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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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트론헤임, 40대에 새 희망을 펼친 곳

    (blaster)

    12년전 어느 날, 건설회사 연구소에서 생활한지 10여년정도 지났을 무렵, 창밖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엉뚱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60살쯤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그때 가서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한동안의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마음 한 켠에 쌓아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며 인생의 일정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한 박사학위에 도전하고 싶었고, 해외출장 갈 때마다 부족함을 느꼈던 영어를 잘하고 싶었고, 또 누군가의 인터넷 블로그를 볼 때마다 항상 부러움을 주던 유럽으로의 장기 배낭여행도 가고 싶었습니다. 60세 즈음에는 기술 컨설턴트가 되어 국내외를 넘나드는 유능한 전문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다양한 희망사항들이 목록속에 채워졌지만, 하나씩 준비하고 실천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수 많은 고민끝에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방안은 유럽으로의 박사유학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유학지를 조사하였고, 결국 저의 주 전공인 터널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면서, 예전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해온 노르웨이로 귀착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작정 노르웨이 터널협회에 연락을 하여, NTNU(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에 계시는 터널기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자 중 한 분을 소개 받았습니다. 교수님께 이력서를 보내면서 나의 의지를 피력하자 흔쾌히 박사과정을 수락받았습니다. 다니던 회사도 수 차례 설득하여 결국 회사의 지원을 받아 2006년, 41살의 나이에 박사과정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노르웨이의 트론헤임이라는 곳입니다. [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Fjord, Geiranger ]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의 노르웨이는 872년 통일왕국이 세워지면서 노르웨이의 기원이 되었고 1905년 스웨덴에서 독립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연어와 고등어를 통해 이미 친숙해져 있으면서, 아름다운 피요르(Fjord)가 있는 나라, 대표적인 복지국가 정도로 알려져 있지요. 사실 노르웨이는 18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중 하나였지만 1969년 북해유전이 발견되면서 IMF통계기준 1인당 GDP가 약 74,000$(2017년 기준)에 이르는 세계 최고 부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단순히 북해에서 생산되는 석유때문만이 아니라 자연, 인간, 미래를 중시하는 공통된 국민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엄청난 국부펀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돈을 후손을 위해 비축하는 나라, 지형적 환경적 특성을 이용해 전체 발전량의 대부분을 수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에서 생산하는 나라, 인구 460만인 나라에 1부 리그 축구팀이 16개나 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다른 나라 못지 않지만, 선수들이 반칙을 잘 하지 못해 월드컵 예선에서 번번이 탈락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 나라. 여름이면 오후 3시반 쯤 퇴근해, 따사로운 햇볕아래 잔디밭에서 가족들과 놀며 오랫동안 저녁식사를 즐기는 일상생활. 내국인은 물론이고 합법적으로 정착한 외국인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지는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 … 금년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로 선정된 것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 노르웨이와 북유럽 ] 높은 산, 거대한 계곡, 깊은 숲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노르웨이 국토는 97%가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가급적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도로나 철도와 같은 기반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터널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수 많은 터널을 최대한 경제적으로 안전하게 건설하기 위해 노르웨이 기술자들은 과감한 실험과 시도를 해왔고, 이렇게 해서 정착된 것이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이고 안전한 터널공법인 NMT(Norwegian Method of Tunnelling)입니다. 특히 Fjord해안이 대부분인 서부지역에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해저터널이 필수적이므로 전세계 해저터널의 2/3에 이르는 해저터널 건설을 통해 세계 최고의 해저터널 기술을 보유하게 됩니다.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고 비행선으로 북극 하늘을 횡단한 아문젠처럼, 추진력과 강인한 국민성으로 유명한 바이킹 민족의 근성이 터널건설기술에도 녹아 있습니다. [ 노르웨이 최장 도로터널인 24.5km의 Lærdal 터널내부 ] 올챙이처럼 생긴 기다란 지형의 노르웨이에서, 올챙이의 머리 바로 아래 부분에 위치한 트론헤임(Trondheim)은 인구 약 187,000명 정도이지만, 노르웨이 최초의 수도이면서 현재 노르웨이 3번째 도시이며, NTNU와 SINTEF라는 노르웨이의 최고 과학기술 기관들이 위치한 도시입니다. 트론헤임의 아름다움은 아래의 사진 한장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한탄강 계곡물처럼 짙푸른 청정수가 흐르는 Nidelva강으로 둘러 쌓인, 역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시내중심지에는 시골길처럼 이러 저리 놓여있는 길거리를 따라 푸른 나무들과 어우러진, 색깔이 제 각각인 지붕의 나즈막한 집들이 놓여있어 여느 유럽국가들과 비슷해 보입니다만, 강변을 따라 놓여있는 노르웨이 특유의 전통가옥들이 이곳이 노르웨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 트론헤임 시내 전경 | *출처: cruisecrocodile.com/cruise-port-information/trondheim-norway ] [ 트론헤임 시내를 둘러싸는 Nidelva강과 주변 전경. 우측 상단에 2개의 탑이 솟아있는 곳이 NTNU 대학교 ] [ Nidelva강 주변의 전통가옥 ] 트론헤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높이 124m의 Tyholt타워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이곳이 노르웨이 3번째 도시라는 것이 실감이 가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게만 보입니다. [ Tyholt타워 ] [ Tyholt 타워에서 내려다 본 시내 풍경 ] 트론헤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중에 하나가 바로 Nidaros성당입니다. 1300년에 완공된 이후, 노르웨이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성 올라프왕의 무덤 위에 지어진 곳이기에, 오랜 기간 동안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었습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외관으로 중세 때 지어진 교회로는 북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이며, 1814년 이후에는 국왕의 대관식 장소가 되어 현재의 노르웨이 국왕도 1991년 이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 (좌)Nidaros 성당과 주변 전경 *출처: https://www.trondheim.no/nidarosdomen | (우)Gamle Bybro *출처: http://cruisecrocodile.com/cruise-port-information/trondheim-norway] NTNU는 노르웨이어로 Norgesteknisk- naturvitenskapelige universitet의 약자이며, 영어로는 Norwegian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라는 의미입니다. 1760년 Royal Norwegian Society of Sciences and Letters가 그 시초라고 할 수 있으며, 1910년 NTH라는 교명으로 개교한 이후, 1996년 3개의 교육기관을 통합하며 현재의 교명으로 정착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되면서, Creative, Constructive, Critical 그리고 Respectful & caring으로 표현되는 NTNU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의 꾸준한 실천에 대한 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16년에는 2개 대학과 합병하면서 14개 단과대학, 70개 학과 총 39,000명으로 노르웨이 최대의 대학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 NTNU의 Gløshaugen 캠퍼스 위치와 전경 ] 현재는 컨설팅과 강의를 하며 한국에서 지내고 있지만, NTNU에서 박사졸업 후 한국에서 생활하다 노르웨이의 자연과 여유로운 생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몇 년 뒤 다시 NTNU로 돌아가 교수생활을 하다 온 적이 있습니다.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오후 4시만 되면 애들 데리러 유치원에 가야된다고 회의 중 나가는 남녀 교수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들도 모르는 것이 있을 땐 언제든지 교수연구실을 찾아가거나 이메일을 보내 질문을 하고, 교수와 아르바이트 계약을 맺고 일을 시켜도 본인의 의견과 일정을 주장합니다. 강의시간에도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어가며 수업을 받고, 다리를 쭉 뻗은 채 앉아서 교수와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고… 처음 겪었을 때 느꼈던 문화적 충격은 엄청났지만, 그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대화를 하며 그들의 일상화 된 평등의식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일반인 한 사람이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던 최근의 우리나라 국가 시스템을 보면서, 세무서가 모든 국민의 은행계좌를 다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버린 투명한 노르웨이의 사회적 시스템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국민적 의식이 우리나라에도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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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BOOK

석주명 평전 (이달의 주자: 이강수 )

이병철 저

   이 책은 나비 박사로 잘 알려진 석주명 선생의 평전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6.25사변까지 어떻게 보면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과학자의 삶을 선택한 생물학자 석주명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석주명 선생을 다룬 많은 책 중 가장 대표적인 책으로 뽑히고 있어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릴레이북에 소개합니다. 평전의 내용을 단순하게 요약하기 보다는 과학자의 삶을 산 석주명 선생의 이야기 이니 만큼 과학이 가진 5가지 특징(과학적 탐구와 기술의 윤리, 엄정식)과 비교해 그의 평전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자율적 태도] 과학자는 과학적 공동체 안에서 관습을 준수하고 규범을 지키며 일정한 패러다임을 수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방법론상의 장치들일 뿐이지 거기에 갇혀있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은 결국 극복되기 위해서 과도기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과학자에게 패러다임은 소중하지만 진리는 더욱 소중하다. 이러한 태도는 진리에 임하는 자신의 자율성의 발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종교적 진리는 종교인을 자유롭게 하지만 과학적 진리는 무지와 불편과 위험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모든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이것은 과학적 탐구와 자율성이 가져다 준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과학적 탐구와 기술의 윤리, 엄정식).  일본에서 손꼽히는 농업 전문학교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에서 유일한 조선인 학생으로 입학한 석주명은 농림학과에 입학해 1년을 공부한 뒤 박물관(생물학과)과로 옮겨 학업을 계속 이어나갑니다. 졸업을 앞두고도 뚜렷한 길을 찾지 못했던 석주명은 은사 오카지마 긴지 교수로부터 나비연구에 대한 제안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는 조선인이 나비를 연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인지 알고 있기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학자의 명예는 그 사람이 남긴 학문 업적에서 나오는 것이며, 학벌이나 직함이 문제가 아니요 중요한 것은 업적이다”라는 말과 함께 “자네는 조선인이 아닌가? 마땅히 남이 손대기 전에 자네 힘으로 조선 나비를 연구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십년만 정말 열심히 연구하다보면 자네는 틀림없이 조선 나비에 대해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네”라는 스승의 말에 나비연구를 결심하게 됩니다. [합리적 방식] 탐구의 방법에서 볼 수 있듯이 계시나 초능력 등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감각적 지각과 이성 판단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과학은 합리적이다. 가설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그것은 개인의 직관과 상상력, 때로는 영감 같은 것에 의존할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물고 있지 않고 반드시 경험적 증거와 합리적 논증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합리성을 지닌다는 것이다(과학적 탐구와 기술의 윤리, 엄정식).  나비연구를 시작한 석주명은 시작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초기에는 선행 연구 문헌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작을 하다 보니 매우 막막하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많은 수의 개체를 채집하고 관찰을 반복하면서 나름의 분류 체계를 만들어 갔으며, 그러한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오히려 기존에 발표된 도감들의 분류 체계들에서 오류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류들은 석주명이 생각하기에 같은 종류의 개체를 많이 수집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무지 때문이고, 그 무지는 바로 명명규약의 결함에서 왔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같은 종이라도 형질이 조금만 다르면 서로 다른 개체로 취급해서 학계에 발표해 버리는 일명 엉터리 신종발견 행위들이 많이 자행되었다고 합니다. 신종을 발견해 자기의 성을 붙여 명명하는 일이 생물학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명예였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이 발전된 지금도 이러한 사이비 과학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사이비 과학에 대한 매력은 시대를 떠나 과학자들에게 끝없이 다가오는 유혹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비판적 입장] 과학자의 세계에는 영원한 진리나 절대적 권위는 존재하지 않고 어떠한 이론도 항상 새롭게 검토된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이고 좀 더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태도를 지니지 않는다면 과학적 탐구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은 다른 과학자의 이론에 대한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기비판의 과정을 거쳐서만 새로운 형태의 포괄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과학적 탐구와 기술의 윤리, 엄정식).  석주명은 이런 사이비 과학으로 명성을 얻은 일본의 대표 곤충학자 마쓰무라의 연구결과 중 한국 나비의 동종이명 844개를 말소했습니다. 석주명의 이론(변이곡선 이론)은 당시 여러 학자들로부터 인정받았고, 그의 학구자세에 많은 일본학자들이 갈채를 보냈습니다. 엄청난 채집 량에 의존한 석주명식 분류학 연구는 개체의 변이 범위를 규명한 ‘변이곡선’ 이론을 만들게 된 주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통계 수치를 생물 분류학에 적용한 사례가 서양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시도된 방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석주명의 접근방법이 얼마나 과학적인 접근방법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개방적 자세] 과학은 탐구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실수와 오류를 범하지만 그것이 검증되거나 반증되면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개방적이다. 과학적 진리가 다른 종류의 진리와 달리 끊임없이 개선되고 그 축적의 과정을 통해서 오늘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학자는 항상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자기가 도달한 결론에 회의를 품으며 결국 어떠한 형태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개방적 자세의 전형을 보여준다(과학적 탐구와 기술의 윤리, 엄정식).  석주명은 광복 후 한국 산학회에 가입해 ‘국토 구명 학술 탐험’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하게 되지만, 이미 나비를 전공으로 삼은 1930년부터 우리나라의 산과 석주명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국토 구명 학술 조사를 통해 ‘오대산 태백산 학술조사’, ‘소백산맥 학술조사’, ‘울릉도 독도 학술조사’, ‘차령산맥 학술조사’, ‘선갑도·덕적군도 학술조사’, ‘다도해 총해 학술조사’ 등에 참여하여 전국을 누비며 백두대간의 학술적 탐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개체변이 범위를 규명한 석주명은 분류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 했다고 보고, 1940년부터 분포 쪽으로 연구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변이를 다루는 논문에서 분포 지도를 덧붙이기 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분포 연구는 한국 나비의 유연관계와 분포 상태의 계통을 세우는 일, 즉 지역을 통해 나비의 관계를 아는 것과 나비의 분포와 활약을 알아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비록 본인이 정한 분포 연구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유연관계를 밝히고 계통을 세우기 위한 분포지도는 다행이 끝을 보았습니다. [보편적 성격] 과학적 탐구의 성과는 어느 시대나 지역, 혹은 특정한 국가나 민족 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삼라만상에 골고루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또한 그것을 적용한 기술이 어느 특정한 부류의 개인이나 집단에만 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보편성을 지닌다. 물론 과학자에게는 조국이나 자기 공동체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탈피하는 자세로 탐구에 임하는 것이 항상 과학자로서의 임무인 것이다(과학적 탐구와 기술의 윤리, 엄정식).  1939년 3월에는 본인의 10년 연구를 총 결산하고 그를 세계적인 학자로 끌어올린 ‘조선산 접류 총목록’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책은 한국산 나비를 연구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할 고전이요 교과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1940년에 비로소 출간된 ‘조선산 접류 총목록’은 세계 박물관에서도 구입이 이루어졌습니다. 석주명은 한국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전쟁 속에서도 연구실을 지켰습니다. 그는 죽기를 대비한 듯 언제나 연구결과를 적당한 곳에 마무리 지어 두었으며, 그가 남긴 엄청난 분량의 유고 중에서 미완성인 채로 남은 원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저서 17권, 논문 128편을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과학자의 삶] 석주명이라는 과학자의 삶을 5가지 과학적 태도와 연관 지어 살펴보았습니다. 좀 억지스러운 측면도 있겠지만, 과학적 태도와 석주명의 삶이 많은 부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석주명 선생의 삶은 저에게 '과학자 다운' 과학자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모든 과학자는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시대에 맞는 제한된 연구 환경 속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연구를 진행해 왔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 노력들은 보이지 않는 실험실에서 계속 되고 있을 것입니다. 평전을 읽은 누군가는 어려운 시대 환경 속에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낸 석주명 선생의 모습에 열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계적 연구 성과, 세계적 석학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에 주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석주명 선생의 삶을 통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과학을 대하는 진정성, 실천성, 그리고 그러한 모든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학자의 충실한 삶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역사 속 생물학자로 남은 석주명 선생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각자의 생각에 맡기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석주명 평전을 읽고 있는 연구자(혹은 연구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라면 자신에게 무수히 던져야 할 질문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답이 비슷할 필요도 없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과학이란 무엇일까?' '과학을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에게 과학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자세히 보기

대선의 계절입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프랑스도 대선이고 영국은 브렉시트로 논란이 많은 국론을 추스리려고 6월 8일날 조기총선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미국발 트럼프 선출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정신없이 다른 선거들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시대인지라 큰 나라들 그리고 주변나라들의 선거는 자국의 앞날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역설적이게도 선거의 딜레마는 우리가 그렇게 신봉해 마지 않는 ‘다수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겨우 2% 때문에 영국은 수십년간 같이 해오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고, 한국도 지난 대선에서 과반수에서 겨우 2% 못미치게 넘긴 득표로 국정을 분탕질한 권력이 들어섰습니다. 더욱이 미국에서 트럼프는 전체 득표수에서 졌지만, 주마다 독식하는 방식으로 계산하는 미국의 특수한 선거법에 의해 권력을 쥐었습니다. 선거권자 모두가 참여한 결과라면 그래도 좀 더 쉽게 다수결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어느 나라든지 투표참여자들은 많아야 선거권자들의 80%에 불과합니다. 기권한 나머지 20% 유권자의 10분의 1 만으로도 정치지각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들의 인생이 그렇듯이 사회나 국가도 그저 운명이나 운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우리가 마치 고3때 담임선생님의 가벼운 충고나 친구의 조언, 아니면 한 번의 시험결과에 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현재의 직업이나 위치에 와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 정치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자주 해보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외국의 국민투표와 대선이 이곳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 진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 대선이 나 자신과 주변에 직접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정치는 언제나 이상을 말하지만 실제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좋은 공약은 공허한 약속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후보라도 여러가지 약점과 과오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절대 ‘50보 100보 이론’을 끌어들이면 안됩니다. 50보 100보 이론은 도덕의 기준에 머물러야지, 법이나 정치의 기준이 되면 안됩니다. 그래서 영어의 Compromise라는 단어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타협한다는 뜻과 품질을 떨어뜨린다는 뜻이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즉 최선의 품질이 불가하다면 절충하여 최악을 피하고 차선을 택한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마치 혼자만 득도한 것처럼 호들갑이라구요? 그래서 다른 것도 준비했습니다. 만약 당선되어서 취임한다면 39세에 대통령이 될 마크롱 후보를 보면서 프랑스 대선 제도를 좀 찾아봤습니다. 몇 가지 배울만한 제도들이 있더군요. 1차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1-2등만 선별하여 결선투표를 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은 다 아시죠? 이 제도가 도입되면 지금 한국대선처럼 지지율 낮은 후보들의 사퇴를 종용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1차 투표 후 탈락된 후보는 낙선 수락 연설을 하면서 자신에게 준 표를 누구에게 몰아줄 것을 요청합니다. 물론 지지자들이 순순히 다 옮겨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다음 특징은 2차 투표 후 10일 이내에 정권을 이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찾아봤더니 불과 4일만에 엘리제궁을 비워준 사례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인수위’라는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난 다음, 한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개국공신’들을 자주 봤습니다. 이번에는 인수위가 없이 바로 직행해야 할 터이니 한 번 실험이 되겠군요. 대선에는 대통령 선출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차기 내각 구성이 오리무중이기에 권력이양이 늦어집니다. 아마 후보자들도 선거에 집중하느라 사전 내각구성은 ‘김칫국’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는 당선 다음 날 곧바로 언론에 내각예상명단이 발표됩니다. 놀라운 것은 실제 내각 구성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통치 할 시스템을 미리 갖추어 두고 대선에 임하는 것입니다. 실세 장관으로 내각이 구성되어야, 밀실정치의 온실인 비서실이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놀라운 사실은 입후보자 자격은 당연하게도 프랑스 국적자이어야 하지만, 나이는 겨우 18세 이상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투표권자 나이와 혼동된 것인줄 알고 여러 자료들과 프랑스 헌법까지 들춰보며 재확인해보았지만 오류가 아닌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18세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만, 아마도 상징성을 둔 것 같습니다. 한국은 대통령 나이를 40세 이상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 기준이면 프랑스 마크롱 후보는 이번에 출마가 불가했습니다. 실제로 현지에서도 그의 나이를 염려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토론에서도 자주, 경험이 일천하고 나이가 너무 어린 당신이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대통령 후보자 자격을 18세까지 낮출 필요는 없지만, 투표권 연령만큼은 조속히 18세로 낮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배경에 대한 이해와 우리 내의 환경이 준비안되었는데 다른 나라의 제도를 쉽게 말하고 배끼려는 자세는 곤란합니다만,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미처 몰랐거나 특정집단의 이익 때문에 미루어지고 있는 것들은 빨리 수정해야 합니다. 대선정국인 지금은 한 명만 잘 뽑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난리지만, 사실 좋은 대통령 선출은 정치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정치도 과학처럼 앞뒤가 잘 맞춰지는 방정식 같으면 사회가 너무 무미건조해질런지요? 정치가 과학일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상식의 울타리 안에는 들어오면 좋겠군요. 하지만 국민이 상식적일 때만 비로소 정치가 상식 안으로 들어오겠죠. 그러니 정치인들만 너무 탓하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모습의 대표적 현신일 뿐이니까요. 너무 맥빠지는 소리 같지만, 세상만사가 그렇듯 정치발전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야 있겠습니까? 국정농단 사태를 비폭력적이고도 합법적으로 처리-단죄한 것만으로도 사실 엄청난 진전을 이룬 것이니 우리 자신에게도 너무 인색할 필요 없습니다. 이제 다시 상식 실현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장미향기 가득한 대선을 기원합니다. (‘정치 과학’이라는 제목의 일부가 겨우 ‘정치 상식’으로 끝맺음되어 송구합니다. 과학과 상식은 결국 같은 것이어서, 종국적으로 동일 값으로 수렴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변명으로 대신합니다.) 자세히 보기

연구실 탐방

[이화여자대학교] 작업환경의학연구실

   직업환경의학은 직업을 통해 접하는 환경과 일반 환경에서 발생하는 건강영향을 다루는 학문 분야입니다. 직업의학은 직업병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증진하고 일과 관련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보상과 재활, 동시에 직업병의 예방전략을 다루는 학문이고, 환경의학은 환경적 유해요인으로 인한 건강영향을 밝히는 연구, 진단, 치료 및 예방전략을 포함하는 학문입니다. 본 직업환경의학연구실은 2016년 3월 예방의학교실로부터 분리, 개설되었으며, 기초와 임상의 조화로운 수련과정을 통해 융합적 능력을 함양한 직업환경의학전문의를 양성하고, 전일제 대학원생 교육을 통해 학문후속세대 연구자를 양성함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실 하은희 교수는 예방의학, 산업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예방의학 박사학위 취득 후 20여년 동안 환경역학, 환경의학, 분자역학, 환경보건정책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토대로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 외 ‘환경역학연구에 기초한 대기분진에 대한 통합적 비교위해 및 관리효과 분석’, ‘황사에 의한 건강위해도 지표기술개발’, ‘실내.외 환경에 있어서 미세먼지의 인체 위해도 분석 : 환경역학 연구에 기초한’, ‘환경보건감시체계: 대기오염중심으로‘, 산모와 영유아의 환경노출에 의한 건강영향연구 등의 연구용역을 통해 이론과 현실을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환경 및 직업의학에 대한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역학(Epidemiology)은 인구집단(Population)이 직접적인 연구대상이며, 인구집단에서 발생하는 건강에서 사망에 이르는 모든 건강-질병현상의 빈도, 분포 및 이와 원인적으로 관련되는 결정요인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궁극적으로는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한 실제적인 수단을 개발하는 학문입니다. 즉 역학은 공중보건학 뿐 아니라 임상의학의 기초학문으로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학문분야이며 환경 및 직업의학은 직업병과 직업 관련성 질환을 진단하고 발생 원인을 구명하여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고자 합니다. 이와 더불어 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고 환경과 관련된 질환의 원인을 파악하여 예방대책을 수립함으로써 인간이 건강한 환경에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의학의 한 분야입니다.  본 실험실에서는 보건통계학적 원리와 방법론을 적용하여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역학 연구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중금속 중 납의 건강영향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초반까지 주로 직업적인 노출에 의한 건강영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에는 일반 환경 중에서 저농도의 납에 노출된 사람들의 건강영향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고. 최근 많은 연구는 성장하는 아동에 대한 납의 신경독성학적 영향, 특히 인지기능, 신경 행태학적인 성장 및 행동 이상 및 지체 등을 평가하기 위한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성인은 심혈관계 질환 및 고혈압에 대한 납의 건강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논문 리뷰와 최근 중금속의 납노출이 저용량에서도 고용량 노출에서와 유사한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 성인의 저용량 중금속 및 유해물질에 의한 인체 노출이 심혈관계 질환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기초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성인의 혈중 납농도는 연구 대상자 수에 따라 (1974년부터 2014년까지 성인 69개, 아동/청소년 22개, 총 53,791명 (남 12,384명, 여 19,524명, 아동/청소년 21,883명)) 크기를 다르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20세 이상 성인 남/여 혈중 납농도를 나타낸 bubble plot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납농도가 높고, 남자는 1992년 28.76 ㎍/dl, 여자는 1992년 27.47 ㎍/dL로 최고치를 나타났으며, 연도별로 살펴보면 초기부터 1990년 초까지 혈중 납농도는 15~25 ㎍/dL, 그 이후에는 감소하여 5~10 ㎍/dL 수준을 보이다가 2000년 이후에는 5 ㎍/dL 이하, 최근에는 2 ㎍/dL 이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최종적인 건강영향을 받는 수용체인 인간에 대한 건강영향의 정도를 밝히는 일은 매우 복잡한 과정으로, 오염원-매체-노출-건강영향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경로에 걸쳐 노출이 이루어지고, 노출 이후 건강영향이 나타나는 과정도 여러 단계를 거치는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으로 구성됩니다. 본 연구실에서는 오염 경로로 통해 얻어지는 데이터를 가지고 역학적 분석을 실행하며 결과를 규명하는 연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실은 하은희 교수님의 지도 아래 연구원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수행을 위해서 연구에 필요한 교육, 세미나, 국내·외 학회 참석 하여 견문을 넓히며 연구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국제 전문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체 교육 및 수업을 통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합니다.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프로젝트와 연구를 충실히 수행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도와가며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환경보건 위상을 높이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 주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안양천로 1071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 전화  : 02-2650-5847 ■ 홈페이지 : http://cms.ewha.ac.kr/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