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측정하는 위대한 단위들 (이달의 주자 : 복진모) 그레이엄 도널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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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래 읽고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세상을 측정하는 위대한 단위들’ 이란 제목의 책입니다. 단위는 과학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도구입니다. 단위를 잘못 정해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끔직한 사고들은 우리들에게 그다지 먼나라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이야기들을 꼼꼼히 적고 정리해주었습니다.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크고 잊지 말아야 할 부분들도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별다른 감성 없이 이랬었다는 식으로 다양한 역사와 에피소드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판단은 우리의 몫이라는 뜻이겠지요.
사실 이런 ‘백과사전’식의 책은 읽을 땐 재밋는데 막상 읽고 나면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막막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만약 제가 이 책을 더 어렸을 때 읽었다면 읽고 나서 고이 책장에 놓아두고는 잊어 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알고 싶은 것보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더 많이 알아버린 지금, 사실, 이 책은 조금은 충격적으로 다가 왔습니다. 길이, 넓이, 부피를 나타내는 그 수많은 단위들은 그 수 만큼의 역사와 다툼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재앙들을 만들어 내었더군요. 물론 저자는 이런 식의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니 과거의 많은 사람들이 통일되지 않은 단위에 의해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왔더군요.
이 책의 첫 부분에 나오는 인치, 피트 등과 같이 유럽에서 많이 쓰이던 단위의 경우, 그 기준이 지역에 따라 그리고 왕에 따라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재앙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세금을 내야하는 농노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변화이었을 것 같습니다. 말은 바뀌지 않았는데 실제 내야 하는 양은 늘어난다면 그 얼마나 황망할까요. 또한 인접국가나 덜 발달된 국가와의 거래에 있어서 이러한 통일되지 않은 단위는 착취, 불공정거래로 이어지기 쉬웠을 겁니다. 때문에 우리 부모님들은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처음부터 통일된 단위가 있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요. 통일된 단위를 향한 노력은, 어쩌면 이상향을 위한 힘참 발걸음 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단위라는 녀석들은 종종 삶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마치 나폴레옹의 키가 작다는 오해가 영국과 프랑스의 단위가 서로 일치하지 않아 생겨난 것처럼, 우리는 단위를 통해 삶의 기준을 정하기도 합니다. 케케묵은 논쟁인, 남자키가 얼마이상은 되어야 한다느니, 여자 몸무게가 얼마 이하여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단위에 대한 우리의 집착과 오해가 담겨있지 않나 싶습니다. 때문에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단위에 대한 여러 역사와 에피소드들은 우리에게 그다지 가볍게만 다가오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단순히 단위를 통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 책이, 그리고 역사가 말해주듯이, 필요에 따라 새로운 단위와 기준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통일되고 사라질 것입니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소개해주는 기발하고 엉뚱한 단위들은 통일되지 않은 단위에 의한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다양한 단위들이 만들어낸 소소하고 즐거운 에피소드들도 많습니다. 가령, 호빗(hobbit)은 웨일즈 시골지방에서 쓰던 무게의 단위였습니다. J.R.R.톨킨은 본인의 소설 속 그 난쟁이 족의 이름이 본인의 창작이라 주장했고요. 배가 볼록한 나무통을 우리는 배럴(barrel) 이라고 부릅니다. 프랑스에선 표준 포도주 배럴을 바리크(barrique)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바리크 6개를 나란히 세우면 그 당시 좁은 파리의 뒷골목을 막는 바리케이트(barricade)가 되었다고 합니다. 막상 이런 식의 소개가 이어지다 보니, 영어단어장인지 역사책인지 교양과학 서적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이 온전히 과학이었던 시절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언제나 융합학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커피마시며 떠들만한 잡다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제 책소개를 읽고 이 책에 흥미를 느낄 분이 있을거란 (막연한)기대에 이쯤 소개하겠습니다.
최근 '알쓸신잡' 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쩌면 재미없어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어 보이게, 그러나 일관성있게) 주고 받는 모습은 우리에게 굉장한 재미와, 그리고 저에겐 일종의 대리만족을 선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는 ‘당신네들이 늘상 떠드는게 저런건데 당신은 왜 TV에 안나와?’ 라며 저를 질타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그 분들 같은 내공도 없고, 잘생기지도 않았기 때문에 TV에 나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모이면 늘상 ‘알쓸신잡’ 류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건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 과학자들은 왜 이런 쓸데없어 보이는 지식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왜 이런 잡다한 지식이 열거되있는 책을 재미있다고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요? 왜 알쓸신잡은 시청율이 높게 나왔을까요?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입장에선 저희들이 하는 일이 그저 백과사전 같아 보일 것입니다. (사실 저도 다른 학문을 하는 사람이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도 사람인지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쓸신잡’ 이나 지금 제가 소개하는 ‘세상을 측정하는 위대한 단위들’ 같은 책에 더 가깝습니다. 굉장히 큰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굉장히 소소한 것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the long and the short of it'입니다. 굳이 ’위대한‘ 이란 단어를 제목에 넣은 번역자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막상 가벼워 보이는 책을 (실제로도 가볍습니다.) 이렇게 무겁게 설명해버리니, 괜한 소리를 한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교양과학에서 시사를 끌어낼 수 있게 만든 이 책의 저자를 탓하는 게 맞는 듯 합니다. 10대와 20대의 경계 어딘가 쯤에 들었던 말이, 좋은 책은 다양한 해석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과학과 역사와 영단어의 기원을 아우르는 잡다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저에게 중요하게 다가온 이유는 그곳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꾸 선을 그으려는 제 못된 습관에 있기도 하구요.
다음 릴레이 북 주자로 더 좋은 책을 소개시켜주실 분은 성균관대학교의 장재경 박사님입니다. 제일원리 계산을 통해 여러 고체물질들의 특성을 예측하는 분으로 책도 많이 읽으시고, 기타도 치시는 멋진 분이십니다. 그 분의 덥수룩한 수염 만큼이나 풍성한 책소개를 기대하면 바통을 넘겨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