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자들 어슐러 K. 르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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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호 릴레이북 바통을 넘겨받은 정강수입니다. 저는 프랑스 Inria(National Institute for Research in Digital Science and Technology) Paris saclay에서 박사후과정으로 근무하고 있고요, 프라이버시 보호 기계학습(Privacy preserving machine learning)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만난 좋은 선배이자 동료 과학자인 김병윤님의 추천으로 제가 아끼는 책을 다른 분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되어 기쁩니다. 저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좋아하지만 특히 과학소설(Science Fiction, SF)의 팬인데요, 과학소설에서 사고실험을 통해 구축한 현재 너머의 세계를 접할 때 느끼는 경이감과, 이를 통해 다시 지금의 사회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단 점이 제가 과학소설에 매료된 이유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은 어슐러 K. 르귄의 ‘빼앗긴 자들’입니다. 지난 2018년 작고한 어슐러 K. 르귄은 미국의 SF 및 판타지 작가인데요, 생전 'SF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그건 어슐러 르귄일 것이다’란 말을 공공연하게 들었던 거장입니다. 항성간 여행이 가능해진 먼 미래 인류의 모습을 그린 ‘헤인 연대기’는 그녀의 대표적 시리즈로 '빼앗긴 자들’도 여기 속합니다. 소설은 한 남자가 우주정거장을 거쳐 자신의 고향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남자의 이름은 쉐벡, 빼어난 재능을 지닌 물리학자입니다. 그가 등지고 떠나는 그의 고향은 ‘아나레스', 황량하고 척박한 행성입니다. 이 행성은 본래 사람들이 살지 않는 행성이었지만 아나레스를 위성으로 지닌 행성, ‘우라스'의 자본주의와 계급제도, 차별주의에 반기를 든 일군의 사람들이 소유와 착취가 없는 평등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이주했습니다. 아나레스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계층을 나누거나 소유격이 없는 언어인 ‘프라 어’를 만들었고, 섬세하게 설계된 AI를 통해 자원과 노동을 분배합니다. 소설에서 그리는 아나레스의 모습은 일견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처럼 보이지만 이 세심하고 섬세하게 설계된 사회속에도 인간 사회의 악덕-관료주의, 다름에 대한 몰이해-는 존재합니다. 그가 사랑하는 물리학에 매진하는 것이 ‘자기 중심적’으로 여겨진다는 것, 그리고 그의 연구를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들 속에서 더는 물리학을 연구할 수 없게 되자 쉐벡은 그의 연구 성과를 눈여겨 본 우라스의 과학자의 초대를 받아들여 그의 동료들이 떠나온 행성, 자본주의와 계급주의, 물질주의가 만연한 우라스로 떠나게 됩니다.
‘빼앗긴 자들’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4년에 출판되었지만, 이 책에서 그리는 아나레스와 우라스 각각의 사회적 부조리, 그리고 아나레스에도 속하지 못하고 우라스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으로서의 쉐벡의 모습은 빈부격차가 커져가고 공동체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오늘날 여전히 큰 시사점을 지닙니다. 한 행성을 통째로 써가며 자신들이 그리던 사회를 만들려 했던 사람들에게도, 저 귀찮은 ‘불평분자들’만 어디론가 보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도 정답은 없습니다. 쉐벡 역시도 별 사이를 건너 두 세계를 오갔음에도 만족할 만한 답을 없진 못 했지요. 그러나 물리학이라는 자신만의 단단한 기둥을 꼭 잡은 채 세상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으며, 쉐벡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갑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은 건 처음 대학 신입생 때였는데요, 지금까지도 종종 이 책에서 던진 화두들을 생각하곤 합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항대립이 아닌, 각각의 세계가 지닌 양가성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하는건 쉐벡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일 테니까요.
다음 주자로 프랑스 CNRS에서 전산학 연구를 하고 계신 김은정 박사님을 추천합니다. 자기 분야뿐만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멋진 통찰과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은정 님의 마음속 서가엔 어떤 책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50년전에 이런 책을 쓰다니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습니다. 요즘 썼다고 해도 참신하게 느껴질만한 소재같거든요. 우리가 공산주의 실험에서 보았듯이 인간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행성을 하나 개척한다 하여도 실현불가능할 듯 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