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서의 도피 프란시스 쉐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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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센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2012년부터 남프랑스에 위치한 ITER 국제기구에서 핵융합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ITER는 현재 7개의 참여국 (한국,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그리고 EU)이 함께 공동으로 핵융합 발전의 상용화를 위해 장치를 제작하고 운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특별히 삼중수소 증식을 위한 기술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럽에 기술나눔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과 함께 동반성장연구회 (I-Dream) 협회를 함께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코센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2년에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 다양한 정보 교류도 하게되고 저도 제가 속해 있는 Max-Planck-Institute for Plasma Physics의 보고서들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회로 지속적으로 세계 곳곳에 있는 과학기술분야 선후배들과 함께 네트워킹을 하게 되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최근에도 코센데이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거주하는 한인 과학기술자들의 삶에 큰 활력을 주신 것 매우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지난 10년 이상 도시와 먼 시골마을에서 살면서 한국에서의 삶과 달리 개인시간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 활동을 하더라도 남는 시간이 많아 여러 분야의 책읽기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니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 좋기는 했지만 함께 제 생각을 나누며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부터 한국에 계신 지인들과 함께 줌으로 2개의 북클럽 모임에 참여하면서 함께 책도 읽고 나눔도 하며 풍성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인문 철학 분야, 세계관 등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고 있었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드림, 소유의 종말 등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그리고 소설로는 1984, 멋진 신세계 등이 제게 많은 잔상을 남긴 책들입니다. 북클럽 참여로 현대철학 및 세계관에 대해 좀더 관심이 생겨서 올해 1월부터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총 22권의 전집에서 근대 철학 및 신학 및 음악 예술 등 여러 문화 분야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 여러 현대의 윤리 문제, 및 삶의 과제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쉐퍼 박사는 스위스 산골 마을에 라브리 공동체를 창설하기도 했으며 자유로운 방문 및 토의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개인적 버킷리스트가 언젠가 라브리 공동체에 가서 지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책을 읽는데 동기가 더 발동했습니다
소개드릴 책은 프란시스 쉐퍼 전집 (22권)중 2번째 책인 “이성에서의 도피”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시작으로 자연과 은총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이 현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늘에 속한 것들이 너무나 중요하고 거룩하다는 비잔틴적 사고방식과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요소, 즉 더 이상 자연을 경시하지 않는 관점을 대비시키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퀴나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는 타락했으나 인간의 지성은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지성영역에서 자율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신학에서도 자연 신학이 발달하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철학 영역, 미술 등 전 영역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 칸트, 헤겔, 루소, 샤르트르 및 카뮈, 하이데거 등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관점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은 상층부 (비합리적 영역, 은총, 자유, 신앙)와 하층부 (물리적, 합리적 영역, 자연)의 절망선이라는 개념입니다. 절망선의 개념은 때로는 상층부와 하층부에 놓는 개념들이 시대에 따라 변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절망선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 (즉 통합을 위한 시도)의 실패로 현대인의 분열이 시작되었으며 절망적인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개념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의 3장 절망선이라는 장에서 다루고 있는 “초기 근대과학”과 “현대적 근대과학”의 비교 부분입니다. 초기의 근대과학자들은 이성적인 우주를 창조하신 이성적인 초월적인 존재자가 있고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여 우주의 형상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믿은 기독교와 견해를 같이 하였다고 합니다. 즉 초기 근대과학은 자연의 사물을 취급했다는 점에서 자연과학이며 자연 원인의 제일성을 주장하기는 했으나 하나님과 인간을 기계적으로 인식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초월적인 존재자가 우주와 역사에 관한 지식을 주셨다는 열린 세계로 자연을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적 근대과학에서는 철저히 닫힌 체계에서의 자연원인의 제일성을 믿게 되었으며, 현대적 근대과학은 상층부와 하층부의 완전한 통일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로 인해 기계적 세계관, 유물주의, 자연주의 세계관이 자리 잡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늘 상층부는 하층부의 자율 즉 기계적 세계관에 의해 잠식되고야 맙니다. 그럼에도 우리들 (현대인)은 스스로를 단순한 기계라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스스로를 기계로 볼 때 너무 절망적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상층부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며 이를 위해 “도약”을 시도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더이상 합리적 (기계론적, 유물론적) 설명으로 비합리적인 상층부 (의미, 가치 등)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회화, 음악, 소설, 종교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도약을 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도약이란 상층부와 하층부를 통합하는 설명을 추구하지 않으며, 상층부의 비합리성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약의 대표적인 영역이 철학에서는 샤르트르, 카뮈, 야스퍼스, 하이데거를 주축으로 한 세속적 실존주의로 나타나고, 종교에서는 종교적 실존주의 및 신신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쉐퍼는 현대인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합리적인 인본주의”와 “기독교의 전인개념”을 대비시키며 해결방안을 모색합니다. 합리적인 인본주의적인 개념에서는 다른 사물과는 전연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시작할 때 인간은 궁극적인 진리로 향하는 교량을 세울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저자는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서 출발한다면 확실하게 지향할 목표가 없기 때문이며, 결국 보편자를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에 이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기독교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해결을 시도하는데 이는 인간이 인격적인 자신에게서 출발할 수 있으며, 인간이 타락했다 해도 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것은 아니며, 여전히 인간됨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이든 모든 인간은 경이에 찬 존재이며 누구라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인간됨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샤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며 “위대한 철학적 물음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보다는 무엇이 존재한다는데 있다”라고 강조합니다. 즉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무가치한 존재, 즉 기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격성을 지닌 경이에 찬 존재라는 것입니다.
상당한 분량의 인문 철학 요소를 지닌 책을 매우 짧은 글로 요약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프란시스 쉐퍼와 같이 철학, 문학, 예술, 과학 등 거의 전 학문 영역을 아우르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인문학적 지식을 요하는것이 분명합니다. 저의 경우는 저자가 그림이든 음악이든 예를 들어 설명할 때 구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그림도 살펴보고, 음악도 들어보면서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그럼에도 ‘나’에 대한 인식과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인문학적 견해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프란시스 쉐퍼의 전집 22권을 계속 읽어 나가면서 나 스스로와 세계, 즉 개별자와 보편자에 대한 더 나은 이해 그리고 통합의 가능성을 탐험해보려 합니다. 쉐퍼의 전집 20번째 책인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르게 되면 이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면서요…
프랑스 INRIA Paris Saclay의 COMETE 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계신 정강수 박사님을 추천 드립니다. 정강수 박사님은 현재 차등 프라이버시 및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머신 러닝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기계학습에서의 fairness에 대한 연구도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에 유럽의 동반성장연구회 (I-DREAM) 활동을 함께 수행하며 사이언스캠프를 위해 탄자니아 아루샤에 함께 다녀왔는데 다양한 영역의 질문에 대해 깊이 있는 식견으로 대답해줘서 저희 그룹에서 위키정으로 불렸습니다! 정강수 박사님의 책 소개에 많은 기대가 됩니다!
이 글을 읽으며, 역시 세계는 총총히 엮인 그물망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반갑습니다.