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사회, 수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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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에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인간적 한계를 넘어가버렸다. 몇 달 전부터 서서히 드러나 이제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최선생님' 사건 때문에, 나 역시 많은 사람들처럼 한달 이상을 멘붕에 빠져 있다. 동어반복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뉴스를 봐도, 인터넷을 읽어도 이 추락의 심연은 어딘지 알 수 없으니 아직까지도 자유낙하 중이다. 분노와 수치심, 그리고 허탈감… 누군가 나에게 외국에 살고 있으니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외국에 있기에 더 창피하다. '자동차도 휴대전화기도 잘 만든다고 우쭐해하더니, 역시 아직은 미개한…'이라는 시선으로 외국인 친구들이 나를 보는 것 같다. 더 황망한 것은, 아무 잘못된 일에나 그들의 이름을 가져다 대봐도 방정식이 거의 모두 풀릴 지경이라는 것이다. 사실은, 세월호 사고의 대응 방식이나 구조상황, 그리고 인양작업을 지켜보면서 외국인 친구들보다 내가 먼저 확신했다. 아직은 갈 길이 먼 나라라는 것을…. 우리나라 보수는 이렇게 허접해도 여태껏 장사가 잘 되었다는 것이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많이 가진 자들이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보수를 찍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가진 것 한 푼 없는 수많은 사회 저변층마저도 '1번'을 무조건 찍으니, 분단이 지속되는 한 종북장사는 앞으로도 한동안 재미를 볼 것이다. 무수히 쏟아진 동어반복을 피하고 핵심만 이야기한다면, 대책은 간단하다. 지금이라도 여당은 정식으로 하야를 건의하고, 거국내각 구성권을 야당에게 넘겨야 한다. 더 나아가, 다가오는 대선에서 여당은 후보를 내지 않고 야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어차피 여당은 대선에서 이길 수도 없으며, 이겨도 안된다. 최선생님댁을 청소하다가 언제 그 집 마당에서 또다른 지뢰가 터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즈음 한국 내 시국사건 때문에 이런저런 뉴스를 뒤적거리는 시간이 엄청 늘어났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한국민들의 생산성은 최소 한 달 동안 거의 제로상태이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사정없이 클릭질을 하다가 다다른 여러 가지 뉴스들에서는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들이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하는 주민들 이야기, 또 교회라고 말할 수도 없는 해괴한 교회의 목사가 혼외자식과 유전자가 일치하는 판정이 나온 후,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주장하는데도, 그 교회에 여전히 출석하는 교인들이 목사를 옹호해주는 이야기, 프로 야구 선수들이 브로커들과 짜고 승부를 조작해 불법 스포츠도박으로 돈을 벌려했던 이야기들이다. 물론, 백남기님의 주치의가 내린 '정말 과학적인' 사망진단서 이야기도 있었다. 죽은 사람의 직접 사인은 누구나 '심폐정지'일 것이다. 어쨌든 그 아파트 갑질주민도, 그 교회 교인도, 그리고 그 야구단 선수도 어쩌면 광화문에 나가서 열심히 외쳤을지 모른다. 마치 필자가 박사모가 되어 그 분을 두둔하려 하거나, 광화문 평화집회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 사회에 떠돌던 병폐적 우주의 기운이 푸른 기와집에 모여 화산처럼 폭발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아주 어려서부터 '빽'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하다못해 좋은 병원에 수술 예약을 해도 누군가를 알아야 날짜가 당겨졌다. 그리고 왜, 간단한 수술조차 최고의 의료진을 가진 병원만 찾는지도 정말 의문이다. 이렇게 비판적인 청년기를 보냈지만, 장년기에 이르면, 흉보면서 (조금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닮은 그 삶의 방식이 우리 속에 똬리를 튼다. 그렇게 사회에서 한자리씩 잡은 장년들에 의해 접대가 일상이 된 사회에 김영란법 같은 규범이 던져지니 다들 폭탄 피하듯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는 모양이다. 개발독재 시대의 역사는 기술자들이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낮이 아니라, 접대와 거래가 서로를 애무하는 밤에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이제 그 끝판왕이 정상에 서서 추악한 깃발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이번 일을 "내 탓이오!" 같은 감성적 물타기로 해결해서는 안된다. 그저 기생충을 박멸하듯 바닥을 뒤집어 탈탈 털고, 햇볕에 말려야 한다. 일부가 몰래 숨어서 햇빛 대신 비를 부르는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면, 그 굿판도 찾아내서 부수고 엎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인정해야 할 일은, 이런 전횡이 아직은 여린 우리 민주주의의 모습이며, 한국사회의 민낯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 마음 속 깊게 도사린 각자의 최선생을 몰아내야 한다. 큰 집이나 좋은 차보다, 마음이 떳떳한 것이 우리를 더 행복하고 활기차게 해줘야 한다. 물론 이런 사회를 만들려면 최소한의 복지는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그래도 그 와중에 분명히 긍적적인 부분도 있었다. 무력충돌 없이 가두시위가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진영논리에서 잠시 벗어나 우파 언론들도 진실 밝히기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권력의 추가 행정부에서 국회로 많이 기울었다는 것도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언론이나 시위 등 여러가지가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혼란을 더 부추기는 면이 있지만, 뉴턴의 '관성의 법칙'에 따라 지나침은 한동안 계속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문제는 위로만 올라가려는 수직사회에서 생긴 전형적인 문제다. 더 높은 보직을 위해 받아 적기만 하느라 질문도 없고 영혼도 없는 관료들, 좀 더 부자가 되면 남들이 자기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사업가들, 연구보다는 보직에 관심이 많은 연구원들은 모두 수직사회의 일등시민들이다. 그러나 올라가기만 하면 추락이나 급강하를 피할 길 없다. 이제 우리는 위로 올라갈 생각만 하지 말고, 옆으로 넓혀보자. 옆으로나 앞으로 가다보면, 지구는 둥그니까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 이른바 선순환(sustainable)이 가능한 것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가보는 것으로 성공을 정의하는 사회를 만들자. 남이 안 알아줘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 애쓰고, 대세나 트렌드가 아닌 일을 두려움 없이 해나가는 사람이 수평사회의 시민이다. 소용돌이가 모두를 삼킬듯한 폭풍 속을 빨리 벗어나, 저 멀리까지 가보자고 코세니안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전무후무한 위기가 오히려 우리 사회의 근본적 혁신을 이루는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을 믿는다.
더 멀리 가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아프면, 아프고 나면 큰다는 말을 하지요.. 진통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성숙한 대한민국으로 자리잡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