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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장의 은밀한 대화 더 커넥션 (이달의 주자:허준영) 에머런 메이어 저

안녕하세요. 김유현군으로부터 바통을 이어 받은 허준영입니다. 이제 막 진료를 시작한 초짜 한의사라 모르는 것이 많아 이것저것 많이 찾아 읽고 사람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이 친구와는 만날 때마다 참 다양한 주제로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것들이 저에게 참 많은 영감이 되었었습니다. 한 때 책을 정말 열심히, 그리고 많이 읽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어느 순간 책을 통한 간접경험이 저의 삶을 통해 겪는 직접경험보다 과도하게 많아지면서 허무주의에 빠졌던 순간이 있었어서 그런지 저는 책을 통해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그것을 실제 삶과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것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과거에는 진부하고 뻔하게만 들리던 내용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현상으로만 바라보면 특별할 것 없는 내용들이 그 과정을 이해하게 되면서 다르게 다가오게 되는 경험을 하게 해준 이 책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보려 합니다.

영어 단어 중에 직감을 의미하는 단어인 gut feeling을 보면서, 궁금증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gut feeling을 직역하면 장의 느낌(?)이라는 뜻인데, 이게 직감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장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옛날 사람들은 봤나 싶었습니다. 근데 그게 이 책을 보니 정말이더군요. 정확하게는 장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그곳에 살고 있는 장내 미생물군들을 매개로 하여 우리의 장이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통증, 사회적 상호작용, 의사결정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뇌와 장이 의사소통을 을 통해 중요한 결정에도 관련이 되기 때문에, ‘gut feeling'이라는 것은 신경생물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해석이었던 것이죠. 이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당연시하고 넘겼던 것들 중에 그 과정을 알고 나면, 그 현상이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됩니다.

환자들을 지도할 때, 스트레스와 장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스스로 의문이 드는 내용이 참 많습니다. 요즘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소화기계 질환을 가지고도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경우가 참 많은데, (가볍게는 소화불량부터 시작해서, 변비, 설사, 또 의미도 모를 길게 이름지어진 증후군들까지..)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이것 저것 질문하고, 병력청취를 하면서 원인을 알아내려고 하다가 잘 모르겠을때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러세요!’ 라고 한마디로 정리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옵니다.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그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말이 주는 무게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

장내미생물의 존재를 인식함으로 인해서 질병을 이해하는 관점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한 예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지고 있는 환자의 장내미생물군이 정상인에 비해 변형된 장내미생물군을 보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이는 치료적 접근에 있어서 새로운 발상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병명을 듣게 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뇌신경계 질환으로 연결을 하게 되고, 치료적 접근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게 뇌신경계를 어떻게 안정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장내미생물이라는 매개체를 알게 되는 순간, 유익한 장내미생물을 어떻게 만들고, 그 유익한 비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기존의 관점에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하는 방식인 것이죠.

A->B라는 과정 속에, 사실 C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즉 A->C->B 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생각이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B를 바꾸기 위해서는 A를 바꾸면 된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C를 바꿔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즐거움이 발견되죠. C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즉 A와 B 사이에 무엇인가가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것과 마찬가지로 A와 C 사이에도, C와 B 사이에도 무엇인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면서 상상력이 다시 자극이 되는 거죠. “A->D->C가 될 수도 있고, C->E->B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요. (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항상 이것이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인지, 상관관계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주의하며 바라봐야겠죠!)

저는 과학적 지식이 많지는 않지만, 과학적 상상력을 즐기는 사람인 것 같아요. “장이 감정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이라는 사실을 더 많은 의사와 환자가 깨닫는다면, 이 영화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멜로 장르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장이 단순히 소화의 과정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닌 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로 인해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을 마주했을 때 장 면역계를 한번 떠올리게 되는 것만으로도 큰 사고의 도약을 이룬 것이 아닐까요?

  다음 주자로 제가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김장희군입니다. 어릴 적부터 해외 여러 곳에서 생활을 하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현재는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재미있는 친구인데요. 이성적이고 효율적으로 삶을 계획해 나가는 이 친구와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즐겁게 나누었던 기억이 많이 남네요. 이 친구가 어떤 책을 소개해 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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