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민중사 클리퍼드 코너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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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프랑스 SAFRAN그룹에서 광학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유상혁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부서는 Optical Surface Metrology 부서로, 각종 광학 측정 장비들을 이용해 광학계 표면의 품질을 측정하는 일을 합니다. 저는 현재 Extremely Large Telescope (ELT), Giant Magellan Telescope (GMT)와 같은 지상용 광학계, 민간/군수용 항공기 및 인공위성과 같은 항공/우주용 광학계의 품질 측정 계획을 세우고 측정 장비들을 설계 및 관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자리를 잡은 지,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학위 과정 중에는 코센데이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는데, 학위를 마치고 이제는 정착해서 연구원 신분으로 코센릴레이 독후감을 쓰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매번 유익한 기회를 주시느라 고생하시는 코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더불어 좋은 기회를 추천해주신 옆나라 벨기에의 조진연 박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추천해 드릴 책은 클리퍼드 코너 (Clifford D. Conner) 저 / 김명진, 안성우, 최형섭 공역의 과학의 민중사 (A People’s History of Science) 입니다. 약 550장으로 책이 좀 두껍습니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바와 같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끈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고 마치 일반적인 과학자의 삶을 사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오래 전 구입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3년 차인 병아리 직장인인 저는, 회사일이 손에 덜 익어서, 보고서 읽고 쓰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흥미로워보여서 샀던 이 책을 책장 한 구석에서 고양이 털만 쌓여가게 할뿐 빛은 보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센 릴레이북 제의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지는 않을까 생각했고, 그렇게 저는 일주일간 정독을 하고 이렇게 소감을 쓰게 되었습니다.
“민중”의 “과학”사, 이 책에서 말하는 “민중”은 사회 엘리트 계층과는 구분되며주로 손노동을 하고 익명성을 갖는 집단으로 정의됩니다. 그리고 “과학”은 자연에 관한 지식과 이와 연관된 지식 생산 활동으로 정의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학교에서 과학은 소수의 이름있는 엘리트들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과학사의 배경에는 이름조차 남길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무시할 수 없는 기여를 했던 수많은 민중들이 있었음을 방대한 참고문헌을 덧붙여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선사 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시대 순으로, 세계사와 과학사를 한데 버무리며 여러가지 예시를 들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과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초기 인류사에서 수렵인 남성(man the hunter)과 함께 채집인 여성(women the gatherer)의 역할을 하여 농업의 발명자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시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내용입니다. 우리는 태평양을 항해한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가로 마젤란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의 항해술에 천문학, 지리학, 항성 나침반 등의 지식으로 큰 도움을 준 태평양 원주민들의 존재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현대 농업에서 인간 식품으로 길들여진 각종 작물들은 고대인 즉,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손에서 탄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로마자 셈법의 복잡함을 탈피할 위치값 체계와 함께 비어 있는 줄을 채울 0이라는 기호의 도입이 인도에 살던 이름 모를 계산을 담당하던 평범한 서기의 활동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배우지 않았고, 또한 이러한 계산법이 기존 기득권 세력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유럽에 도입되기까지 5세기가 걸렸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투사체는 그 각도가 45도인 경우 수평으로 가장 멀리 날아간다는 사실은 갈릴레오에의해 이론적으로 증명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경험많은 병기창 포수와의 대화로부터 45도라는 각도의 해답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코크스는 몰트 건조를 위해 양조업자들이 숯 대안으로 화덕 연료로 쓰이고 있었는데, 맥주 양조장에서 견습생을 한 경험이 있던 한 제철공장 주인이 철의 생산에 숯 대신 응용해볼 생각을 하면서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로 발돋움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일의 법칙의 로버트 보일을 교과서에서 쉽게 접하지만 사실 그의 지식의 경험적 기초는 대부분 그가 고용했던 조수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접하기 힘듭니다.
즉, 저자는 과학 지식의 생산은 집단적인 사회적 활동이고, 노동하는 사람들이 여기에서 핵심적인 기여를 했으며, 많은 이들의 손과 머리로 생산한 지식에 대한 공로는 종종 부당하게도 엘리트 이론가들만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 지금의 인류의 번영을 이끈 원동력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무명의 장인들에게서 나왔을지 모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중세/근대의 과학사를 유럽 중심의 특권층 중심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지, 또 현대 과학을 미국 중심의 시장경제의 논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은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다음 릴레이북 주자로 박선용 박사를 추천합니다. 저와 함께 학사/석사/박사 학업을 함께 했던 오랜 친구로 독일 Airbus Defence and Space사에서 굵직한 우주 프로젝트들의 태양전지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반도체 노광장비로 업계를 주름잡는 ASML사의 네덜란드 본사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친구입니다. 학업을 함께 할 때는 비슷한 곳에 있으면서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할 일이 많았는데, 학업을 마친 후 서로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쌓고 있기에 박선용 박사가 유럽 다른 나라들에서 쌓은 여러 경험들로 어떤 책을 추천해 줄지 궁금합니다.
안내 감사합니다.안내를 보며 오래 전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총,균,쇠 책과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읽고 싶어집니다.
코로나에 건강 지키시고요 행복하시길 기원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