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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imec 연구소/ KU Leuven 대학교에서의 박사과정 생활
조진연 (george84)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벨기에 KU Leuven대학교 소속으로 imec에서 박사과정 중인 조진연입니다. 벨기에라는 나라도 많은 분들은 생소하실 수도 있겠지만, 게다가 '거기서 박사과정을 한다고?, 거기엔 왜 갔지?'라는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반도체 분야를 연구하시는 분이시면 imec이라는 연구소를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저 또한 학교보다 연구소를 먼저 알게 된 경우 입니다. 이번 에세이를 통해 imec연구소와 KU Leuven대학교, 그리고 저의 '벨기에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 벨기에 특징 [ (좌) 벨기에 국기| (중) 오줌싸게 동상 * 출처: wikipedia|(우) 벨기에 쵸콜렛 * 출처: https://www.pinterest.com/johnsantuccio/belgian-chocolate/ ] 벨기에 인구는약 1,100만 명 정도로 한국과 비교해도 작은 규모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EU본부가 브뤼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오줌싸게 동상과 와플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보통 브뤼셀 도시만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 벨기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나라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실제 공용 언어는 3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 Leuven 위치 * 출처: google ] 프랑스어를 쓰는 왈로니아(Wallonia)지역과 네덜란드말과 유사한 플레미쉬(Flemish) 언어를 쓰는 플란더스(Flanders) 지방, 그리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제가 있는 루벤(Leuven)이라는 도시는 플레미쉬어권에 속하며, 브뤼셀과는 기차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수원 정도되는 거리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KU Leuven 대학교 소개 KU Leuven대학교는 1425년도에 설립된 매우 역사있는 오래된 대학교 입니다. 하지만1968년 플레미쉬 지역과 프랑스어 지역의 긴장과 갈등으로 결국 두개의 학교로 나뉘어 지게 됩니다. Katholieke-Universiteit Leuven (KU Leuven)과 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 (UCL)로 나뉘어, 이름은 비슷한 카톨릭 루벤 대학교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학교라고 보시면 됩니다. KU Leuven대학교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이뤄져 2015-2016 Times Higher Education Supplement (THES)의 세계 대학순위에서 종합대학순위 35위, 유럽12위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유럽에서 가장 혁식적인 대학으로 손꼽히는 등 벨기에 최고를 넘어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학교입니다. 현재 벨기에 곳곳에 11개 캠퍼스가 있으며, 15개 단대에 5만 5천명의 학생이 캠퍼스 내 수학하고 있고, 그 중 약 만명 가량이 international 학생으로 국제화에 매우 신경쓰고 있는 대학교 입니다. [ KU Lueven 캠퍼스 위치 및 특징 | *출처: KU Leuven 웹사이트 ] [ KU Lueven대학교의 중앙 도서관 ] KU Leuven 대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중앙도서관은 다양한 책들이 있고, 한국서적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책들을 기부받고 있는데, 가끔 한글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때 한국 서적을 종종 빌려 읽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볼거리인 도서관 광장은 때로는 놀이공원, 때로는 시장, 때로는 비치발리볼 경기장이 되는 등 다양하게 변신하여 이용되고 있습니다. 학교 단대 건물들은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데, 공대의 경우 루벤 구도심 외곽의 Arenberg 성 중심으로 모여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Arenberg 성은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박사과정 학생들은 졸업 전 심사위원앞에서 하는 발표가 통과되면 일반 지인을 대상으로하는 public 발표를 하게 되는데, 최근 한 친구가 졸업발표를 해서 저도 그때 처음 Arenberg 성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 Arenberg 성에서 박사 졸업 발표 후 리셉션 모습 ] 》 imec 소개 [ 연구소 전경│*출처: imec 웹사이트 ] [ 연구라인 위치│*출처: imec 웹사이트 ] 1984년에 연구소가 설립된 후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회사연구소를 제외한 반도체 연구소 중 세계 최대 연구소로 성장하였습니다. Head quater가 Leuven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300mm wafer size 연구라인과 200mm wafer size 연구라인 및 태양전지 제조라인, 배터리 연구라인 등 최첨단 연구라인을 바탕으로 우수한 연구원들이 각자 맡은 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많아진 연구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연구를 이어가기위해 2015년 imec tower를 추가로 건립하였습니다. imec에는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있어 영어로 의사소통을 진행하고 있으며, 말 뿐만 아니라 문서작성 및 내부강의 등이 모두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imec 연구분야, 반도체 및 센서, 에너지 등│*출처: imec 웹사이트 ] imec 연구소는 위의 그림처럼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재료 및 공정개발을 넘어 센서 및 헬스케어, IoT관련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파트너들(인텔, 삼성, 하이닉스, 파나소닉, 퀄컴, TSMC, SONY 등)과 프로토타입 개발이라던지, 새로운 차세대 기술에 대하여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전세계에 있는 imec 지사 및 사무소│*출처: imec 웹사이트 ] imec은 다양한 나라 및 다양한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전세계 곳곳에 지사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에도 지사를 열어 인재 채용 및 연구 인프라를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강국인 한국에 imec지사가 없는 것은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imec 연구소의 예산및 직원수의 변화과정 *출처: imec introduction presentation in 2017 ] 위에 언급되었던 다양한 회사들과 이뤄지는 프로젝트 및 공동개발 프로그램은 imec 재정에서 투자되는 비용의 비율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학계와 산업을 잇는 중간적 위치로서 회사들에게 꼭 필요한 산업에 가까운 기술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정규직 연구원들(Payroll)의 숫자도 꾸준하게 늘고 있고, 특히 작년에 imind 연구소와의 합병으로 인하여 직원수가 3,500명을 돌파 하였습니다. [ imec 실리콘 태양전지 연구분야│*출처: imec 웹사이트 ] 현재 저는 imec에서 실리콘 태양전지 관련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메탈전극과 실리콘과의 컨택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하여 새로운 컨택구조를 개발하고 퍼포먼스 향상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imec에서는 이외에도 산업형 구조의 태양전지 및 모듈관련 연구도 진행하고 있고, 최근들어 에피택셜 성장을 통한 50μm 두께의 실리콘 기판을 이용한 태양전지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좀 더 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연구를 하기 위하여 imec-KU Leuven-Vito-Hasselt 대학교와 공동으로 출자하여 Genk라는 도시에 Energyville이라는 연구센터를 지어 연구분야 확장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계신 분 중에 아직도 실리콘 태양전지가 비싸다는 인식을 가지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실제로는 많은 유럽국가 및 미국 등에서 기존 화석에너지 발전비용과 유사수준 이거나, 곧 그 수준에 도달할 예정이라, 비싼 에너지라는 인식을 바꿔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특히, 최근에는 회사들 경쟁 심화로 인해, 가격이 기존 감소되던 속도보다 더 빨리 떨어지고 있어 실리콘 태양광 발전시장이 더욱 빠른 속도로 커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들어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화석발전소는 점차 줄이고,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는 정책 또한 태양광 에너지 산업이 커지는 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 예상합니다. [ imec 벽 한켠에 있는 사진. 개그맨 김태균 닮은 연구원 ] imec을 돌아다니다 보면 위에 있는 사진이 벽 한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그맨 김태균씨를 닮아 늘 인상적으로 보고, 사진을 볼 때마다 피식 웃고 지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imec은 회사와 많은 프로젝트를 하기 때문에, 학위를 하면서 동시에 회사생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회사경험 또한 하고싶으시다면, imec에서 박사과정 혹은 포닥을 하시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약 2년정도 되는 기간동안 지내본 결과, (여기도 똑같이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보니) 팀원들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팀웍을 잘 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벨기에 및 Leuven 생활 벨기에에 도착 하기 전 Leuven이라는 도시는 브뤼셀 옆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하지만 Leuven은 플레미쉬를 사용하는 도시로서, 모든 간판 및 안내는 플레미쉬로 표시하고 있었고, 스위스와 같이 두 언어를 병기하지 않아 도착 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 저의 불찰이었죠.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 지역 주민들 대부분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어 다행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Leuven에는 imec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및 유학생분들 등 생각보다 꽤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imec에는 약 40명 가량의 한국분이 계시고, KU Leuven에서 유학하시는 분들도 10여명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루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 imec 다음으로 한국인이 많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시내에서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하게 될 경우, 이웃사촌 처럼 종종 지인들을 뵙게 됩니다. 도시 경관에 대해 잠깐 설명드리면, Leuven 구도심으로 들어가게 되면, 구 시가지 중심에서 구 시청사 건물이 아름답에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구 시청사 근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한잔하게되면 만족감이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 루벤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구 시청사 및 Saint Peter’s 성당 ] [ Oude Markt광장에 축구 응원하러 모인 사람들 ] 구 시가지를 지나 광장에 들어가게 되면 햇볕을 즐기려는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며 앉아있습니다. 이 광장에는 이탈리아, 멕시코요리 등 다양한 레스토랑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지인 분들이 방문하시는 경우, 시간이 괜찮다면 Leuven의 이곳에서 식사를 하곤 합니다. 이 광장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국에서 광화문에서 모여 응원을 했던 것 처럼, 이곳에 모여 다 같이 벨기에 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서 가장 큰 즐거움을 꼽으라면, 단연 맥주를 꼽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 Stella로 유명하고 세계맥주 점유율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 inBev 본사도 Leuven에 위치하고 있고, 벨기에 각 도시 및 수도원에서 만드는 맥주 등 ,매우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있습니다. Wikipedia에 따르면 벨기에에는 2011년 기준으로 1,100여 가지의 종류가 있고, 매년 새로 출시되고 생산되는 맥주를 감안하면 이 숫자는 계속 늘고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 (좌) Brugge 맥주가게에서 한컷 | (우) 제가 직접 만들어 본 맥주 ] [ 집에 저장해 놓은 맥주들 ] 과거 독일은 맥주 순수령 때문에 보리 만을 이용하여 맥주를 만들지만, 벨기에는 그러한 제한이 없었기에 보리 뿐만 아니라 밀 등 다양한 재료로 맥주가 만들어 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맥주는 보통 알콜 도수가 4.5-5도인 것과 다르게 벨기에 맥주는 2-12도까지 약한 것부터 강한 것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스텔라 맥주로 유명한 AB인베브와 같은 대기업에서 많은 종류의 맥주를 만들어 종류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더욱더 벨기에 맥주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수도원에서 만드는 맥주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기도를 하시는 수도원 신부님들이 맥주를 만든다고 하여 굉장히 신기했던 생각이 납니다. 수도원 맥주는 트라피스트라는 이름으로 팔리는데, 몇 몇 맥주는 제한된 생산량으로 인하여 300ml 한병에 만원이 넘는 맥주들도 있습니다.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구소 동료의 얘기로는 옛날 물이 소독이 안되어 일반 물을 마시게 되면 탈이 많이나고 전염병 같은 것에 취약했는데, 수도원 신부님들은 오염된 물을 바로 마시는 대신 맥주를 만들어 한번 발효된 물을드셨기 때문에 평균수명이 일반인들보다 더 길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트라피스트 맥주는 도수가 높아 (약 6도 이상) 한국 맥주 마시듯이 원샷으로 이어가다가는 다음날 기억이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천천히 마셔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벨기에 감자튀김 ] 두번째로는 감자튀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 모 프로그램에서 프렌치 프라이인지 벨지언 프라이인지 토론하는 것도 있었을 만큼, 시내 곳곳에 감자튀김 파는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요, 가격도 약 2.5유로 내외로 푸짐하게 튀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케찹을 주로 찍어먹는 한국과는 달리 마요네즈를 주로 곁들어 먹는것이 특징입니다. 다양한 소스가 있지만 마요네즈와의 궁합은 케찹 궁합만큼이나 매우 맛있습니다. 글 보시는 분들은 다음에 감자튀김을 드실 때 한번 시도해보시길 바랍니다. [ Leuven 역 주변에 세워진 자전거모습과 자전거 타는 제 모습 ] 루벤이라는 도시는 크기가 크지않고,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전거를 이용하며 출퇴근을 합니다. 저같이 KU Leuven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학하는 학생에게는 학교에서 무료로 학위과정동안 자전거를 제공해주어, 현재 아주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전거를 이렇게 잘 타는줄 몰랐습니다. 이제는 두손 놓고 방향 조절해가며 여유롭게 타고 있습니다. 크리스 마스에는 큰 규모는 아니지만, 매년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습니다. 구시청사 및 도시 곳곳이 조명으로 꾸며지고, 12월 초에 시장이 열려 치즈, 와인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도시전체가 낭만스럽게 변하는 시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때가 되면 아내와 산책하며 감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Leuven에 있는 동안 물론 한국음식을 안먹고 살 수는 없지요. 한국음식 재료를 사기위해 시내에 있는 아시아 마트를 방문합니다. 마트에는 기본적인 한국 식재료 (소스, 라면, 떡, 미역 등)를 팔고 있어 간단한 재료는 구매할 수 있으며, 좀 더 많은 품목을 원할 경우, 브뤼셀에 있는 한국마트에 가서 장을 봐오기도 합니다. [ Ghent 모습 ] 벨기에에는 브뤼셀 이외에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가 있습니다. Ghent라는 도시와 Brugge라는 도시가 유명합니다. 도심 내의 운하가 있고, 이 운하를 따라 배를 타고 관광하는 것이 유명하여 벨기에의 베니스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그 외 Namur, Dinant 등 여러도시가 있으니, 나중에 시간되시면 여러도시를 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Brugge 사진 ] 벨기에라는 나라에서 제가 살게 될 줄은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그런지 이제는, 벨기에가 점차 편해지고, 여기서 사는 재미가 점차 늘어가고 있습니다. 좋은 연구시설에서 연구하고,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얘기하며 산책할 수 있어, 현재의 박사과정에 대체로 만족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예전의 제가 벨기에에 올 줄 몰랐던 것처럼, 10년 후에는 제가 또 어느 나라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허접한 글을 읽어주셔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꾸벅)^^
RELAY BOOK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이달의 주자: 이미진)
나오미 울프 저
20대 중반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여성주의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저 무언가 이상하다고 자각한 문제를 하나 둘씩 곱씹어보고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스며 들었습니다. 제게 여성주의는 거대한 사상도 이념도 그저 저를 둘러싼 일상과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는 장이었습니다. 그만큼 여성을 둘러싼 문제가 만연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저는 이 관점을 다소 이상하게 활용(?)했습니다. ‘나의 일상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관련 서적을 읽어보려 애 쓰지 않았고, ‘나의 일상 문제’이기 때문에 모임에 나가 의견교류를 하고 토론하려 애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혼자 몰두하고 고민하다 이렇다 할 속시원한 결론 없이 쳇바퀴처럼 빙빙 돌며 답답함의 굴레에서 맴돌았죠. 그러다 우연히 나오미 울프의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 정독한 페미니즘 도서겠네요 저는 제게 어울리는 예쁘고 멋진 옷을 사고, 다양한 색상을 조합하여 화장하는 것을 무척 즐깁니다. 우스갯소리로 "머리, 화장, 옷 삼박자가 안 맞으면 그 날은 바로 퇴근하고 싶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무척 동감합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그날은 밖에 있기가 싫더라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에서 '어긋났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옷이 화려한지 깔끔한지, 화장이 진한지 연한지, 머리가 차분한지 발랄한지, 모든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제게 '어긋났다'의 기준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 편이지요. 최근에는 발레를 감상하고 직접 하는 것에도 푹 빠져서, 일반인 수준에서 최소한 '발레 동작을 했을 때 잘 어울리는 몸이 되고 싶다'는 욕심까지 추가되었습니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는 않고, 기본적으로 식욕도 저조한 편이지만 살이 찌지 않게 신경은 쓰고 있달까요. 다른 사람이 어찌 바라보느냐 보다 자기만족을 위해 머리, 화장, 옷을 즐기고 체형 관리에 신경 쓴다는 저는 "정말 그럴까?"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 내 마음에 드는가 -가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실한데, 과연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걸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내 눈에 만족스럽고 예뻐 보인다는 것의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이 정말 사회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과 완전히 독립적일까? 주체적인 기준을 구축한 척 하지만, 사실은 그를 방패로 삼아 -누구보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준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숨기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은 결국,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일테죠. 왜 유독 여성들에게 이 ‘아름다움’의 잣대를 가혹하리만치 들이대는 걸까요? 쌍꺼풀 수술은 성형도 아니라는 말이 돌아다니는 때입니다. 각종 여성 잡지에선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마른 모델들이 한껏 매력을 과시하고 이미 충분히 ‘건강한 정상 체중’인 여성들은 자신을 뚱뚱하다고 여깁니다. 이런 여성들을 겨냥한 다이어트 산업도 비대하게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시대가 달라져서 남성들에게도 비슷한 요구가 생겨나고 있지만 말입니다. 나오미 울프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 책은 일(2장), 문화(3장), 종교(4장), 섹스(5장), 굶주림(6장), 폭력(7장), 총 여섯 가지의 부문에 걸쳐서 ‘아름다움’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어 오는지, 그것이 여성을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풀어놓습니다. 1991년에 출판된 이 책은 발매 당시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며, 막 시작된 페미니즘의 ‘세 번째 물결’에 박차를 가하는데 엄청나게 기여를 했다고 하네요. 페미니즘의 첫 번째 물결은 19세기 초에 여성의 법률적 권리 신장을 위해 일어났다고 합니다. 가령 참정권 확보같은 것이 해당되겠죠. 이후 1960년대 초에 사회문화적인 차별 문제 해결에 주력을 둔 두 번째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역할을 ‘신비롭다’는 프레임을 씌워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았던 것을 타파하고자 한 것입니다. 21세기 초, 세 번째 물결에서는 백인 이외의 여성과 동성애 문제까지 함께 다루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앞서 말한 ‘신비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자 이제 ‘아름다움’의 신화를 내세워 여성의 진보를 방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시대를 살아가게 됩니다. 페미니즘은, 완전하지 않고 ‘불완전한 남성’인 여성이, 남성 중심의 기존 권력구조에 편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기득권과의 지난한 싸움인 셈입니다. 책의 내용을 좀더 보태자면, 사회는 가사일이라는 소임이 얼마나 신비롭고 신성한가를 강조하여 여성을 가정에 머물게 하려고 했습니다. 기껏 가정을 나오더라도 동일노동 대비 저임금과 더 많은 업무시간을 강요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성은 가정을 박차고 사회로 뛰쳐나오려 한 겁니다. 사회로 진출하는 것을 막으려는 이 많은 노력이 실패하자 새로운 장치가 필요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그 장치가 마치 절대적인 기준과 이상형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아름다움의 신화’입니다. 결코 절대적이고 객관적일 수 없는, 지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그 ‘아름다움’ 말이죠. 실력과 더불어 일정 이상의 아름다움을 요구하여, 아름다움을 갈고 닦는데 신경을 기울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갈고 닦는 과정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절대적인 이상형으로 이루어진 여성의 거푸집(책에서는 이 거푸집을 ‘철의 여인’이라 부릅니다)에 주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첫 장에서 “여성이 공적 영역에 대거 진출하면서, 외모 기준에 관한 법률이 쏟아진다. 아름다움의 신화가 정치적 영역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라는 글귀를 필두로 어떻게 여성이 스스로 “주조”하게끔 교묘하게 압박해 왔는지 조목조목 따집니다. 약 20년 전에 출판된 책이기 때문에 현재와는 사뭇 다른 부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차별을 더 깊게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보내왔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이질감없이 느껴지고, 감정적으로 동감하는 부분이 많아 슬펐습니다. 일부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 업계의 은어로 말하면 “앵커클론”으로 복제품이 된다. 통칭으로 불리는 일반적인 것은 대체가 가능하다. 그래서 젊음과 아름다움이 있으면 눈에 보이지만 자신의 특성이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불안하고, 젊음과 아름다움이 없으면 눈에 보이지 않아 말 그대로 “화면에서 사라진다.” …여성에게 윗사람이라는 지위는 특권이 아니라 지워짐을 뜻한다." – 일(2장) 20년전 미국 뉴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던 "삼촌 같은 남성 앵커에, 한참 어리고, 직업적 미인 수준으로 예쁜 여성 뉴스캐스터"가 붙어있는 문화를 꼬집는 부분에서 나온 글입니다. 미국 뉴스를 즐겨보지 않아 현재 미국 사정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중년의 남성 앵커와 젊은 여성 앵커의 조합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지요. 마지막 구절은 현대 사회에서 나이 든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잘 나타내고 잘 대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40세가 넘은 TV 앵커 중 97%가 남성이고, 나머지 3%는 자기 나이 같지 않아 보이는 40세쯤 된 여성"이라는 주장이 있었던 것처럼요. "유방, 허벅지, 엉덩이, 배, 이것들은 여성의 몸에서 가장 성적인 곳이고 따라서 그것이 "못생긴" 것이 강박의 대상이 된다. 그것을 폭력을 휘두르며 학대하는 남성이 가장 흔히 구타하는 곳이다. 치정 살인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훼손하는 곳이다. 폭력적인 포르노에서 가장 자주 더럽히는 곳이다. … 여성을 혐오하는 문화가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혐오하는 것'을 여성이 혐오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 섹스(5장) "남자아이들과 달리, 여자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욕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을 배운다." – 섹스(5장) 누군가를 원하는 능동적인 욕망이 아닌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수동적인 욕망을 배워 온 여성들은 이제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혐오하는 것'을 혐오하게 됩니다. '철의 여인'이 지니고 있는 풍만하고 아름다운 가슴과 늘씬한 허벅지와 배, 탄력 있는 엉덩이와 자신의 몸을 한없이 비교하며 질책합니다. 여성의 신체와 몸무게는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란 틀까지 뒤집어 씌워 어떠한 방법으로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여성을 은근히 비난하여 그 여성이 절망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사회 요구를 기반으로 한 여성의 수동적인 욕망과 파생되는 절망의 틈새를 파고들어, 얼굴 성형은 물론 가슴 확대, 지방 흡입, 복근 성형 등 각종 성형외과, 다이어트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죠. 심지어 최근에는 골반 크기까지 성형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두상이 큰 게 콤플렉스여서 농담으로 "두개골을 깎아야 할 판이야."라는 말을 했는데, 이러다 진짜 머지않은 미래에 성형외과에서 흔히 접하는 수술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회가 정말 정상일까요? "성형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한다"라는 의견은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입니다만, 그 '만족'의 방향이 왜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을까요? 강남에 즐비한 성형외과 광고를 보면 모두가 같은 얼굴로 보입니다. 인터넷에 한참 "모두 다른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올라온 십여명의 여성 사진이 있었는데, 댓글에선 입을 모아 "한 사람인 줄 알았다"는 의견이 줄지었습니다. 정말 '철의 여인'이 존재하는 느낌입니다. "자유롭게 길러진 여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여성의 극단이 허용하는 것 보다 성기중심적이고, 건강하게 이기적이며, 남성의 몸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자유롭게 길러진 남성은 아마 남성의 극단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몰두하고 상처받기 쉽고 건강하게 주고 몸 전체가 관능적일 것이다." – 섹스(5장) "여성성은, 여성이라는 것에 지금 사회에서 파는 모든 것을 합친 암호다. 여성성이 여성의 성과 그것의 사랑스러움을 뜻한다면, 여성은 그것을 잃은 적이 없고 따라서 다시 살 필요가 없다." – 섹스(5장) 개인적으로 '여성적' '남성적', 이하 유사한 단어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마침 이 책에서 저와 같은 이유로 그 단어의 문제점을 짚는 부분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굉장히 포괄적인 두 단어가 일종의 '바람직한' 여성상과 남성상을 제한하고, 그를 여성과 남성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적어도 제게는, 남자아이가 인형놀이를 더 좋아해서 나중에 유능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될 가능성, 여자아이가 자동차놀이를 좋아해서 멋진 카레이서가 될 가능성을 없애 버리는 단어입니다. 울고 싶은 남성의 감정을 억제하고 여성의 대담한 활동을 제한하는 단어이고요. 이 단어만큼 남성의 감성을 소홀히 다루고, 여성의 이성을 무시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짧은 소견으로는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의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권신장 뿐만 아니라 남성을 '남자다움'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남성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추구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용한 위 문단도 비슷한 흐름이라 생각해서 가져와 보았습니다. 작가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는 것이 독서의 본질이 아니듯,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시대가 바뀌는 바람에 반가운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게 된 내용도 있고,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과하지 않은가?' 하는 아리송한 부분이 있어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권리들이 처음에는 '과하다'싶을 정도의 문제제기로 출발하였다는 공통분모가 있죠. 익숙해졌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저도 여성 문제를 항상 고민하지만 매일매일 새로이 깨닫고 배우는 것을 보면 아직 그 굴레에서 못 벗어난 부분이 분명 많고요. 그리고 책에서 제시하는 주장들의 진위여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여성의 감정을 묘사하는 부분은 제가, 친구가, 다른 여성이 느끼던 것과 상당히 일치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적어도 감정 부분은 거짓이 아닌 셈이지요. 혹자는 피해의식이라고 볼 것이고, 그것이 실제로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그 피해의식 자체가 억눌림의 방증은 아닐런지요. 마지막으로 평소에 가장 흔히 그리고 강하게 고민해왔던 부분을 반갑고도 씁쓸한 마음으로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오늘날에는, 젊은 여성에게, 행동은 "진짜 남자"처럼 하기 바라고 모습은 "진짜 여자"처럼 보이기 바란다. 아버지들이 한때는 아들에게만 했던 기대를 딸들에게도 했지만,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부담은 그만큼 가벼워지지 않았다." 이상훈 박사님은 KAIST에서 통계물리학과 연결망 과학을 주제로 하여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스웨덴 우메오 대학 물리학과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 수학과에서 박사후연구원, 성균관대학 에너지과학과 연구교수를 거쳐, 지금은 고등과학원(KIAS) 물리학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십니다. 오로지 "연구 한 길만 간다!"라는 기운을 뿜뿜! 내뿜는 과학자처럼 보이지만, 사회의 이런저런 이슈에도 관심이 많으시고 다양한 분야의 책도 많이 읽으십니다. 특유의 날카롭고 냉철한 관점으로 녹여낼 이상훈 박사님의 책 소개가 무척 기대됩니다.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