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정말 기여했는지, 아니면 자연친화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인생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해봅니다. 요즘은 과도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묻지마 발명”과 “묻지마 연구”가 횡행한다는 느낌입니다. 나중에는 인공지능 로봇과 복제인간들이 우리 삶을 대신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해봅니다. 정말 과학기술이 인간 삶을 더 좋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느냐는 답변으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소아마비에 걸렸던 어릴 때 친구들이었습니다. 학교다닐 때 한 반에 한 명 정도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런 친구들 숫자는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호기심 충족만이 아니라, 훌륭한 발명으로 순기능을 했다고 믿습니다.
독자들은 무엇이 과학기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보통 전기가 1번으로 많이 언급되고, 먹는 피임약도 빠지지 않습니다. 피임약은 여성인권과 인구제한을 통한 식량과 질병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고 합니다. 수세식 양변기도 보건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인간을 움직이게 해주는 굴러가는 바퀴보다 위대한 발명이 있으면 나와보라는 목소리도 큽니다.
하지만 필자가 1번으로 꼽는 것은 옷감입니다. 누에의 똥과 양의 털 그리고 목화의 꽃같이 허접해보이는 먼지뭉치를 풀어서 실을 만들고, 그 거미줄보다 변변치 못한 실을 다시 엮어서 옷감을 만든 것 말입니다. 이제는 나일론을 거쳐 고텍스, 기능성 섬유에 이르기까지 발전한 천(fabric)은 정말 위대한 발명입니다. 매일마다 벗어던지는 양말이나 속옷은 백 번 이상 세탁해도 여전히 입을만합니다. 몸에 난 털이 짧아 외부온도에 약한 인간은 반드시 옷을 입어야 하는데, 이 옷을 만드는 천이 너무 튼튼해서 인류는 의식주 중에서 맨 앞에 나오는 ‘의’는 확실히 극복했습니다. 튼튼하다보니 버려진 옷들도 입을만 해서, 아사 직전의 빈국 사람들이나 전쟁 피난민들 사진을 봐도 의복만큼은 크게 험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그들이 처한 어려움이 혹시 엄살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생길 지경입니다. 이제 옷은 보온기능을 넘어 자신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튼튼한 청바지를 찢어 구멍을 내고는 인습으로부터의 자유를 표현하고, 옷감을 절약할 목적이 아님에도 몸을 간신히 가리는 옷을 입고는 자신의 섹시미를 어필하는 세상입니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의복 문제는 완전히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의’는 그 정도로 하고 ‘식’으로 가봅시다. 화학비료와 농약이 없었다면 인류는 벌써 멸종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먹는 문제에도 과학기술이 엄청 기여한 것입니다. 냉장고, 냉동고는 식품보존기간을 늘려 유통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주었습니다. 너무 오버해서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여 광우병을 유발했고, 유전자 조작 곡물들이 우리 밥상을 교란시키고 있지만, 중진국 이상 국민들은 누구나 과체중일 정도로 식량문제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돈들여서 찌운 살을 뺀다고 다시 돈을 쓰는 괴상한 세상이 된 것이 좀 아이러니합니다만… 어쨌든 다이어트는 내일부터이고, 오늘 저녁 회식자리에서 앞에 놓인 삼겹살의 초대를 거절하지 못합니다. 식량은 부패하는 유기물이어서 의복만큼 유통력이 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헌 옷가지는 배편으로 아프리카까지 운반되고, 의류 재고품은 몇 해가 지나도 땡처리로 팔면 되는데, 음식은 장기저장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한 끼 포식하고 사흘을 굶을 수 없고, 매끼마다 먹어야 삽니다. 하지만 이런 한계가 오히려 식량의 평등을 가져오는 부분도 있습니다. 썩기 때문에 수년치 식량을 미리 사 둘 필요가 없으니까, 부자들이 식량을 매점매석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최고 부자와 중산층이 입는 옷이나 먹는 음식이 동일하다고 합니다. 옷은 모두가 청바지에 티셔츠고, 점심은 전부가 햄버거이니까요.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주' 입니다. 제한된 땅 위에 살아야 하는 운명을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잘 알고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만, 그리고 근대화 이후에야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 년 전부터 있던 문제입니다만, 최첨단 과학기술은 전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못내고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오면 재택근무가 늘어난다고 하더니, 재택근무는 실업자의 다른 표현입니다. 제한된 땅이라는 조건을 해결하려면 하늘이나 물, 지하로 가야하는데 날아다니는 집은 불가하고 물 위의 집은 제한적입니다. 땅을 파고내려가면 가난의 상징인 ‘반지하’ 아니면 겨우 주차장 정도입니다. 햇볕과 환기를 어떻게 해결하면 지하주거가 많이 활성화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런던의 2층버스 같은 차를 사서 주거 공간으로 꾸미고, 주차비만 내는 주거문화는 어떨런지요? 여행갈 때 호텔 예약은 따로 할 필요도 없이 집 채로 운전해서 가면 됩니다. 주차는 직장 출근하기 쉬운 교외지역으로 잡고, 편지는 사서함으로 돌려놓고… 이런 집들이 간혹 있지만, 흔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세금을 걷거나 개인을 컨트롤하기 어려워 독려하지 않는 탓인가요?
현재 자본주의 체제는 각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각자가 책임지는 사회라는 면에서 상당히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두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빈부차이가 커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소득 보다 자본소득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본소득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빈부차이가 커집니다. 자본소득이란 일을 해서 버는 돈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버는 것입니다. 즉, 주식이나 부동산을 말합니다. 주식이야 기업을 도와주는 순기능도 있지만, 부동산은 자고 있어도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는 (실제로는 남의 돈을 가로채는) 부자들의 Cash Cow입니다. 이 문제 해결에 과학기술이 해결책을 줄 수는 없을까요? 부동산이 해결되면 분배도 동시에 해결됩니다. 초인을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해봐야하나요? 런던 2층 버스 중고 하나 사서 지붕에 태양열판 붙여 에어콘 돌리고, 주거혁신 연구소라는 간판 달고, 함께 일하고 싶은 분들은 댓글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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