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트론헤임, 40대에 새 희망을 펼친 곳
- 6383
- 15
- 8
12년전 어느 날, 건설회사 연구소에서 생활한지 10여년정도 지났을 무렵, 창밖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엉뚱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60살쯤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그때 가서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한동안의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마음 한 켠에 쌓아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며 인생의 일정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한 박사학위에 도전하고 싶었고, 해외출장 갈 때마다 부족함을 느꼈던 영어를 잘하고 싶었고, 또 누군가의 인터넷 블로그를 볼 때마다 항상 부러움을 주던 유럽으로의 장기 배낭여행도 가고 싶었습니다. 60세 즈음에는 기술 컨설턴트가 되어 국내외를 넘나드는 유능한 전문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다양한 희망사항들이 목록속에 채워졌지만, 하나씩 준비하고 실천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수 많은 고민끝에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방안은 유럽으로의 박사유학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유학지를 조사하였고, 결국 저의 주 전공인 터널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면서, 예전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해온 노르웨이로 귀착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작정 노르웨이 터널협회에 연락을 하여, NTNU(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에 계시는 터널기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자 중 한 분을 소개 받았습니다. 교수님께 이력서를 보내면서 나의 의지를 피력하자 흔쾌히 박사과정을 수락받았습니다. 다니던 회사도 수 차례 설득하여 결국 회사의 지원을 받아 2006년, 41살의 나이에 박사과정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노르웨이의 트론헤임이라는 곳입니다.
[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Fjord, Geiranger ]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의 노르웨이는 872년 통일왕국이 세워지면서 노르웨이의 기원이 되었고 1905년 스웨덴에서 독립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연어와 고등어를 통해 이미 친숙해져 있으면서, 아름다운 피요르(Fjord)가 있는 나라, 대표적인 복지국가 정도로 알려져 있지요. 사실 노르웨이는 18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중 하나였지만 1969년 북해유전이 발견되면서 IMF통계기준 1인당 GDP가 약 74,000$(2017년 기준)에 이르는 세계 최고 부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단순히 북해에서 생산되는 석유때문만이 아니라 자연, 인간, 미래를 중시하는 공통된 국민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엄청난 국부펀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돈을 후손을 위해 비축하는 나라, 지형적 환경적 특성을 이용해 전체 발전량의 대부분을 수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에서 생산하는 나라, 인구 460만인 나라에 1부 리그 축구팀이 16개나 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다른 나라 못지 않지만, 선수들이 반칙을 잘 하지 못해 월드컵 예선에서 번번이 탈락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 나라. 여름이면 오후 3시반 쯤 퇴근해, 따사로운 햇볕아래 잔디밭에서 가족들과 놀며 오랫동안 저녁식사를 즐기는 일상생활. 내국인은 물론이고 합법적으로 정착한 외국인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지는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 … 금년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로 선정된 것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 노르웨이와 북유럽 ]
높은 산, 거대한 계곡, 깊은 숲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노르웨이 국토는 97%가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가급적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도로나 철도와 같은 기반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터널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수 많은 터널을 최대한 경제적으로 안전하게 건설하기 위해 노르웨이 기술자들은 과감한 실험과 시도를 해왔고, 이렇게 해서 정착된 것이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이고 안전한 터널공법인 NMT(Norwegian Method of Tunnelling)입니다. 특히 Fjord해안이 대부분인 서부지역에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해저터널이 필수적이므로 전세계 해저터널의 2/3에 이르는 해저터널 건설을 통해 세계 최고의 해저터널 기술을 보유하게 됩니다.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고 비행선으로 북극 하늘을 횡단한 아문젠처럼, 추진력과 강인한 국민성으로 유명한 바이킹 민족의 근성이 터널건설기술에도 녹아 있습니다.
[ 노르웨이 최장 도로터널인 24.5km의 Lærdal 터널내부 ]
올챙이처럼 생긴 기다란 지형의 노르웨이에서, 올챙이의 머리 바로 아래 부분에 위치한 트론헤임(Trondheim)은 인구 약 187,000명 정도이지만, 노르웨이 최초의 수도이면서 현재 노르웨이 3번째 도시이며, NTNU와 SINTEF라는 노르웨이의 최고 과학기술 기관들이 위치한 도시입니다. 트론헤임의 아름다움은 아래의 사진 한장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한탄강 계곡물처럼 짙푸른 청정수가 흐르는 Nidelva강으로 둘러 쌓인, 역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시내중심지에는 시골길처럼 이러 저리 놓여있는 길거리를 따라 푸른 나무들과 어우러진, 색깔이 제 각각인 지붕의 나즈막한 집들이 놓여있어 여느 유럽국가들과 비슷해 보입니다만, 강변을 따라 놓여있는 노르웨이 특유의 전통가옥들이 이곳이 노르웨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 트론헤임 시내 전경 | *출처: cruisecrocodile.com/cruise-port-information/trondheim-norway ]
[ 트론헤임 시내를 둘러싸는 Nidelva강과 주변 전경. 우측 상단에 2개의 탑이 솟아있는 곳이 NTNU 대학교 ]
[ Nidelva강 주변의 전통가옥 ]
트론헤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높이 124m의 Tyholt타워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이곳이 노르웨이 3번째 도시라는 것이 실감이 가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게만 보입니다.
[ Tyholt타워 ]
[ Tyholt 타워에서 내려다 본 시내 풍경 ]
트론헤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중에 하나가 바로 Nidaros성당입니다. 1300년에 완공된 이후, 노르웨이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성 올라프왕의 무덤 위에 지어진 곳이기에, 오랜 기간 동안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었습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외관으로 중세 때 지어진 교회로는 북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이며, 1814년 이후에는 국왕의 대관식 장소가 되어 현재의 노르웨이 국왕도 1991년 이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 (좌)Nidaros 성당과 주변 전경 *출처: https://www.trondheim.no/nidarosdomen | (우)Gamle Bybro *출처: http://cruisecrocodile.com/cruise-port-information/trondheim-norway]
NTNU는 노르웨이어로 Norgesteknisk- naturvitenskapelige universitet의 약자이며, 영어로는 Norwegian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라는 의미입니다. 1760년 Royal Norwegian Society of Sciences and Letters가 그 시초라고 할 수 있으며, 1910년 NTH라는 교명으로 개교한 이후, 1996년 3개의 교육기관을 통합하며 현재의 교명으로 정착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되면서, Creative, Constructive, Critical 그리고 Respectful & caring으로 표현되는 NTNU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의 꾸준한 실천에 대한 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16년에는 2개 대학과 합병하면서 14개 단과대학, 70개 학과 총 39,000명으로 노르웨이 최대의 대학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 NTNU의 Gløshaugen 캠퍼스 위치와 전경 ]
현재는 컨설팅과 강의를 하며 한국에서 지내고 있지만, NTNU에서 박사졸업 후 한국에서 생활하다 노르웨이의 자연과 여유로운 생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몇 년 뒤 다시 NTNU로 돌아가 교수생활을 하다 온 적이 있습니다.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오후 4시만 되면 애들 데리러 유치원에 가야된다고 회의 중 나가는 남녀 교수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들도 모르는 것이 있을 땐 언제든지 교수연구실을 찾아가거나 이메일을 보내 질문을 하고, 교수와 아르바이트 계약을 맺고 일을 시켜도 본인의 의견과 일정을 주장합니다. 강의시간에도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어가며 수업을 받고, 다리를 쭉 뻗은 채 앉아서 교수와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고… 처음 겪었을 때 느꼈던 문화적 충격은 엄청났지만, 그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대화를 하며 그들의 일상화 된 평등의식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일반인 한 사람이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던 최근의 우리나라 국가 시스템을 보면서, 세무서가 모든 국민의 은행계좌를 다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버린 투명한 노르웨이의 사회적 시스템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국민적 의식이 우리나라에도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노르웨이의 터널기술이 세계적이라는것 외에 아름다운 풍경과 무엇보다 글쓴이님의 글솜씨에 잘 읽고 갑니다. 40세에 새로운 도전이란게 어떤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축하드리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 꾸욱!
도시가 너무 예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