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빅데이터 같은 첨단기술을 빨리 끌어올려야 한다고 재촉하는 기사들을 종종 접합니다. 머지않아 인공지능 때문에 통역사나 번역가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흔합니다. 가장 먼저 인공지능에 의한 대체가 확실한 일자리는 금융업일 것이라고 하며, 인터넷진료가 열리면 의사들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측과 다르게 여전히 의사, 변호사, 금융업 관계자들은 연봉이 높고 일자리도 많더군요. 은행창구가 줄고 있는 것이지, 고소득 금융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몇십년전에도 의사, 변호사는 인기가 시들어가는 직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대는 전세계적으로 한번도 내려간 적은 없고 계속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사람은 일찍이 90년대에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을 써서, 교육수준이 높지 않고 특별한 기술이 없는 노동자들의 대량실업을 예측한 바 있습니다. 여기까지를 결합해보면, 사회는 첨단산업에 뒤지지 않게 기술을 빨리 개발하자고 보채고, 그렇게 개발된 기술은 생산성을 향상시켜서 더 적은 숫자만 고용가능하게 하므로 실업자들은 더 늘어나고, 실업문제로 압박을 받는 정부는 고용을 더 늘려달라고 기업을 독려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생첨단산업은 초기에만 고용을 잠깐 늘릴 뿐, 궁극적으로는 고용을 줄입니다. 첨단산업으로 사회가 발전하고, 더 많이 발전할수록 노동자는 덜 필요하면서도 인권이 더많이 보호되고, 그럴수록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기업에는 더 부담이 되고… 이런 싸이클은 마치 늑대가 칼날이 숨겨진 사냥꾼의 미끼먹이를 맛보며 자기 혀가 베어져서 피맛을 보는줄도 모르고 계속 그 미끼를 탐닉하다가 죽어간다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은 싸이클입니다. 더욱이 한국사회에서 올인하고 있는 IT 관련 제조업은 고용을 견인할만큼 노동인력이 많이 필요한 분야가 아닙니다.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은 제조업적인 마인드로 생각이 굳어져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저는 ‘제조업이 희망’이라는 책을 쓴 저자입니다.) 기성세대들에게 발전이란 곧 열심히 일해서 생산을 많이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수출을 많이 해서 잘살게 되는 것이라고 귀결됩니다. 그런데 이 싸이클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출입 비중을 늘릴수록 점점 더 다른 나라에 종속되며, 생산기술이 발전할수록 고용은 오히려 어려워지는 부조화는 심해집니다. 그래서 한국은 과거에는 정치든 경제든 우선 미국에만 의존하면 되었던 것이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동시에 봐야하는 어려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생산에서 보면, 현재 반도체 산업은 거의 독점에 가까울 정도로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휴대전화 단말기 역시 유일하게 애플에 대적하는 나라이지만, 고용도 어렵고 경제성장동력도 주춤합니다. 그러면 젊은 세대들은 제조업적 마인드를 뛰어넘을만한 생각을 가졌냐고 따져보면, 그들은 겨우 IT 정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보여준 것이 그 정도이니, 모범생을 예뻐하는 어른들에 맞추려고 노력한 젊은 세대들이 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야기를 너무 크게 시작해서 마무리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만, ‘그럼 뭐 어쩌라고?’ 묻고싶은 기분을 잠시 누르고 생각해봅시다. 제조업은 첨단으로 계속 가져가는 것은 맞습니다만, 동시에 다른 메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과학기술을 할 때마다 그저 표어로나 붙이는 ‘인간을 위한’이라는 문구를 실체화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과도한 빈부격차는 사회보장제도로 어느 정도 완화시켜야 할 것이며, 생산만 독려할 것이 아니라 유효 노동력의 많은 부분을 ‘노는 산업’으로 이동시켜야 할 것입니다. 어른들이 시덥찮게 바라보는 버스킹이나, 길거리 마술 같은 것들이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산업이 될 수 있으며, 고차원 제조업은 농업과도 결합될 수 있습니다. 제조업이 너무 취약한 사회는 분명 주권국가로서 문제가 있습니다만, 과거산업에서의 전형적인 노동만을 일자리로 생각해서는 답이 안나옵니다. 어쩌면 이제는 Party Organizer같은 이상해보이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자연스러운 고용형태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고용을 한 사람이 한 직장에 매일 출근하는 것으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태계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사회가 잘 후원해야 할 것입니다.
유럽에 오래 살다보니 위와 같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지만, 영국은 영어를 기반으로 한 제반산업들 (금융, 음악, 교육, 법 등)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영국의 문제는 아마도 제조업이 너무 약하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제조업과 농업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문화산업으로 빈공간을 채웁니다. 관광뿐만 아니라, 큰 노는 행사들을 어머어마하게 많이 그리고 자주 개최합니다. 영어가 그렇게 편하게 통용되는 나라가 아님에도 큰 행사들이 많은 것은 아마도 미소 냉전시대부터 약간 중립적인 위치를 지켜오며 쌓아온 신용과 전통의 덕이지 않은가 합니다. 한국도 최근에 한류문화가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지기 시작했으니, 서서히 인프라를 갖추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아시아에서 돈많은 사람들은 다 한국으로 놀러가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 인프라를 국민들이 만들어준다면 단순한 관광을 넘는 ‘노는 문화’의 전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좀 부담스러운데, 아마도 저와 연배가 비슷한 분들도 역시 너무 ‘날라리’같은 말이 불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품의있게 그리고 의미있게 잘 노는 방법도 진지하게 공부해야 성취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인간을 위한 과학’을 좀 더 자유롭게 생각해 봐야 할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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