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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불복종 (이달의 주자:박인국) 아이라 샬레프 저

  요즘 사회를 바라보면 권력형 사건들이 화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학의, 버닝썬, 장자연 사건으로 대표되는 권력형 성범죄 사건, 권력형 채용비리 사건인 KT 채용비리 사건, 대학원생을 동원해 개인적인 업무를 지시하는 권력형 갑질 사건인 팔만대장경 스캔노예 사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권력과 위계질서를 이용한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권력형 사건들은 피해자가 다양한 형태로 가해자 또는 가해자의 명령을 받은 중간자에게 직/간접적으로 부당한 지시 또는 명령을 받아 발생합니다. 공통적으로 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지시에 복종하도록 하여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는 불편한 질문이 뒤따릅니다. 피해자 또는 중간자는 왜 부당한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는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문화권에 있든, 어느 사회에 있든 사회화 과정을 통해 권위에 복종하고 명령을 따르는 것을 훈련합니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인류가 끊임없이 싸우지 않고 거대한 문명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상관 또는 권력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시스템에 반하는 행위로 인식되어 지시 불응자에게는 다양한 위험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권위를 존중하는 유교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위험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권력에 기댄 부당한 지시에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번에 소개할 책은 아이라 샬레프의 『똑똑한 불복종』입니다. 가볍게 보면 똑똑한 불복종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실용서이고, 조금 더 생각해보면 똑똑한 불복종이 내포하는 가치를 교육학,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고 고민하도록 하는 책입니다. 대한민국 사회, 특히 과학계를 이루는 주요한 요소인 대학원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똑똑한 불복종이 필요하고 효용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코센 독자 분들과 함께하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명령에 대해 의심하고 판단하지 않은 채 반사적으로 복종하는 습관의 위험성과 이를 피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상관의 지시에 따라 내가 어떤 행위를 하고 결과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책임은 그 일을 하도록 지시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지시를 내렸든 거기에 따른다면, 자신의 행동의 1차적인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시에 따를지 저항할지를 의식적, 합리적, 윤리적으로 선택하고, 저항하기로 결정하는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똑똑한 방법으로 불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 책의 표지에는 귀여운 강아지가 한마리 그려져 있습니다. 저자는 이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통해 똑똑한 불복종의 가치에 대해 설명합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안내견은 사람의 지시에 복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지시에 불복종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어 건너가려는 상황에서 갑자기 배달 오토바이나 소리가 거의 없는 전기자동차가 다가오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내견은 길을 건너라는 지시에 복종할지 위험요소를 고려하여 지시에 불복종할지 결정해야 하고 이 경우에는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을 통해 팀을 위험으로부터 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안내견이 기본적으로는 주인을 존중하고 주인의 명령을 따르되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여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는 불복종하도록 하는 훈련과 그러한 안내견의 훈련 과정과 판단을 존중하는 사람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각 구성원이 발전적인 조직과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권위와 권위자의 명령에 복종하되 복종이 맹목적이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불복종할 수 있으며 그 불복종이 존중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똑똑하게 불복종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과 그 방법에 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1960년부터 4년간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는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을 진행합니다. 피실험자는 권위자로부터 학습자가 질문에 대한 오답을 제시할 때마다 점점 더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명령을 받습니다. 실험 결과 전체 피실험자의 2/3가 학습자의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수준까지 전기충격의 강도를 올렸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대부분 이 실험 결과를 알고 있으며 무비판적으로 지시를 따르는 것의 문제와 인간의 도덕성이 권위에 의해 매우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안타까운 결론을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밀그램 교수가 전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메시지는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이후 이루어진 다음과 같은 변형 실험을 인용합니다. 밀그램은 피실험자를 다른 두 명의 교사 역할을 하는 연기자 사이에 배치한 뒤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함께 진행하도록 합니다. 이때 두 명의 연기자에게 전기충격 세기를 올리는 도중에 명령에 거부하도록 하면 피실험자의 90%가 다른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실험을 완수하라고 종용하는 권위에 불복종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피실험자가 직접 전기충격을 가하는 대신 문제를 읽어주는 역할을 맡고 다른 교사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하되 전기충격을 가하는 교사가 중도에 실험을 그만두지 않는 경우 피실험자의 90%가 실험을 끝까지 진행했습니다. 위력에 의한 불합리한 명령에 대한 똑똑한 불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주변에 불복종하는 사람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작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투운동(#metoo)을 보면 똑똑한 불복종을 위해 주변 지지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는 “모두가 입을 다물기로 공모한 방 안에서, 한 마디 진실은 총성처럼 울린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것은 작은 시작이지만 그 진실이 방아쇠가 되어 주변의 똑똑한 불복종과 사회적 연대를 이루어내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지시를 따르는 것의 대가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무분별하게 나치의 명령에 따른 사람들로 인해 수백만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으며 2014년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과 그 명령에 잘 복종한 것 때문에 300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권위로부터의 부당한 지시에 분노하면서도 여전히 복종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착한 것이라는 문화가 지배적인 과도기적인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제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복종 훈련뿐만 아니라 사회의 위험 요소를 줄이고 팀을 발전시키는 똑똑한 불복종에 대한 훈련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하며 이 책을 추천합니다.

  다음 릴레이북 주자로 저의 소중한 친구인 모지호 군을 추천합니다. 학부 시기에 만난 이후로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친구입니다. 항상 열린 자세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도 배우고 성장하려는 자세가 참 인상적인 사람입니다. 현재는 암세포생물학 연구실에서 DNA 복구에 관련된 Brca2라는 유전자가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책을 참 좋아해서 저녁 시간 이후로 연락하면 늘 책을 읽고 있다는 모지호 군은 여러 사람들과 어떤 책을 공유하고 싶어할지 궁금하네요.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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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전 서점에 들러 훑어보았습니다. 읽고 있는 다른 책이 있어 사지는 않았지만, 꼭 읽어야할 내용이 들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