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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우간다, 쿠미-골리'에서의 노래
황의두 (drbanaba)지난 4.5년의 시간 동안 우간다에서 의료 봉사자(전문인 의료선교사)로의 삶을 돌아 보고, 그들의 삶의 기쁨과 슬픔, 한계를 나누고자 이 글을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흉부외과 전문의로 근무하던 중, 학생때부터 꿈꾸어 왔던 '아프리카 의료 봉사자의 삶'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문인 의료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4년 반 동안,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찾아간 곳은 동부아프리카 우간다 입니다. 우간다는 NGO단체들이 모금을 할 때 많이 등장하는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엔테베 작전과 폭군 이디 아민, 에이즈와 말라리아 등으로 더 잘 알려진 나라입니다.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였고, 국토의 면적은 남북한 합친 것 보다 약간 큰 약 23만 평방 킬로미터 이며, 인구는 약 3,500만 정도 입니다. 주식으로는 옥수수와 카사바, 콩, 수수 등으로, 인접 국가로 탄자니아, 케냐, DR콩고, 르완다, 남수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요즘도 주위 국가의 내전이나 기근 등으로 인한 난민들이 많이 유입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대통령은 80년대 내전을 종식 시키고 약 26년간 최고의 권력자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치안과 경적적으로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 보다 다소 안정적입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담수호 빅토리아 호수가 있는 곳, 그곳에서 시작하여 지중해로 흘러가는 Nile강이 시작되는 곳, 바로 우간다입니다. 》 쿠미에서의 노래 KUMI라는 지역은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약 30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우간다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일찍이 한국기아대책기구에서 여러 사업들을 하고 있는 지역으로, TESO 부족이 사는 지역입니다. 참고로 우간다는 약 50여 부족이 합쳐서 이룬 나라입니다. 그만큼 언어도 많은데, 공식언어는 영어입니다. 1999년 8월 31일에 개교한 쿠미대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한국기아대책기구(IDI,국제개발원)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어린 아이들과 지역사회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시장에 들러 푸른 채소, 과일과 여러 옷가지를 사는 것이 정말로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목공소를 들러 책상과 의자를 만들고, 그 좋은 원목으로 호사를 누리는 시간들도 좋았습니다. 목수 JOHN과 ISU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 같이하면서 친구로 지내며,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와 나를 도와주던 IKARA ROBERT와 MORUIKARA, 숙소를 같이 지어준 Builder JOSEPH과 그 일당들, 덩치 큰 ECODU 또한 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건강히 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쿠미대학교 의과대학 설립을 위한 지역 설명회(2012. 06. 04. KUMI UNIVERSITY) / 우간다 한국 대사(박종대)와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학교, 병원, NGO 및 지역 유지들이 참석하여 많은 관심을 표하였다 ] [ 무거운 물건들을 내리는 지게차나 크레인이 없어 직접 사람들이 힘을 모아 내린다. 장비를 불러오는데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이런 시골에서는 큰 나무에 컨테이너를 단단히 묶어 놓고 트레일러를 그냥 내달린다. 그럼 뚝 떨어진 그 컨테이너는 그 자리가 평생 그의 자리가 된다 ] 2011.11 ~ 2014.04의 기간 동안 쿠미 프로젝트 팀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과대학이 허가 받지 못했습니다. ( 최종적으로 쿠미대학에서의 의과대학 설립을 위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왜? 의과대학 설립 인가를 얻지 못한 점을 생각해 보면 준비의 미비한 점도 있었지만, 외국의 선교단체가 의과대학을 운영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우간다에는 4개의 국립의과대학과 1개의 사립의과대학이 있습니다. 매년 200~250명의 의사가 배출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반은 외국으로, 나머지 반은 캄팔라에 남기를 원하기 때문에 실상 시골지역까지 의사가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Tisai 섬에서의 진료 [2013.09] 쿠미대학교 클리닉에서 Tisai 섬 주민들을 위하여 연 2-3회 이동 클리닉을 준비하여 보건교육 및 진료를 실시하며,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클리닉으로 초청하여 수술을 시행합니다. 이곳 섬의 크기는 2평방키로미터 정도이며, 인구는 약 1,500명 정도 거주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약 150명 정도로 유치원, 초등학교에 갈 아이들입니다. 생활은 육지의 삶에 비하면 너무나도 힘든 생활이며, 주로 소를 키워 우유를 생산 하거나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의 대부분은 숯을 구워 팔아 생활합니다. 초등학생들이 갈 학교가 없어 어린아이들은 그냥 배외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들에게 학교와 클리닉이 필요하며, 진료 할 수 있는 의료진과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지요. 아래는 보건교육과 약국 준비 진료실 모습입니다. 방은 손님들이 오신다고 소똥을 새로 발라서 새파란 바닥으로 냄새도 상큼했습니다. 1박 2일의 진료를 마치고 저는 말라리아를 얻어 돌아왔습니다. (1주일 뒤 집에서 말라리아로 고생하였지요) [ 보건교육(물 관리와 가족 계획 및 피임에 대한 교육) 중인 현지 스텝들 ] [ (좌) 급조된 약국 / (중) 움막에서의 진료모습 / (우) 우리들의 숙소(소 똥으로 깨끗이 마감한 바닥) ] [ 손님이 직접 노를 저으면 뱃삯은 1/3 가격 ] [ (좌) 150여명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전부. 이나마 유지 할 여력이 없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 유치원과 초등학교, 환자를 위한 클리닉을 세우고자 준비하고 있다 / (우) 무엇인가 쓰여진 칠판, 교실 바닥은 모래 바닥 ] [ 대덕교회 청년부가 방문하여 아이들과 캠프를 가짐 ] MORUIKARA, KUMI [ 우리가 살던 모루이카라 / 예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 쿠미, 모루이카라에 있는 아름다운 집. 아침이면 새들이 잠을 깨우고, 닭들의 홰치는 소리에 잠을 설치던 그 곳 모루이카라 ! 코스모스가 일년에 두,세차례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 다른 꽃들 또한 시샘을 하며 많이들 피어 주었습니다. 고양이가 병아리를 몰래 잡아 먹고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고, 김목사님댁 수탉과 이쪽 동네 수탉과의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지기도 했던 전쟁터 모루이카라. [ 나의 살던 집(BANABAHAS HOUSE) / 현지인과 함께 같이 설계하고, 정원을 꾸미고, 꽃씨를 뿌려 정말로 애착이 가는 집. 문을 열면 꽃들과 그 사이에 아주 작은 새들이 집을 짓고 살림을 한다. 고양이들은 그 새집의 알을 먹고 싶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곳이 많이 그립다 ] [ Toilet paper / 어릴 적 시골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우리 집 뒷간(화장실)을 종종 이용하셨는데, 호박 잎을 몇 장 준비해 들어가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 물 긷는 아이들, 그리고 일상 [2012.06] 모루이카라에는 우물(Borehole)이 하나 있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길어다 식수를 해결합니다. 물을 긷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이거나 어린아이로, 성인남자의 경우는 아주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도 자기의 능력에 맞는 물통을 준비하여 물을 긷습니다. [ Jerry can / 우간다, 아니 아프리카의 모든 가정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물건 중에 하나 (독일에서 1930년대 20리터 연료를 담기 위해 만들었던 통이며, 현재는 연료나 물을 담기 위한 통으로 이용됨). 어린 아이로부터 성인 남자까지 동네의 대부분 사람들이 이곳을 하루에 한 두번씩 들른다 ] [ 시골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 [ (좌)고구마 농사를 지어 팔려고 준비하는 농부들. 쿠미의 일상은 우리네 농촌과 흡사하다 / (우) 땡볕에 앉아서 돌을 깨는 형제. 오늘은 얼마나 깨야 하나 ] 》 골리에서의 노래 제가 본격적으로 수술을 행하며 의사로서의 시간을 보냈던 곳입니다. 이곳은 WEST NILE로 우간다 서북쪽의 끝단, DR콩고와 접경지역입니다. 표지판 저 넘어가 콩고입니다. 골리헬스센터는 1947년 AIM(아프리카내지선교회)에서 조산원으로 처음 시작하였으며, 1993년 10월 김**간호사 선교사님이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70병상 규모의 병원급으로 성장하였습니다. [ GOLI HEALTH CENTRE / Since 1947 ] [ (좌) 초창기 모습. 초가 지붕에서 진료를 했다 / (우.상) 현대식 건물의 등장. 공중보건을 위한 건물과 사무실 / (우.하) 새롭게 응급실 건물을 준공하고, 현재는 사용 중 ] 위 사진의 좌측 건물(수술실)은 자이카의 도움으로 지어졌으며, 2개의 수술실과 준비실, 회복실 등 비교적 잘 갖추어진 수술실로 전기 소독기와 오븐, 증류수를 만들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신마취 하에 수술을 할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춰져 있고, 더욱이 정전에 대비하여 쏠라를 이용한 전원까지 갖추고 있어 언제든지 응급으로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가난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여 기금 마련을 통해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또한 Uganda PMCI를 통하여 만불 상당의 검사장비를 구비해 일반혈액검사와 간기능검사까지 가능한 현대식 장비를 사주었는데, 검사를 시행하지 않아 물어 보니 검사 비용이 없다하여 검사를 위한 기금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도움을 주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만, 할 수만 있다면 해야겠지요. 사진의 우측 건물은 산모를 위한 병실로(분만실과 입원실) 한달에 약 40-50건의 자연 분만과 5-6건의 제왕절개 수술이 행해집니다. [ (좌) 분만을 위하여 입원한 산모들과 함께 / (우) 골리 헬스 센터 수술실 스텝들과 ] 많은 여성들이 보통은 20세가 되기 전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장 어린 산모의 경우 14세가 있었습니다. 우간다는 결혼을 하려면 남자가 여자의 학력 정도나 집안의 위치에 따라 다오리(지참금)를 지불해야 하기때문에 정식 결혼을 하지 못하고 살림을 차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염소 몇 마리로부터 소 몇 십 마리까지 아주 다양하다고 합니다. (다오리를 지불하지 않은 경우, 시집가서 애를 낳고 살아도 친정부모님이 데려가면 할 말이 없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여자나 남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우간다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병동 건물 / 입원실로 소아 입원실과 성인 입원실로 나눠져 있으며, 결핵 및 감염 환자 격리를 위한 격리 병실 및 개인 병실도 준비되어 있음 ] ADUSI 진료 [2012.02] 아두시라는 콩고 접경의 시골동네 초등학생들을위한 건강검진 및 진료가 있어 동행을 하였습니다. 컨페션에서 후원을 해주면서 골리헬스센터에 위탁함으로 이루어지는 진료로서, 2주에 한번씩 토요일에 진행됩니다. 시골지역 아이들의 성장상태와 급성기 질환 및 선천성 질환을 발견하여 조기치료에 도움을 주는 아주 유용한 프로그램입니다. [(좌) 진료가는 길 / (우) 찰스와 김**선교사님의 진료 ] [(좌) 마냥 즐겁기만 한 여자 아이들. 고무줄이 없어 풀을 엮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 (우) 머리를 깍고 있는 남자아이들. 가위를 이용하여 보지도 않고 이발을 하는 능숙한 이발사로 변신! 손님은 귀가 걱정이 되는 듯 귀를 가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 좀보헬스센터 [2015.05] 시골동네 골리에서 1시간 이상 더, 시골로 가야하는 좀보라는 지역은 생활 환경과 의료시설이 열악하기 짝이없습니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씩 진료팀이 방문을 한답니다. 그곳에서 필요한 수술도 하고 마취가 필요한 경우, 골리헬스센터에 입원하여 수술을 시행합니다. 많은 환자들이 감염에 의한 농양과 선천적인 질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의사를 볼 수 없는 지역이다 보니 의사를 처음 보는 환자들도 많습니다. [ (좌) 병원의 전면 / (우) 외래 진료실과 사무실 ] [ (좌) 병원 입구에서 먹거리를 팔고 있는 여인들 / (우) 입원을 위한 준비 물품들. 장작, 물통, 냄비, 몇개의 그릇, 돗자리, 양식 등 ] 한 집에 환자가 생겨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경우에는 집안 식구 모두가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좀 심한 경우는 기르던 가축까지 모두 데리고 옵니다. (개, 닭은 물론이고 염소도 따라옴) 아버지가 아프면 엄마는 밥해 주려고 따라오고, 엄마가 가니 아이들은 자동으로 따라 붙고, 그러면 가축을 돌볼 수 없으니 가축도 데리고 가야지 … 이렇게 되는 겁니다. 입원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도 여러가지가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속옷 몇가지만 챙기면 되지만 아프리카 시골의 경우에는 대부분 밥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취사도구를 모두 가져가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불이 필요하니 장작도 가져 가야지요. 물이 필요하니 물통도 가져가고, 이불도 가져가고, 바닥에 깔 돗자리도 가져가고…. 아이고. 집안 살림 모두를 갖고, 잠깐 병원으로 이사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가는 아이들은 병원에서 등교합니다. [ (좌.상) 부엌에서 아침 밥하는 중인 아줌마 / (우.상) 콩 소스를 위해 오랫동안 삶는다 / (좌.하) 단출한 주방 기구 / (우.하) 불을 피우기 위한 장작들 ] [ 모두 모여 앉아 먹는 아침 ] 주식으로 옥수수 가루로 만든 POSHO and BEAN SOUCE, 또는 카사바 가루와 수수가루를 이용하여 만든 빵을 먹습니다. 끼니는 대부분 2끼를 먹는다고 합니다. 아점과 늦은 저녁을 먹고, 전기 사정과 문화 생활을 할 만한 것이 없어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위장관 질환 중에는 역류성 식도염 증상과 위염, 위궤양 증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 타고 다니던 TOYOTA LANDCRUSER 2001년식과 초가집, 자전거 /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 (좌) 병실의 모습. 모기가 많아 모기장이 항상 필요, 아직도 말라리아가 단일 질환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1년, 약 100만명 가까이) / (우) 오늘의 수술팀> ] [ (좌) 수술 준비 시작 / (중) 수술 준비 완료 / (우) 수술시작. 서혜부와 복부 허니아가 주 대상. 부분마취로 하다 보니 환자의 발가락에 힘이 들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 Sorti Hospital 에서의 초빙 수술 [2015.09] 코이카 단원을 통해 수술적 도움을 요청 받았습니다. 미국 정형외과 의사와 시골진료를 갔다가 발견한 환자라는데, 복부에 생긴 탈장이라고하여 쉽게 생각했습니다만, 막상 수술 당일 환자를 보니 심한 간경화로 복수가 많아 수술이 쉽지 않았습니다. 병원의 모든 의사를 비롯해 병원장까지 나와 수술을 참관하겠다 했는데, Mesh(수술할 때 사용하는 보강 재료)를 대고 하는 탈장수술을 처음 본다 했습니다. 수술은 무리없이 잘 끝나 다행이었습니다. [ (좌) 수술 / (우) 재정보고 ] 골리헬스센터 송별회 [2016.04] 2년간의 수술실 전임 사역을 마치고 5월이면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있어 헬스센터에서 송별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좀 쑥스럽지만 그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송별회 ] [ 골리병원 직원들 ] [ 같이 일했던 분들과 떠난 케이프타운 희망봉 /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그곳, 희망봉에서 희망을 봅니다 ] 제가 다니던 길 입니다. 국립공원을 통과하는 약 120km 되는 거의 일직선의 길입니다. 가다보면 바분이(원숭이), 엄청나게 큰 코끼리, 나일강의 하마, 영양 가젤, 또 다른 종류의 원숭이들, 여러 종류의 새들을 봅니다. 이 길을 지날 때면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잘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왜? 이 길 위에 있는가? 늙은이와 젊은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요. 누군가의 설명입니다. 늙은이는 늘 그런 사람이라고 합니다. 젊은이는 항상 자기에 대해 묻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하는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가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가' 또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그들과 함께, 그 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는 그 땅에서 그들과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그들과 같은 땅을 밟고, 같은 길을 다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보고 싶고, 불편했지만 행복했던 그 시간들이 그립습니다.
RELAY BOOK
지구의 속삭임 (이달의 주자: 이명현)
칼 세이건 저
오래 기다리던 책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라고 출판사에 강력하게 제안한 것이 아마 15년 전 쯤 일겁니다. 바로 <지구의 속삭임>이라는 책입니다. 칼 세이건과 그의 동료들이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에 실어서 보낸 ‘골든 레코드’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기록한 책입니다. 보이저1호와 2호가 발사된 때가 1977년이고 이 책이 발간된 것이 1978년의 일이니 거의 40년 만에 한글로 번역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독자를 만나게 된 셈입니다. 1977년 8월 20일에 보이저2호가 발사되었습니다. 탐사 경로 때문에 보이저1호는 2호보다 늦은 9월 5일에 발사되었습니다. 태양계 내의 거대 기체행성들을 탐사하는 것이 보이저 탐사선의 주된 목표였습니다. 보이저1호와 2호가 보내온 목성, 토성, 천왕성 그리고 해왕성의 사진은 우리들의 인식 범위를 태양계 외곽으로까지 넓히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던 이들 외행성에 대한 이해가 커졌고 이에 따라서 태양계의 형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도 높아졌습니다. 보이저1호와 2호는 이들 행성탐사를 마친 후 태양계 외곽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보이저2호는 전기 동력이 다해서 지구로 신호를 보내지 못한 채 여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보이저1호는 아직 지구로 신호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2020년대 중반 쯤이면 보이저1호의 신호도 끊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이저1호는 현재 지구로부터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의 135배나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습니다. 인류가 만든 인공물 중 가장 먼 거리까지 간 물체입니다. 하지만 태양계의 끝인 오르트 구름에 도달하려면 아마도 3만년은 더 날아가야 할 것입니다. 보이저1호와 2호에는 흥미로운 물건이 하나 실렸습니다. ‘골든 레코드’입니다. 금박을 씌운 구리 LP판 3장이 케이스에 담겨서 보이저 탐사선에 부착된 것입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제작된 골든 레코드에는 지구를 대표하는 여러 가지 상징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지구를 대표하는 사진 118장이 포함되었는데, 태양계의 위치 지도를 비롯해서 태양과 태양계의 구성원에 대한 사진들이 포함되었고, 젖 먹이는 엄마를 비롯해서 인간에 관한 사진들이 여럿 포함되었습니다. 기차나 공항 사진은 넣었지만 전쟁이나 종교와 관련된 사진은 제외되었습니다. 지구를 대표하는 음악 27곡도 수록되었습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의 작품들이 포함되었고, 일본이나 페루 같은 여러 나라의 음악도 지구를 대표해서 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음악은 선택 받지 못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 55개도 녹음되어서 수록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도 들어있습니다. 지구를 대표하는 소리 19개도 수록되었습니다. 화산, 지진, 천둥 소리로부터 침팬지의 목소리 그리고 엄마와 아기의 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구의 소리가 포함되었습니다. 골든 레코드는 외계지적생명체를 향한 지구인들의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광활한 우주에서 이 작은 인공물체가 외계인을 실제로 조우할 확률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보이저 골든 레코드는 1977년 당시 지구인의 일부를 대표하는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만든 지구인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지구인들 자신을 위한 타임캡슐이라고나 할까요. 칼 세이건을 비롯한 골든 레코드 기획자들은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골든 레코드를 제작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한편 숱한 어려움과 방해를 헤쳐나아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지구의 속삭임>은 40년 전 쏘아올린 현재의 우리를 위한 우리들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책입니다. <지구의 속삭임>은 인류가 멸종해도 우리들의 모습을 간직한 채 우주 공간 어느 곳을 떠돌아 다니고 있을 우리들의 유서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소중한 우리들의 모습을 <지구의 속삭임> 속에서 만나보길 권합니다. 제가 추천하는 다음 주자는 정인경 박사님입니다. 대학교에서는 수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에서는 한국과학사를 공부했습니다. 정박사님은 "한국의 문화적 토양에서 '과학기술하기'가 연구 주제이면서 삶"이라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 <과학을 읽다> 같은 멋진 책을 쓰셨습니다. 좋은 과학책을 쓰고자 노력하고 계시는 정인경 박사님을 추천합니다.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