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불멸의 꿈 (이달의 주자: 윤신영) 류형돈 저

 

  소개하고픈 과학책은 많지만, 그 중 올해 나온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언론이나 주변 지인들이 별로 언급한 적이 없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책이에요. 표지가 눈에 띄지 않고, 최근에는 과학책 출간이 좀 뜸했던 출판사에서 나왔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읽어보니 내용이 괜찮아 이 자리에서 소개해 보려 합니다. 미국 뉴욕대 의대 류형돈 교수께서 쓰신 ‘불멸의 꿈’(이음 출판사)이라는 책입니다. 인류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늙음(노화)이잖아요. 이 주제에 대해 세포생물학을 전공한 교수가 편안한 어투로 풀어 쓴 책입니다. 서술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비교적 최근 논의까지 성실하게 담고 있고, 이론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분위기나 내부 사정이 잘 묘사돼 있어 생생한 맛도 있습니다. 저자 자신이 그 논의의 한가운데에 있기에 가능한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관련 지식을 그냥 모아 요약해 들려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 노화에 맞설 수 있을지 저자 나름의 입장을 취해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반가웠습니다.

 늙음, 혹은 노화는 전우주적인 현상입니다. 일종의 비유로요.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그리고 그 중 후기의 현상을 늙음 혹은 노화라고 많이 표현합니다. 은하도 새 별이 많이 태어나는 활동성 은하핵을 지닌 단계를 지나면 고요하고 덜 활동적인 단계가 됩니다. 이 때를 흔히 나이가 들었다고 비유합니다. 우주는 어떻고요. 점점 팽창하다 보면 공간에 물질이 희박해지는 단계가 올 텐데, 이 때도 우주가 나이가 들어 결국 죽음을 맞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태양도 나이가 들면 부풀어 오른 채 ‘늙은 별’이 되고, 언젠가 임종의 순간을 맞겠죠.
 어떻게 보면 우주는 모두 노화하는 존재로만 가득 채워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생명체입니다. ‘생명이야말로 ‘늙음’이라는 비유의 근원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면,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오히려 생물은 그런 일방향성의 노화에 저항하는 존재니까요.
 예를 들어 볼까요, 미생물은 늙지 않습니다. 박테리아는 이분법을 통해 자신과 유전적으로 똑같은 개체(클론)를 끊임없이 만들어 갑니다. 이 방식으로 분열하는 미생물에게 우리가 아는 노화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식물은 어떨까요. 식물은 잎이 피고 꽃이 만개했다 시들고 열매 맺은 채 시듭니다. 분명 노화 개념이 있지만, 이 노화는 우리가 아는 노화와 달라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식의 순환을 합니다. 이는 땅에 붙박이로 자랄 수밖에 없는 식물이 진화시킨 나름의 생존 전략입니다. 생체 여러 기관이 마모돼 그 결과 죽음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는 의미의 노화가 아닙니다. 이는 오직 사람 같은 동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지요.
 노화에는 여러 이유와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바로 이 노화의 기작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연 한 가지겠죠. 최대한 늦춰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요. 저자는 그 중 섭생 방법을 바꾸는 쪽에 관심이 많습니다. 먹을 것을 잘 조절하면 좀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유명한 실험 중 이런 게 있죠. 쥐에게 주는 식사의 양을 조절해서 수명과 건강상태를 비교하는 실험입니다. 1930년대 미국 코넬대 클라이브 맥케이 박사가 한 실험 결과입니다. 적게 먹은 쥐가 양껏 먹은 쥐보다 수명이 길었다는 실험입니다. 한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이 실험은 1980년대 들어 이 실험 결과를 지지하는 또다른 연구 결과가 나오며 주목 받습니다. 동물 실험은 물론, 생태계 고립실험 ‘바이오스피어2’ 실험 참가자들의 체중과 건강 사이의 상관관계를 비교한 연구도 모두 ‘먹는 칼로리를 줄이면 건강하고 오래 산다’고 말해줬습니다.
 저자는 단백질 섭취 부분에 주목합니다. 단백질 섭취를 줄이면 어떤 단백질은 기능이 활성화하고, 반대로 어떤 단백질은 기능이 떨어져서 세포를 스트레스(굶주림)에 대비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어떤 단백질은 나이가 들면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 문제도 단백질 섭취를 통해 조절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단백질 섭취량과 노화, 수명 사이의 관계는 저자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기도 합니다. 현장 과학자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생생합니다.

 이 책은 인류가 노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 아닙니다. 노화 연구의 현장에 있고, 그 중 아주 세밀한 어떤 부분을 갱신해 나가는 한 과학자가, 역시 그런 갱신을 통해 노화라는 큰 분야를 그려나가는 다른 과학자들의 성과를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입니다. 연구 현장에 계신 과학자들이 이런 책을 종종 쓰시면 좋겠습니다. 성과 위주로만 소개되는, 영웅 서사를 닮은 글이 과학 글의 전형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과학은 논쟁과 토론, 갱신을 통해 수시로 정설이 바뀌어 가는 역동적인 분야니까요.
 

  제가 다음 주자로 꼽고 싶은 분은 이상희 미국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고인류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첫 학자로, 현생인류는 물론 다른 친척 인류와 영장류의 진화를 연구하고 계세요. 우리 자신의 ‘기원’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최근 늘고 있는데, 그에 대한 가장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죠. 최근 기고와 강연 등을 통해 대중과 활발히 만나고 계시기도 해요. 2015년 발간한 책 ‘인류의 기원’(저도 출간에 한 발 얹은 책이긴 합니다)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 좋아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