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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이달의 주자:모지호) 헤르만 헤세 저

  시들어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까? 내가 나의 색깔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이질적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그것들을 긁어내고 문득 나를 돌아보면 앙상한 가지처럼 생명력이 없어 보이는 때. 추구하던 모습이 사실은 아주 얕은 거짓말 한 장처럼 느껴질 때에 저는 시들어간다고 느끼곤 합니다.

‘데미안’은 시들어가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소설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눕니다. 추리소설처럼 플롯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데미안’은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플롯 자체가 흥미롭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지요. 이 책은 시들어가는 소년의 인식을 쫓아갑니다.

소설가에게 주인공은 조각가에게 끌, 정과 같습니다. 주인공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세상을 조각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명한 소설 ‘죄와 벌’에서는 살인자인 라스콜니코프를 주인공으로 두어서 죄의식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인 라주미힌이나 경찰관의 눈을 빌렸다면, 같은 세계를 그려도 소설의 문제 의식이 아예 달랐겠지요.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소설에 등장합니다. 소년다운 순수함을 가진 싱클레어는 자신이 선한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에게서 사랑과 존중을 받으면서 자란 소년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몇 가지 사건들을 거치면서, 싱클레어는 자신이 음험함, 폭력이 있는 악의 세계에 속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계관, 가치관 혹은 정체성은 한 사람이 세상을 설명하고 행동하는 방식입니다. 부분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가치관과 세상이 충돌할 때에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관을 확장시키거나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세상이 터질 것 같이 밀고 들어와서, 기존의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때에 기존의 관념이 아예 부서지기도 합니다.

어린 싱클레어는 후자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악한 세상이라고 부르며 멀리했던 곳에 속하게 되면서, 싱클레어는 정체성의 혼란기를 맞이합니다. 이 책의 이름이 ‘데미안’ 인 것은 추구할 바를 잃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친구와 교통하면서 서서히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는 긍정적일까요? 데미안은 어떤 방식으로 싱클레어와 교류할까요?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 싱클레어라는 사람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교류를 쫓아가면서 읽으면, 헤르만 헤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데미안’ 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은 소설의 초반부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 그처럼 가을 나무의 주위에는 잎이 떨어지는 법이다 – (중략) -나무의 내부에서는 생명이 서서히 위축되고 깊숙이 움츠려들어간다. 그러나 나무는 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데미안’은 사람의 고뇌를 다루지만 그 과정이 괴롭기만 하지않고 힘이 느껴집니다.

저는 제가 추구하던 것들이 황폐하게 느껴질 때에 ‘데미안’의 문장을 기억합니다. 나무는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라고. 우리는 나무의 이름을 그 꽃과 열매에 연관 지어서 부릅니다. 벚꽃 나무는 일 년에 길어야 열흘을 꽃 피웁니다. 사실 더 많은 시간을 앙상한 나무의 형태로 시간을 보내지요. 잎이 떨어지는 시린 계절이라면, 나를 변화시키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나무가 앙상하다고 벚꽃 나무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요.

데미안은 세계관이 무너지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고뇌를 아름답고 힘있게 보여줍니다.

  저는 사람들과 만나면 종종 책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책 추천을 받아서 읽기도 하지만, 종종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많이 배우거든요! 다음 주자인 김유현은 제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책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직도 이 친구에게 죄와 벌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그것이 러시아 역사와 어떻게 연관되는 지를 설명을 들었을 때에 경외가 잊히지 않습니다. 다음 책도 어떤 것을 소개할 지 기대가 많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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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선(jsyoon) 2020-06-16

제가 이 책을 처음 잡았을 때는 중2때였어요. 그때는 정말 재미가 없더군요. 그 이후 고등학교 1학년때쯤 다시 이 책을 잡았는데 어떻게 이런 책이 있지 하며 정말 재밌게 읽었었더랬지요. 책이란게 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올려주신 서평을 보니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