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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전자통신연구원 (RISE Acreo)에서의 연구원생활

    임장권 (neo781017)

    우리에게는 복지의 나라와 노벨상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 총 인구는 우리나라의 5분의 1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에 비해 2배 정도가 많으며 과학기술 강국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스웨덴에서 연구원으로써의 생활을 포토에세이를 통해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 스톡홀름 구 시가지 감라스탄과 노벨상 ] 저는 현재 스웨덴 전자통신연구원 (RISE Acreo)에서 Research Scientist로 근무하는 임장권 입니다. 2008년 스웨덴에 정착한 이후 본 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소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해 드리면, RISE는 Research Institute of Sweden의 약자로써, RISE 산하의 여러 국가연구소 중 전자통신 분야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는 비영리 연구기관입니다. 주요 연구분야로는 Broadband technology, Fiber optics, Micro/Nano Technologies, Power Electronics, Printed/Organic Electronics, Sensors/Actuators, System integration 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스웨덴 과학기술 발전과 정책분야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본부는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에서 북쪽으로 차로 약 13 km 떨어진 학연산 클러스터가 조성된KISTA (시스타)에 위치 하고 있습니다. 시스타 지역은 북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우며 여러 매체를 통해서 한국에도 매우 잘 알려진 지역입니다. 저희 연구소와 더불어 왕립공대 정보통신공학부 (Royal Institute of Technology, KTH)가 Electrum건물 내에 같이 위치해 있으며 학연간 자유로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 스톡홀름 내 시스타 지역의 위치 (좌)와 RISE Acreo가 위치한 Electrum 빌딩 외관모습 (우) ] Electrum내 저희 연구소는 5층과 6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 Electrum내 연구소 출입구 ] 저의 연구분야는 전력전자 분야 중 실리콘 카바이드(SiC) 반도체 소자를 이용한 고효율 전력변환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에 대해서 일해오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이 분야에 수년 동안 꾸준한 연구개발투자를 통해서 기술적 성과와 노하우는 세계적인 수준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 본 저자가 속해 있는 SiC 전력센터 (Silicon Carbide Power Center) 로고와 주력연구분야와 시스템응용분야 ] Electrum내 반도체 공정청정실에서 전력반도체 소자를 제작한 후 전기특성 측정실에서 제작된 소자에 대한 특성평가 및 분석 등을 수행하고 차세대 전력모듈 개발 등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Electrum 내 반도체공정을 위한 청정실(좌)과 연구소내 전력반도체 전기특성평가 실험실(우) ] [ 해마다 연구소 주최로 개최된 국제SiC전력소자 및 전력전자시스템 워크숍 ] 스웨덴의 다문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편이며 저희 연구소에서도 세계 각지의 연구원들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해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Asian Lunch Festival와 같은 각국 음식문화체험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이외 스웨덴 고유문화인 Fika time (coffee time)을 통해서 각자의 다른 문화를 소개 및 발표하는 기회를 갖고 연구원들 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 Asian Lunch Festival과 문화체험행사 ] [ RISE Acreo conference ] 연구원들 간의 융합연구 노력의 일환으로 해마다 1회의 RISE Acreo Conference를 개최하여 분야가 다른 연구원들을 그룹화하여 1박 2일 동안 서로의 연구분야를 공유하고 융합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발표하는 자리를 만들어 연구원들 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융합연구발표 주제를 통해서 소정의 연구개발 Seed fund를 제공함으로써 실제 연구개발까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그 외에 스웨덴을 비롯한 Baltic region에 속한 국가 들과의 EU 연합 프로젝트 등도 활발히 수행하여 스웨덴에만 국한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이라는 공통점으로 우리가 직면한 에너지에 대한 문제를 풀고 교류를 하는 프로젝트 등 많은 경험을 해오고 있습니다. [ Southern Denmark University에서 열린Green Power Electronics Project Kick-off meeting ] 한국과 달리 스웨덴에서 직장을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은 라곰(Lagom)이라는 독특한 스웨덴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균형과 절제 있는 삶이라는 Spirit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너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함’을 의미하는 이 말은 모든 사회에 전반적으로 인식되는 삶의 모습입니다. 한국은 회사의 조직이나 학교에서 늘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고 경쟁에서 이김으로써 내 삶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느낄 때 비로소 잘 살아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점이 현재 한국에서 우리 모두가 느끼는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에 반해 스웨덴은 라곰의 정서 속에서 개인의 욕심보다는 여러 이웃과 단체 내에서 함께 즐기고 어울리는 삶을 추구하고 나만이 것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정서가 개개인 가정과 직장, 학교 생활 속에서 반영되고 있습니다. 예로써 학교에서 이수가 힘든 과목이 있다면 그 과목을 이수할 때까지 학교는 기회를 줍니다. 우리의 경우 이수를 못 할 경우 F학점을 주거나 계절학기로 이수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 과목을 끝까지 이수할 때까지 기회를 주고 잘했다면 A학점을 줍니다. 이렇게 사회 속에 어울림 바로 라곰 정신은 스웨덴이 왜 복지의 나라이고 유럽에서 많은 난민을 받고 그들을 돕는 지에 대한 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연구 이외에 개인적인 활동으로는, 주말에는 스톡홀름에 위치한 한인교회에서 성가대 활동도 하고 교민분들과 일주일동안 지내왔던 생활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예배가 끝나고 한국음식을 먹기도 하고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면서 조금이나마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시간을 갖습니다. 스웨덴은 회식 문화가 없는 데 크리스마스 3주 전부터 모든 기관은 일년 중 가장 큰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번 성대하게 기획하고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합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모든 구성원들을 만나는 기회 또한 잃게 되겠지요. 눈의 나라 스웨덴, 그래서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이 오는 계절이면 Town에서는 많은 야외 행사들이 있는 데 세르겔 광장에서 각 나라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음식이나 고유 물품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합니다. [ 감라스탄(스톡홀름 구 시가지)에서의 크리스마스 파티(좌)와 스톡홀름에 위치한 한인교회에서의 성가대 활동모습(우) ] [스톡홀름에 세르겔광장에서 열린 Local Market(좌)와 Sickla 산업단지 방문(우) ]   이 에세이를 마치면서 스웨덴 RISE Acreo에서 8년간 일해오면서 느낀점은 성과를 위한 과학이 아닌, 실질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지금의 결과가 우리 사회에 적용되고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스웨덴이라는 낯선 곳에서 적응할 때가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문화적, 연구환경적 차이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그 과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기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보면 힘들었지만, 제 스스로에게 소중한 경험이었기에… 처음에 가졌던 마음가짐을 되새기면서 하루하루 연구자로써 성장해야한다는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잡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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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BOOK

과학과 인생관 (이달의 주자: 오철우)

천두슈 저

   제가 일하는 편집국 부서엔 정말 다양한 분야를 취재보도 하는 다양한 선후배 동료 기자 분들이 있습니다. 종교, 육아, 여행, 환경, 패션, 요리, 사진, 그리고 몸 수련까지, 갖가지 이야기를 전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부서에서 저는 과학 분야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주 다른 자기 분야에서 다들 열정적으로 즐겁게 일하는 기자들이 한 부서에서 지내다 보니, 인생의 즐거움은 다 천차만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물음을 던져봅니다. 저마다 인생의 문제에서 과학은 어떤, 어느 정도의 자리를 차지할까? 과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지금 시대에, 과학은 행복한 인생의 요건인 건가, 아니면 인생을 논할 때에 과학은 별개일 뿐인가?  이 책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과학과 인생관』이라는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사서 펼쳐보니 사실 그런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을 곧바로 제공하는 그런 책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 시대에 한국 사회의 독자가 읽기에는 지극히 예스럽고, 현학적이고, 또한 결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꼬리를 무는 혼란스런 주장과 반박의 연속같기도 합니다. 하긴 책이 출판된 1920년대는 양자역학도 없었고, 우주선도 없었으며, 우주대폭발(빅뱅) 우주론도 없었고, 컴퓨터와 인공지능도 없으며, DNA도 모르고 뉴런을 다루는 신경과학도 없던 시대였으며, 게다가 중국 당대 지식인들의 논쟁이었으니 거기에서 오늘의 독자가 당장에 얻을 이해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이 책은 1923년 무렵 중국 사상계에서 ‘과학과 인생관 논전’이 벌어졌을 때 논쟁에 참여한 사상가, 철학자, 과학자 등 여러 분야 지식인들의 글을 모아 펴낸 책입니다. 중국 고대사상의 전통도 알아야 하며, 서양 지식·문화를 수용하던 중에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문화의 파산을 목도하며 일어난 중국 지성계의 회의와 혼란, 그리고 격변하던 당대 중국의 정치적 상황도 알아야지, 논쟁의 복잡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사실 이런저런 이유로 당시 논쟁에 빠져들어 공감하며 읽기는 쉽지 않았습니다만, 20세기 초에 일찌감치 ‘과학과 인생관’이라는 근본 물음에 대해 중국 지성계가 불꽃 튀는 논쟁을 벌였다는 점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1923년 베이징대학교의 장쥔마이 교수가 ‘인생관’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청년들에게 과학에 기초를 둔 인생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시작된 논쟁은, 서양 과학 신지식을 들여와 중국을 개혁하려던 지식인들과 과학기술 문명과 문화의 한계를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부딪히면서 1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논쟁을 관통한 주제는 “인생관은 과학에 의해 지배될 수 있는가?”, “인생관은 과학에서 벗어난 다른 문제인가?”라는 물음에 있었습니다. 29편의 글에는 당대 과학으로 다뤄지는 물리학, 진화론, 생물학, 화학 지식이나 기술·기계 문명들, 그리고 인류 지식체계의 발전과 계통, 동양과 서양의 정신-물질문명, 더 나아가 이성과 감성의 철학적 논제들까지 다양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처음 논쟁을 점화한 장쥔마이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인생관의 특징은 주관적이고, 직각(直覺)적이며, 종합적이고, 자유의지적이며 단일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다섯 가지 특징 때문에 과학이 어떻게 발달하든지 간에 인생관의 문제는 결코 과학이 해결할 수 없으며 오로지 인류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이는 적어도 인생의 일부분은 과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절충적 주장을 제시했습니다. “인생 문제의 대부분은 과학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일부분, 혹은 가장 중요한 부분은 초과학적이다.” “인생 문제에 있어서 이지와 관련된 것은 확실히 과학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으나, 감성과 관련된 것은 확실히 초과학적이다.”(량치차오)  과학자들과 유물론 철학자들은 이런 현학과 초과학을 비판하면서 과학적 세계관의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과학의 목적은 개인의 주관적인 편견 -인생관의 최대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며, 사람들이 공인할 수 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딩원지앙)  그래서 인생관의 변화는 과학 지식의 변화와 연관됩니다. “인생관은 지식에 따라 변한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과 다윈의 인류 원숭이 기원설이 제기된 이후 인류의 인생관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만약 인생관이 직각적이고 원인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자연계에 대한 지식이 변화함에 따라 달라지겠는가?”(탕위에)  1920년대 ‘과학과 인생관의 논쟁’은 과학적 세계관이 우세한 국면으로 나아갔으며, 이 논쟁은 과학적 세계관을 중시하는 중국 문화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책의 서문을 쓴 실용주의 철학자(후스)가 내다보았듯이,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생관을 과학적 인생관으로 점차 바꾸어왔습니다. 과학 지식에 바탕을 두어 세계를 바라보는 과학적 세계관은 이제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근본 물음들이 대걔 그렇듯이 ‘과학과 인생관’ 문제는 사실 너무나 넓고도 추상적인 주제입니다. 그렇기에 과학도 날로 변화하고, 사회도 날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런 물음의 추상성은 아마도 다시 다른 논점으로 구체화하여 제기될 만할 것입니다. 1920년대에 얻으려 했던 답변과 2017년에 얻으려 하는 답변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과학’과 ‘인생’이라는 두 낱말을 함께 묶어 생각하는 일은 흥미로워 보입니다. 후스가 1920년대에도 말했듯이 많은 이들이 논쟁 대상으로 삼은 “과학적 인생관”이라는 게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두고서도 여전히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대다수가 과학이 인생문제 혹은 인생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을 뿐이지 과학을 인생관에 적용시키면 어떤 인생관이 나오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후스)  거의 100년 전에 이뤄진 두터운 논쟁의 흔적을 보다보면, 우리 시대에 과학은 대체 무엇인지, 과학과 사회는 무엇을 왜 소통하려는 것인지, 행복한 삶을 위해 과학의 유익함은 저마다의 인생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 것인지와 같은, 분명한 한 가지 답을 얻기 힘들지만 중요한 물음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인생의 문제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것은 이밖에도 여러 생각거리를 줄 듯합니다. 책을 더 파고들어 읽어보면 1920년대에 여러 중국 지성인들이 보여준 논쟁에서 그런 답의 흔적도 찾을 수 있을까요?     다음 릴레이북의 필자로, 국내 의생명과학계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브릭(BRIC)’, 즉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 계신 이강수 실장을 추천합니다. 과학 기자 생활을 하면서 생명과학계의 이슈를 볼 수 있는 브릭 게시판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지다보니, 일찌감치 이 실장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자사회 내의 소통, 과학과 사회 간의 소통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크신 분입니다. 한국에 연구자사회의 값진 소통마당으로서 브릭이 이어져온 데에는 여러 분들의 참여와 노고가 있었는데, 이강수 님은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한 분일 겁니다. 이강수 님은 학부에서 해양생물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습니다. 1998년 이래 지금까지 브릭의 소통마당을 넓히며, 가꾸며 지키는 분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브릭은 과학문화재단의 대한민국 과학콘텐츠 대상(2004년), 환경재단의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2005년), 생화학분자생물학회의 올해의 생명과학보도상(2011년), 다음세대재단의 디지털유산 어워드 본상(2012년) 등을 받은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소중한 미디어이자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실장은 “브릭에서 일하면서 연구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연구문화를 만들기 위한 과학기술 정책, 문화, 사회에도 관심을 갖고 되었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기

르네상스 공돌이

정체성에 관하여

(cjun0828 )

정체성을 영어로는 Identity라고 하는데, 선형대수에서는 숫자 1로 대각선이 채워진 행렬을 말합니다. 그래서 Identity행렬에 어떤 행렬을 곱해도 원행렬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정식에서는 항등식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정체성은 ‘동일하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누군가와 가장 일치되는 정의(definition)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또 우리 자신도 많이 옮겨다니며 살다보니,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가끔 생깁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엄청 낡아빠진, 그러나 비켜갈 수 없는 질문들 말입니다. 질문을 위와 같이 하면 괜히 답없는 철학 같으니 좀 더 자연스럽게 질문을 바꾸어 봅시다. 나는 뭘 좋아하는가? 나에게는 무슨 스타일이 가장 어울리는가? 나는 무엇에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쓰고 싶은가? 정도로 질문을 바꾸어보면,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훨씬 구체화됩니다. 이제 보다 객관적인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어봅시다. 우리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우선순위를 나름대로 매겨보았습니다. 1. 성별 (남자냐, 여자냐) 2. 나이 3. 가족(출신) 배경 4. 지역 (국가보다 좁은) 5. 문화권 (국가보다 넓은) 6. 오래토록 종사한 직업 7. 종교 위의 순위는 제가 임의로 정한 것이니, 사람에 따라 순위가 바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종교가 가장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맨 위의 두 개는 벗어나기 어려운 객관적 정체성이며, 4번과 더불어 여권에 활자화되는 정체성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사회의 어려운 문제로 등장한 정체성이 1번입니다. 확고부동하다고 생각되던 성별 정체성의 문제가 흔들리니,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도 당사자들 못지않게 크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1번에 대해서만 간단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남녀의 차이에 관하여는 “화성… 남자, 금성… 여자”를 비롯하여 무수하게 논의된 주제이지만, 여전히 깜깜합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어느 한쪽일 뿐, 두쪽 모두에 속하지 않으니까요.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최근에 결혼한 젊은 직장동료가 있어 그에게 주제 넘게 결혼생활을 조언한 일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한가지만 알면 상당히 유용할거야. 내가 결혼생활 사반세기를 넘게 지내오며 이제야 득도한 것이지!” 라며 거창하게 시작했습니다. “여자는 큰 일은 작게, 작은 일은 크게 생각한다.” 저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너가 오늘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여보, 나 오늘 해고되었어!’ 라고 말하면 아내는 너를 위로하며 ‘괜찮아! 아직 젊으니까 또 다른 직장을 찾으면 되지 뭐!’라고 답할거야. 하지만 발렌타인 데이에 장미 한송이를 안사들고 들어가거나, 떨어진 양념 하나를 사들고 오라는 부탁을 잊고 그냥 퇴근한다면 오늘 저녁 아마 평화롭게 식탁에 마주 앉기는 어려울거야!” 벌써 자주 당해봤다는듯, 그 친구가 파안대소하며 묻더군요. “여자들 머리는 도대체 어떤 논리로 작동되나요?” 저의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큰 일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이지! 하지만 작은 일은, 너가 할 수 있는데도 안했다는 것이야. 괘씸하고 나이브하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 친구는 자칭 동양의 도인에게 두 손을 모아 경의를 표하고는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습니다. 한 번은 미국에서 아내와 함께 자동차를 사러 간 적이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큰 구매는 집을 사는 것이고, 두번 째가 차를 살 때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딜러의 성능스펙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딴전을 피던 아내는 시승운전을 하는 중요한 순간에 커피잔 놓을 데가 마땅치 않다는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성격 급한 저의 입에서 핀잔이 바로 튀어나왔습니다. “이 사람아! 커피는 수족관 놓인 지하다방에서나 마셔! 차는 달리는 기계니까 엔진성능이 중요하다니까?” 곧이은 아내의 반격에 참패 후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커피 받침대 디자인까지 신경 쓴 차가 왜 엔진이 나쁘겠어? 차에서 엔진은 기본이야. 좋은 차와 나쁜 차는 디테일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지! 당신 엔지니어 맞아?” 그날 이후로 저에게도 큰 일은 작게, 작은 일은 크게 보려는, 여성화가 진행중입니다. 갑자기 페니니스트인 척 하려니 얼굴이 좀 간지럽군요. 저는 페미니스트도, 마초이스트도 아닌 휴머니스트입니다. “할 수 있는 일부터 잘하자!” 라는 구호로 가장 중요한 1번 정체성의 이슈가 정리되었습니다. 사실 직장생활하다보면, 곧 인사이동이 있을 것이라는 둥, 조직개편 예정이라는 둥 온갖 ‘큰 일’들이 루머로 돌아다녀서 모두가 손을 놓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와 관계없이 자기가 할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답인데 말입니다. 아마 5.16 이래 최대의 ‘큰 일’인 탄핵정국 아래에서 5천만이 몇 달 동안 그렇게 일손을 놓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와야죠. 탄핵 같은 ‘큰 일’은 국가적 운명이라면, 투표 같은 ‘작은 일’은 성인국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 꼭 해야죠.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확실하게 챙길 때 우리는 실수하지 않고 탄탄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제 서빙 로봇 시대가 온다는데, 로봇에게도 성적 정체성을 심어두려나요? 아마도 네비게이션에서 선택가능한 목소리처럼 버튼 하나로 성별과 나이설정을 바꿀 수 있겠죠? 이 경우의 정체성은 Identity가 아니라, Multiple choice가 되겠군요. 절대로 도구와 존재를 착각하지 않는 과학을 하자는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4월이 잔인한 달이 아니라, 주위와 우리 마음 속 어디에나 꽃이 만발한 진정한 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물 속에 잠겨있는 아이들도 빨리 올라와 이제는 제 갈 길을 갈 수 있고, 가족들도 그들을 사랑과 눈물로 배웅해줄 수 있는 유종의 4월이 되길 기원합니다. 자세히 보기

연구실 탐방

[Rochester Uni] Nehrke Lab

  University of Rochester는 뉴욕 주 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Rochester에 있는 종합사립대학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Eastman School of Music이 있어 더 유명합니다. 뉴욕 주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이 길고 눈도 많이 오고 추운 편이지만 장점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차를 타고 두 시간이면 볼 수 있고, 거기서 두 시간 더 운전하면 캐나다 토론토까지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Keith 교수님은 1994년University of Rochester에서 transcription termination complex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같은 대학에서 postdoc을 마치고 1997년부터 연구교수로 Dr. James Melvin Lab에서 mammalian physiology를 연구했습니다. 이 때부터 C. elegans (예쁜꼬마선충)에 흥미를 가지게 된 교수님은 2002년부터 조교수로 부임하며 기존 단일세포를 이용한 이온채널연구에서 C. elegans를 이용한 개체수준에서의 연구를 수행하는 지금의 실험실을 시작합니다. Keith Lab은 University of Rochester에 Department of Medicine 그 중에서도 Nephrology에 소속되어 있으며, 실험실 구성원으로는 매니저인 Teresa 와 박사과정 Rachel, 박사과정 Salvador가 있지만 Salvador는 곧 졸업논문이 통과되어 의사가 되기위해 의대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연구학점을 받기위해 실험실에서 연수 중인 학부생 Funmi와 Stephanie가 있습니다. Keith 교수님의 mammalian physiology와 C. elegans 연구경험은 우리 실험실의 큰 장점으로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여러 다른 실험실과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2-1) C. elegans을 이용한 이온채널 연구 우리 실험실은 C. elegans를 이용해 다양한 이온채널 (ion channel)을 연구하고 있다. 모델동물인 C. elegans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최근 CRISPR/Cas9 gene editing기술의 발전으로 쉽고 단기간에 형질전환동물을 만들 수 있고 몸체가 투명하여 살아있는 상태에서 이미징이 가능합니다. 이 두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 칼슘, pH, redox status등을 모니터 할 수 있는 새로운 형질전환동물을 만들어 그 동안 연구에 활용해 왔습니다.  2-2) 미토콘드리아의 이온채널과 UPR 연구 최근에는 미토콘드리아의 이온채널과 mitochondrial unfolded protein response (UPR)에 대해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며 특히, 이 분야에 대가인 Dr. Cole Haynes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대사와 칼슘조절, 세포사멸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손상된 미토콘드리아는 Parkinson’s disease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미토콘드리아 내에는 손상을 막기 위한 mitochondrial UPR, mitochondrial proteome, antioxidant enzyme 등의 다양한 방어 체계가 있으며 우리 실험실에서는 mitochondrial UPR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토콘드리아 내에 unfolded protein나 손상단백질의 축적으로 인한 스트레스 연구가 관심을 받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C. elegans에서는 미토콘드리아에 unfolded protein스트레스가 수명을 증가시킨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우리 실험실에서는 산소 1% 이하의 hypoxia 에서 유도된 mitochondrial UPR이 hypoxia 손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Keith 교수님은 사냥과 낚시를 좋아하며 어느 자리에서나 유쾌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이끄는 멋진 남자입니다. 실험실에서는 항상 커피를 권하며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고 자상하며 인간적입니다. 하지만 미팅에서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데이터를 상당히 꼼꼼히 체크합니다. 실험실 분위기는 정말 가족 같아 서로서로 도와주고 잘 챙겨줍니다. 매주 월요일 1:1 미팅이 있으며, 한 달에 한번 전체 미팅을 가집니다. 그 외에도 교내에서 C. elegans를 연구하는 실험실들이 모여 매달 미팅을 열고 있어 이를 통해 다양한 연구주제와 연구기법을 배울 수 있고 필요한 돌연변이나 시약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 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마우스실험실과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므로 필요에 따라 수시로 미팅이 열리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실험실은 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 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실험을 통한 과학지식을 나누는 봉사활동을 매년 하고 있습니다. ■ 주소  : DEPARTMENT OF MEDICINE NEPHROLOGY DIVISION BOX 675,          UNIVERSITY OF ROCHESTER MEDICAL CENTER, 601 ELMWOOD AVENUE,          ROCHESTER, NY 14642 ■ 전화  : (+1) 585-273-4835 ■ 홈페이지 : WWW.NEHRKELAB.COM ■ 오시는 길 : Greater Rochester international airport에서 Strong Memorial Hospital까지 차로 10분가량 걸리며 실험실은 병원건물3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물이 크고 미로처럼 복잡해 처음 오시는 분은 찾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아래 지도를 참고하여 중앙에 보이는K-307 conference room 맞은편을 찾아오시면 됩니다.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