. 그럼 일단, 제가 일하는 봄바디어 (Bombardier Aviation - 이하 Bombardier)란 회사를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봄바디어를 처음 만든 Joseph-Armand Bombardier 라는 분에게는 아들이 두 명이 있었는데, 몸이 자주 아팠다고 합니다. 근데, 사는 지역이 몬트리올 근교였고 매번 눈이 엄청 많이 내려서 가까운 병원을 방문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래서인지 눈 위를 달리는 차를 만들고 싶어 했고, 그 결과 처음 snowmobile을 만들게 되었고, 그 사업이 확장되어 오늘날의 Bombardier 라는 글로벌 회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최초 Mr.Bombardier 가 설계한 snowmobile 중 하나 (출처: https://ingeniumcanada.org/channel/innovation/j-armand-bombardier) Bombardier가 향후 개발한 경량의 레저용 Ski-Doo 타입의 snowmobile (출처: https://ingeniumcanada.org/channel/innovation/j-armand-bombardier) 몬트리올에서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Valcourt에 있는 Bombardier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초기 snowmobile 차량 Bombardier는 몇 년 전만 해도 전 세계에 7만 명 이상이 일하던 회사로 철도 및 항공 두 분야의 사업 분야가 있었습니다. 항공기 회사하면 보잉이나 에어버스 같은 상업용(commercial) 비행기 제작 업체가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봄바디어나 엠브라에르 같은 중형 항공기, 걸프스트림이나 세스나 같은 소형항공기를 제작하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봄바디어는 Global, Challenge, Learjet 같은 비지니스(business) 항공기뿐만 아니라, CRJ 같은 중형항공기를 개발하여 북미의 여러 도시를 연결하는 Regional Aircraft의 제작사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C series (이후 Airbus A220로 전환)라는 최신 항공기를 제작했었습니다. 100석에서 160석까지 좌석 배열이 가능한 상업용 항공기로 중거리 노선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최근 몇 년간의 항공산업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상업용 항공기 사업을 에어버스와 미쯔비시 항공, 철도 사업을 알스톰(Alstom) 등으로 매각하며, 비지니스 항공기를 중심으로 사업 분야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봄바디어에 들어와서 회사에 대한 교육을 받을 때, 어느 분이 지금도 봄바디어 이름을 단 비행기가 3초에 한 번꼴로 지구상의 어디에서 뜨거나 내리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한국의 대한항공에서도 A220을 10대 운용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가면 꼭 한번 타 보고 싶네요. 봄바디어의 최신 비지니스 제트기 Global7500 (출처: https://businessaircraft.bombardier.com/en/aircraft/global-7500) 봄바디어로 옮기기 전에는 캐나다 런던, 온타리오 (London, ON)에 있는 Diamond Aircraft라는 회사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거의 1년간의 구직생활을 끝낼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회사입니다. 당시에는 개인이 제트비행기를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는데, 이 비슷한 시기에 여러 항공회사에서 개인이 운용이 가능한 제트비행기 사업을 시작하였고, 제가 있었던 Diamond Aircraft 회사는 원래 복합소재(Composite)을 이용해서 2인승, 4인승, 5인승 레저용 및 교육용 소형 프로펠러 항공기를 주로 만드는 회사였는데, Personal jet 이라는 개념의 D-Jet이란 항공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로젝트가 잘 진행이 되었는데, 경제적 문제와 운항검증에서 여러 가지 난관이 생기더니, 결국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직원이 레이오프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다른 데 팔려고 했는데, 적합한 구매자가 없어서 결국 폐기되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항공 사업이 워낙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데 처음에 너무 안이하게 기획을 했었던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Diamond DA-40 레져용 항공기 2010년 3월 회사 직원들이 직접 항공기를 타 볼수 있는 기회를 회사측에서 제공하여 약 30분간 회사가 있던 London, ON 상공을 둘러 봤었습니다. 항공기 전체가 복합소재로 되어 있어서 가벼워서, 비행기를 격납고에서 꺼내는데 직원 두분이 손으로 밀어서 꺼내는 모습을 보고 옆의 아내가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D-Jet 시제기 SN003 (출처:https://www.diamondaircraft.com/en/about-diamond/newsroom/news/article/diamond-aircraft-announces-first-flight-of-d-jet-with-new-williams-engine/) 현대 캐나다에서 코로나(COVID-19) 바이러스 확진 자의 증가로 여러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와중에 유튜브나 다른 매체를 통해 들은 한국 뉴스 중에 차세대 전투기 KF-X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2000년대에 한국항공에 입사했을때 붙어 이야기가 돌던 KF-X (지금은 KF-21 보라매로 명칭이 확정되었더군요.)가 드디어 곧 한국에서 최종조립 단계에 있다고 유튜브를 통해 들었습니다. 2021년 4월 9일에 열린 KF-21 보라매 Roll-out 행사 (출처:https://www.koreaaero.com/KO/MediaCenter/PhotoGalleryView.aspx?PhotoPid=88) 제가 한국항공에서 일할 때는 고등 훈련기 (T-50)의 개발이 한창일 때였고, 저는 전기체 내구성 시험을 위해 대전의 국방과학연구소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 ADD)에 5년간 파견근무를 했었습니다. T-50 구조시험팀 - 한국항공재직 당시 사진, 2002년 T-50이나 KF-X나 여타 다른 항공기 개발에서는 6대의 시제기를 제작하는데, 대부분 구조물만 있는 정적 시제기(Static structural test) 와 동적 시제기 (Dynamic structural test - fatigue and damage tolerance test) 2대와 실제 하늘을 나는 비행 시제기 4대를 만들어서 항공기가 주어진 설계조건을 만족하는지 실제 성능을 검증하게 됩니다. Bombardier Series CAST - Completed Aircraft Static Test - Test Rig and 정적시제기 (출처:https://bombardier.com/en/media/news/assembly-test-airframe-bombardier-cseries-aircraft-well-underway) 제가 T-50에 관한 일을 하고 있을 당시 한국공군의 자주국방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국공군은 스스로 독립적인 영공 방어를 위하여 자체 항공기 개발에 대한 장기계획을 오래전부터 기획했었고, 이를 위해 KT-1 이라는 프로펠라 초등훈련기, T-50 초고속 고등훈련기, 그리고, 실제 전투가 가능한 차세대 전투기 KF-X를 만들 계획을 수립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상 조금 많이 늦어진 감이 있지만, 이렇게 스스로 전투기를 개발함으로써, 독립적인 설계 기술을 보유와 전투기 운영기술까지 축적이 더해져서 기술적으로 완성된다면, 부당하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기존의 외국 전투기 제조사에 대하여 더욱 능동적인 대처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기술 습득으로 인하여, 향후 산업체로 기술을 전파함으로써 생산해 내는 부가가치는 아마 쉽게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대한민국에 수익을 기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단순히 외국에서 사오면 되는 것을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개발해야 하냐고 궁금하실 수도 있겠지만, 만일 특정 외국기업에 기술적 종속이 되면, 특히 항공계열 같은 분야는 향후 서비스/업그레이드나 항공기 수명연장에서 또다시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항공 관련 시설이나 제조업체를 유치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 이런 혜택을 주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항공인력의 경우, 평균적으로 일반적인 기업에 비해 급여수준이 높습니다. 따라서 여러 혜택을 주고 유치를 하더라도, 일단 유치만 되면, 급여수준에 비례해서 많은 세금을 내게 되고, 이에 따라 지자체의 금융경제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많이 도시들이 항공산업을 유치하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이미 몬트리올에서 항공산업이 유난히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캐나다 최대의 항공기 제작업체인 봄바디어의 헤드쿼터(HQ)가 몬트리올인데다, 에어캐나다 (Air Canada - 캐나다 국적 항공사)의 HQ 또한 몬트리올입니다. 게다가, 각국의 항공에 대한 공통된 정책을 수립하고 공표하는 세계 항공분야의 유엔이라 불리는 ICAO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도 몬트리올의 도심에 있습니다. 그래서, 몬트리올의 한국 영사관은 본래의 영사업무와 더불어 ICAO에 대한 한국 대표부의 역활을 겸하고 있습니다. ICAO building in Montreal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Civil_Aviation_Organization) 항공 산업은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많은 부품을 세계 각지에서 가져와야 하므로, 특히 물류의 역활도 아주 중요한데, 몬트리올의 경우 St.Lawrence River를 통해 바다로 바로 연결이 가능합니다. 바다로 바로 접근이 가능한 몬트리올의 위치 - screen capture by Map app of Macbook 당연하겠지만, 항공산업 특성상 해당 지역에서 우수한 인력의 수급이 필요한데, 몬트리올의 경우 맥길대, 콩코디아, 몬트리올대 및 Polytechnique Montreal 등등 많은 post-secondary school이 있어, 전문인력의 수급이 원활하며, 또한 필요에 따라 장비를 공유한다든가,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함으로써 산업체와 대학이 서로 협력 나아가고 있습니다. 맥길대학교 몬트리올 다운타운 캠퍼스 전경 (출처:https://www.mcgill.ca/sustainability/topics/sustainability-network) 또한, 산업계와 학계를 연결하여 수많은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CRIAG (The Consortium for Research and Innovation in Aerospace in Quebec - https://www.criaq.aero/en/)이나 Aero-Montreal 같은 전문적인 프로젝트 운영을 위한 기관들이 몬트리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연하게 군용기와 민간기의 개발과정을 다 경험하게 되었는데, 개발과정이 거의 끝나갈 때쯤에 초도비행 (Maiden flight)를 하게 됩니다. 일단, 처음에 T-50의 초도비행을 지켜볼 때는 랜딩기어를 접지 않은 상태에서 약 30분 정도 비행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혹시나 랜딩기어를 접었는데, 다시 펴지지 않을까 하는 위험 때문에 초도비행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민항기를 개발하게 되었는데, 마찬가지로 초도 비행을 하는데, 흥미로웠던 게 거의 2시간 넘게 비행을 하더군요. 아마 경제성을 따져서, 한 번에 비행을 할때, 필요한 많은 시험을 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T-50 초도비행 사진, 2002년 8월 20일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부분은, 민항기의 경우 처음에 운항인증을 하기 위한 제작한 시제기를 향후에 보안 수정을 해서, 일반 항공사에 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상당히 놀랐습니다. 군용기의 경우는 보안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시제기의 경우, 실제로 양산후에 잘 쓰지 않는 데 반하여, 민항기의 경우는 제작사가 발주처가 군용기와 달리 동일한 회사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Bombardier Cseries First Flight - 2013년 9월 16일 출처:https://bombardier.com/en/media/news/bombardiers-cseries-aircraft-completes-historic-first-flight 저의 경우는 현 회사에 입사해서 계속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10년 전보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최근에 로봇을 많이 도입해서 활용하는데, 전에 일하던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항공기를 문(Door)의 내구성 시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준비를 하다가 다른 부서로 가는 바람에 중간의 진행사항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 전에 비슷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주로 인도 엔지니어를 계약직으로 고용해서 일을 했었는데, 이렇게 장기간 똑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하니, 작업자의 피로도도 너무 심하고, 일부는 어깨통증을 호소하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장시간 같은 동작을 반복 하다 보니, 주어진 횟수가 있는데, 이 횟수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로봇 팔을 이용해서 시험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저는 이렇게 세밀한 조절을 해야 하는 일을 로봇에 맡긴다는 게 어려울 것 같았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가 처음에 한번 하중제한을 두지 않아서 일부 부품이 손상을 입은 것을 제외하고는 너무 잘 작동해서, 아주 성공적으로 시험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 나중에도 이렇게 단순 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은 거의 다 로봇으로 대체되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몬트리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몬트리올 과기협의 아시는 분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을 계기로 여러 가지 과기협의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 전체의 과학기술계에 있는 분들의 모임인 캐나다 과기협은 캐나다 주요 도시들을 지부형식으로 구성하고 있고, 또한 학생 지부 및 젊은 엔지니어들의 모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초중고등부 수학경시 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멘토링 컨퍼런스 및 회원 간 네크워크 행사를 주최하고 있습니다. 과기협 몬트리올-오타와 심포지엄에서 프리젠테이션 하는 중 - 2013년 Carleton University, Ottawa 2013년 몬트리올 코윈에서 개최한 멘토링 이벤트에 멘토로 참가 저는 오랫동안 몬트리올지부에서 주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운영진으로 활동해 왔으며, 지난 몇 년간 몬트리올에 있는 많은 한인 커뮤니티들과 한국 영사관의 도움으로 매년 몬트리올의 멘토링 행사를 준비하는 운영진의 한 명으로 행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지금은 잠시 활동이 단절된 상태이기는 하나, 당시 많은 학생이 일 년에 한 번씩 주최한 멘토링 컨퍼런스에서 도움을 받았고, 많은 멘토들 역시 자신의 전문분야를 학생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귀중한 만남이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2014년 11월 1일 몬트리올 맥길대학교에서 열린 1st Mentor Club Conference 2017년에는 몬트리올에서 주최한 CKC (Canada Korea Conference)의 준비위원의 일원으로 캐나다 각 지부와 한국에서 오신 약 200여 명의 귀빈들을 맞이하고 각종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2017년 8월 6일에서 8일간 몬트리올 매리엇 호텔에서 열린 CKC2017 준비위원들과 자원봉사자들 또한, 매년 몬트리올 지부의 여러 가지 행사의 홍보기사를 쓰기도 하고, 2019년 몬트리올에서 열렸던 수학경시대회 때는 기다리시는 분들과 가족을 위해 작은 과학교실을 혼자서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흥미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Chemical reaction 실험 - 2019년 5월 과기협 몬트리올 지부 수학경시 대회 학부모님들에게 집에서 과일을 이용해서 전구를 밝히는 실험에 대한 설명 중 - 2019년 5월 과기협 몬트리올 지부 수학경시 대회 저의 경우 남달리 취업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석사 학위를 마치고 아마 6개월 정도면 다들 취업을 한다고 하길래, 저도 그렇게 될 줄 믿었죠. 2007년 캐나다에서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한국에서 실무 경험도 10년 정도 있고 해서 조금 막막하긴 했지만, 그래도 거의 1년이나 걸릴 줄은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실은 6개월 정도에 한번 계약직으로 캐나다 정부 소속기관에 4주간 일을 했었는데, 그때 당시 황당한 상황이 영주권자는 보안문제로 캐나다의 특수한 부분(군 관련)에 근무할 수 없다는 정책이 적용되기 시작할 때라 당시 영주권자인 저는 황당하게 4주 만에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전에 구직생활을 했던 토론토의 살던 주소, 전화번호 등등을 모두 새로 오타와로 옮기는 바람에, 6개월간 노력했던 취업준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면하고는 정말 모든 짐을 싸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노력해 보자고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6개월을 취업준비를 한 끝에 결국 첫 직장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잘 몰랐으나, 돌이켜보면, 당시가 미국 서브프라임 문제로 거의 경제가 붕괴되는 2007년 시절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취업이 된 것 자체가 엄청나게 큰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3년 온라인으로 출간한 온라인 서적, 기념으로 40권만 소량인쇄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합니다. 현재 리디북스, 애플북스, 구글북스에서도 찾을 수 있으실 수 있습니다. 제가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의 노력과 경험을 묶어서 종이로 된 책을 2012년에 만들려고 했었는데, 한국에서 관심을 가지는 출판사가 없어서, 결국 혼자서 전자책으로 발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럼 해외취업을 위해서 무엇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까요? 많은 분이 언어가 가장 큰 장벽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서로 대화로 일을 해야 하하므로, 기본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방송이나 신문, 변호사 등과 같이 정말로 언어를 최대로 사용하는 분야가 있는 반면에, 엔지니어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언어에 대한 부담이 적습니다. 또한, 전문용어는 이미 학교에서 대부분 다 배운 단어가 많아서, 그렇게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영어 대화 능력이라는 게 획일적으로 나누기는 어렵지만, 토플로 대학을 입학할 때 큰 문제가 없는 정도의 점수를 노력해서 받을 수 있다면, 실상 대화에서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리포트나 논문을 써야 한다면, Academic Writing 같은 수업을 들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북미의 일반적인 취업 프로세스 출처:내가 만든 비행기 세상의 하늘을 날다, Martin Jung 북미의 취업절차는 생각보다 훨씬 획일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력서(레쥬메)와 커버레터(cover letter)를 보내고, 이를 통과하면, 보통 전화 인터뷰를 많이 봅니다. 이후 전화 인터뷰를 통과하면 대부분 온사이트(onsite) 인터뷰를 한번 혹은 그 이상 보게 됩니다. 인터넷에도 많은 정보가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잘 정리가 된 책을 몇 권 사서 필요할 때마다 참고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 중에 보통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세 가지 정도 정리하였으니, 혹시나 해외취업을 윈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캐나다에서 취업준비를 하면서 처음에 가장 많이 어려웠던 부분은 어떻게 객관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다고 증명해 보이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같이 일했던 몇 분에게 받은 추천서(Reference)도 가지고 있었고, 재직증명서도 영문으로 다 준비를 했었지만, 캐나다에서 대부분의 인터뷰어들은 별로 그런 서류들에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한 인터뷰어에게 ‘한국에서 똑같은 일을 했고, 지금도 그러한 일들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인터뷰어가 하는 말이 ‘네가 한국에서는 일을 잘했을지 몰라도, 캐나다에서 공부 말고 직접 다른 동료직원들과 일한 경험이 있느냐?’ 란 질문에 할 말이 없더군요. 한국에서 우스갯 소리로 ‘경력직 같은 신입’이란 들었었는데, 캐나다나 미국의 경우는 더욱더 실제 일한 경력을 우선시합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면 무조건 인턴이나 코업(Co-op)을 하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곤 합니다. 인턴이나 코업을 할 수 없는 경우, 각종 협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빈 경력을 채울 수 있는 유용한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자원봉사나 개인적 관심사와 맞는 모임도 좋지만, 자신이 일하는 분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협회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기계 쪽 같은 경우는 ASTM (American Society for Testing and Materials) 같은 협회의 학생회원으로 등록하면, 여러 가지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도 있으며,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됩니다. Professional Engineers Ontario (PEO)의 professional engineer license sample 캐나다의 경우 profession engineer 란 타이틀은 아무나 쓸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꼭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이름 뒤에다가 이 타이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 같은 경우는 온타리오 주에 있는 Professional Engineers Ontario (PEO)라는 기관에 신청하고, engineer law and ethic 시험과 1년의 Canada work experience를 거쳐서 Professional engineer라는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매년 연회비를 내면, 자격이 유지가 됩니다. 이후에 Heesuck Jung, P.Eng. 라고 이름 뒤에 Professional Engineer (P.Eng) 라는 타이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이를 위반하고 자격증이 없이 P.Eng.를 쓸 경우 PEO로 부터 고소를 당하여 엄청나게 많은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직종에 따라 반드시 이러한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다만, 이 자격증이 있으므로, 객관적으로 해당 분야의 엔지니어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학부를 졸업하지 않은 경우는 유용한 검증수단이 됩니다. 캐나다는 각 주로 나누어져 있고, 이렇게 professional licence는 각 주별로 다르기 때문에 100% 서로 호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한쪽 주에서 professional licence가 있는 경우, 다른 주에서 이 license를 쓰려고 하면, 보통 전환신청(transfer)를 하면 되는데 퀘백주만 예외라고 합니다. Job description의 Security Clearance 예제 한국어로 정확히 어떻게 번역을 해야 하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Security clearance 라는 것이 원하는 곳에 취업하는데 가끔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늘 확인을 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일할 때는 거의 문제가 없지만, 특히 외국에서 특정 분야에 일하거나, 반대로 한국에서도 방위산업 같은 특수직종의 경우, 함부로 외국인이 일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전에 한국항공에 있을 때도 이런 문제 때문에 같이 일했던 분들 중에 미국국적을 가지신 분들이 보안 문제로 T-50에 대한 프로젝트에서 즉시 제외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외국의 국가기관이나 방위산업, 항공산업 등등 특수한 직종에서는 보안등급에 따라 취업에 제한될 수도 있다는 것을 꼭 알아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미국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 같은 항공업체의 일자리 중에는 심지어 미국시민이라 하더라도 백그라운드 체크를 해서 잠재적 문제가 생기면 아예 지원 자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Security Clearance에 대한 정보는 포스팅 되어 있는 Job description에 대부분 나와 있으나, 생각보다 구체적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취업이 된 후에도 이 security clearance가 통과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높은 보안이 필요한 경우(원자력 연구소 같은 경우) Security clearance 절차가 모두 끝나는데 1년도 넘게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이 원하는 지원분야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자신이 정확히 어떤 분야를 원하는지 알기가 쉽지는 않지만, 혹시나 처음에 잘못 선택했을 경우, 이삼 년 고생한 후에 다시 다른 분야로 전환하려면 쉽지가 않고, 이미 한쪽으로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다시 다른 분야에 신입으로 입사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본인이 생각하기에 도저히 이쪽 분야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오히려 빨리 전환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지원분야를 나누는 기준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산업체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고, 학교에 계속 남아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교수로 학교에 있는 경우도 있고, 또는 산업체 혹은 기업체 연구소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기업체의 연구소에서 일하려는 경우, 캐나다가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같은 회사라 하더라도 캐나다에는 연구소가 없고 생산시설만 있고, 미국에서 대부분의 연구개발활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회사가 캐나다에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연구원으로 일하고 싶은 경우, 캐나다 회사에 연구소가 있는지, 본인이 원하는 연구개발 활동을 해당 연구소에서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간략하게 몬트리올에 대해서 소개를 하자면, 어쩌면 많이들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북미의 유럽”이라고 불릴 만큼 도심 관광지 곳곳에 유럽풍의 문화유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한국분들이 많이 아시는 광역 토론토가 캐나다에서 규모로 보면 제일 큰 도시이고, 광역 몬트리올이 2위, 광역 밴쿠버가 3위입니다. 저도 처음엔 몰랐는데, 알고 보니 몬트리올은 하나의 큰 섬입니다. 사람들이 뉴욕이 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듯이, 몬트리올이 섬인지 모르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뉴욕시의 맨해튼을 중심으로 하는 섬의 면적이 59 km2, 제주도의 면적이 1826 km2 그리고 몬트리올 섬의 경우는 473 km2 입니다. 물론, 주변에 Laval이나 Brossard 같은 위성도시까지 포함한 광역 몬트리올의 면적은 훨씬 큽니다. 캐나다의 대부분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겨울이 엄청 춥고 무척 길지만, 또 여름에는 무척이나 덥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보니, 서핑하시는 분들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핑은 바다 (Ocean)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강가에서 유속이 빠른 부분을 이용해서 서핑을 하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실제 바다를 보려면 몬트리올에서 10시간 이상을 운전해 가야 하지만, 주변에 워낙 호수들이 많아서, 강가를 주변으로 비치나 물놀이를 위한 시설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몬트리올이 추워서 그런지, 주변에 스키장이 참 많습니다. 여러 스키장이 있고, 그중에 Mont Tremblant 이라고 북미에서 손에 꼽히는 스키장이 있습니다. 아주 높은 산의 4면을 다 스키장으로 만들어서 슬로프만 99개에 달하는 스키장으로 미국에서도 많이들 놀러 옵니다. 몬트리올에서 약 1시간반 거리에 있는 몽트랑블랑(Mont tremblant) 스키장, 2006년 그리고 캐나다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가을의 단풍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단체 관광객이 올 정도로 유명한 게 몬트리올 주변의 단풍여행입니다. 도시를 벗어나면 빼곡하게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는 단풍을 보고 있으면, 이래서 캐나다의 단풍이 유명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참 고운 장면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몬트리올 근교 Saint-Jean-sur-Richelieu에서 매년 열리는 International Ballon Festival, 2018년 몬트리올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국회의사당 앞, 2019년 몬트리올 하면 이제 기억하시는 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양정모 선수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레슬링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예전에는 많았습니다. 지금은 어쩌면 젊은 분들에게는 유비소프트(Ubisoft)라는 게임회사의 본사가 있는 곳 혹은 한국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였던 퀘백시티 근처의 큰 도시라고 기억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몇 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한국분 및 아시아분들이 퀘백시티를 방문하셔서 드라마의 배경이었던 페어뷰 호텔과 드라마에 나왔던 장소들을 찾으셔서 퀘백시티의 관광청과 호텔 담당자도 엄청나게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명한 몬트리올의 째즈 페스티벌 거리 곳곳에 무료 째즈 콘서트도 열리고, 다양한 행사도 같이 열립니다. 처음에 몬트리올에 왔을때는 당시 한창 유명한 젋은 째즈싱어의 유료 콘서트도 보곤 했는데, 지금은 아이들과 같이 즐길 수 있는 행사만 찾게 됩니다. F1 그랑프리라는 자동차 경주대회나 재즈 페스티벌을 좋아하신다던가 혹은 맥길대학교 (McGill University)에 관심이 있다던가 하지 않은 경우는 몬트리올이란 도시에 대한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많이 적은 편입니다. 또한, 캐나다의 대부분이 영어와 불어를 다 같이 사용할 수 있지만, 주로 영어를 주로 쓰는 편인 반면에, 퀘백주의 경우, 불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몬트리올에 거주하시는 한인분들 또한 토론토에 비하면 인구대비 월등히 적습니다. 몬트리올 근교, 몽트랑 블랑 National Park, 2019년 위에 사진은 몇 년 전에 저희 가족이 캠핑을 하러 간 장소입니다. 경치가 참 좋았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여기가 캐나다인지 한국인지 이렇다 하게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17년 가까이 캐나다에 살았는데, 사람 사는 데는 다 서로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해 주고, 좋을 일이 있을 때 함께 축하해 주는 게 한국에 살던 때랑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든 캐나다에서든, 주변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었고, 저 또한 제가 필요한 분들이 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제가 아는 것들이 혹시나 어느 한 분에게는 꼭 필요한 내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취업에 관한 이야기랑 개인적인 관심사를 묶느라, 내용이 잘 정리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만, 혹시나 단 한 분에게도 유용한 이익이 되었으면 다행일 것 같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RELAY BOOK
과학의 민중사
클리퍼드 코너 저
안녕하세요. 프랑스 SAFRAN그룹에서 광학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유상혁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부서는 Optical Surface Metrology 부서로, 각종 광학 측정 장비들을 이용해 광학계 표면의 품질을 측정하는 일을 합니다. 저는 현재 Extremely Large Telescope (ELT), Giant Magellan Telescope (GMT)와 같은 지상용 광학계, 민간/군수용 항공기 및 인공위성과 같은 항공/우주용 광학계의 품질 측정 계획을 세우고 측정 장비들을 설계 및 관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자리를 잡은 지,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학위 과정 중에는 코센데이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는데, 학위를 마치고 이제는 정착해서 연구원 신분으로 코센릴레이 독후감을 쓰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매번 유익한 기회를 주시느라 고생하시는 코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더불어 좋은 기회를 추천해주신 옆나라 벨기에의 조진연 박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추천해 드릴 책은 클리퍼드 코너 (Clifford D. Conner) 저 / 김명진, 안성우, 최형섭 공역의 과학의 민중사 (A People’s History of Science) 입니다. 약 550장으로 책이 좀 두껍습니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바와 같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끈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고 마치 일반적인 과학자의 삶을 사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오래 전 구입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3년 차인 병아리 직장인인 저는, 회사일이 손에 덜 익어서, 보고서 읽고 쓰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흥미로워보여서 샀던 이 책을 책장 한 구석에서 고양이 털만 쌓여가게 할뿐 빛은 보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센 릴레이북 제의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지는 않을까 생각했고, 그렇게 저는 일주일간 정독을 하고 이렇게 소감을 쓰게 되었습니다. “민중”의 “과학”사, 이 책에서 말하는 “민중”은 사회 엘리트 계층과는 구분되며주로 손노동을 하고 익명성을 갖는 집단으로 정의됩니다. 그리고 “과학”은 자연에 관한 지식과 이와 연관된 지식 생산 활동으로 정의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학교에서 과학은 소수의 이름있는 엘리트들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과학사의 배경에는 이름조차 남길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무시할 수 없는 기여를 했던 수많은 민중들이 있었음을 방대한 참고문헌을 덧붙여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선사 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시대 순으로, 세계사와 과학사를 한데 버무리며 여러가지 예시를 들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과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초기 인류사에서 수렵인 남성(man the hunter)과 함께 채집인 여성(women the gatherer)의 역할을 하여 농업의 발명자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시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내용입니다. 우리는 태평양을 항해한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가로 마젤란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의 항해술에 천문학, 지리학, 항성 나침반 등의 지식으로 큰 도움을 준 태평양 원주민들의 존재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현대 농업에서 인간 식품으로 길들여진 각종 작물들은 고대인 즉,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손에서 탄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로마자 셈법의 복잡함을 탈피할 위치값 체계와 함께 비어 있는 줄을 채울 0이라는 기호의 도입이 인도에 살던 이름 모를 계산을 담당하던 평범한 서기의 활동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배우지 않았고, 또한 이러한 계산법이 기존 기득권 세력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유럽에 도입되기까지 5세기가 걸렸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투사체는 그 각도가 45도인 경우 수평으로 가장 멀리 날아간다는 사실은 갈릴레오에의해 이론적으로 증명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경험많은 병기창 포수와의 대화로부터 45도라는 각도의 해답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코크스는 몰트 건조를 위해 양조업자들이 숯 대안으로 화덕 연료로 쓰이고 있었는데, 맥주 양조장에서 견습생을 한 경험이 있던 한 제철공장 주인이 철의 생산에 숯 대신 응용해볼 생각을 하면서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로 발돋움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일의 법칙의 로버트 보일을 교과서에서 쉽게 접하지만 사실 그의 지식의 경험적 기초는 대부분 그가 고용했던 조수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접하기 힘듭니다. 즉, 저자는 과학 지식의 생산은 집단적인 사회적 활동이고, 노동하는 사람들이 여기에서 핵심적인 기여를 했으며, 많은 이들의 손과 머리로 생산한 지식에 대한 공로는 종종 부당하게도 엘리트 이론가들만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 지금의 인류의 번영을 이끈 원동력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무명의 장인들에게서 나왔을지 모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중세/근대의 과학사를 유럽 중심의 특권층 중심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지, 또 현대 과학을 미국 중심의 시장경제의 논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은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다음 릴레이북 주자로 박선용 박사를 추천합니다. 저와 함께 학사/석사/박사 학업을 함께 했던 오랜 친구로 독일 Airbus Defence and Space사에서 굵직한 우주 프로젝트들의 태양전지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반도체 노광장비로 업계를 주름잡는 ASML사의 네덜란드 본사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친구입니다. 학업을 함께 할 때는 비슷한 곳에 있으면서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할 일이 많았는데, 학업을 마친 후 서로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쌓고 있기에 박선용 박사가 유럽 다른 나라들에서 쌓은 여러 경험들로 어떤 책을 추천해 줄지 궁금합니다.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