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달의 주자: 박용진) 무라카미 하루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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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팬들 사이에서 달리기, LP 음반 그리고 고양이 애호가로 유명합니다. 그의 달리기 사랑은 수많은 마라톤 대회 참석과 울트라 마라톤, 철인 삼종 경기 출전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소설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때부터 그의 일과에는 달리기가 함께 했다고 합니다.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생활을 지속하면서 달리기 연습을 계속하는데, 이 책에는 그런 훈련 과정과 그를 통해 그가 달리기에 대해 갖게 된 철학들이 유쾌하고 간결한 문체로 적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연구와 삶, 그리고 달리기는 참 닮은 점이 많습니다. 달리기에 대해, 하루키는 “어떤 일이 됐든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든 지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 그런 의미에서 장거리를 달리는 것은 나의 성격에 아주 잘 맞는 스포츠였다.”라고 말합니다. 연구를 할 때에도, 논문에 담는 데이터는 질은 본인의 기준에 맞게 정해지고 그를 위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맞는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달리기와 연구는 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굳이 달리기를 하는 분이 아니시더라도, 연구자인 독자분들이시라면 공감하실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고 생각됩니다.
책의 첫 장은 독자들을 2005년의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여름으로 안내합니다. 하와이의 온화한 여름 날씨처럼, 그는 자신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와 언제까지 달리기를 지속할지 등의 달리기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따스하고 산뜻한 어조로 적어 내려갑니다. 달리기를 하는 보통 사람들이 막연히 지니고 있는 생각들을 이렇게 정확히 짚어내는 솜씨를 보면, “아! 이 사람이 괜히 일본의 국민 작가 반열에 오르는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달리기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가?” 라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질문에, “달리기할 때 드는 생각은 하늘에 있는 구름과 같다. 구름은 각기 다른 크기로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구름은 그곳에 오고 가는 손님일 뿐이고 하늘은 하늘 그대로 존재한다. 구름은 하늘에 나타나고 사라질 뿐, 텅 빈 하늘이 주는 것과 같은 공허함이 달리기할 때의 주된 생각이다.”라고 달리기를 통해 생각이 비워지는 과정을 하늘에 떠가는 구름에 비유해 낸 이 문장은 많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토록 재치 있는 설명들과 함께, 자신이 달리면서 듣던 음악을 빠짐없이 적어두는 작가의 세심한 배려는, 독자들이 더욱 감성적으로 작가가 달리던 환경과 감정 그대로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90년대 팝송과 재즈를 들으며 살아온 독자들에게 친숙할 이 음악들은 실제로 달리기를 할 때 들어보면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훨씬 여유롭게 해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그는 독자들을 그리스 아테네의 여름으로 초대합니다. 그리스 아테네부터 마라톤이 시작된 마라톤 평원까지의 42.195km를 자신의 처음 마라톤 코스로 정한 그는, 그 첫 마라톤의 경험을 생생하게 적어 내려갑니다. 작열하는 8월 그리스의 여름 태양 아래, 수분이 부족해지고 체력이 극한으로 내려가면서 누군가의 힘내라는 응원의 말에도 “그 말이 네게는 쉽겠지”라는 생각에 분노가 느껴지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에게도 짜증이 날 정도의 체력의 극한에 직면했을 때, 그는 절실하게 ‘포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 반복되어 어느새 결승선을 지나게 되었을 때, 그는 자기 감정이 놀랍게도 성취감보다는 허무함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되려, 이것을 해냈다는 느낌이 아닌, 더는 이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저는 이 대목에서, 실험을 하다가, 또는 지겨울 정도로 반복적으로 논문을 수정하다가 때때로 찾아오는 허무감이 성취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함에서 오는 성취감의 다른 형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심심한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첫 번째 마라톤 뒤에도 많은 레이스를 참가하고, 다양한 형태의 훈련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글로 담아냅니다. 기록이 떨어졌을 때는 괴로워하며 부끄러워하고, 다시 꾸준히 연습해서 자신의 원래 기록을 찾아갑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자신에게 뿌듯해지는 순간이 지루한 팔 동작들을 꾸준히 반복해서 거리를 채워 나가고 자신이 정해진 시간 안에 목표 지점을 지나갔을 때인 것을 생각해보면, 실패하는 실험을 무수히 반복해서 작동하는 한두 개의 조건을 찾아가는 연구와 달리기는 많은 점이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자신이 죽거든, “무라카미 하루키 (1949-20**) 작가 (그리고 러너) 적어도 걷지는 않았음”이라는 묘비명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42.195km의 긴 레이스 중에, 언제 한번 슬쩍 걸어도 세상 그 누구도 탓하지 않겠지만, 처음부터 달리기로 자신과 약속하고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그는 걷지 않습니다. 그 열정과 자기 인내를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소개해 드립니다. 이 글을 보시는 다른 연구자분들도, 연구에 지쳐 쉬고 싶으실 때, 또는 달리기가 하고 싶으실 때, 머리를 식히기 좋은 책으로 가까이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릴레이 북 주자는 Harvard Biological and Biomedical Science 에서 박사를 마치시고 U niversity of cincinnati medical center에서 레지던트 과정으로 일하고 계신 김이정 박사님입니다. 우리 김이정 박사님은, 연구와 진료로 바쁜 일과 중에도 스케이트 보딩을 비롯한 다양한 운동을 즐기시며, 독서도 다채롭게 하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완벽하면 다가가기 쉽지 않은데, 평소의 모습은 진솔하고 소탈하기까지 한 분이어서, 제가 박사 과정 내내 많이 정신적으로 의지하여 고맙게 느끼고 있는 분 들 중 하나입니다. 벌써 어떤 책을 소개해 주실 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