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초거대(hyper scale)’ 경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데이터, 학습 모델, 컴퓨팅 인프라라는 종합 플랫폼의 경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지난 5월 18일 구글은 연례 개발자 행사(I/O)에서 사람처럼 말하는 ‘람다(LaMDA)’라는 언어모델을 소개하였고, 일주일 뒤 네이버는 온라인 컨퍼런스에서 하이퍼클로바(Hyper-Clova)라는 한국어 인공지능 모델을 소개했는데, 세계 최고 수준인 오픈AI의 GPT-3를 능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KT는 KAIST와 함께 AI·SW 기술 연구소를 공동으로 설립해 초거대 AI연구에 나서고, LG AI연구원도 천억 이상을 투자해 초거대 AI기술을 개발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 생태계에서 우리 기업과 학계의 협력으로 만들어 낼 성과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모처럼 역동적인 인공지능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4월 21일에 발표된 EU의 인공지능법안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유럽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인공지능법안의 핵심은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평가하여 수준에 맞는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공지능 제품과 서비스를 고위험 인공지능으로 구분하고 별도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 관리, 규제 준수 보고 의무를 부여한다. 사후 문제 발생 시 관할당국에서 데이터, 알고리즘의 공개와 검증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법 위반 시에는 전 세계 매출의 6%까지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등 현재 EU의 일반데이터보호규정(GDPR)보다 더 높은 수준의 규제를 담고 있다. 고위험 인공지능에 해당하는 인공지능은 유럽 국경을 초월하며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인공지능을 포함해 대부분의 인공지능 제품과 서비스가 해당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명하고, 공정하고, 편향성이 없으며 믿을 만한 AI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최소한 유럽 시장을 염두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된 것이다. 법안은 제정까지 논의가 더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업계의 의견이 전달될 것으로보인다. 하지만 그간 인공지능의 개발 과정에서 불거진 데이터 편향성 해소, 설명가능성 등 인공지능의신뢰성 확보를 위한 일정 수준의 규제는 예상된다.
지난 5월 13일 우리 정부는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실현 전략’을 발표하였다. 인공지능 신뢰성 확보를 위한 법제도를 정비하고, 검인증 체계를 마련하며, 신뢰성 원천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유럽식의 규제보다는 신뢰성 기술 개발을 위한 지원 정책이 중심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민간에서 간과할 수 있는 공정성, 설명가능성이 강화된 차세대 인공지능 기술개발은 정부의 역할이 더욱 필요하다. 아울러, 민간이 자발적으로 인공지능 신뢰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윤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보급하고 실증하는 사업은 민간의 자율적인 혁신 활동을 저해하지 않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인류 문명은 신기술의 역사이며 신기술의 역사는 기술을 대중화하고 확산하기 위한 지원과 신뢰가 밑바탕이 되었다. 산업혁명을 촉발한 증기기관, 자동차는 모두 발명국보다 교통의 불모지였던 신대륙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대항해시대를 주름잡던 범선의 나라 영국에서 갑판 밑 화덕에 불을 피워 바람과 해류를 거슬러 오르는 증기선은 자리 잡을 수 없었다. 자동차를 먼저 발명했음에도 31년간 적기조례를 존속시킨 영국보다 프랑스, 독일, 미국에서 자동차 산업이 부흥을 맞이했다. 에디슨은 교류 전기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1,500명의 관객 앞에서 코끼리를 감전사시키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하지만, 값싸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했던 테슬라의 웨스팅하우스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장의 전기사업권을 따내며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 4차 산업혁명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섣부른 규제 입법으로 이제 본격적 도약을 준비하는 인공지능 혁신을 위축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객관적인 검증과 실험을 통한 혁신을 촉진하며 대중 속에 믿을 만한 기술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 디지털 전환시대, 소프트웨어의 변방에서 주도국으로 발돋움할 절호의 기회다.
출처 :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산업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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