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이달의 주자: 이동욱)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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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둔 모든 대학원생이 그러듯이 지도 교수와의 관계나 향후 진로를 위한 면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핵심적인 문제로 간주했던 점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저와 상대방 사이에서 피하고 싶었던 정보 비대칭이 생기고, 결국에는 설득이 되지 않아서 비효율적인 결정이 내려지는 점이 잦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넛지라는 책은 이와 유사한 상황들을 어떻게 분석하고,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줍니다. 넛지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개입하여, 결정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장치입니다. '비금전적인 유인'을 추가하여 다른 이들의 선택을 ‘설계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기본 값’이 있습니다. 윈도우 OS를 써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수많은 선택 사항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보통은 그 ‘기본 값’을 따라 갑니다. 다른 예로, 몇 달 전 같은 연구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들 수 있습니다. 그 한식집에서 수십가지 되는 메뉴를 거의 다 먹어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저 뿐이었습니다. 당연히 다른 친구들은 한국 음식에 대한 정보를 거의 몰랐지요. 먼저 못 먹는 음식이 있는지를 물어본 뒤, 각 메뉴에 대한 설명을 일일이 했지만, 그 친구들의 말은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알아서 네가 골라.” 저는 선택권을 존중하려고 했지만 정작 선택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숙고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불필요한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었지요. 그들은 저에게 ‘기본 값’을 내려주기를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설계자’로서 동료들의 선택을 어느 범위 내에서 ‘통제’하게 된 셈이지요. 이런 점이 이 책에서 제기했던 문제 의식이었습니다. 즉, 사회에서도 ‘설계자’ 소수의 의도대로 수많은 대중이 집단적이고 따라서 파급 효과가 큰 ‘결정’을 내리고 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최대한 이성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손익을 세세하게 따지지만, 모든 결정에 대해서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메뉴 고르기 같은 사소해보이는 선택에서는 번거로운 심사숙고의 과정이 생략되어, 모든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이 내려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 점에 주목하여, 이런 사소해보이는 결정들의 집합을 분석하고 공략하여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반사적이고 즉각적인 결정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다른 결정을 이끌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비합리적이지만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 즉 넛지에는 동료로부터의 압력 (peer pressure), 편향 (bias) 등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거나, 나는 이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무의식이 관여하는 셈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의 비이성적인 면이 책에서 해부되지만, 저자들은 항상 좋은 곳에 넛지를 쓰라는 말을 빼놓지 않습니다. 넛지의 발견은 다른 과학적 발견과 마찬가지로 가치 중립적이지만, 누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선 혹은 악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책에서 추천되는 넛지의 적용 분야는 공공의 선을 위한 곳입니다. 예를 들면 길거리에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 보험 약관의 ‘기본 값’을 평균적인 대중에게 가장 유리하도록 수정하는 일 등입니다. 넛지의 이용을 통해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고, 때로는 금전적인 유인으로도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을 넛지로 성취할 수 있다는 실제 성공 사례도 나열됩니다. 작년 이 책 저자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현재 한국에서도 공공정책에 넛지를 적용하자는 주장과 논의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이 이런 혁신은 정부에서보다 민간 영역에서 더욱 빨리, 활발히 적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단체들이 기부를 받을 때라든지, 기업의 마케팅 등에서 사용이 될 수 있지요. 넛지의 이용에는 경제학적인 이익 (예를 들면 마케팅 비용의 절감 등)이 걸려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로의 활용은 가파르게 확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넛지를 실행하기 위한 기법은 점점 더 정교해질 것입니다. 미래의 발전된 넛지 기법에 대한 대책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질 것인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비단 공공정책 같이 거시적이고 파급 효과가 넓은 분야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넛지가 적용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개인적인 깨달음은 설득을 할 때에는 항상 방향성을 어느 정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상황을 예로 들면, 제가 상대방보다 더 선택에 중요한 세부 사항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모두를 위한 최선책을 분명히 알고 있고,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 상대의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해 다른 선택권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 때도 많습니다. 상대방의 호불호를 미리 최대한 알아내고, 상대가 원하지 않을만한 옵션을 미리 배제하여 ‘집중 후 선택’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제가 선택을 미리 ‘설계’하면 좀더 모두에게 유리한 결과를 효율적인 과정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의 생활에 좀더 넛지를 활발히 적용하고자 이 책을 곱씹고 있는데, 여러분의 생활 역시 좀더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감히 추천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다음 릴레이 북 주자는 MIT 생명공학과에 계신 박용진 박사님입니다. 제가 박사 과정 동안 성장하는데 이 분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박용진 박사님께서는 book smart 할 뿐만 아니라 street smart하기도 한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훌륭하게 서평 속에 녹여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