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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이달의 주자: 정재홍) 다니엘 글라타우어 저

  제가 소개해 드릴 책은 아주 독특한 형식의 연애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Gut gegen Nordwind)’입니다. 저도 과학 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그러하듯 무언가 배울 수 있는 책을 좋아합니다만 요즘은 감정을 건드려주는 소설에 재미를 붙이는 중입니다. 원래 읽고 있던 다른 책이 있어서 그 책을 소개하려 했는데 사랑하는 아내가 이 책이 너무 재미있다며 강력하게 추천해서 하루 밤 만에 푹 빠져 읽고 이렇게 소개해 드립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메일로 이루어진 매우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편지 형식으로 된 소설의 현대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장문의 편지와 달리 이메일은 마치 메신저로 대화하듯 빠른 호흡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 있습니다. 메일과 메일 사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메일을 쓰는 인물이 어떤 행동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이 오로지 읽는 사람의 상상에 달렸다는 점이 정말 신선하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메일을 쓰는 인물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은밀하게 훔쳐보고 공유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여주인공 ‘에미’는 잡지구독을 취소하는 메일을 실수로 ‘레오’에게 보내게 됩니다. 이 우연이 계기가 되어 둘은 친구가 되고 메일로만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시작한 둘은 자신을 숨기고 상대를 알아내려는 이른바 밀당을 반복하다 결국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 초반부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연애감정을 느꼈던 풋풋했던 시절이 떠올라서 부끄럽고도 흐뭇한 미소가 나왔습니다. 이제 서른 후반으로 접어든 결혼 10년 차인 제가 느낀 약간의 두근거림과 간지러움을, 사람마다 모두 다른 느낌이겠지만 여러분들도 느끼지 않을까요? 작품의 중반까지도 에미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웹디자이너이고 레오는 오래된 연인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언어심리학자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두 주인공이 서로를 궁금해하는 만큼 저도 함께 궁금해지고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서로에 대해 아는 바는 없으면서도 너무나 잘 통하는 사이. 아니 어쩌면 서로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너무나 잘 통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마치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하루 만에 사랑에 빠져버린 ‘비포 선라이즈’의 셀린과 제시처럼 둘은 서로를 갈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메일 안에서 만이죠. 현실에서 만날 수 없다는 선을 미리 그어놓고 서로에 대한 환상을 너무나 많이 쌓아버려서 오히려 현실에서의 만남을 두려워하게 되어버린 둘.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안타깝더군요. 현실의 연인들도 어찌 보면 서로에 대한 자기만의 환상을 좇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환상이 깨어지면 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들을 그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만나지 않으려고 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너무도 느끼고 싶어합니다. 그러던 차에 결국 에미의 남편 ‘베른하르트’가 사정을 알게 되고 레오에게 길고도 간곡한 메일을 보냅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결국 그들은 만나게 될까요?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까요? 에미의 확신대로 가정은 지키면서 레오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뒷이야기는 책의 흥미를 위해 남겨두겠습니다. 진부한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메일이라는 독특한 형식 덕분에 에미와 레오의 감정에 빠져들어 술술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둘의 성격이 분명하면서도 상반되는 점도 재미있었고, 특히 저는 직설적이고 자유롭게 말하는 에미의 성격이 좋았습니다. 이어지는 다음 작품이 있다고 하니 그것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데 싱숭생숭한 연애소설 하나 어떠신가요?

  다음 릴레이북 주자는 충북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한 나노광학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박형렬 교수님입니다. 똑똑하고 운동도 잘 하고 못 하는 게 없는 만능인이면서 가끔은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해 친구들을 즐겁게 하던 매력적인 친구입니다. 한동안 못 만나서 아쉬웠는데 이번 기회에 글로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 즐겁습니다. 어떤 책으로 얼마나 재미있는 글을 쓸지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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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HO SONG(cat12) 2018-05-18

흥미로운 책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